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한적한 거리, 시간은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고 있는지라 제법 바깥 날씨가 쌀쌀해졌다. 차가운 바람이 슬며시 남자의 품속으로 파고들고 이에 저항하듯 남자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가죽점퍼의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경찰청 강력계 형사인 김태만은 사건 현장으로 출동하는 중이다. 그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거리는 조용하고 아무런 미동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이 거리는 죽은 것 같다. 다행히도 두 번째 골목에서 꺾었을 때 정적을 죽이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경찰차들의 움직임이 이 거리에 후끈한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역시나 사건 현장인 빌라의 주변에 구경꾼들이 한가득 가득 차있다. 뭐 볼거리가 있다고 모인거야 수사에 방해만 될 뿐이지 하며 김 형사는 중얼거렸다.
"여기가 사건 현장인가? 으~ 춥다!"
김형사는 빠른 발걸음으로 인파를 향해 돌진했다. 구경꾼들을 차단하고 있는 경찰의 벽을 넘어 정문에 들어오자 바로 정면에 엘리베이터가 보이고 좌측과 우측에 각각 한 개의 문이 보인다. 그 중 오른쪽 문이 열려있고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력반의 리더인 노반장의 굵은 목소리가 틀림없다. 그리 풍족히 보이지도 않고 빈곤하게 보이지 않는 노인에게 어울리는 집이다. 노반장은 자기와 똑같은 연령배로 보이는 머리가 새하얗게센 노인 부부의 말을 기록하고 있었다. 김형사는 노반장 곁에 다가가 도착신고를 했다.
"김태만 형사, 도착했습니다."
"어, 그래. 이제 왔군. 이 분들은 이 빌라의 주인인 김갑연, 양칠숙 부부이시다.
두형사와 노인부부는 서로 인사를 건네고 다시 김형사는 노반장을 돌아봤다.
"어디입니까? 노반장님."
"사건 현장은 마지막 층 402호이다. 나와 함께 올라간다."
노반장은 김 형사의 어깨를 잡고 엘리베이터로 이끌었다. 비좁은 직사각형의 공간 속에서 노반장의 설명에 의하면 이 빌라는 총 4층으로 양쪽에 각각 한 집씩 총 8식구가 살고 있는데 밖에서 건물을 봤을 때 좌측은 1라인으로 우측은 2라인으로 4층 오른쪽 집 즉 402호에서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세 사람은 문제의 402호에 들어왔다. 전형적인 20대 여성의 집 안에 4명의 형사가 증거를 찾으러 돌아다니고 있고 1명의 형사가 거실 중앙에 서있다. 같은 동료인 꼼꼼한 성격의 오대희 형사의 시선은 바닥에 누워있는 시신에 꽂혀있다.
거실 중앙에 20대 여성의 시체가 누워있다. 고풍스런 샹들리에가 바로 위에서 시신을 비추고 있다. 머리는 베란다 쪽을 향해 있고 위에 반팔 티셔츠 한 장, 아래는 짧은 치마를 입고 있다. 그녀의 긴 생머리가 아무렇게나 풀어져있고 얼굴, 팔다리엔 다른 외견상의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
특이한 점은 온몸이 젖어있다는 것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녀 주변도 물 범벅이다. 그녀의 사망원인은 복부에 있었다. 복부 중앙을 보니 손잡이에 작은 구멍이 있는 식칼로 보이는 금속물체가 꽂혀있고 복부는 물에 섞인 피가 물들여있다. 김 형사는 몸을 굽혀 금속물체를 바라보는데 문득 코를 스치는 짙은 향기가 느껴졌다.
그 향기는 402호에 들어갔을 때부터 맡았다. 진한 향수의 향이 물에 젖어 죽어있는 시신의 냄새를 능가했다. 김형사는 코를 잡고 미간을 찡그렸다.
"노반장님, 이 냄새는 뭡니까?"
김형사의 질문에 노반장은 부엌 옆에 있는 방을 가리켰다.
"거실은 괜찮은 편이지만 그녀의 방이 난장판이라네. 방에 있는 화장품들이 모조리 박살나있어. 거기서 나는 거야."
그녀의 집구성은 거실, 거실과 이어져있는 부엌, 부엌 옆에 작은 방과 화장실이 부엌 깊숙이 들어가면 작은 세탁실이 있고 베란다 옆에 창고가 있다. 노반장 말 그대로 그녀의 방은 아수라장이었다. 옷장은 모두 열려 옷들이 바닥에 널려있고 쓰러진 화장대 주변에 깨진 거울 조각과 화장품병 조각과 서로 섞인 액체가 바닥에 흩뿌려져 있고 거실보다 지독한 냄새가 풍겨온다.
장롱과 서랍도 옷장과 비슷한 상태이다. 김형사는 자신의 감으로 범인은 금품을 노린 강도임을 생각했다. 김형사는 다시 거실로 돌아와 노반장에게 물었다.
