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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으로 세운 도시와 탑 11:1~4
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언어를 혼잡하게 하심 11:5~9
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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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온 땅의 언어가 하나일 때, 사람들이 시날 평지에 거류하며 하늘에 닿는 탑과 성읍을 건설해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려 합니다. 하나님은 이를 보시고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셔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시 건설하기를 그치고 그곳을 ‘바벨’이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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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은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욕망이 담겨 있습니다. 1-2절은 바벨탑을 세우기 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온 땅에 언어가 하나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 없이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시날 평지에 정착하게 되는데, 성경은 그들이 동방으로 옮겼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 인류는 계속해서 동쪽으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동쪽으로 간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홍수 후에 사람들은 동쪽으로 옮겨 시날 평지에 정착하고 바벨탑을 세웁니다. 평지에서는 방향 감각을 쉽게 잃어버리기 때문에 그들은 탑을 쌓아 길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시도를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인 흩어짐을 면하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또한 성경은 그들의 행동을 "우리의 이름을 내고"자 바벨탑을 세웠다고 지적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내기 위한 것은 죄로부터 나오는 마음입니다. 그들은 탑을 세워 하늘 성전에 닿아 자신의 이름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이 아담과 하와에게 했던 유혹과 같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벽돌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클라인 교수님은 인간의 노력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바벨탑을 통해 인간은 하늘과 땅을 잇는 (에덴의) 성산을 재창조하려고 하였다. 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계획은 사탄이 세운 것이다. 따라서 악에 대한 악마적 헌신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신적 능력이 그들 안에 통합된 형태로 나타났다"
그들은 흩어짐을 면하기 위하여 바벨탑을 세웠습니다. 바벨탑은 인간의 힘을 모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버리고 인간의 힘으로 성취하는 모든 것들은 바벨탑의 그림자입니다. 세상의 도시들은 하나님의 도시를 대적합니다. 바벨탑은 자신의 문명을 자랑하기 위하여, 스스로 천국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그것들은 죄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우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하나님과 대적합니다. 성도들은 우리 안에 있는 바벨탑을 부수고 하나님의 성전으로 나아가는 자들입니다. 오늘 하루도 세상의 우상을 따르지 않고 오직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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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4,5,7절 사람들이 건설하는 성읍과 탑을 보려고 하늘에서 내려오십니다. 금령을 어긴 아담을 부르시고, 아벨을 죽은 가인에게 책임을 물으신 것처럼, 하나님은 높은 하늘에 계시지만 이 땅을 주의하여 살피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 우리 이름을 내자’ 하고 모의할 때, 하나님은 ‘자, 우리가 내려가자’고 결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이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는 존재임을 아시기 때문에 끊임없이 우리 삶에 찾아오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제쳐두고 자주적인 삶을 모색하는 시도에서 구해내시는 분입니다.
6-9절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사람들을 흩어버리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흩어져 땅을 채우라는 사명을 주셨지만, 교만한 인류는 성읍을 건축하여 흩어짐을 면하고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안전을 도모합니다. 첫 사람이 하나님처럼 되려고 금과를 탐했던 것처럼, 그들도 하늘까지 닿는 높은 탑을 쌓아 자신들의 명성을 드높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류를 멸하지 않으시고 다만 언어를 혼잡하게 하심으로 인류의 교만한 모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십니다. ‘문화 명령’(1:28)은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지만, 우리 문화와 학문이 하나님의 주권과 영역을 부정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4절 하나님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동방’으로 향하던 사람들은 급기야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시날 평지’에서 연합합니다. 이곳은 영걸 니므롯이 나라를 시작한 장소입니다(10:8,9). 사람들은 이곳에 성을 쌓음으로 하나님을 향해 독립을 선언하고, 높은 대를 쌓아 하나님을 향해 선전포고를 합니다. 비록 소통의 수단을 잃은 탓에 동맹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바벨에서 확인한 그들의 욕망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소통의 수단을 강구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연합을 도모해왔습니다.
