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회 서클 수행. 둥그렇게 앉아 토킹 스틱을 쥐고 의견을 교환한다
콜롬버스에 의해 팔자에 없는, ‘인디언(Indian)’이란 이름을 얻게 된 아메리카 원주민들. 명상 수행을 시작하면서 미국의 불교 상가(Sangha) 또는 명상 커뮤니티에서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영적 수행 방식들을 무척 존중하고 실재로 행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UCLA MARC(Mindful Awareness Research Center)에서 실시하는 MAPs(Mindfulness Applied Practices)클래스의 마지막 클래스에서는 늘 ‘위원회 서클 수행(Council Circle Practice)’이라는 것을 행한다.
주로 마음챙김 명상 클래스 전후에 나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내게 지금 현재 진실한 것은 무엇인가를 나누는 자리이다. 보통 모임에서도 많이 하는 의견 발표의 장이지만 ‘위원회 서클 수행’ 방식을 더했기에 여러 점이 다르다.
첫째, 누가 지정하지 않아도 자신이 자의적으로 아무나 발언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첫 번째 발언이 시작되기까지는 때로 뜸들이는 시간이 소요될 때도 있다.
둘째, 발언은 자연의 요소인 돌, 막대기 등의 물건으로 만든 ‘발언 막대기(Talking Stick 또는 Talking Piece)’를 들고 한다는 것. 그리고 오직 발언 막대기를 든 사람만 한 번에 한 명씩 발언을 할 수 있다는 것.
셋째, 발언자가 발언할 때 듣는 이들은 오직 100퍼센트 발언자에게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 그저 가슴으로 듣기만 할 뿐 토를 달지 않는다는 것, 즉 비판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열린 마음으로 경청한다는 것, 그리고 그저 들을 뿐, 들으면서 내가 말할 차례가 됐을 때 어떤 말을 해야지 하는 것을 계획하지 않는다는 것.

의회 서클 수행의 진행자는 어머니의 자궁에 멤버들을 품는 역할을 한다
넷째, 발언자는 오직 가슴으로부터 진실만을 말한다는 것.
또 자신의 의견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체험, 사실, 느낌을 위주로 말해야 한다는 것. 우리들의 의견이란 것은 우리들의 업이 만들어낸 왜곡된 시각이 재생산한 시각에 의해 채색돼 정견(正見)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만약 발언자가 말을 하길 원치 않을 때에는 침묵 또는 패스(Pass)할 수 있다는 것… 등이다.
의장 격인 이는 전체 멤버들이 안전하게 느낄 수 있는 분위기(컨테이너)를 마련한다. 그리고 멤버들은 “이 안에서 했던 얘기는 여기에 머문다.”는 것에 동의하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위원회 서클은 아픔을 나누고 문제를 치유하고 서로 배우는 성장의 공동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발언 막대기를 들고 있는 사람만 발언할 수 있게 한 것은 거의 미개인 수준의 우리들 대화 습관을 돌아보게 만드는 수행이다. 일상적인 대화를 하다 보면 앞 사람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말꼬리를 붙잡고 다른 말을 끌고 나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던지. (나도 예외일 수는 없다.) 그렇다보면 회의는 삼천포로 빠지기 마련이고 회의는 의견을 모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욱 큰 분열을 낳게 되지 않던가.

아메리칸 원주민들이 회의를 할 때 사용하는 토킹 스틱
‘위원회 서클 수행’은 우선 참가하는 모든 이들을 평등하게 서로를 대할 수 있도록 좌석을 마련한다.
수업 시간이라해도 가르치는 자가 맨 앞에 서서 학생들을 마주보는 방식으로 하지 않고 둥그렇게 원을 만들어 앉는다. 아마도 그 옛날에는 가운데 모닥불을 피워놓고 불을 바라보며 더욱 마음을 정결히 하고 수행에 임했을 것이다.
그들은 공동체에서 논의되어야 하는 안건에 대해 이런 식으로 앉아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위원회 멤버들 모두에게 똑같은 발언의 기회가 주어졌다. 대한민국 국회에서처럼 목소리 큰 놈이 남들 호통치는 야만적이고도 폭력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면 대화 참가자들은 서로의 성별, 인종, 경제적 클래스 등 차이점과 다양성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게 되고 이해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갈등이 아닌, 화합을 향해 긍정적 관계를 개발하게 된다.
우리 각자는 하늘의 별 만큼이나 다양하고 각기 다른 존재들이지만 인류의 일원이라는 점 때문에 공통점도 여럿 있다.
사랑과 두려움, 희망과 절망 등 우주적 이야기를 나누며 다양성과 일관성을 함께 경험하는 것이다. 이런 대화는 우리 모두가 인류 가족의 일원임을,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음을 느끼게 하는 진정한 대화이다. 불행히도 우리들은 이런 대화법을 배우지 못했다. 우리들의 대화법은 네가 틀렸고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내 방식이 옮으니 너는 그저 조용히 따라오라는, 지배욕(Domination)과 폭력(Violence)이 가득한 대화일 때가 많다.
주류 사회에서 수행하고 있는 아메리칸 원주민들의 영적 전통은 아름다웠다. 이를 알게 되면서 점점 더 그들의 정신세계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 갔다.
여러 학자들의 연구를 종합해볼 때,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우리와 다른 땅에 살고 있는 우리 형제 자매라는 결론을 내릴수 있다.

