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걷는다. 지구와 만나는 ‘어싱’ 여행지
단순한 맨발 걷기를 넘어 지구와 접촉하는 걷기에 의미를 두는 ‘어싱(Earthing)족’이 늘고 있다. 어싱족에게 전국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맨발 걷기 여행 성지들을 소개한다.
글 문유선 여행작가
흙길로 조성한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전국이 맨발걷기 열풍이다. 과거에는 건강관리에 관심이 큰 중장년층 사이에서 주목 받았지만 이제는 젊은 세대도 과감하게 신발을 벗는다.
맨발로 걸을 때 발바닥은 울퉁불퉁한 지면으로부터 다양한 자극을 받아 혈액 순환을 증진하고 심장 건강을 돕는다고 알려졌다. 수면의 질을 향상시키고 만성 통증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발바닥의 지압점들이 자극받아 다양한 부위 감각이 깨어나고, 발바닥의 미세근육들이 발달해 건강한 발을 만든다.
여기서 한층 진화한 개념이 ‘어싱(Earthing)’이다. 흔히 맨발걷기와 어싱은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조금 다른 개념이다. 어싱은 인체가 지구와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것을 통해 지구의 자연적인, 결합되지 않은 전기 에너지(자유전자)를 받아들이는 데 목적을 둔다.
이를 돕는 활동 중 하나가 맨발걷기다.어싱을 처음 소개한 사람은 미국의 사업가이자 작가인 클린트 오버다. 그는 2011년 저서 ‘어싱’을 통해 맨발걷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저자는 케이블 TV 사업을 하다가 간농양으로 고통받던 중 전기 공사에서의 접지 개념을 인체에 적용, 건강을 회복한 경험을 바탕으로 ‘어싱 이론’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국내서 어싱이 주목받은 것은 코로나19 사태 이후부터다. 약 15년 전 제주 ‘올레길 순례’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걷기 자체가 레저활동으로 부상했다. 여기서 나아가 양말과 신발을 벗고 걷는 것까지 이어진 셈이다.
스트레스에 자주 노출되고, 우울감이나 무기력에 시달리거나, 제대로 잠들지 못해 힘들어하는 젊은층도 신발을 벗기 시작했다. 맨발로 걷고 ‘상쾌한 기분이 뭔지 알겠다’라거나, ‘맨발로 걷고 온 날 오랜만에 꿀잠 잤다’는 후기도 많다.
지자체들도 ‘맨발로 걷기 좋은 길’ 조성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3월 전북 전주시에서 처음 ‘맨발걷기 활성화 지원 조례’가 제정된 이후 전국 140여 개 지자체가 관련 조례를 만들었다고 한다.
필요한 것은 ‘열심히 잘 걷겠다는 의지’, 그리고 혹시 모르니 파상풍 예방접종은 필수다.
대전 계족산
14.5km 황톳길 맨발족의 성지
맨발 걷기 코스 중 군계일학은 대전 계족산이다. ‘맨발족의 성지’와 같은 이 산에 황톳길을 만든 것은 선양소주 조웅래 회장이다. 그가 직접 조성하고 관리한 14.5㎞ 황톳길은 전국적인 ‘어싱 열풍’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조 회장이 직접 운영하는 유튜브 계정에는 황톳길에 관련된 사연들로 빼곡하다.
황톳길은 조성보다 관리가 어렵다. 비가 내리면 흙이 쓸려 내려가 계속 흙을 보충해야한다. 바닥이 마르면 물을 뿌려 주고 딱딱해진 바닥을 주기적으로 갈아엎어야 걷기 좋은 길을 유지할 수 있다. 계족산 황톳길은 연간 관리비용이 10억원에 달한다. 2006년부터 현재까지 이 길에 쏟아부은 돈이 대충 계산해도 180억원이 넘는다.
계족산은 대전의 북동쪽, 대청호를 내려다보는 자리에 있다. 해발 429m인 계족산은 봉황산으로 불리는데 산의 모습이 봉황처럼 생겼다고 해서 유래 되었다. 또한 계룡산은 닭의 머리요, 계족산은 발이라 하여 산줄기가 닭발처럼 퍼져나갔기 때문에 붙여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탐방객들 대부분은 장동휴양림 관리사무소~다목적광장~숲속음악회장~에코힐링 포토존~임도삼거리~계족산성~갈림길(대청호길)~갈림길(거리 14.5㎞, 소요시간 3시간 30분) 정코스를 따라 걷는다.
입구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그림같이 아름다운 저수지가 있다. 대청호가 손에 잡힐 듯 내려다 보이는 탁 트인 뷰 포인트도 숨어 있다.
