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중략)
위시는 유명한 이육사의 청포도란 시 일부분이다...
내가 지금도 거의 외고 있을정도로 매년 7월만 되면 떠오르는 싯귀이다.
이 시가 던져주는 나의 유년시절에 대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평온함을 다시
한번 생각해 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도 매년 7월이면 푸른하늘 뭉개구름이 둥둥 떠다니고 온 산하가 푸른빛으로
물들고, 솔잎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산들바람..
그시절 초록이 주는 유년기 고향의 싱그러움을 잊을수가 없다.
잠시 시간을 거슬려 지금으로부터 50여년 전으로 가본다.
나도 베이붐세대에 태어난 사람으로 아마 마지막 보리보개를 겪은 사람중 하나이다.
그 시절 우리네 시골은 3-4월은 겨우내 식량도 떨어지고 제일 지내기 힘든 시절이었다.
어쩔수 없이 풀뿌리를 캐어먹고, 이제 막 물기가 오르는 산 소나무 껍질을 벗겨먹었던
기억.. 그리고 아직 모심기전 논에서 무성하게 자라는 잡초 독새풀 열매를 바가지로
흘터서 볶아 그나마 허기를 채웠던 그런 경험들을 당시 나처럼 시골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보리가 익어가는 5월이면 아직 다 익지않은 보리를 베어 통채로 솥에넣고 굽거나
불에 그슬려 비벼먹기라도 하면, 어느정도 배고품에서 벗어나는 시기였다.
이 모든 배고품도 6월말이나 7월쯤이면 완전히 벗어나는 때였다.
특히 7월은 모든 들녘에 농작물이 한참 자라고 있을 시기인지라 덜익은 푸른 콩이나
팥을 뽑아다가 삶아먹기도 하고, 감자도 수확하는 시기인지라 먹고 싶었던 감자도
마음껏 쪄서 먹다보니 모든 것이 나에겐 배부르고 푸짐한 시절로 기억된다.
더군다나 이 7-8월 여름철에는 저수지나 조그마한 연못에라도 가기만 하면 우렁이며
송사리 미꾸라지 붕어등도 엄청 많아 이른바 “쫍바지”라고 부르는 뜰채 하나만 있으면
엄청많은 물고기도 잡을 수 있어 비롯 민물 생선일망정 물고기도 충분히 맛을 볼수
있는 그런 때이기도 하다.
이시기 가장 맛잇는 것 하나만 기억해 보라면 나는 단연코 개구리다.
개구리를 잡아 뒷다리만 껍질을 벗겨 불에 노릇노릇하게 구으면 참 그맛이 바삭바삭
하면서 구수한 고깃맛을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
모든 개구리를 먹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 가장 많이 잡아먹었던 개구리는 덩치도 있는
데다가 배 부분은 희고, 등 부분은 흰줄 사이 검은 점이 줄줄히 박혀있는 개구리...
아마 종류는 참 개구리인데...
우리지역에는 이 개구리를 검은점이 있다하여 흔히 먹 개구리라고 불리웠다..
지금 가끔씩 고향산천을 둘러봐도 환경이 많이 변해 버렸는지 정말 개구리 구경하기도
힘드는 것 같다. 정말 그토록 많았던 개구리는 다를 어디로 갔는지 ???
게다가 요즘은 정부에서도 개구리도 멸종 위기종으로 분류 법으로 잡는 것도 금지되 있다고 한다.
나의 집은 어릴 때 마을에서도 조금 외딴곳에 있었고, 마을의 논밭도 주변에 많았고,
그리고 바로 인근에 마을 저수지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특히 여름철 밤이면 밤마다 수많은 개구리들이 뒤엉켜서 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처음엔 한 두 마리가 개굴개굴 하고 먼저 선창하듯 울기 시작하면 나머지 개구리들이
일제히 따라서 울기 시작한다.
어느때는 옆에서 말하는 소리도 듣기 힘들 정도로 시끄러우면..
나는 큰소리로 밤하늘 허공에 대고 “야~ 그만”하고 소리라도 치면 수없이 많이 울어대던
개구리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갑자기 멈추어 버린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한 10여분만 지나면 또다시 한 두마리가 처음 울음을 시작하면
일제히 다른 개구리들의 합창이 시작된다.
특히 이러 개구리 울음소리는 초 저녁에 유난히 심했던 것 같다.
한밤중에는 우는 소리는 별로 듣지 못했던 것 같다. 난 초저녁에 너무 울어대다 보니
이놈의 개구리도 목이 아빠서 그러는지 ???
이 녀석들도 잠을 자느라고 그런지...이유야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런 것 같다.
나는 여름철 개구리 잡으려 갈때는 긴 철사 하나와 막대기 하나들고 보통 오후무렵에
저수지 뚝방부터 시작해 집근처 논두렁 한바퀴 돌아오는 코스이다.
