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 페테르부르그(St. Petersburg)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핀란드 만으로 흘러드는 네바강의 델타 지역에 발달한 도시로 인구는 470만명이다.
네바강의 지류와 운하를 포함하면 65개의 강과 100개 이상의 섬이 있다. 이것들은 365개의 다리로
연결되며 "북쪽의 베니스"라고도 불리는 물의 도시다. 공원과 광장 그리고 궁전터도
많다고 해서 "북쪽의 베네치아"라고 불리기도 한다.
-상트 페테르부르그(САНКТ. ПЕТЕРБУРГ)초입의 일주(一柱)안내탑-
**대들보 아래 부분에는 "레닌그라드, 영웅의 도시(레닌그라드, 가로드 게로이: ЛЕНИНГРАД, ГОРОД
ГЕРОЙ)"라는 문구가 있다. 북쪽 습지대의 작은 마을에 불과했던 제방과 강 하구의 땅이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 것은 지금부터 약 300년 전의 일로 러시아 황제 뾰뜨르 대제(뾰뜨르 1세)가
북방전쟁(1700~1721년)에서 스웨덴의 침입을 막기 위해 요새를 건설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바르샤바 익스프레스 철도 역사(驛舍)-
**역사 정면 지붕 위에는 바르샤브스키 엑스프레스(ВАРШАВСКИЙ ЭКСПРЕСС)라는 역 이름이 붙어있다.
이 역에서 폴란드의 바르샤바까지 급행열차가 운행된다. 급행노선은 베르린에서 바르샤바까지도 연결된다.
- 시가지 풍경-
**뾰뜨르 대제는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발트해로 나가는 출구를 확보하기 위해
이곳에 항구를 건설하여 1712년에는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이곳으로 옮겼다.
-시가지의 한 모퉁이를 담은 풍경화(윗 사진의 오른편 첨탑)-
-시가지 교차로에서-
-뽀베듸(승전) 광장의 기념비(자료)-
**깃발을 흔드는 병사의 모습은 오벨리스크 전면 공간에 조성된 군상(群像)중
일부를 조감도 위에 오버 랲 한 것이다
-기념비의 오벨리스크-
**오벨리스크 주위를 둘러싼 원형 석벽에 레닌그라드의 승리(ПОДВИГУ ТВОЕМУ ЛЕНИНГРАД ;
빠드비구 뜨보예무 레닌그라드)를 뜻하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로마노프 왕조의 무대가 뾰뜨르
황제에 의해 이곳으로 옮겨지고 나서 부터는 근대 러시아의 발전을 이끄는 수도가 되었다.
또한 제정 러시아의 역사를 뒤집은 혁명의 발상지로도 유명하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페트로그라드, 레닌그라드 그리고 다시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역사와 세월따라 변해 왔다.
--오벨리스크 양편의 도시 방위군과 시민들의 군상(群像)-
**제2차 세계대전 때 레닌그라드는 900일 동안의 도시봉쇄라는 도시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일을 당해야만 했다. 봉쇄 상태는 1941년 9월부터 1944년 1월까지 계속되었다.
오벨리스크 상단 정면에는 1941~1945 라는 금색의 글씨가 부착되어 있다.
-군상(群像)-
** 독일군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시민들로서 급조된 무장이 부실한 의용군 사단의 항전으로
독일군은 도시로 들어오지 못하였으나 도시는 외부로 부터 단절되고 말았다.
-군상(群像)-
**기아와 추위, 도시 봉쇄에 굴하지 않고 도시를 지켜낸 시민들의 용기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삐스까료브스꼬예'
묘지에 세워져 있다. 기아와 궁핍에 시달려 숨을 거둔 45만 명의 시민이 이곳에 안치되어 있다. 봉쇄 기간에
전부 1백만 명 이상의 시민들과 도시 방위군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고 그 중 2만 명은 폭격으로 사망하였다.
-러시아 국립 도서관(로시스까야 나치오날리나야 비블리오떼카)-
** 오스트로프스키 광장 서쪽에 있는 도서관으로 1,500만 부 이상의 도서가 보관되어 있다.
시민, 학자, 외국인 연구원들이 자주 이용하고 있다.
-개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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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잔스끼 성당(Kazansky sobor)-
**녜브스끼 대로에 있는 까잔스끼 성당은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에 대하여
러시아 군대가 거둔 승리를 기념하는 건물이다. 까잔스끼 성당의 본체는
주랑(柱廊)으로 가려져있고 양쪽 날개인 익랑(翼廊)은 중앙의 웅대한 입구와 만난다.
