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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반 위에 산수경석을 올려두고 연출해보았습니다. 깊은 검빛이 빛을 받아 은은한 윤기를 띠고, 그 표면을 감싸고 물결 같이 내려오는 세로의 굴곡은 마치 달팽이 등껍질의 나이테 같습니다. 자연이 새겨놓은 이 흔적들은 스스로 숨 쉬는 듯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돌의 한쪽에 솟은 껍데기에 달팽이는 언제든 몸을 숨길 수 있겠지요. 하지만 달팽이가 집으로 쏙 숨었다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죠. 언제든 그 집채째 들어 올려질 수 있으니까요.
옛날에 한 도둑이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의 소중한 것들을 모조리 훔쳐 금고에 넣어 두었죠. 그런데 어느 날, 더 대담한 도둑이 나타나 그 금고를 통째를 훔쳐갔습니다. 애써 모은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입니다.
우리도 많은 것을 모으며 살아갑니다. 이 모든 소유물을 간직하는 금고는 바로 ‘내 마음’, ‘나’라는 자아입니다. 쓸모없어 보이는 것까지도 소중히 여겨 마음속에 쌓아두고, 세상의 계약서와 보증수표까지 그 안에 담아둡니다. 심하면 자아중독과 집착에 빠집니다. 내 마음이 영원히 안전하게 지켜줄 거라 믿지만, 만약 그 마음이 통째로 도둑맞는다면, 나의 본질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달팽이는 언제든 잃을 수 있는 금고를 등에 지고 살아갑니다. 과연 이 세상의 무엇이 나만의 금고일까요?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뇌하며 지고 가는 이 금고, 그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이 진정 최선일까요?
아마도 아들은 그 답을 찾기 위해 떠난 것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지키는 이 금고가 진정 안전한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나를 가두는 벽인지,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증명해보려 합니다.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나 자신을 돌아봅니다. 나는 과연 어떤 달팽이이고, 어떤 금고를 지고 살아가는 것일까.
나는 세상을 너무 깊이 받아들이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볍게 떠다니는 사람도 아닙니다. 세속의 방식들에 전부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등을 돌리고 도망갈 마음도 없습니다. 세상을 향해 날카로운 말을 던질 만큼 세속에 능숙하지도 않고, 영적인 세계 쪽으로 완전히 가버릴 만큼 용기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나는 늘 그 경계, 현실과 이상 사이 어딘가에서 어정쩡하게 살아온 사람인지 모릅니다.
지난달 사직전공의가 돌아갈 기회가 생기면서 아들과 카톡을 오래 주고 받았습니다. 아들이 휴대폰을 늘 들고다니지 않는듯 했지만 대화는 간헐적으로 이어졌습니다.
나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돌아오너라. 네 동생도 이번에 복귀한다고 하더라. 너를 위한 자리가 아직 거기 있을 것이다. 네 길이 무엇이든, 일단 세상 속에서 끝까지 한번 살아보고 나서 판단해라. 의사는 단순한 직업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품는 그릇이자, 병든 이의 삶에 새로운 물을 길어주는 우물이다. 네가 그 우물을 버리고 떠나는 건, 온전한 그릇을 깨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내가 아버지로서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말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단번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아빠는 그 우물에 갇혀 계십니다. 세속의 구실을 진실이라고 착각하면서 사십니다. 저는 그 구도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겁니다. 겉으로는 생명을 주는 우물이라 믿지만, 사실 그 물은 돈과 권력의 흙탕물에 오염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그 흙탕물을 ‘세상’이라 여기며 받아들이라 하지만, 저는 그 흙탕물에 발을 담그고 싶지 않습니다. 저의 본질은 의사가 아닙니다. 병원이 아닌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습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갇혀있는 것 맞습니다. 나는 세상의 질서를 완전히 부정하진 못합니다. 가정을 책임지고, 길을 끝까지 걸어가 보는 것이 그 나름의 의미와 무게가 있다고 믿습니다. 나는 책임을 하나의 돌처럼 쥐고 살아왔습니다. 무겁지만, 그 무게 덕분에 나는 땅에 발을 붙이고 있었지요. 책임은 쇠사슬이 아니라, 서로를 이어주는 다리라고 생각합니다. 병원에서 “이제 괜찮아졌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허무의 그림자가 물러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작은 빛들이 모여 누군가의 하루를 지탱했고, 삶을 버티는 힘이 되었구요. 아마 그것이 내가 여전히 세속의 강물 속에 발을 담그고 있는 이유일 것같습니다.