오늘날 인류는 상상할 수 없는 번영과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급기야 신의 영역을 부인하고, 인간에게 가장 존귀한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지금 인류도 바벨의 사람들처럼 스스로 높아졌다고 자만하고 있겠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을 내려다보며 웃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벨의 욕망이 교회까지 점령하고 있지 않은지 두려운 마음으로 돌아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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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 우리 이름을 내고
온 땅에 언어가 하나인 때 노아의 후손들이 동방으로 가다 시날 평지에 이르러 내 이름을 내자며 바벨탑을 짓는 사건입니다
홍수 재난을 겪으면서 나 스스로 그 재난을 막아야 겠다는 생각에 힘을 모아 성을 쌓기로 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악함을 보시고 흩으시러 내려오십니다
은혜 입은 노아의 후손들로 시작한 인류도 원죄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신들의 생각과 뜻을 유일한 목표로
사는 것을 보게하십니다
은혜를 입은 노아의 후손 중에서도 하나님을 외면하고 살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 보게하십니다
가만히 지켜보시다가 죄를 지으면 그때 내려오셔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으로 알고 있었기에 최선의 노력을 하느라
피곤한 삶을 살다가 눈이 열리고 말씀이 나타내시는 바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만나게 되고 보니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세밀하게 내 삶을 간섭하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죄인인 나는,스스로 하나님 되어 하나님은 내 인생과 상관 없이 내 생각대로 내가 추구하는 대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에 대한 계획이 있으시다는 사실에 눈이 열렸습니다
내가 아무리 지혜롭고 똑똑하다 해도 하나님만이 답이고 주인이시라는 것을, 홍수 사건과 바벨탑 사건을 통해
내 인생 전반에 걸쳐 철저하게 하나님의 자녀로의 삶을 가도록 간섭하신다는 것 알려주십니다
홍수 사건이나 바벨탑을 흩으시는 사건들을 통해 알 수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무엇인가 하면
내가 하나님과 대적하는 줄도 모르고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가야 하느 내가 지식이 없어 망하는 길로 가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영원히 잘 못된 길안에 거하지 않게,가만히 계시다 잘못했을 때 벌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라 주권적으로 전체적으로 끊임없이 간섭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부모가 되어 보니 왜 그렇게 부모님께서 나를 간섭하고 책망하며 매를 드셨는지 알겠듯이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간섭하며 좋은 길로 가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셨습니다
홍수 사건에서 노아를 구출하시는 것은 홍수 사건으로 심판 받는 사람들과 구별하는 거 이상으로 노아에게
은혜를 베풀어 이 땅에 남기심으로 ~인간의 무지대로 놔두시지 않고,죽어 마땅한 데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벨탑을 짓는 자들이 은혜를 입은 노아의 후손들이라는 사실에서 내가 은혜로 구원을 얻고 교회당 안에서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다 해도,여전히 나는 무지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너무 모르기 때문에 내 스스로
나를 보호하려고 바벨탑을 짓는다는 사실을 직면하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 구원에 이르려고 얼마나 많은 시간 공들여 투자를 했는지?그것이 바벨탑 쌓은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는데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는 지식이 없어 나도 모르게 멸망을 자초하는 길로,
죽음을 선택하는 길로 가고 있는 나를 적나라하게 직면 시키시며 양육하시는 아버지입니다
우리 이름을 내고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는 바벨탑 쌓는 이들의 말이 내 말이고 내 인생 최고의 목표였음을
알게되었습니다
나와 나의 바운더리가 행복하고 안전한 것이 지상 최대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잘 먹고 잘 살고 우리끼리 가족끼리 알콩 달콩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아프지 않고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면
좋겠는데 흩으신 이유는 그것이 답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회 공동체와 함께 불쌍한 나라 도와주고 있는 것 최대한 나누어 먹고 내 이름을 교회 이름을 드러내면서