-까잔스끼 성당(Kazansky sobor : 정교회 성당) 전경(자료)-
**당시 아직 무명이던 건축가 A.N.보로니힌에 의해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을 모델로 설계되어 1801~1811년에
걸처 건설된 이 도시에서 가장 웅장한 이 정교회 성당에는 기적을 행하는 카잔(Kazan) 성모상(Icon)이 있다.
네프스키 대로(Nevskiy prospekt)를 향해 펼쳐진 반원형의 회랑에는 96개의 코린트식 기둥이 늘어서 있다.
높이 80 m 의 돔을 가진 이 성당이 완공된 후 러시아는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성당의 정면 입구와 주랑-
-성당의 왼쪽 주랑-
-사진 모델들-
**관광객들에게 사진모델이 되어주는 직업적인 모델이다.
- 돔 -
-돔 아래의 부조-
** 부조는 성서의 내용이 모티브로 되어있음을 볼 수 있다.
-성당의 내부 모습-
-성당의 내부 모습-
**삽입된 사진은 기적을 행하는 카잔(Kazan)성모상이다. 군대가 전장터에 모시고 다니면서
병사들을 축복하는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돔 아래의 내부 모습-
**중앙 홀 양편으로 2열의 코린트식 회색 화강암 기둥이 천정을 떠 받치고 있는 바실리카이다.
북유럽지역에서 산출되는 붉은색 계통의 강도가 대단히 큰 단일 화강암으로
거대한 기둥을 만들어 세운다는것이 결코 예삿일은 아닐것이다.
-뻬뜨로빠블로프스까야 요새(Petropavlovskaya Krepost)-
** 네바강의 강폭이 가장 넓어지는 델타 지역에 자야치(토끼)섬이라는 작은 섬이 있다.
이곳에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중심이던 페트로 파블로프스크까야(베드로 바오로)요새가 있다.
뾰뜨르 대제가 스웨덴 군에게 이 땅을 다시 빼앗기지 않도록 지키기 위해 건설한 것이다.
이 요새에서 가장 주된 건축물은 페트로 파블로프스크(베드로 바오로) 성당이다.
1712년 건설이 사작되었으며 완공을 축하한 것은 1733년이었다. 금도금 된 첨탑과
도시의 수호자로 간주되는 천사의 상을 포함하여 이 종탑의 높이는 122.5 m 이다.
-뾰뜨르 대제의 기마상 뒤로 보이는 이삭 성당(St. Isaacs Cathedral)-
**뾰뜨르 대제 동상은 네바 강변에 위치한 구 해군성 건물 왼편에 있는 광장에서
네바강을 바라보고 서 있다. 동상 바로 뒤로는 이삭 성당의 황금빛 돔이 보인다.
-청동의 기사상-
** 동상의 좌대에는
페트로 1세(PETRO PRIMO),
카타리나 2세(CATHARINA SEGUNDA)
1782 (MDCCLXXXII)
라고 새겨진 비문은 러시아어가 아닌 영문이다. 제까브리스또브 광장(원로원 광장)끝에 서 있는
이 동상은 뾰뜨르 대제의 동상으로, 권모술수로 여제의 자리에 올랐던 예카테리나 2세(1762-1796)가
뾰뜨르 대제의 후계자임을 과시하기 위해 1782년 프랑스의 조각가 파르곤에게 이 동상을 만들게
했는데 시인 푸슈킨이 지은 서정시 "청동의 기사"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 성당(보스끄례쎼니야 흐리스또바)-
**교회법에 명시된 이 성당의 명칭은 '황제 알렉산더 2세가 치명상을 입어 서거한 곳에
세워진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성당'이다. 이 성당은 농노 해방을 실시한
'황제 알렉산더 2세'가 비극적으로 삶을 마친 장소에 세워졌다.
-성당 내부-
** 현지 사람들은 "모자이크 성당"이라고 부르는데 성당의 내부 장식이 온통 찬란한 모자이크로
꾸며졌기 때문이다. 벽면의 모자이크는 성서의 특별한 내용을 테마로 하고있다.
-돔 천정의 모자이크-
-성당 내부(제단 뒤의 격벽)-
**이 성당은 또 다른 이름 "유혈 현장의 구세주(스빠스 나 끄로비=Church of the
saviour on the spilt Blood)"로 불리는데 1881년 3월 1일, 알렉산더 2세는
혁명테러단체 '인민의 의지'파의 일원이 던진 폭탄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캐노피(Canopy)-
**황제 알렉산더 2세(Emperor Alexander II) 가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것을 성스러움의 상징으로
기념하기 위한 장소이다. 콜리반(Kolyvan)연마 공장의 장인들과 우랄(Urals)과 알타이(Altai)産
장미희석(rhodonite), 벽옥(Jasper)과 사문석(蛇紋石,serpentine)이 예카테린부르그
(Ekaterinburg) 와 피터호프(Peterhof) 석재 세공 공장에서 작업이 이루어졌다.