인류 가운데 가장 높은 영성을 갖고 있는 아메리칸 원주민

"종교란 지옥 가는 것이 두려운 사람을 위한 것이다. 영성은 이미
지옥을 다녀온 이들을 위한 것이다. " -시우족의 지혜
스탠포드 대학에서는 전세계 51개 지역에서 약 1000명의 유전자를 수집해 DNA 위치 정보를 추적 분석한 결과, 시베리아 원주민 야쿠트족과 멕시코, 중앙 아메리카, 콜롬비아, 브라질의 원주민들 사이에서 강력한 유전적 유사성이 발견됐다고 발표했었다. 또한 인간 조직적합성항원 연구의 세계적
중심기관인 미국 UCLA 대학의 HLA센터 교수들의 연구 결과, 한국인과 아메리칸 원주민들은 100 퍼센트 유전자가 똑같다는 것이 밝혀졌다.
아직 유라시아 대륙과 미대륙이 연결되어 있던 시절인 12,000년~30,000년전에 우리의 선조들은 시베리아를 떠나 베링 해협을 통과해 미국 대륙으로 넘어갔던 것이다. 그 후 6,000 년 전인 기원전 4,000 년경과 4,000 년전인 기원전 2,000 년경 모두 세 차례에 걸쳐 한민족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대대적인 이동을 했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을 당시, 아메리칸 원주민의 인구는 1500 만 ~ 2000 만명으로 추정된다. 미국 독립 과정에서 얼마나 잔인무도한 아메리칸 원주민 학살이 있었는지는 잘 알고 있을 터이다. 독일인의 유대인 학살보다 더했던 것이 바로 백인들의 원주민 학살이었다.
우리 형제 자매들이 이 미국 땅에 뿌린 피를 생각할 때, 우리 모두는 공동의 업을 나눈 죄인들이다. 현재 아메리카 원주민의 인구는 278만 여 명에 불과하다. (2003년 미국 인구 Census 통계자료 ) 이들은 주로 인디언 보호 구역 (Indian Reservations )에 분리돼 거주하고 있다.