교회 이름이 높아지면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인데,뭐 그리 잘 못한 일일까 ?하는데 아버지는 그것이
바벨탑이라며 그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로 인해 모든 민족이 복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라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오는 복, 나는 만들 수 없는 그 복을 모든 민족이 받는 것이 목적이셨습니다
성경의 약속은 역사를 살아가고 있는 죄인된 나에게는 실망스라운 약속이기에 비웃게 되고 냉소하게 됩니다
창대 하게 되리라 하셨기에 믿고 가보니 아니니까~죄된 가치관으로 받아들인 언약이 안 이루어지고
흩어지는 일만 있으니 비웃습니다
물질적으로 나누어 주고, 이름을 내고,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이라고 여겼던 무지 때문에 하나님이 이상하고
하는 것 마다 흩으시니 비윗장이 틀린 하나님으로 알았습니다
내가 이해 못하면 상대가 틀렸다는 무지가 나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티끌인 내가 어찌 하나님을 알 수 있겠고, 창조주의 목적을 피조물인 내가 알 수 없기에 내 맘대로
하나님의 목적도 이럴 것이라며 나 좋은대로 만들어 낸 그 무지한 플랜대로 간 것입니다
말씀이 들어오고 생기가 들어오면서 내가 그리도 멋있게 바라보며 따르고 싶고 영웅시 하었던 똑똑한 지식인,
역사들, 문화 ,예술, 과학들이 진리가 아니고, 위대하게 생각한 나라들이 역사에서 사라지고 최고의 가치라
여겨진 이념, 사상, 철학들이 변하고 무너지는 것에 눈이 열렸습니다
인류가 이름을 내고자 만들어 낸 모든 바벨탑들이 답이 아니고 ,정답이 없다는 사실만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어느 특정한 곳에서만 어느 사람에게만 그 것들이 정답일 수 있지만 전 인류에게는 정답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영원히 역사 내내 변하지 않는 진리로 , 스테디로 주욱 가고 있는 것이 있었으니 ~교회입니다
성경 말씀입니다
성경이 진리인 것을 알게 됩니다
은혜를 입고 내 눈이 열려 성경 말씀이 들어오고 말씀을 묵상하며 씹어 먹으면서 갈 수 있게 된 것은
내가 세운 바벨탑을 무너뜨리시고 흩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개입 ,복 주시는 길로 가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하신
결과입니다
지질하고 초라한 모습이지만 교회만은 변하지 않고 사라지지않고 역사 내내 오고 오는 세대들에게 계시 되며
이끌어가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강림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 이름을 내고자 무단히도 쌓고 쌓으며 올라가려한 우매한 길에서 돌이키도록 흩으신 아버지의 손 길이,
가지치기를 당하는 아버지의 인도하심의 그 손길이 만만치 않고 녹녹치 않았지만~
이제 나는 내 이름을 부르는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내는 자,
십자가에 내 이름은 못 박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부르는 자 된 것이 최고의 복임을 알았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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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어가 하나요 (1-4절)
세상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외치지만, '하나님 없이 뭉치면 인간은 죄밖에 지을 것이 없다'. 하나님이 사명을 위해 살라고 같은 언어를 쓰게 하신 것인데, 인간은 마음 맞는 사람과 끼리끼리 어울리며 죄지을 궁리부터 한다. 그래서 노아의 후손은 하나님으 뜻은 묻지도 않은 채 성읍과 탑을 짓고자 서로를 격려하며 벽돌과 역청을 만들기 시작한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성 쌓기를 선동한 사람은 '구스의 아들'로, 이름난 사냥꾼인 '니므롯'이라고 한다. 세상적으로 잘난 니므롯이 비전을 제시하니 사람들이 열광하며 그를 따른 것이다. 그러나 그 끝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아닌 우리 이름을 널리 알리려는 악함이 있다.
● 하나님 없이 내가 쌓고 있는 벽돌과 그것을 합리화하는 역청은 무엇인가?
내 이름을 널리 알리려다 실패하여 흩어지게 된 일은 무엇인가? (3-4절)
2.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5-7절)
아담으로부터 원죄를 물려받은 인간은 홍수 심판을 경험하고도 자기 힘으로 성읍과 탑을 건설한다. 이때 여호와께서 그들의 마음을 보고자 내려오신다. 내가 열심히 학업과 물질을 '쌓는 목적'이 하나님께 있는지, 아니면 내 이름을 높이려는 데 있는지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신다'. 노아의 후손은 바벨탑을 쌓는 일에 동참하여 흩어짐을 면하려 했지만, 이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행위'였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심으로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신다.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하신 까닭은 그들의 죄악을 더는 보고 계실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안타까운 심정으로 나의 악한 행위를 보고 계신다.