"피해자의 신상은 확인됐습니까?"
노반장은 바지 호주머니에서 예전부터 쓴 낡은 수첩을 꺼내 뒷장을 넘겼다.
"음, 여기 이웃들에게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름은 김혜미, 여기서 혼자 사는 20대 기자야. 여기서 산지는 5년 조금 넘었고 주변인은 조사 중이네. 남몰래 숨겨놓지 않았다면 연인관계는 없네. 원한관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어."
노반장이 말을 마치자 김형사는 몸을 굽혀 피의자의 머리를 약간 오른쪽으로 돌렸다.
"여기 피해자 오른쪽 뒤통수에 타박상이 보여요."
"거실 선반 위에 있던 탁상시계로 뒤통수를 맞았어. 그것 때문에 피해자가 기절했고 범인은 그대로 배를 찔렀겠지."
오형사의 말에 김형사도 동감했다. 많이 보아온 전형적인 케이스다. 다시 시신의 복부를 바라봤다.
"여기를 찔렸다면 즉사했겠군요. 몇 분 못 갔을 거예요."
"감식해보면 정확히 나오겠지만 태만 형사말대로 일거야. 그게 중요한 단서가 돼지."
'피해자가 살해됐을 때 범인은 곁에 있었다. 무엇보다도 범행 장소는 4층. 그렇다면. 내려오는 범인을 목격한 목격자가 있을 것이다.'
현관문을 열고 한 형사가 들어와 우리들에게 보고했다. 피의자 이송 준비가 끝나서 곧바로 국과수에 보낸다고 한다. 노반장은 끄덕이고 김형사, 오형사와 함께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102호에 사람들이 거실소파에 앉아있었는데 노부부말고도 6명의 사람이 모여 있다.
그들은 여기 빌라세입자이며 각각 나머지 6개의 집에 살고 있다. 101호엔 화장과 패션에 공을 들인 30대 여자 카페 경영자 오지혜, 102호엔 빌라의 주인인 노부부, 201호엔 땀을 뻘뻘 흘리며 작업복을 입고 있는 40대 남자 모전자 as기사 박진호, 202호엔 하트 모양 머리핀이 인상적인 30대 여자 동물병원장 유은지, 301호엔 지적으로 보이는 안경을 쓴 20대 남자 모 학교 물리 선생님
김만호, 302호엔 얼굴이 붉게 물든 50대 남자 수산시장 상인 김택근, 401호엔 약간 불안해 보이는 표정의 30대 남자 금속세공업자 박재진, 402호엔 피의자 20대 여자 기자 김혜미. 그들은 가까운 이웃의 죽음 때문에 무척 침울해하는 표정이다.
마음 여린 유은지는 오지혜의 품속에서 울고 있다. 김형사는 자신의 형사생활에서 가장 힘든 때가 피의자의 유족과 지인을 대할 때라고 지인한다. 그들에게 사건에 대해 말해주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항상 뼈저리게 느낀다. 김형사가 그들을 보며 말했다.
"여러분들이 이 빌라주민이시군요."
말을 마치자 김택근이 일어서서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묻는다.
"형사님들, 누가 혜미씨를 죽였는지 알아냈습니까?"
"자, 김택근씨 진정 하세요. 아직 알아내지 않았습니다. 앉아 있으세요."
노반장이 김택근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김택근은 분노에 찬 얼굴을 유지한 채 다시 소파에 앉았다. 노반장이 빌라주민들을 한 바퀴 돌아보고선 부엌에서 의자를 가지고와 그들을 마주보고 앉았다.
"자, 여러분. 범인을 빨리 찾아내기 위해서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한명씩 돌아가면서 여기 형사들에게 어제부터 어떤 일을 하셨고 무엇을 보았는지 진술을 부탁드립니다."
이에 김택근이 발끈해 따지듯이 물었다.
"아니, 형사님. 저희들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저희는 정말 가족같은 사이입니다. 저희들은 절대 아닙니다!"
"김택근씨, 그런 이유에서야 아닙니다. 사건을 분석하기 위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저희가 알아야하지요. 그리고 안타까운 말이지만 여러분 중에 범인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여기 김갑연씨의 말씀에 의하면 어제부터 사건 발생했을 때까지 외부인이 들어오지 않았다면서요? 뭐, 김갑연씨가 보지 않았을 때 들어왔을 수도 있지만 나중에 감식반이 빌라주변에 설치된 cctv판독이 끝나면 알 수 있을 겁니다."
노반장의 말이 끝나고 김택근의 분노가 잠재워진 듯하다. 하지만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산 같은 남자다. 노반장의 말에 따라 그들은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갔고 형사들이 각각 한 집에 들어가 그들의 증언을 들어보기로 한다. 김형사는 202호 유은지를 맡기로 한다. 김형사는 202호에 들어가기 전 휴지를 충분히 챙기고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첫댓글 즐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