1700년대 멕시코인들의 외출 모습을 그린 그림. 갓 쓰고 도포 입은 선조들의 모습과 유사하다


한국인과 유전자 100퍼센트 일치하는 아메리칸 원주민들의 생활상

고대 한민족의 이동 경로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우리들은 몽고반점, 치아, 혈액형, 언어, 풍습, 유물 등 여러 면에서 공총점을 가지고 있다. 중국인들도 없는 몽고반점이 아메리칸 원주민들에게는 있다. 그리고 언어를 살펴보더라도 약 3000개 정도의 단어가 비슷하다고 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한국어로 아버지는 원주민 언어로 아파치, 계집아이는 가시나(우리도 아직까지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헛간은 허깬, 지붕은 덮이라니 얼마나 유사성이 많은지 짐작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일리노이(Illinois) 주, 콜린스빌(Collinsville)에 있는 카호키아 마운즈 주립공원(Cahokia Mounds State Park)에는 아메리칸 원주민들이 만든 피라미드 유적지가 있고, 주변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는데 그 유물 가운데에 우리 선조들이 신었던 짚신과 똑같은 짚신들이 있다.
그 외에도 짚으로 엮어 만든 바구니, 포대기, 색동옷, 상투 등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공통적인 물증들이 아메리칸 원주민들과 한국인들이 같은 뿌리에서 나왔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또 한 가지 이야기. 이 미개한 원주민들을 문명화 시키켜야 한다며 제도화된 교육제도 속에 아메리칸 원주민들을 입학시켰던 백인 교사는 이렇게 말한다. “아메리칸 원주민 소녀는 아무리 가르쳐도 나(I)를 우리(We)라고 말한다.”
와!!! 우리들이 그렇지 않던가. 우리 엄마, 우리 집, 하다 못해 아내까지도 우리 마누라, 우리 바깥 양반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우리들이다. 뼛속 깊이 심겨진 공동체 의식, 모든 것이 연결돼 있음을 늘 기억하는 언어 생활은 한민족과 아메리칸 원주민들의 공통분모였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아메리칸 원주민들의 고귀한 영적 가르침은 헨리 데이빗 소로를 비롯해 깨어 있는 미국인들에 의해 기억되었고 이제는 여러 수행 공동체에서도 존중받고 있다.
그들은 침묵 가운데 자연의 소리를 듣는 것을 소중히 여겼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영적 전통 가운데 감동적인 내용들을 모아봤다.
인디언 어머니는 아이를 임신하는 그 순간부터 순결한 언행과 명상을 통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열려 있는 영혼에게 그가 ‘위대한 신비’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가르쳤다. 인디언의 아이 교육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장차 어머니가 될 여성은 사람들로부터 떨어진 고요하고 한적한 곳에서, 장엄하고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눈동자에 새기며 홀로 생활하는 것을 첫번째 원칙으로 삼았다.
침묵과 과묵함은 인디언의 인격 형성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소였다. 진정으로 전사가 되기를 갈망하는 아이는 해가 뜨고 지는 장엄한 시간에 산꼭대기에 우뚝 서서 드넓은 대지를 내려다보며 ‘위대한 신비’와 마주했다. 그곳에 그렇게 벌거벗은 채로 미동도 하지 않고 서서, 침묵 속에서 ‘위대한 신비’의 힘에 자신을 내맡겼다. 하루 낮과 하룻밤, 또는 이틀 낮과 이틀 밤 동안, 드물게는 며칠씩 그런 식으로서 있는 경우도 있었다. 때로는 신에게 노래를 지어 바치기도 했다. 이 신성한 명상 상태, 환희의 체험을 통해 어린 인디언신비가는 존재의 가장 큰 행복을 발견하고, 생명의 근원이 되는 힘에 다가갈 수 있었다.
인디언은 어려서부터 마음속에 남성다운 강인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이상을 키웠다. 그것에 이르기 위해서는 음식과 성적인 관계를 엄격히 절제하는 한편, 꾸준하고 강도 높은 운동이 필요했다. 인디언 남자는 이따금 짧은 기간 동안 금식을 했으며, 달리기와 수영, 또는 땀천막 의식(와우… 혹시 온
돌방 같은 무엇?) 등으로 념쳐 나는 기운을 발산했다. 특별한 금식 수행과 함께 육체를 지치게 함으로써 지나친 성적 욕망을 다스릴 수 있었다.
인디언들이 지속적으로 도시를 발전시키거나 물질문명을 발달시키지 않는 것은 무지하거나 미래에 대한 생각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소박한 인디언 현자의 눈에는 수많은 인구가 한곳에 집중해서 모여 사는 것이야말로 타락의 근원이었다. 육체적으로도 그렇고, 도덕적으로도 그러했다.
인디언들에게 음식은 신성한 것이지만,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는 것은 죄악이었다. 사랑은 좋은 것이지만, 탐욕은 사람을 망가뜨린다. 사람들이 밀집해 살아가는 불결한 환경에서 생겨나는 온갖 전염병보다 더 무섭게 여긴 것은 다른 사람들과 너무 자주 접촉함으로써 어쩔 수 없이 영적인 힘을 잃게 되는 일이었다.
서구의 화려한 성과 성당들에 비해 볼 때 아메리칸 원주민들의 문화는 초라해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보이는 것들이 아니다. 그들의 민주주의 정신, 평등과 정의의 실천, 자연 사랑은 21세기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자 지혜이다.
우리는 정말 무엇이 중요한지를 완전히 망각했다. 우리는 내 마음과 몸으로부터 멀어졌고 땅과 자연으로부터도 멀어졌다. 경이로운 시각으로 모든 현상 속에서 기적을 발견하는 아메리칸 원주민들의 영적 수행은 21세기 우리들을 본래의 전 존재로 회귀할 수 있도록 해줄 고귀한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