●하나님이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보시는 내 안의 악함은 무엇인가 ? (6-7절)
3.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8-9절)
하나님이 외도와 부도, 질병 등의 고난으로 가족 간에 흩어짐을 경험하게 하시는 것은 우리끼리 잘 먹고 잘살겠다며 '성 쌓는 일을 그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치게 하신 그 자리에서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도록 구원을 위해 성을 쌓아야' 한다. 내 가족,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을 위해 부르짖지 말고, 구원받아야 하는 그 한 영혼을 위해 부르짖어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을 위해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고(1:28) 우리를 온 지면에 흩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흩어지는 것이 축복'이다. 비록 육적으로 흩어져 있어도 성령 안에서 믿음의 언어가 통할 때 구원의 사명을 함께 감당할 수 있다.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서 흩어짐의 사건으로 누리게 된 축복은 무엇인가? (8-9절)
기도하기
여전히 하나님의 이름이 아닌 나의 이름을 알리려고 성을 쌓는 저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이런 저의 악한 행위를 그치게 하시고자 흩어짐의 사건으로 주님이 찾아오신 것에 감사하게 하옵소서.
이제는 다른 지체들과 성령 안에서 믿음의 한 언어를 사용함으로 구원을 위해 성을 쌓게 하옵소서. 아멘.
오늘의 중보기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세력이 흩어짐을 당하고, 구원의 사명을 감당하는 이들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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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절 세상적 욕망에서 벗어나는 삶 -
홍수 이후에 온 땅의 언어와 말이 하나일 때, 시날 평지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벽돌과 역청으로 하늘을 닿는 탑을 쌓아서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자 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고, 사람들은 온 지면에 흩으시자 그들은 도시 세우는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그곳의 이름은 바벨이 되었습니다.
✔ 세상적 욕망을 벗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무엇입니까?
- 스스로 높아지려는 교만을 갖지 않아야 합니다(1~4절).
언어와 말을 함께 사용하던 사람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발견하고, 거기에 자리를...’(2절)잡았습니다. ‘동방으로, 동쪽...’은 창세기에서는 ‘분리’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동방으로 이동했다는 것은 뭔가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옮겨 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시간이 흐른 뒤 그들은 벽돌을 굽는 법을 발견하고, 더 나아가 벽돌을 역청으로 견고히 접착시키는 기술을 습득하게 됩니다.
이에 그들은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4절)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해서 온 지면에 흩어지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흩어지지 않고, 한 곳에 정착하여 결국엔 하나님의 영역까지 침범하려는 크나큰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그들은 스스로 거대한 연합체를 이루어 하나님의 뜻에 정면으로 도전합니다.
계속되는 문명의 발달로 인해 사람들은 교묘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앉으려 합니다. 문명의 발달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을 결코 아닙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상황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얼마나 많이 알고, 가졌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나는 얼마나 겸손한 자인가를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남들보다 조금 잘할 수 있는 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없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 때문에, 더 많은 학문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 때문에, 더 높은 자리와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 때문에 내 스스로가 교만해져 있다면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교만함을 버리고, 겸손하게 주님의 말씀을 기다리며, 주님의 뜻을 행하는 삶이되기를 소원합니다.
- 우리를 주목하시는 주님을 신뢰 하여야 합니다(5~8절).
시날 평지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하셨던 하나님은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5절) 내려 오셨습니다. 그리고 사건의 심각성을 말씀(6절)하시고, 이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움직이십니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이 거기에서 하는 말을 뒤섞어서,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7절)..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방법은 언어를 혼잡하게 하셔서 사람들이 서로 하나의 일을 꾸밀 수 없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로써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는 것을 그치게 하셨습니다(8절).
하나님의 나의 삶에 대해 그리고 더 나아가 세상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으십니다. 나의 삶을 주목하여 바라보십니다.
내 판단과 생각에는 분명하고 확실했던 계획이 막혔다면 이는 분명 주님이 바라시는 뜻이 아니어서 주님이 그 일들을 막으시고, 통제하신 것입니다. 또한 우리 주님은 나의 삶의 일거수일투족을 다스리시므로 더 큰 범죄를 행하지 않도록 간섭하십니다. 그러한 은혜 때문에 죄악으로 가득한 이 세상 속에서 오늘도 나는 호흡하며 영적 풍요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심으로 나의 모든 삶을 다스리고 계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세상 속에 복음을 전하며, 주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더 많은 열정을 쏟아야 하겠습니다. 나의 삶을 주목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는 것이 세상적 욕망을 벗어 버리는 삶입니다.