개구리들도 한낮 무더위때는 더위를 피할려고 그러는지 보통 풀속에 숨어있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다가도 내가 풀밭 사이를 살살 지나가면,
꼭 오줌을 힘차게 내뿜으면서 접었던 두다리를 쭈욱 펴면서 벌쩍 튀어 나간다.
그때 막대로 때려 잡는데..
잡은 개구리는 철사에 꿰어 가져와 뒷다리만 잘라 껍질을 벗기고 불을 피워 구어서
먹곤 했다.
보통 이렇게 개구리잡으러 한번 나가면 보통 50마리 이상은 잡은 것 같다.
보통 다른 애들은 잡은 개구리 뒷다리만 구워먹고 몸통은 버리곤 했지만..
난 버리는 몸통은 다시 솥에 삶아 키우던 돼지에게 주곤했다..
내가 처음 뒷다리만 떨어진 개구리 몸통을 돼지에게 주게된 사연은 이렇다..
보통 집 돼지는 집에서 나오는 음식 찌거기를 구정물에 섞어 먹이곤 해서 키우지만
당시 우리집은 워낙 어렵게 살다보니 사람도 먹을 곡식도 별로 없었기에, 밥먹고 나온
음식 찌거기도 별로 없다보니..
돼지풀이라 불리는 흐르는 물가에만 서식하는 들풀이 있는데..
이 풀을 베어다가 보릿겨좀 섞어 가마솥에 삶아 돼지에겐 먹이곤 했다.
그런데 어느날인가 개구리 뒷다리만 구어먹고 난후, 바로 돼지풀 삶는 일을 한적이
있었는데.. 방금버린 개구리 몸통을 돼지풀에다 섞어 삶아 돼지에게 주면 돼지란 놈도
잘먹을까 어떨까 반신반의 하면서 같이 삶아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놈의 돼지란 놈도 고기를 그렇게나 좋하 하는지 처음 알았다..
정말 눈이 휘둥글해지며 환장하단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얼마나 잘 퍼먹어 대는지 ??? 우리집 돼지란 녀석도 허구헌날 풀만 먹다가 일주일에
서너번씩 이렇게 고기덩어리 주다보니 돼지도 기름기가 번들번들하면서 잘도 크고
새끼도 잘 낳고 말이다...
이후부터는 개구리 잡을대는 아무 개구리라도 되는데로 많이 잡아다가
그중 참 개구리의 뒷다리만 내가 먹고 나머지 개구리는 그냥 삶아서 돼지를 키웠던
것이다.
이렇게 키운 돼지는 당시 우리집 형편으로 볼때 유일한 현금수단이다 보니
결국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당시 우리집 다섯식구 생계비 절반이상을 차지한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들판에서 마냥 시끄럽게 울어대는 개구리들이 우리식구들이
먹고사는 것에 크게 도움을 주었던 셈이다.
흥부 놀부이야기에 흥부는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가 행운을 준 것처럼 말이다...
이후 나도 점점 커 가면서 그리고 우리집도 보리밥이라도 어느정도 먹게 되면서
부터는 개구리 잡아먹는 일은 지금까지 없었던 것 같다.
어젠가 내가 중국 사천성 지역을 여행하면서
길가에서 팔고 있는 개구리 뒷다리 튀김을 먹어본 적이 있었다.
물론 옛 유년시절 개구리 구어먹던 생각이 나다보니 말이다..
나는 불에 구어 먹었지만 이들 요리는 식용유에 튀긴 것이라 맛은 내가 구어서 먹던
옛 기억속 그 맛은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지금 이순간 개구리다리 구워 먹는다면 지독히도 배고픈 시절 추억의 그 맛은
아닐 테니만...
그러나 아직도 동남아등지에서는 개구리 요리를 흔히 먹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자녀 세대들에게는 혐오식품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으나..
사실 먹어보면 닭고기(치킨 튀김)맛과 일반 육류의 중간정도 맛이랄까~~
내 고향 7월은
파란들 남쪽에는 흰두름이 두둥실 떠가고
처마밑 제비는 부지런히 새끼들에 먹이를 물어다 주고
앞산 저멀리 골짜기에서 시원한 바람이 내려오면
가지며 호박이며 주렁주렁 열리고
초가삼간 지붕에서는 박들도 탐스럽게 커가고...
한밤 은하수 별빛아래서는
밤 개구리가 그토록 울어대던 시절...
나처럼 특히 어린시절 보릿고개를 겪었던 그 시대 사람들에겐 이런 개구리도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고, 나에게는 생계까지 지켜준 은인이신 개구리님들...
지금은 다 어디들 계시는 지 궁금하도다............
야호 !! 그 시절 깨구락지(개구리)들아 ~
하여간 땅땅큐다. 그것도 베리망치다.. 라고 외쳐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