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비도 그치고 날은 포근했다.
밤새 달릴 걸 생각해서 잠을 좀 자 두려 애를 써 봤지만
영 잠이 오질 않았다.
오후5시에 안내견 학교에서 전진이 촬영을 지원차 오신
박재만 훈련사님 차에 전진이랑 동승하여
을숙도 문화회관으로 갔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서약서에 서명하고 배번 받아서 지하 부페로 내려가니 꽃님이랑 몇몇 친구들이 반겨준다.
꽃님이가 이것 저것 챙겨줘서 든든히 먹었다. 지난번 섬머 비치 때 너무 이른 시간에 요기를 하고는 한참을 먹지 못해 달리는 내내 배 고프던 참에
사생결단이 건네준 포도 한송이를 맛나게 먹고는 한송이 더 달라고 했더니
다른 친구들거 남겨 둬야지 라고 말하는 바람에 못내 섭섭했었는데...
그때 컵라면이랑 포도 둘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해서 난 포도를 행주기공은 컵라면을 먹었는데
결단이는 내가 컵라면도 먹고 포도도 먹고 양파즙도 먹고 뭐 엄청 먹었다나!?!
호박죽을 먹은 후 수정과로 입가심하고도 과일 화채를 두 그릇이나 먹고 나니 정말 천리라도 달릴 수 있을 거 같았다.
속속 먼데서 멍친구들이 도착하고 배번을 울트라 배낭에 부착한 후
출발선에 모여 기념촬영이랑 '58개띠 멍!'구호도 외쳤고
KBS1 TV 카메라 앵글에 맞춰 '전진'이랑 환송식도 마치고는 짙게 깔린
어둠 속을 향해 달려 나아갔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비포장 흙길이 나오고 조심 조심 동반주자와 발을 맞추었다.
바람이 조금 쌀쌀하다 싶어 윈드 브레이커를 걸쳤었는데 아무래도 더울 듯 하여
벗어서 배낭 속에 집어 넣고는 조금 가벼운 몸으로 다시 달려갔다.
원래 계획은 Walk Break 방식으로 10분 달리고
1분 걸으려 했으나 동반주자가 여러명이고 무리가 함께 달려야 하며
언덕이 불규칙하게 있어 실행이 어려웠다.
km당 7분 속도로 오르막은 걷기로 하고 페이스를 페메에게 맡겼다.
코스는 아마도 낙동강 하구언 다리를 지나 녹산공단으로 이어서 용원 마천공단 진해 시내 안민고개 반환점 뭐 대충 이런 거 같았다.
15km 지점 첫 휴게소에 들러 따뜻한 물 한잔 얻어 마시고 24.5km 지점 막달리자 천막에서
커피 마시며 이광길 친구(대학 동기인데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마라톤 자원봉사 나와서 나랑 다시 만났다)의 어깨죽지 안마를 받았다.
역시 울트라를 경험한 친구라 배낭에 익숙치 않은 나의 피로해진 두 어깨를
잘 간파하고 주물러 주니 한결 나았다.
설악장군봉이 강릉에서 오느라 긴 여행 피로와 컨디션 난조로 이쯤에서 처진거 같다.
당초 안민고개만 언덕으로 예상했더니 여러차례 언덕이 있어 걸으며 후반 체력을 비축했다.
35km 지점엔 구덕 주우회가 휴게소를 맡아 따뜻한 오뎅 국물을 건네 주었다.
진해 시내를 지나 40km 지점 안민고개 직전에서 체크를 하고 오르막 5km 걷기를 시작했다.
오르막이 길면 내리막도 길겠지!
3km 내리막을 달리며 이대로 결승선까지 내리막이라면 하는 헛된 바람을 품어본다.
마지막 2km를 달려 50km 반환점에 도착하니
역시 막달리자 이광길 친구를 비롯한 자원봉사자들이 국밥이랑 커피랑 챙겨준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밤새도록 자봉하며 뒷바라지 해주는 이들이 있기에
그나마 한결 덜 힘들게 이 기나긴 겨울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행주기공은 최근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장거리 연습을 못하여 멍친구들 차로 돌아가기로 했다.
제한시간 7시간 보다 30분 이른 6시간30분에 반환점에 도착했고 30분을 소요한 후 새벽 4시에 다시 안민고개를 향해 출발했다.
식사를 해서인지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안민고개 중턱에 함께 동반주 하던 박필갑님 부친 묘소가 있어 참배하는 동안 잠시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었다.
다시금 정상을 지나 달려 내려가면서 지나치는 달림이를 만나면 '힘!'을 외쳐 인사하고 60km 체크 포인트에 도착했다.
