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중령 너는 이런 순간 행동을 똑똑히 해야 해" 전두환 심복의 고백(1)10.26 직후 보안사로 끌려온 김재규의 호통
청문회 답변 준비팀에서 나는 이학봉 의원을 만났다. 그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심복 부하로 알려져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당한 후 합수부 수사국장으로 김대중의 구속을 주도한 인물이었다. 뿐만아니라 12.12 군사 반란의 주모자고 행동 책임자이기도 했다. 의외로 서글 서글하고 성격이 호방한 남자였다. 직선적이고 거짓말을 하는 성격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법무장교 시절 그는 보안사령부 장교였다.
그에게 부탁해서 운동권에 있던 친구를 살린 인연이 있었다. 그 신세를 갚는 입장에서 나중 수지킴 사건 때 나는 그의 변호인이 되기도 한다. 이학봉 의원과 자그마한 음식점에서 둘이서 만났다. 그의 내밀한 얘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어떤 사람입니까?” 내가 물었다. 백담사에서 분을 삭히지 못한다는 기사가 언론에 나고 있었다.
“눈치가 백 단쯤은 되는 분이죠. 부하들이 이삼십 명 앞에 앉아 있어도 누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귀신같이 알아챈다니까요. 그리고 자신의 부족한 점도 잘 알고 있어요. 인재들을 불러서 쓸 때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무식한 자신이 욕은 다 먹을 테니까 나라를 위한 경륜은 여러분이 마음껏 펴시라고 했죠. 그렇게 해서 훌륭한 인재들을 많이 모았죠. 당 태종의 제왕학이 ‘정관정요’인데 우리들이 육사를 다닐 때 읽었어요. 전두환 대통령이 그걸 읽으셨으면 훨씬 더 좋은 대통령이 됐을 거에요.”
“이순자 여사는 어떤 성격이었습니까?” “시중에서 여러 소리가 있지만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든 분이에요. 전두환 대통령이 영관 장교 시절이었어요. 부하들이 그 집을 찾아가 우연히 벽에 걸려있는 새 점퍼를 보면서 가지고 싶어하면 이순자 여사는 두말 하지 않고 그걸 주었죠. 다른 부하들이 또 부러워하면 또 주고 그렇게 열 몇 벌인가를 준 적도 있다고 해요. 부하들의 마음을 이순자 여사가 자연스럽게 잡은 거죠.”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고 총을 쏜 김재규를 처음 수사하셨었죠? 그때 처음 상황이 어땠습니까?”
“새벽 두 시경 나는 보안사 서빙고 수사분실에 잡혀 온 김재규를 봤어요. 저는 쿠데타일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을 시해했다면 단순한 상황이 아니니까요. 더구나 현장에 참모총장이 있었으니까요. 김재규는 전 보안사령관이라 제가 모시던 분이기도 했습니다. 김재규는 저보고 ‘이미 상황이 끝났다’고 하면서 20사단이 가락동까지 와 있을 거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이 중령 너는 이런 순간 행동을 똑똑히 해야 해’라고 나에게 충고까지 했죠. 나는 그 순간 수사해야 하는 건지 무릎꿇고 복종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불안했어요. 김재규는 저보고 빨리 가서 전두환이를 데리고 오라고 큰소리쳤죠.”
“그래서 어떻게 했죠?” “저는 사실 속으로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죠. 박정희 대통령은 전두환 선배나 저 같은 일단의 육사 졸업생을 따로 발탁해 특별히 키워줬어요. 박정희 대통령은 저희들 그룹에는 아버지 같은 존재였죠. 박정희 대통령은 독특한 용병술이었어요. 혁명을 한 분이라 그런지 참모총장 같은 병력을 다루는 요직에는 너무 똑똑한 인물을 앉히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저희 그룹은 계급이 낮아도 참모총장을 그렇게 대단하게 보지 않았어요. 박정희 대통령이 저희 그룹의 간덩이를 붓게 한 거죠. 저는 당시 아버지 같은 대통령을 김재규가 쏴 죽였다는 사실에 격분했었죠. 육군 중령에 사십대 초반이었던 저는 아직 몸보신이나 정치적 계산을 할 때는 아니었습니다. 김재규가 저보고 자꾸만 전두환 사령관을 불러오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전두환 사령관이 와서 김재규의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어요.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김재규를 손보게 했죠. 엊어맞더니 김재규가 금세 변하는 거예요. 비굴하게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하는 겁니다. 보안사령관과 중앙정보부장을 했던 사람의 참 초라한 모습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