나는 아들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을 품습니다. 영성은 분명 눈을 맑게 하고, 세상을 깊이 보게 하겠지요. 그러나 너무 이른 탁발의 길은 때로 새의 날갯짓이 아니라 바람을 피하는 도피가 될 수도 있습니다. 책임을 두고 떠난 영성은 뿌리 없이 자란 나무 같아, 금세 시들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되물었습니다.
"좋다. 네가 깨끗한 샘물을 찾아 떠나려 한다면, 네가 서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지 보여주어라. 네가 말하는 영적 자유가 병원이라는 기둥을 부수고 얻는 허망한 공간이 아니라면, 그 공간이 얼마나 굳건한지 증명해 보일 의무가 너에게 있다. 기둥 없이 지붕을 올릴 수 있나? 세상의 기둥이 부실해 보여도, 그것은 수많은 이들의 삶을 지탱해 온 무게이다. 그 무게를 외면한 채 떠나는 것은, 도피일 뿐이다."
아들이 답했습니다.
"아버지는 기둥을 떠받치느라 정작 그 기둥의 그림자에 갇혀 계십니다. 저는 그 그림자를 벗어나 저만의 빛을 찾으려는 겁니다. 제가 걷는 길은 도피가 아닙니다. 오히려 아버지가 늘 말씀하신 ‘책임’의 더 큰 실천입니다. 돈과 권력의 논리 속에서 굴복하는 삶이 아니라,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순수한 존재로서 사람들과 마주하는 것입니다. 탁발은 바로 그 행위입니다. 저의 모든 것을 부수어 타인의 진정한 고통과 마주하는 것, 그것이 의사로서의 저보다 더 큰 책임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현실은 불완전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그 불완전한 현실 속으로 들어가서 버티고 견뎌야 한다. 버텨 본 사람만이 다음 길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다.”
그게 내가 아들에게 말하고 싶은 핵심이었습니다. 그리고 덧붙였지요.
"아들아, 네가 말하는 '진정한 고통'은 병원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더 명확하게 드러나는 법이다. 길거리에 굶주린 이에게 빵을 주는 것이 사랑이라면, 그가 왜 굶주려야 하는지를 해결하려 애쓰는 것이 의사의 소명이다. 네가 현실의 불편함에 눈 감고 '영적인 순수'를 쫓는다면, 그것은 환상의 숲에서 길을 잃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현실의 흙탕물을 외면하고 깨끗한 물을 찾아 떠나는 행위가 과연 진정한 순수일까? 그것은 결국 너 자신만을 위한 자기만족일 수도 있다."
아들이 답했습니다.
"아버지는 '진정한 고통'이 그저 눈에 보이는 육체적 고통에만 국한된다고 생각하시는군요. 병원은 환자의 육체를 치료하지만, 그들의 영혼은 외면합니다. 저는 그 병원이라는 거대한 체제 속에서 영혼이 병든 이들을 보았습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신 '시스템'은 때론 인간성을 파괴하는 거대한 야수가 됩니다. 저는 그 야수에게 제 영혼을 바치고 싶지 않습니다. 의사라는 껍데기를 버려야만, 비로소 사람들의 진짜 영혼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좋다.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네가 말하는 길의 끝을 나에게 보여줘봐라. 네가 '나'를 부수는 탁발의 길을 택한다면, 그 길에 책임이라는 그림자를 남기지 말아라. 너를 기다리고, 너를 보듬었던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무작정 버리고 떠나는 것이 과연 너의 '진정한 자유'일까? 너의 부재로 인해 생기는 고통은 누가 감당해야 한단 말이냐? 진정한 자유는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책임의 무게를 기꺼이 짊어지고 나아가는 데서 온다. 나는 네가 '자유'라는 이름으로 ‘사랑’과 ‘책임’을 무시하는 것이 아닐까 두렵다."