- 허무한 결과만주는 세상을 붙잡지 않아야 합니다(9절).
‘주님께서 거기에서 온 세상의 말을 뒤섞으셨다고 하여, 사람들은 그 곳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한다. 주님께서 거기에서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9절,새번역)... 바벨은 바벨론을 가리키는 듯 합니다. 그리고 바벨과 언어의 혼잡함이 서로 연관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이름이 아닌, 바벨이라는 수치스러운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계획은 ‘그들이 온 지면에 흩어지는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건축에 관한 숙련공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축적한 많은 지혜와 지식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능력과 지식은 하나님 앞에서 아침 이슬과 같은 것에 불과함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수고로이 쌓는 모든 세상적인 것들은 모래위에 지은 성과 같아서 하나님이 한 번 만지시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들입니다. 허무한 결과만 있는 세상의 화려함에 내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내게 있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의 뜻대로 살며, 주님이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주님만을 생각하여 세상 나라의 헛됨을 깊이 깨달아, 세상이 주는 달콤함에 넘어지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성실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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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도움
온 땅의 언어가 하나인 것은 본래 축복입니다. 한 언어로 하나님을 함께 찬양 하는 것은 천국의 모습입니다(계 5:13). 하지만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항상 악 한 사람들이 한 언어를 가지고 행하는 일은 '인간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명령하셨는데, 사람은 자신들의 이름을 내며 인간 나라를 세우고자, 명령을 불순종하며 흩어짐 을 면하기 위해 한 곳에 터를 잡고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성취' 안에서 자 기 안전을 도모합니다. 바벨론 사람들은 '바벨'을 '신의 문'이란 뜻으로 이해했는데, 그 이름에 걸맞는 '바벨 성(지구라트) "하늘에 닿게" 쌓습니다. 인간은 그토록 힘겹게 하늘에 닿으려 하지만 하나님은 하늘에서 내려와 인생들을 살피시고 심판하십니다.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시고, 그 쌓던 성 이름을 '퍼 붓다, 뒤죽박죽으로 하다, 뒤섞다, 혼잡하게 하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바벨'이라 하십니다.
☆ 오늘의 기도
1. 하나님의 말씀에 감사함으로 순종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2. 나의 이름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 높이는 인생 되게 하소서.
악이 아닌 선한 일에 관심을 갖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악한 일에는 쉽게 마음과 몸으로 연합합니다. 이웃을 돕는 일에는 힘을 분산하지만 각자의 이익과 관련된 일이라면 한 몫 챙기기 위해서 단합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의 연대는 악하게 보시고 철저히 흩으시고 깨뜨리시지만 선의 연합은 이름답게 보시고 도우십니다.
한 몫 챙겨보려 고민하고 생각하며 불안과 염려로 스스로 쌓고 있는 나의 바벨탑은 없는지 돌아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사는 것에 감사합니다. 나의 이익을 챙겨보려는 마음으로 교만의 바벨탑을 쌓는 죄를 범하지 않게 인도하옵소서. 내가 마주한 모든 일에서 악하고 못된일은 거부하고 선을 위해 연합하기에 힘쓰며 살아가는 복되고 은혜로운 삶이 되게 하옵소서.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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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 교만의 바벨탑, 흩으시는 하나님
홍수 심판 이후에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을 통하여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라 라고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것 처럼
급속하게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 열국으로 나뉘었다.
이 때 까지만 해도 온 세상이 하나의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1)
외국어 배우느라 고생하는 것도 조상들의 죄 때문이구나!
아라랏 산에 방주가 멈추어 섰으니 그곳에서 부터 온 사방으로 퍼졌을 것이다.
사람들이 동방으로 이동하다가 시날 땅 즉 바빌로니아에 있는 한 평지를 발견하고
거기에 정착하여 기거한다.(2)
대홍수로 자기 가족과 방주에 들어 온 동물과 생물 외에는 모든 사람과
호흡하는 모든 것이 다 죽는 것을 듣고 보았으면 정신 차리고 겸손하게 살 만도 한데
여호와께 은혜를 입어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했던 노아도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실수를 하고 3 아들 가운데도 특히 함의 자손은 저주를 받았다.