이제 풀코스 거리가 남았다. 마음을 다 잡으며 따뜻한 물로 목을 축이고
박필갑님 친구가 건네준 연양갱과 따뜻한 꿀물로 배를 채우고 나니 힘이 났다.
부지런히 달려 75km 지점 막달리자 텐트에서 따뜻한 오뎅 국물에 밥을 조금 말아 먹고 커피도 한잔 마신 후
85km 지점 마지막 쉼터를 향해 달려갔다. 언덕은 걸으며 막판 체력저하를 대비하여
최대한 안전 주행으로 가다가 KBS1 TV 촬영팀을 만나 촬영에 협조하느라
페이스를 늦추었다. 마천공단 근처인가 어느 해안가에
이미자 황포돗대 노래가 흘러나오는 노래비가 있었다.
80km 쯤인가 누군가 승용차를 타고 와서 길을 잘못 들었다고 일러준다.
상황을 알고보니 갈림길에서 길 안내자가 잠시 자리를 비웠고 무심히 앞에 가는 주자가 있었고 또 방송 촬영에 신경을 쓰느라 표식을 보지 못했었나 보았다. 뿐만아니라 두세명이 우리 뒤를 따라 왔었는데
뒤돌아 나오니 한참 다른길로 들어와 있었다. 원래 손해 본 거리는 더 먼 법이라 그렇겠지만...
다행히 힘이 그렇게 소진된 상태가 아니어 85km 마지막 쉼터까지는 제대로 도착했고
시간은 대략 오전 9시를 넘었던거 같다. 효원마라톤 클럽이 수고하는 텐트에서 귤이랑 따따뜻한 물로 마지막 지원을 받고는
방송팀에 11시30분경에 골인할 예정이니 결승선에서 준비하라 일러 두었다. 아마도 좀더 여유있는 페이스 운영을 위해 넉넉하게 시간을 계산한 것이었으리라.
남은 15km 거리가 이번 울트라에서 장거리 레이스의 참맛을 느끼게 한 한판이었다.
길은 평지로 이어졌지만 차들이 많이 다녀 인도와 차도를 번갈아 가며 또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지루함을 달래려고 맘속으로 군가도 불러보고 숫자도 세어가며
가다가 ironman을 만나니 자기는 제한시간에
정확히 맞춰서 골인할 거라며 먼저 가란다.
첨엔 걸어가도 11시간30분에 도착한다기에 그런가 생각하고 걷자고 하여 걸어가다 보니
예상외로 거리가 좀 남았던지 다시 천천히 달리다가 오르막은 걷다가
비포장 흙길에 다다를 즈음에 막달리자 박순석님이 마중을 나와서 이제 1km 조금 더 남았단다.
결승선 표정관리를 위해 힘을 비축하자며
다시금 걷다가 달리기 시작하여
거의 결승선 50여미터 앞에서 야외용 철의자인지 차량 진입 방지용인지
쇠기둥에 오른쪽 무릎을 받쳤다.
순간적으로 무릎을 꿇었다가 몸을 일으키려니 고통과 함께 절뚝거림이 심했다.
잠시 멈춰서 무릎을 좀 주무르고 가자는 동반주자 말에
일단 가자고 재촉하여 절뚝거리며 가다 보니 어느 순간
몸에 결승 테이프가 닿는 느낌과 함께
동반주자와 두팔을 높이 들어올려 만세 자세를 취하며
"해냈다!!!"하고 큰 소리로 외치는데 기쁨의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하는 격한 감정을 애써 제지하고는
환영하러 대기하고 있던 '전진'이와 껴안으며 잠시 주저 앉았다가
단상으로 올라가서 기념촬영을 했다.
병술년 개띠해에 처음 도전한 서바이블 100km 울트라 대회를 14시간36분에 마치며 내 인생에서 가장 먼 거리를 가장 오랜 시간동안 달렸음을 가슴에 새겨둔다.
첫댓글 이만큼 쓰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니?
나도 궁금한데 야는 컴쪽에 일을해서 우리보다 잘할거야
그려 난 바로 바로 쓰거든 타이핑도 빠르징.
그 모습 보이는듯하구나~~난 왜 이리 연악하지??...ㅎㅎㅎ
그래 대단하다 인간승리를 보느것 같은 찡한 감동을 느끼며 앞으로 살아가는 날들에 많은 도움이 됐으면 한다 금박아! 완주하느라 정말 수고했다 대단혀 빠른 회복 바랄께
금박님 대단하십니다 노랑여우는 아직까징 10Km도 도전못하고 있는디~~~~ 부럽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