아들은 밑줄을 친 데미안의 페이지 몇장을 찍어 보내왔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사랑'과 '책임'을 무시한다고 생각하시는군요. 아닙니다, 아버지. 제가 가려는 길은 그 모든 것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아버지가 제게 말씀하셨던 책, 데미안에서 피스토리우스와 싱클레어의 결별을 기억하십니까? 스승을 뛰어넘어 홀로서야만 온전한 자신을 찾을 수 있듯이, 저 또한 아버지가 든든하게 세워놓은 세상의 기둥을 벗어나 저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싶습니다. 저를 미워하고, 경멸하고, 하대하는 시선까지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제가 세상에 보여줄 가장 큰 사랑이자 책임입니다."
"네 말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건 한낱 낭만에 불과하다. 너는 제도를 ‘야수’라 부르지만, 정작 사람들을 지키는 보호막도 그 야수의 몸에서 나온다. 길거리에서 아무리 순수한 말을 내뱉어도, 통증에 쓰러진 환자에게 칼을 잡아 수술해줄 손이 없다면, 그 말의 무게는 공허하지 않겠느냐?"
"아버지, 저는 그 공허함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수술이 사람의 몸을 살릴 수는 있지만, 그로 인해 심장이 살아도 영혼이 죽어가는 일을 저는 보았습니다. 그 ‘보호막’이라는 제도는 사실 사람을 살렸다는 이유로 오히려 더 깊게 영혼을 묶어버립니다. 저는 칼 대신 제 존재 자체로 사람을 만지는 길을 택한 겁니다."
"하지만 네 존재가 아무리 맑다 해도, 병을 앓는 자가 약을 얻지 못하면 죽는다. 너는 빵이 배고픔을 잊게 하는 순간의 따스함만 주려느냐? 그게 과연 책임인가? 네가 말하는 빛은, 허기진 자의 눈 앞에서 별빛만 가리키는 것과 다를 게 없지 않느냐?"
"빵은 배를 채우지만, 그 허기가 반복된다면 굶주림은 끝이 없습니다. 저는 허기라는 끝없는 굴레를 벗겨내고 싶습니다. 병이 낫더라도 또다시 병드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약보다 더 큰 치유, 곧 삶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는 빛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 빛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묻겠다. 네가 말하는 그 빛이 무엇으로 유지되느냐? 제도와 공동체가 없다면, 네가 나누려는 사랑도 눈송이처럼 스러질 뿐이다. 기둥 없는 마을에서 아무리 빛을 외쳐도, 지붕은 무너지고 사람들은 흩어진다. 그 빛은 결국 불씨일 뿐, 집을 짓지 못한다."
"하지만 아버지, 때론 집이 무너져야만 새로운 마을이 태어납니다. 무너진 터에서 사람들은 처음으로 하늘을 똑바로 올려다보고, 진짜 필요한 빛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저는 무너진 뒤를 메우는 한 줌 흙이 되겠습니다. 기둥 없는 지붕이 더는 무너질 수 없듯, 저는 지붕에 갇히지 않고 온전히 하늘 아래 서려는 겁니다."
"그러면 또 하나 더 묻자. 네가 자꾸 '영혼의 고통'을 말하는데, 정작 그 고통은 사람들의 뱃속이 비고, 약이 없어서 우는 자리에서 더 절실하다. 너는 빛을 이야기하며, 정작 ‘몸’이 무너지는 것을 외면한다. 사지가 썩어가는 자에게, 네 영혼의 노래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냐?"