이들이 서로 모여서 하는 일들이 죄를 짓는 일을 궁리한다.
처음부터 죄를 지을려고 한 것 같지는 않지만 결과가 그렇게 되었다.
이들이 하는 말들이 있다.
1, 벽돌을 단단히 굽자(3)
2. 벽돌로 돌을 대신하자(3)
3.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자(3)
놀라운 발견이다. 당시로는 노벨 과학상을 주어야 할 만한 과학적인 진보이다.
일반적으로 흙 벽돌을 말려서 사용하는 것이 상식적이였을 것같다.
좀더 어렵지만 돌을 다듬어서 좀더 단단한 성벽들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인데
흙을 굽는 기술은 매우 발달한 기술이다.
도자기 수준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인류의 시작과 더블어 이런 정도의 기술은 대단하다.
자연과학의 혁명적인 발달을 보는 것 같다.
방주에도 사용한 기술이긴 하지만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는 기술도 대단한 것이다.
아무리 자연과학이 발전한다고 해도 하나님을 대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큰 자신감을 준 것 같다.
꼭대기를 하늘에 땋게 할 만큼의(4) 큰 자신 감이다.
하늘이 냄비 뚜겅만 하게 보였을 정도의 자신감이 였던 것 같다.
현대 과학도 엄청 발달했다. 인터넷이 그렇고 컴퓨터, 아이폰등이 그렇다.
온라인으로 헌금하고 인터넷으로 예배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지........돌아보게 된다.
이들이 또 하는 말들이 있다.
5. 우리의 이름을 내자(4)
6.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4)
바벨탑을 쌓으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첫째는 우리의 이름을 내기 위함이다.
오늘날 대형 교회가 이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싶다.
아닌 것 같지만 자기의 이름을 내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자기의 영광을 구할 때는 바벨탑과 같은 사건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대항해서 자신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서 탑을 쌓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나에게 바벨탑은 어떤 것일까?
큰 집, 큰 자동차, 거액의 은행계좌, 높은 지위, 권력 이런 것이지 않을까?
오늘 내가 지금 쌓고 있는 바벨탑은 무엇인가?
내 이름을 내고자 하는 모든 일은 바벨탑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 같다.
두번째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흩어져 살아라 명령하셨고
번성해서 땅에 흩어져 사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고 뜻이지만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라고 하나님의 명령과 뜻을 거부한다.
공동체에 순 개편을 앞 두고 있다.
어는 순 예외없이 흩어짐을 면하자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다.
10년씩 같은 순에 있으시면서 헤어지기 싫어한다.
순도 새롭게 2~3년에 한번 정도는 새롭게 개편할 필요가 있는 것 같은데
흩어지기 싫어하면 하나님이 강제로라도 흩으실 것이다.
노아의 손자 니므롯(10:8)이라는 자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 처럼 보이는
시날 땅의 바벨탑(10) 사건은 어떻게 결론이 나는가?
1. 언어를 혼잡하게 하신다.(7)
2. 온 지면에 흩어 버리신다.(8)
당연히 성 쌓기 공사는 중단이 되어 버렸다.(8)
의사 소통이 안되는 것도 다 죄 때문이다.
같은 언어를 써도 참 소통이 안되는 경우가 있다. 힘드는 경우도 있다.
성경 말씀을 보면 바로 죄 때문에 소통이 안되는 구나.
언어만 혼잡하 하신 것이 아니라 의사 소통이 안 되도록 하는 것은 누군가는
속으로 교만의 탑을 쌓고 불경건의 성을 쌓고 있을 때 마음의 문이 안 열리니
소통이 될 수가 없기도 하겠구나.
아무튼 하나님께서 바벨에서 언어를 혼잡게 하셨고
당신의 원래 계획대로 온 지면에서 흩으셨다.(9)
하나님의 계획은 어떻게든 이루어져 가는 구나.
하나님 아버지
오늘 시날 땅에서 바벨탑을 쌓고 있는 무리를 봅니다.
