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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향기로운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익명회원 입니다
◎北 평양 호텔에서 성접대 성행
다음 글은 '북한민주화위원회(대표 황장엽)'가 홍보한
'핫 시사뉴스 모음집'에 있는 기사중 하나를 옮긴 것이다.
해외투숙객 약점잡기. 외화벌이에 이용.
1995년봄 탈북민 강영희(현51세,당시35세)는 성실한 남편과 어린 두 자녀와 함께 평양의 강남이라고할수있는 보통강구의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남편은 대남선전부 소속의 일꾼으로 일했고, 강씨는 평양의 한 호텔에서 관리자로 일했다.
40 여명의 호텔종업원을 관리하는 여성지도원의 한사람인 강씨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엘리트로서 능력있는 당원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나 강씨의 운명을 바꾸는 기막힌 사건이 일어날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그해 5월초의 일이다.
당시 북한경제가 피폐해져 변방에서는 사람들이 굶어 죽는다는 소문이 들려 올 무렵이다.
그날도 강씨는 호텔로비에서 객실 손님을 맞는 종업원들에게 업무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보위부가 '당을 위해 몸을 팔라'라고 지시
그날 호텔에는 드물게도 아프리카에서 왔다는 얼굴이 새까만 손님들이 왔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들은 무기장사를 하는 거물급무역일꾼으로서 북한을 자주 출입하는 사람들이였다.
이들 가운데 우두머리되는 자가 데스크에서 강씨를 바라보면서무엇인가를 요구를 했고 강씨는 그가 무슨말을 하는지 몰랐다.
얼마후 상관이 강씨를 불러 그 아프리카 손님을 위해 투숙기간동안 서비스를 직접하라고 요구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몰랐지만 곧 성매매를 지시하는 말임을 알아차렸다.
이미 이계획은 평양보위부에 보고 되었고, 강씨는 몹시 당황했다.가정이 있고 자녀가 있는 부인이 몸을 팔아야 한다는 것은 청천벽력과 같았다.
강씨는 그날 평양보위부로 호출되어 당과 나라를 위해 몸으로 충성하라고 강요 받았다.
그리고 '관계를 맺되 당의 10대원칙대로 김정일의 권위를 지켜 교제하고화대는 최대한 많이 받아내라' 는 지시를 받았다.
만약 이 지시를 받아 들이지 않으면 어떤 불이익이 올것인가를 너무나 잘 알았기때문에 강씨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가족 몰래 자기를 희생하는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평양에서는 어느 호텔에서나 성매매는 흔하다. 당시 평양의 서산호텔이 자본주의식으로 경영되고 있었는데당의 지시에 따라 미모가 뛰어난 북한여성들을 성매매용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강씨는 호텔의 요구가 있으면 이곳에 연락하여 여성들을 불러오곤 했다.
이와 관련해 강씨는 놀라운 고백을 했다.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성매매사업은 평양보위부가 직접관장하고중요한 외화벌이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알수없지만 화대로 미화3만달러가 요구됐고, 이미 경험이있는 거물급 외국인들은 그 비용에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고 했다.
강씨도 그날밤에 3만달러를 받았다고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손님이 또 다른 2만달러를 강씨에게 개인적으로 준것이 화근이 되고 말았다.
북한과 무기거래를 한다는 그는 돈다발이 가득한 가방을 열어보이며 2만달러를 푼돈처럼 던져 주더라고 했다.
강씨는 3만달러를 보위부에 전달했지만 2만달러는 숨기고 어리석게도 흥청망청 쓰고 말았다.
집에 고급소파를 들여놓고 고급옷을 사입는등 호화생활을 한것이 당에 고발되어 강씨 가족은 하루아침에 평양에서 자강도 전천지역으로 쫓겨나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강씨는 보위부에 불려가 40일간 조사를 받고 당의 돈을 편취했다는 죄목으로 교화소에서 1년간 옥살이를 했다.
★몰래 카메라로 한국목사들 약점잡아★
강씨는 당시 호텔에서 일하며 알게된 몇가지 사실을 전해 주었다.북한의 호텔방에는 몰래 카메라가 설치되어 24시간 감시를 한다.
특히 외국인 손님에 대해서는 직접 보위부의 담당이 붙어 철저히 감시한다.북한 정권의 입장에서 활용도가 높은 손님은 반드시 미모의 여성 일꾼을 붙여서 온 몸으로 서비스하게하고 깊은 남녀관계를 맺게하여 그 증거를 녹화해 약점으로 이용한다고 했다.
한국교회 목사들이 평양에서 순진하게 당한 여러 스캔들도 이러한 음모와 관련된 일이라고 강씨는 전했다.
강씨가 석방되어 남편을 찾았을 때 딸은 이미 죽고 없었다. 어린것들이 죄많은 이 엄마를 찾아 자강도에서 평양까지 가겠다며 천리길을 나선것이지요.
걷고 걷다가 다섯살 딸은 길에서 굶어 죽었대요. 열살아들도 죽어갈즈음에 다행히 고마운 분이 데려다 목숨만은 건졌답니다.강씨는 지금도 이일을 생각하면 가슴을 치며 운다고 했다.
당을 믿고 당의 지시대로 했지만 그에게 돌아온것은 가정파탄뿐이었다.이 기막힌 결과에 후회와 분노가 겹쳐 거의 미칠것 같았다고 한다.
하지만 살길을 찾아야했다. 죄없는 남편과는 별거하기로하고 이때부터 강씨는 맨주먹 장사꾼으로 나섰다. 무산지역의 콩을 받아다 평양장마당에 내다 팔면 꼭 두배의 벌이가 된다는 비밀을 알고 강씨는 장마당사업에 눈을 뜨게 되었다.