"아버지, 저는 그 ‘무너짐’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깊이 다가가려는 겁니다. 사지가 썩어가는 자에게 약을 줄 이는 많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 절망을 넘어설 손을 잡아주는 이는 없습니다. 저는 약 대신 제 어깨를 내어주려 합니다. 그것이 더 큰 치유일 수 있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제도와 구조 없는 사랑은 불씨다. 불씨는 아름답게 빛나지만, 바람이 불면 사라진다. 네가 택한 사랑이 허깨비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결국 사람들에게 무너진 집을 다시 세울 힘을 남겨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너의 빛은 하나의 불꽃놀이에 불과하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버지. 저는 불꽃놀이가 아니라, '숯불'이 되겠습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꺼지지 않고 남아 사람들의 곁을 따뜻하게 지키는 숯불. 병원이라는 집은 크고 웅장하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의 눈빛은 자주 얼어붙습니다. 저는 작고 미약하게 타오르더라도, 따뜻할 수 있는 불이 되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가 택한 사랑의 길입니다."
아들의 답에 나는 한숨이 나왔습니다.
"아들아, 묻고 싶구나. 네가 말하는 그 '숯불'이 되려면, 너는 결국 네 몸을 태워야 하는 것 아니냐? 너의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그 탁발의 길이, 결국 너 자신을 소진시키는 길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 너의 따뜻한 불꽃이 꺼져버리면, 네 주변 사람들의 온기는 누가 책임진단 말이냐? 헌신과 소진은 다르다. 아빠는 네가 숭고한 정신을 좇다가 정작 너라는 존재 자체가 타버릴까 두렵다."
아들은 나의 깊은 우려를 읽어냈습니다.
"아버지, 헌신은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헌신은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사용해 타인을 비추는 일입니다. 저를 태운다는 것은 저를 잃는 것이 아니라, 제 안에 숨겨진 진짜 빛을 찾아내는 과정입니다. 의사라는 껍데기에 갇혀 있던 저는, 겉으로는 사람을 살리는 척했지만 사실은 제 자신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저의 소진은 오히려 저의 진정한 탄생이 될 것입니다. 저의 존재는 꺼지지 않습니다. 숯불은 재가 되더라도 그 자리의 온기를 남기듯이, 제가 걸어온 길은 그 자체로 따뜻한 흔적이 될 것입니다."
나는 아들의 말에 잠시 침묵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래. 네 말이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들아, 네가 그토록 부정하는 '시스템'이란 것은 때론 수많은 사람에게 가장 현실적이고 확실한 구원이 되기도 한다. 한 사람의 탁발보다, 수십 명의 의사가 모여 만든 병원이 더 많은 생명을 구한다는 사실을 너는 외면하는 게 아니냐? 숭고한 뜻을 가진 한 사람의 외로운 걸음보다, 비록 불완전하더라도 함께 가는 공동체의 힘이 더 크다는 것을 너는 부정하는 것이냐? 네가 말하는 그 빛은 혼자만의 섬에서만 빛나는 빛이 될 수도 있다."
아들은 나의 현실적인 지적에 대답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시스템의 가치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그림자에 가려진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병원이 수많은 생명을 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작 고통의 본질은 외면되기도 합니다. 저는 수십 명의 의사들이 해낼 수 없는 단 한 사람의 영혼을 치유하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공동체의 힘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공동체가 길을 잃었을 때, 누군가는 그 공동체 밖에서 새로운 길을 제시해야 합니다. 저는 그 '누군가'가 되려 합니다. 혼자만의 섬에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빛이 되어 무너진 공동체의 길을 비추고 싶습니다."
나의 가슴에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네 마음을 모르지는 않지만, 그 길은 고독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고독은 너를 강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너를 부수어 버릴 수도 있다.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순수한 마음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너의 숭고한 뜻을 존경하기보다는, 너의 결핍을 비웃을지도 모른다. 너는 그런 시련들을 견딜 준비가 되었느냐? 네가 믿는 그 순수함이 세상의 칼날에 베여 피 흘릴 때, 과연 너는 네 길을 계속 걸을 수 있겠느냐?"
아들은 나의 걱정에 웃는 이모티콘을 보냈습니다.