대전 계족산황톳길
태안 만리포 · 신두리 해수욕장
고운 모래 즈려밟고 걸어요
초보자에게 가장 알맞은 맨발걷기 코스는 바닷가다. 특히 서해안은 모래가 곱고 지형이 평탄해 어싱 명소가 많다. 충남 태안 신두리 해수욕장은 ‘모래의 바다’다. ‘한국의 사하라’로 불리는 신두리 해안사구 곁에 있다.
이 사구는 길이 약 3.4km, 폭 약 0.5~1.3km로 국내에서 가장 크고 넓은모래 언덕이다. 2001년에는 천연기념물 제431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해안사구는 바닷물 안에 잠겨 있던 모래가 조수간만의 차로 인해 썰물일 때 햇볕에 마르게 되고 바람에 의해 해안 주변으로 쌓이게 되는 모래 언덕을 말한다.
고운 모래가 특징인 서해안 신두리사구
만리포는 서해안 최초의 해수욕장으로 백사장 길이가 약 2.5㎞에 달한다. 만리포라는 명칭은 조선시대 명나라 사신을 전송하면서 무사히 잘 돌아가라는 의미의 ‘수중만리 무사항해’를 기원하던 것에서 유래했다.
최근 만리포는 ‘만리포니아’로 불린다. 서핑의 명소인 미국 캘리포니아처럼 서핑하기 좋은 파도와 광활한 모래사장이 있기 때문. 만리포해수욕장의 가운데 지점에는 ‘만리포사랑 노래비’가 있다. “똑딱선 기적 소리~ 젊은 꿈을 싣고서, 갈매기 노래하는 만리포라 내 사랑”으로 시작하는 노래의 가사가 적혀 있다.
만리포해수욕장
담양 관방제림
담양의 3색 숲을 만나는 길
전남 담양에 위치한 담양오방길 1코스는 대나무 테마공원으로 만들어진 죽녹원을 시작으로 영산강 제방을 따라 긴 세월 자리한 관방제림, 그리고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까지 담양의 3색 숲을 만나는 길이다. 길이 온전히 평지로 이어져 있고 맨발족을 위해 흙길을 조성해 놨다.
관방제림은 조선 인조 26년(1648) 담양부사 성이성이 수해를 막기 위해 강 옆으로 제방을 축조하고 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이 그 첫 발걸음이다. 그 후 철종 5년(1854)에 황종림 담양부사도 제방을 다시 축조하고 나무를 조성하면서 현재 모습의 큰 틀이 잡혔다. 벼슬 관(官), 막을 방(防), 둑 제(堤), 수풀 림(林). 쉽게 풀이하면, ‘나라에서 홍수를 막기 위해 만든 둑과 숲’이다.
담양 관방제림 흙길
제주 서귀포 어싱광장
저류지가 건강 사랑방으로 변신
제주 서귀포시가 전국 최초로 조성한 ‘황토 어싱광장’. 숨골공원 내 저류지 일부(1,707㎡)에 황토를 깔아 만들었다. 남녀노소 누구나 맨발로 편하게 걸을 수 있는 부드러운 황톳길이다.
어싱광장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맨발걷기 명소로 태어난 곳이다. 평상시 활용도가 낮아 잡목과 덩굴로 도시미관을 저해했던 저류지를 저류지관리 부서와 공원관리 부서가 힘을 합쳐 탈바꿈했다. 두 부서의 협업으로 시민 건강 힐링명소로 재탄생했다.
어싱광장 개장행사(제주 서귀포시 제공)
영종도 씨사이드파크 명품 맨발로
발 지압하고 해수 족욕으로 마무리
인천 영종도에도 어싱하기 좋은 명소가 있다. 영종도 씨사이드파크의 ‘명품 맨발로(路)’다. 지난해 개장한 맨발로는 기존 공원 내 녹지공간을 맨발걷기길로 업그레이드했다.
맨발로에는 마사토가 깔려 있어 왕복 800m를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방문 시 ‘씨사이드파크 족욕장’으로 네비게이션을 찍으면 이용에 편리하다. 이와 함께 황토 체험장, 모래 체험장, 발 마사지존, 휴게 쉼터 등의 시설이 마련돼 있다. 초입에서 쭉 걷다가 종점에 ‘맨발로’ 간판이 보이면 한바퀴 돌아 시작점으로 돌아가면 된다. 돌아가기 전 발마사지존에서 발 지압도 잊지 말자. 시원한 지압판이 피로를 풀어준다.
맨발걷기를 마친 후에는 세족장에서 발을 씻을 수 있다. 이후 씨사이드파크의 인기 코너 해수족욕장에서 족욕으로 마무리하면 된다. 40도 해수에 뭉친 발이 시원하게 풀린다. 족욕장은 4월 초~10월 말,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