늘 장사에 분주했지만 강씨는 꽃제비들을 모아 먹여 살렸다.
몇년사이에 큰 장사꾼으로 소문이 나자 자강도 보위부원들이 들이닥쳐 조사할게 있다는 핑계로 전 재산인 콩을 몰수했다. 강씨는 다시 빈 털터리가 되었다.
2000년. 평양으로 들어와 마침 호텔 화폐교환소에서 일하는 친구의 제안으로 겁도 없이 김정일의 비자금을 밑천으로 담배장사를 시작했다.
북한의 가짜담배를 신의주를 통해 중국단동에 팔면 상당한 이윤이 남았다.장사수단이 좋았던 강씨는 몇년되지 않아 수만 달러를 벌었다.
이 돈으로 강씨는 남동생들이 살집을 세채나 마련해주었고, 남편과 함께 사는 아들의 양육비를 아낌없이 지원했다. 그러나 더 이상 살수없다는 생각에 탈북을 결심했다.
★가정파탕, 살길 찾아 탈북,그리고 남한행
1990년경 재미교포들의 북한방문단으로 평양에 온 이모가 가족을 상봉했을때몰래 성경책을 전해주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천주교도인 이모는 어린 강씨에게 예수님을 의지하라며 손바닥만한 십자가를 주었는데 그 십자가가 힘이 되었다. 남몰래 숨긴 십자가를 쓰다듬으며 힘들때마다 기도했다.
강씨는 2008년 12월에 중국으로 탈북했다. 그러나 며칠뒤 중국화룡에서 중국공안원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꼼짝없이 북송될 처지에 있었는데 생각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잡혀온 200명이나되는 탈북민들속에서 조선족인 공안국장이 강씨를 지목하며'아까운 여자다. 당신을 도와 주겠다'며 나서지 않는가.
아무조건없이 강씨는 5일만에 풀려났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었인가.
그 과정에서 교인들과 한 가족처럼 생활했던 화룡의 조선족교회를 잊을수없다고 했다. 이 교회는 강씨가 한때 평양에서 가짜교인으로 훈련을 받고 참석했던 장춘교회(평양장춘구)나 선교교회(평양선교구)와는 비교가 되기때문이다.
당시 강씨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예배에 외국인들의 동태를 감시하며 교인행세를 하기 위해 함께 참석했다. 이들 교회는 가짜였다.
그러나 조선족교회는 달랐다. 피아노도 치고, 찬양도 하며 노인들을 보살핀다. 강씨는 전에는 경험할수없었던 따뜻한 사랑과 감사를 깨달았다고 한다. 눈물을 훔치며 긴 이야기를 마친 강씨는 남한에서도 성공한 사업가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다행히 남동생과 조카가 남한에 함께오게되어 외롭지는 않다며 장차 돈을 벌어 북의 형제를 구원하는 북한선교에 나서겠다고 했다.
출처: 미래한국신문 2010년 3월 17일.
포주노릇하는 보위부?
가짜교회 그리고 가짜 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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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두둔하면 진보가 되고
자유민주주의 앞세우면 보수.반동이 되는 나라
일제시대에만 애국자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물론 나라 잃은 설움 속에서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지상명령 때문에 나라
사랑이 더욱 절실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 대한민국은 반쪽만의 독립을 누리고 있습니다.
북한의 빼앗긴 땅을 찾기까지는 완전한 독립이 아닙니다.
김정일의 독재와 횡포의 감옥에 갇혀 살면서 자유라고는 손톱만큼도
누리지 못하고 날마다 공포에 떨며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는
북의 2,300만 동포를 해방하는 일이 애국심 없이 될 일입니까.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가 하지 않으면 누가 그 일을 할 것입니까.
대한민국에 살면서 북을 두둔하고 김정일 편에 서려고 애쓰는 한심한 사람들,
이명박에게 김정일을 찾아가 만나서 좀 도와주라고 애걸하는 작자들,
돈도 물자도 좀 아낌없이 날라다 주라고 성화하는 얼빠진 인간들,
그렇게 해서 김정일의 포악한 정치가 영원무궁토록 이어지고
죄 없는 우리 동포는 영구히 노예가 되기를 바라는 변태들, 그들은
생각만 해도 입맛이 떨어집니다.
지난 번 지방 선거에서 교육감을 뽑았다는데 민주 교육을 하겠다는
후보는 한 지역에서 다섯도 나오고 여섯도 나와서 결국은 표가 갈려
당선이 안 되고
전교조의 대변자들은 각 시·도에 후보를 꼭 한 사람만 내서 당선시키니
전국의 교육감이 대개 전교조 출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진보 교육감 vs 교육·과학부 정면충돌’이라는
기사였습니다. 전교조 교육감이 ‘진보적’이라는 것은 도대체 누가
지어준 ‘이름’입니까.
김정일을 두둔하면 진보가 되고 자유민주주의를 앞세우면 보수가 되고
반동이 되는 그런 나라가 전 세계에 어디에 또 있을 수가 있습니까.
늘 하는 말이지만, 밥은 대한민국에서 먹고 일은 김정일을 위해서 하는
정신 나간 인간들을 이 땅에 이대로 두고 우리가 세 끼 밥을 먹고
사는 것도 기적입니다.
첫댓글 생각이나 사상이 똑같은 사람만 산다면 그게 재미가 있겠슈!전교조라해서 아니라하면 그또한 아니지요 그리고 내생각인데 통일 그딴거 생각말고 되면되는가부다
아님말구 우리먹고 살기도 힘들어요 독일를봐 좋을거 별로없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