"아버지, 저는 이미 세상의 칼날에 베일 준비가 되었습니다. 오히려 저는 그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저의 결핍은 저의 가장 큰 무기가 될 것입니다. 저는 돈도, 권력도, 명예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에게 경계심 없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저는 그들의 상처를 치료하는 의사가 아니라, 그들의 상처를 함께 아파하는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제 몸에 난 상처가 저의 약함이 아니라, 타인에게 더 깊이 다가갈 수 있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저는 세상의 칼날을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칼날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나는 마음 속 깊은 우려를 조심스럽게 꺼냈습니다.
"아들아, 네가 있는 곳이 조계종 같은 전통 있는 종단이 아니라, 생긴 지 30년도 안 된 신생 종교단체이라는 걸 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곳이 사이비 종교 집단은 아닐까 걱정스럽다. 세상에는 순수한 영혼을 이용해 돈이나 권력을 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네가 말하는 '진정한 영혼의 치유'라는 것이, 결국은 누군가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이용될까 봐 두렵다. 너는 지금 순수한 마음으로 그곳에 있지만, 그 마음이 변질될 수도 있고, 그 공동체가 너의 순수함을 착취할 수도 있다. 그런 곳에서 네가 '진정한 나'를 찾겠다는 게, 어불성설은 아니냐?"
아들은 즉각 반박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의 걱정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곳이 '얼마나 오래되었는가'나 '얼마나 큰 조직인가'로 그 가치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곳의 가르침이 제게 얼마나 깊은 울림을 주는지, 그리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얼마나 진실된 마음으로 수행하는지를 봅니다. 전통이 없는 것이 때로는 더 큰 자유를 줄 수도 있습니다. 굳건한 기득권과 세속의 논리로부터 자유로운 가르침을 펼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거대한 조직은 그 자체로 또 다른 '야수'가 되어 돈과 권력의 유혹에 굴복하기 쉽습니다. 저는 수천 년 된 고목의 그늘보다, 이제 막 싹을 틔운 나무의 순수함을 믿습니다. 저를 위안하는 '낭만'이 아니라, 제가 직접 그 진실을 확인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네가 그 진실을 확인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아느냐? 역사는 수많은 신생 종교가 처음에는 순수한 이상을 내세웠다가 결국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한 것을 증명한다. 너는 그곳의 가르침을 '직접 경험'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너의 영적인 갈증을 이용해 너의 판단력을 흐리고 있을 수도 있다. 네가 보기에 깨끗한 샘물이라 믿는 것이, 사실은 달콤한 독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섣부른 확신은 자만으로 이어진다. 그 자만은 결국 너 자신뿐만 아니라 너의 주변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입힐 수 있다."
"아버지, 저는 제 판단을 맹목적으로 믿지 않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제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제 안의 모든 불완전함을 마주하고, 그 불완전함 속에서 진정한 저를 발견하기 위함입니다. 저는 제가 딛고 서 있는 땅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 흔들림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 흔들림을 통해 제가 서 있는 곳이 얼마나 굳건한지, 혹은 얼마나 취약한지를 깨달을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세상'의 흙탕물 속에서 버티고 견디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그 길을 벗어나 저만의 방식으로 진실을 찾는 것도 용기 있는 선택입니다. 저는 그 용기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래, 네 말처럼 용기 있는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들아, 너의 그 용기가 가족이라는 울타리마저 외면하는 것이 될까 봐 두렵다. 네가 숭고한 뜻을 좇아 떠난다고 하지만, 혹시라도 그곳에서 네가 길을 잃거나, 마음이 다쳤을 때, 네가 돌아올 곳은 어디에 있느냐? 네가 믿는 '공동체'가 너를 외면하거나 버렸을 때, 네가 기댈 어깨는 누가 되어줄 수 있느냐? 내가 너의 그런 모습까지도 사랑하고 포용할 수 있을지... 나는 내가 너에게 그런 아버지가 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아들도 그 점에 많은 생각을 한듯 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그 모든 것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제가 만약 길을 잃고, 마음이 다친다면, 그것 또한 제가 짊어져야 할 몫입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걷는 이 길이 결국 가족에게 더 큰 사랑과 책임을 보여주는 길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제게 말씀하신 '사랑'과 '책임'의 무게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온전히 비워내어, 더 큰 사랑을 담아낼 그릇이 되려 합니다. 아버지가 제게 주신 사랑이 바로 제가 나아갈 길의 빛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저를 믿어주십시오."
