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6000여 명의 전국 교사들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먼저 고개를 숙인 뒤, 정부에 올바른 해결을 요구하는 내용의 시국선언을 했다. 전교조는 15일 오전 서울 서대문 사무실에서 전국에서 참여한 1만5853명 교사들의 ‘세월호 참극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교사선언’을 발표했다. 이날은 스승의 날이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달이 되는 날이다. 이번 선언문에는 세월호 참사를 접한 교사들의 심경과 고뇌, 대통령에 대한 문제제기 등이 담겨있다.
아이들을 이대로 가슴에 묻을 수 없습니다
먼저 교사들은 “미안하다,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되돌아봤다. 교사들은 “안내방송을 믿고 대기하라고 한 말이 결국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말았다는 사실 앞에서, 많은 교사들이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속절없이 죽어간 제자들을 앞에 두고 차마 그런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교사들은 “의심스러우면 되물어야 한다고, 부당한 지시에는 복종하지 말라고 가르치지 못해서 미안하다. 점수를 올리려면 의심하지 말고 정답만 외우라고 몰아세우고, 아이들의 장래를 위한다는 핑계로 정답만 생각하라고 윽박질러서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위급한 상황에서는 스스로 판단해서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못해서 사진 속 아이들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다”고 괴로워했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을 이대로 가슴에 묻을 수 없다”고 했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묻고 있다.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한 거예요?’ 국민들이 묻고 있다. ‘도대체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가?’ 이 물음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 제2, 제3의 수많은 세월호들이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의 꽃다운 목숨을 위협하고 누군가의 가슴을 갈가리 찢어놓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묻는다”고 했다. 교사들은 “물이 차오르는 배 안에서 아이들이 죽음의 공포와 싸우고 있을 때, 대통령께서는 공직자들에게 문책 위협을 하신 것 말고 무엇을 했나, 탐욕스런 자본가들이 승객의 안전은 뒷전으로 미뤄둔 채 화물 적재량을 속이기 위해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었을 때, 대통령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대통령이 직접 끝장토론에 나와 ‘규제완화’를 역설할 때, 자본가들이 만세를 부르면 안전규제부터 내팽개치리라는 것을 몰랐단 말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교사들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제라도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사들은 “세월호 참사는 우발적인 재난이 아니다. 국민의 생존을 파괴하는 신자유주의 국가 시스템은 더 이상 존속될 수 없다. 이윤과 돈벌이가 아니라 생명과 안전을 우선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면서 “철처한 진상규명과 뼈를 깎는 책임규명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어 교사들은 “이런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 대통령은 무한 권력자가 아니라 무한 책임자”라며 “국민의 생명을 지킬 의지도 능력도 없는 대통령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눈물 흘린 김정훈 “박근혜 대통령, 합당한 책임 져야”
“잊지 않고 행동하겠다”는 다짐도 담겼다. 교사들은 “이제 더 이상 탐욕과 불의에 복종하지 않겠다. 학생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살림의 교육을 다시 시작하겠다”면서 “사회와 교육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우리 자신을 성찰하고 혁신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선언 교사를 대표해 선언문을 낭독한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은 “정말 진심으로 책임을 지겠다는 정부를 원한다. 무능을 넘어 방조해 사고가 사건이 됐고 참사로 이어졌다”며 “탐욕의 자본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제시할 수 없다면 국민의 대표로 남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낭독하는 중간중간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이날 선언문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는 전교조 각 시‧도지부장 등 중앙집행위원들도 함께 했다. 이번 선언에는 지난 13일 청와대 누리집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려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을 선언한 43명의 교사 대부분도 이름을 올렸다. 김 위원장은 “43명의 선생님들이나 교사선언에 함께 한 선생님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 제대로 해결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전교조는 오는 17일 서울 독립문공원에서 ‘더 이상 죽이지 말라!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 및 참교육 사수 전국교사대회’를 열 계획이다. 박근혜 퇴진 선언 교사 43명에 대해 징계 절차에 들어간 교육부는 교사선언에 대해서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간주해 징계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어서 파문이 예상된다. 교육부 교원복지연수과 관계자는 “순수하게 교육을 해야 할 학교현장에서 서명을 받는 공무 외 정치행위를 한 것으로 보인다. 2009년 시국선언에 준해서 처리할 것 같다”고 밝혔다. 교육부, 교사선언도 법 위반 판단... 전교조, 오는 17일 교사대회 교육부는 지난 2009년 전교조가 발표한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린 교사 3만5000여 명 가운데 90여 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징계위에 회부해 파면 또는 해임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로 전원 복직했다. 그러나 시도교육청은 그 뒤 정직 등 재징계를 내린 바 있다.
교육부는 교사선언 전날인 14일 오후 시‧도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교원노조의 교사선언 등 집단행위 관련 교원 복무관리 철저”를 지시하기도 했다.