이 땅에 지금 내가 쌓고 있는 바벨탑도 봅니다.
무너뜨리고 흩으심을 보지만 더 쌓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더 많이 가지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언어의 소통이 안됨도 죄악 때문임을 봅니다.
최소한 알아 듣지 못하는 문제가 없도록 마음을 열어 주옵소서.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들을 수 있는 열린 귀는 허락하여 주옵소서.
공감하며 경청 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당신의 영광을 썩어질 버러지 형상으로 바꾸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성령님 도와 주옵소서.
영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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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온 땅의 언어가 하나뿐이어서 모두가 같은 말을 썼습니다. 사람들이 동쪽에서 이동해 오다가, 시날 땅 한 들판에 이르러 거기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시날은 남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가리킵니다. ‘수메르’ 지역은 후에 ‘바벨론’으로 불리게 됩니다. 한 곳에 자리를 잡고 거류하는 것은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는 일이었습니다(창 9:1).
그들은 서로 “자, 벽돌을 빚어서 단단히 구워내자.”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흙 대신에 역청을 썼습니다. 남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충적토로 이루어진 평야지대로서 돌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가마에 구운 벽돌과 역청을 주성분으로 하는 회반죽을 결합하여 내구성이 강한 건물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벽돌을 굽고 역청을 모아 건축하는 일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기에 초기 고대 근동의 도성들은 거주 목적이 아닌, 종교적이고 공적인 목적으로 지어졌습니다.
사람들은 또한, “자, 도시를 세우고 그 안에 탑을 쌓고서,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날리고 온 땅 위에 흩어지지 않게 하자.”고 말했습니다. 탑은 ‘지구라트’(ziggurat)라고 불리는 거대하고 높은 계단 구조물을 연상하게 합니다. 지구라트의 꼭대기에는 ‘신들의 문’이 있고, 지구라트 바닥에는 신전이 있어 사람이 하늘에 근접하게 만들고 신들이 신전으로 강림하게 하는 계단의 역할을 했습니다.
인간의 기술문명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지만, 인간이 하늘에 닿는 탑을 쌓으려고 하는 행위는 하나님이 선물을 주신 의도를 왜곡한 인간의 오만을 나타냅니다. 아담이 자신을 높여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던 죄의 본질이 바벨탑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높이고 알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명성과 업적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흩어지지 않게 하자.”는 제안은 피조물의 경계를 넘어, 하나님으로부터 물질적으로, 영적으로 독립되어 살아가자는 제안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짓고 있는 도시와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심판과 형벌을 내리시기 전에 철저하게 살피십니다. 탑을 지은 자들은 그들이 하늘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지만, 여호와께서 그것을 보러 하늘에서 내려오셔야 할 만큼 그 탑은 낮습니다. 바벨을 쌓은 자들은 그저 유한한 땅의 존재이며, 하늘의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보아라. 이들이 한 족속이며, 한 언어를 사용하여 이런 일을 하기 시작하였으니, 이제 그들은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이 거기에서 하는 말을 뒤섞어서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벨 건축자들은 하나님이 막으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떠나 피조물의 경계를 넘어 신적 존재가 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멈출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거기에서 그들을 온 땅으로 흩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도시를 세우는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거기에서 온 세상의 말을 뒤섞으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곳의 이름을 ‘혼잡’이라는 뜻의 ‘바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이름을 내고자 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높이는 자들에게 친히 영원한 이름을 주십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인간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언어를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에 사용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고 인류를 분리시키십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오셨을 때, 하나님은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말을 듣고 이해하게 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새로운 공동체를 세우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시며, 서로의 말을 듣고 이해하고 사랑하며 서로 희생하도록 인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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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을 편리하고 풍요롭게 돕는 기술과 문명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인간의 교만한 욕망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떠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인간이 한 곳에 정착해서 사는 것이나, 도시를 건설하는 것을 싫어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온 땅으로 흩어져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사명에 순종하기를 원하시며, 하나님의 언약 아래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 되기를 원하십니다.
성령으로 하나 된 교회 공동체는 권력으로 획득하고, 이름을 내기 위해 모이는 하나의 바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듣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공동체, 서로의 말을 듣고 섬기고 기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들은 말씀과 받은 사랑을 가지고 흩어져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