나는 아들의 사주 이야기를 끄집어냈습니다. 아들은 그 의미를 바로 이해했지요
“아버지, 저를 의심하시는군요. 학교 공부만으로 평가받아온 제가, 이 험한 길을 견딜 그릇이 되지 못할 거라고, 끝을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 사주에 ‘재(財)’와 ‘여자’가 있어 수행에 방해가 될 거라고 우려하시는 거네요.”
“그렇다. 네 말은 언제나 아름답고, 뜻은 높다. 하지만 아빠는 네가 품은 그 뜻의 무게를, 네가 짊어지고 갈 고독과 유혹을 알기에 묻는 것이다. 공부의 재주와 삶을 수행하는 힘은 다르다. 그리고 네 사주에 깃든 화토상관용재격의 기운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네 몸과 마음을 옭아매어 너를 흔들어댈 것이다. 그 유혹을 네가 어떻게 이겨내겠다는 것이냐?”
“아버지. 저는 그 ‘재’와 ‘여자’를 외면하거나 피해갈 생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수행의 재료로 삼을 생각입니다. 제가 품은 뜻이 단순한 꿈이 아니라, 삶 그 자체로 드러나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저의 모든 약점과 유혹, 집착마저도 그 뜻 안으로 끌어안아 녹여내야 진정한 ‘그릇’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녹여낸다? 쉽게 말하는구나.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겠느냐? 중도에 쓰러지고, 길을 잃은 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너는 지금 상관패인의 일시적인 대운때문에 이 길에 있는거야.”
“아버지의 걱정을 절대 쉽게 여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저는 제 안의 ‘재’와 ‘여자’를 단순한 유혹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애착이고, 연결고리입니다. 탁발승이 단지 맑은 곳만을 떠돌지 않듯이, 저는 오히려 그 유혹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그 애착의 본질을 보려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공(空)’을 보는 길이라고 배웠습니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 그들의 욕망과 사랑과 절망이 바로 제가 넘어야 할 산이자, 함께 나아가야 할 길입니다. 그것을 외면하는 수행은, 허공을 베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너의 그 해석은, 스스로를 위안하는 합리화에 불과할 수 있다. 현실의 유혹은 네 이론처럼 순수하지 않다.”
“맞습니다. 그래서 그 유혹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제 모습을 아버지께 보여드릴 수도 있습니다. 부끄럽고, 낙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그게 바로 ‘중도에 그친다’는 것이 아니라, ‘중도에서 싸우는’ 것입니다. 저는 완전한 승리를 꿈꾸지 않습니다. 매일 패배하고, 일어서고, 다시 무너지는 그 과정 자체를 수행이라고 믿습니다. 학교 공부는 정답이 있는 문제를 푸는 재주였지만, 지금부터 제가 풀어야 할 문제는 정답이 없는, 제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그 싸움의 한가운데에 ‘재’와 ‘여자’가 있다 해도, 저는 그것을 피하지 않고 마주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그 유혹에 져서 네 뜻을 저버린다면?”
“그럼 그조차도 제 길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그 실패의 무게가 제가 다시 걸을 때의 발걸음을 더욱 무겁고 진실하게 만들 것입니다. 아버지, 저는 결코 끝이 보장된 길을 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끝이 무엇이든, 그 과정 전체를 ‘진실하게’ 살아내는 것이 제가 믿는 수행입니다. 제 그릇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금 가고, 흠집난 그릇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빈 틈으로 빛이 스며들고, 그 흠집에 다른 이들의 아픔이 걸릴 수 있다고 믿습니다.”
“...”
“아버지가 보시기에 제 수행그릇이 작고 약하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하지만 그릇의 가치는 단지 그 크기나 견고함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닙니다. 어떤 물을, 어떻게 담아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지닌 모든 것, 약점과 유혹까지도 담아 그 깊이를 시험해보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가 선택한, 제가 만들어가는 그릇의 방식입니다.”