하병수 전교조 대변인은 이에 대해 “교사로서, 시민으로서 현 상황에 대한 정당한 표현의 자유를 행사한 것”이라며 “징계 등을 강행한다면 더 큰 공분을 살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음은 ‘세월호 참극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교사선언’ 전문이다. [세월호 참극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교사선언] 아이들을 이대로 가슴에 묻을 수 없습니다. 2014년 4월 16일을 지워버리고 싶습니다. 수백의 어린 영혼과 함께 대한민국이 침몰한 날, 국민의 억장이 무너지고 학교가 내려앉은 이 날을 영원히 지워버리고 싶습니다. 꽃다운 생명이 스러져가는데도 구명조끼를 입혀주며 서로 “사랑한다”고 다독이는 아이들 앞에서 가슴은 갈가리 찢겼고, “아무 것도 도와줄 수 없어 미안하다”며 울부짖는 친구들 앞에서 우리 어른들은 죄인이 되었습니다. 자율학습 보충수업에서 잠시 벗어나 3박4일의 짧디 짧은 행복을 꿈꾼 수학여행이 삶의 마지막 여정이 되고 말았을 때, 이 땅의 교육도 죽었습니다. 아이들을 이대로 가슴에 묻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묻고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한 거예요?” 국민들이 묻고 있습니다. “도대체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가?” 이 물음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우리는 아이들을 가슴에 묻을 수 없습니다. 제2 제3의 수많은 세월호들이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의 꽃다운 목숨을 위협하고, 누군가의 가슴을 갈가리 찢어놓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돈 몇 푼을 위해 망설임 없이 생명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비정한 자본, 이를 조장하고 비호하는 정치인과 관료들이 있는 한, 또 다른 희생자들이 세월호 희생자의 이름과 얼굴, 소중한 기억들을 밀쳐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발뺌과 속임수로 자리보전에 연연하는 공직자들, 남이야 어찌 되든 제 자리부터 챙기고 보는 지도자들이 활개 치는 한, 권력에 빌붙어 정권의 입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언론이 국민들의 귀를 사로잡는 한, 순박한 영혼들만 뒤에 남아 얼싸안고 죽음을 맞이하는 참극이 끝없이 되풀이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안합니다.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안내방송을 믿고 대기하라”고 한 말이 결국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말았다는 사실 앞에서, 많은 교사들이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 상황에 처했다면 어떤 교사라도 같은 말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해보지만, 속절없이 죽어간 제자들을 앞에 두고 차마 그런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의심스러우면 되물어야 한다고, 부당한 지시에는 복종하지 말라고 가르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점수를 올리려면 의심하지 말고 정답만 외우라고 몰아세우고, 아이들의 장래를 위한다는 핑계로 정답만 생각하라고 윽박질러서 아이들에게 미안합니다. 위급한 상황에서는 스스로 판단해서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못해서 사진 속 아이들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묻습니다. 물이 차오르는 배 안에서 아이들이 죽음의 공포와 싸우고 있을 때, 대통령께서는 공직자들에게 문책 위협을 하신 것 말고 무엇을 했습니까. 수명을 다한 낡은 유람선이 꽃다운 생명을 가득 태우고 기우뚱거리며 죽음의 바다를 항해할 때, 탐욕스런 자본가들이 승객의 안전은 뒷전으로 미뤄둔 채 화물 적재량을 속이기 위해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었을 때, 대통령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대통령이 직접 끝장토론에 나와 ‘규제완화’를 역설할 때, 자본가들이 만세를 부르며 안전규제부터 내팽개치리라는 것을 몰랐단 말입니까. 대통령이 자본가들을 위해 비정규직 봇물을 열어젖힐 때, 자본가들은 승객의 안전을 책임진 선장과 선원들마저 비정규직으로 갈아치우리라는 것을 정말 몰랐습니까. 대통령은 취임할 때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했습니다. 그런데 피가 마르고 숨이 막히는 지난 한 달 동안 이 선서를 지키기 위해 진정 얼마나 노력했습니까? 고귀한 생명을 하나라도 건질 수 있었던 사고 초기단계, 그 금쪽같은 시간에 정부가 보여준 모습은 혼선과 무능 그 자체였습니다. 아니 생명을 구하려는 최소한의 책임마저 방기했습니다. 더욱이 일부 고위관료들의 몰상식한 행동과 막말이 사태를 걷잡을 수 없게 악화시켰습니다. 국민은 대통령에게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신의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찌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 실종자 가족들의 까맣게 타들어가는 가슴을 조금이라도 헤아리려는 마음을 국민들은 간절히 바랍니다. 형식적인 사과와 ‘연출된 위로’가 국민의 억장을 무너뜨렸습니다. 부실한 구난 시스템과 함께 가슴이 내려앉은 국민들은 단 한 명의 목숨도 구하지 못한 국가 시스템의 총체적 붕괴 앞에 또 다시 넋을 잃었습니다. 모든 국민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강압과 통제로 합리적 의심을 봉쇄하는 것으로 국민의 분노를 억누를 수 없습니다. 대통령은 자신의 책무 불이행을 뼈저리게 고백하고 이제라도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는 우발적인 재난이 아닙니다. 국민의 생존을 파괴하는 신자유주의 국가 시스템은 더 이상 존속될 수 없습니다. 이윤과 돈벌이가 아니라 생명과 안전을 우선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몇 명의 희생양을 먹잇감으로 던져주고 진실을 은폐해서는 안 됩니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뼈를 깎는 책임규명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이런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면 대통령 자격이 없습니다. 대통령은 무한 권력자가 아니라 무한 책임자입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킬 의지도 능력도 없는 대통령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사전에 막지 못했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는 탐욕과 무책임이 넘치고 이를 조장하는 사회에 대해 침묵해 왔습니다. 과도한 입시경쟁으로 한 해에 수백 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고 수많은 학생들이 차별과 서열화로 절망하고 좌절할 때 이를 바꾸기 위하여 치열하게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학생들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좀 더 철저하게 고민하지 못했고, 순응과 체념의 죽임의 교육을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탐욕과 불의에 복종하지 않겠습니다. 학생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살림의 교육을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와 교육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우리 자신을 성찰하고 혁신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희생자와 유가족의 고통을 끝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함께하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 2014년 5 월 15 일 김정훈 외 15,852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