“ ... 그래, 알겠다. 네 그릇은 네가 직접 깨뜨리거나, 아니면 담아내거나 하는 것이겠지. 네 그 방식대로, 네 그릇을 만들어 보아라. 아빠는... 네가 그 깨어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 마음이, 네가 가장 큰 그릇임을 증명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되네.”
아들은 툭 나를 찔렀습니다.
"아버지는 ‘나’를 온전히 찾았습니까? 아빠는 변화라는 것을 겪어보지 못했고, 내면의 정체성이 완전히 깨부서져야만 비로소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네가 말하는 길의 끝이 어디인지, 나도 궁금하구나. 네가 그토록 말하던 '진정한 나'를 찾은 그날, 다시 아빠에게 돌아와 너의 이야기를 들려주렴. 그때는 네가 말하는 모든 것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들은 바로 립서비스를 날렸습니다.
"아버지, 저의 가장 큰 그릇은 아버지입니다. 아버지가 든든하게 버텨주신 그 세속의 무게가 있었기에, 저는 이 그림자를 벗어나 저만의 빛을 찾을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의 길은 아버지의 길로부터 시작된 길입니다. 그러니 두려워 마세요. 저는 홀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와 함께 가는 길입니다."
나는 더 이상 글을 잇지 못하고, 아들의 프로필 사진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눈에는 이 세상의 모든 무게를 짊어진 듯한 고뇌와 함께, 아들의 굳건한 신념이 있었습니다.
아들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내가 짊어진 세속의 무게와 아들이 택한 영혼의 가벼움이 서로 충돌하며 만들어낸 불꽃은, 끝내 누구의 승리도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치열한 논쟁 속에서 각자의 진심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거목의 가지가 새로운 싹을 향해 길을 열어주는 순간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래, 아들아. 네 말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늘 온전한 그릇을 지키려 애썼다. 금이 가고 깨질까 두려워, 그 안에 온갖 세상의 흙탕물을 받아내면서도 그 그릇 자체를 버릴 생각은 하지 못했지. 하지만 너는 다르구나. 너는 금이 가고 흠집 난 그릇이야말로, 세상의 아픔을 담아낼 수 있는 진정한 그릇이라고 말하는구나. 나는 그 흠집을 메꾸기에 급급했는데, 너는 오히려 그 흠집으로 빛을 스며들게 하려는구나.'
'그래, 아빠는 네가 겪으려는 그 변화를 격렬히 겪어보지 못했다. 나는 내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것이 책임이라 믿었고, 그래서 버텨왔다. 너의 탁발이, 너의 길이 도피가 아니라 진정한 소명임을 증명해 보인다면, 아빠는 기꺼이 너의 뒤를 지키는 든든한 그늘이 되겠다. 언젠가 네가 길 위에서 온전히 '나'를 찾아 돌아온다면, 아빠는 가장 먼저 고백할 것이다. '네 말이 옳았구나. 내가 아직 모자랐구나' 라고.
아들아, 이제 네 길을 가거라. 너의 그 걸음이 세상에 작지만 분명한 빛을 가져올 것이라 믿으며, 너를 축복한다.'
나는 여전히 세속 한가운데에서 서툴게, 그리고 묵묵히 하루를 버텨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기대 하나를 품습니다. 이 현실과 이상의 경계, 이 어정쩡한 위치에서조차 언젠가는 작지만 분명한 빛이 한 줄기쯤은 비춰올 것이라고. 아들의 고집스러운 신념과, 헤세의 문장과, 나의 체온이 서로 스치며, 언젠가 우리 둘 다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같은 것을 바라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을 구원하는 일'에 대한 다른 이름일 것입니다.

첫댓글 늘 가난한 밥상을 마주하는 저는 지금도 빈둥빈둥 커피를 마주하고,
내일도 가난한 밥상 그러나 걱정하나 없습니다 돈떨어지면. 무슨 수가 나겠지...
타고난 본성은 어쩔수 없는것인가 봅니다 평생을 자유가 좋아 자유롭게 대충 살았지요
그래도 후회는 없습니다 ㅎ
감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