성당에 들어서면 현관 왼편에 조성되어 있다.
-파편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벽체-
** 이 현장은 황제의 죽음과 관련이 없이 성당 완공 이후에 생긴것으로 추정된다.
-이사악 성당(Исаакиевский собор;이사아끼예브스끼 사보르)(패늘 촬영)-
**뾰뜨르 대제의 동상 남쪽에 있으며 금색의 둥근 지붕을 이고 있는 러시아 정교회 성당으로 세계에서도
5위 내에 드는 큰 성당이다. 높이 101.5 m , 성당의 둥근 천정의 지름이 25.8 m, 길이 104.5 m(내측),
폭 91m로 돔 아랫부분의 크기로 따지면 세계 4위의 크기이다. 1818~1858 어간에 완성되었으나
공사가 그리 간단치는 않았다. 상트 페테르부르크가 원래 습지대여서 성당의 기초는 6 m 의
깊이에 25,000개의 자작나무 말뚝을 박아넣고 그 위에 화감암과 석회암을 깔았다.
큐폴라(Cupola ; 돔)에는 100kg 의 금이 소요되었다.
-이사악 성당의 축측투상(軸測投象)도-
-이사악 성당의 정면 현관(porch) 모습-
**이사악 성당은 64~114 톤에 달하는 72개의 거대한 붉은색의 화강암 원기둥에 의해 받쳐지고 있으며
1만 4천 명을 수용할 수 있다. 이사악이라는 성당의 명칭은 달마티아의 정교회 성인의 이름에서 온것이다.
-현관(Porch)의 화강암 열주들-
** 화강암 기둥 받침에 녹청이 낀것으로 미루어 주초는 석재 대신에 구리판을 깐 것으로 보인다.
지진발생시에는 깨지지 않고 마찰을 흡수할 수 있는 동판이 기둥 밑면 보호에 적합할 것이다.
-기록사진-
**1995년도의 북유럽 답사시 인증샷이다. 왼편은 니콜라이 1세의 동상이다.
-청동문의 부조-
** 무게가 10톤인 3개의 문도 훌륭한 작품이다.
-청동문의 부조-
-돔 아래 부분의 반 원형 부조-
-돔 아래 부분의 반 원형 부조-
-성당 내부 모습-
**실내 장식은 22명의 예술가들이 참여했는데 성서의 장면이나 성인상이 150장면 이상
그려져 있다. 62점의 모자이크 화와 300개 이상의 부조와 동상이 있다.
**거대한 화강암 기둥을 세우는 과정을 보여주는 모형-
** 성당 한편에 설치되어 있다.
-종탑 과 돔 전망대로 올라가는 철제 나선형 계단-
-돔 주변 네 모서리에 있는 종탑-
-전망대의 관광객들-
-전망대의 관광객들-
** 건설공사 중 특히 힘들었던 것은 43 m 높이에 있는 쿠폴(양파 모양의 둥근 지붕) 둘레에
24개의 기둥(높이 13 m, 무게 67톤)을 설치하는 작업이었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광장과 시가지 모습-
-전망대에서 북쪽으로 보이는 경관-
**구 해군성의 금색 첨탑 뒤로 네바강 건너의 "뻬뜨로 빠블로프스까야 요새"의
'뻬뜨로 빠블로프스크(베드로 바오로) 성당'의 금색 첨탑이 보인다.
-운하-
-네바 강 드보르트쏘비 다리(Dvortsovy most) 위에서 본 겨울 궁전(짐니 드보레취,Зимний дворец)-
**제정 러시아의 군주의 겨울을 위해 1754~1762년에 지어졌다. 로코코 양식을 표방한 궁전은
바르토로미오 라스트렐리(Bartolomeo Rastrelli)가 초안을 만들었으며 연둣빛의 색조를 띤다.
1,786개의 문과 1,945개의 창문이 있다. 예카테리나 1세가 첫번째 주인이 되었다.
-궁전 광장(Palace Square)-
**겨울궁전, 에르미따쥬, 반원형의 개선 아취를 갖춘 건물 등으로 둘러싸여 아름다운 조화를 보여주는 광장.
광장 중앙에는 높이 47.5 m, 무게 600 톤의 알렉사드르 원기둥이 서 있다. 1812년 나폴레옹 전쟁
(조국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어졌으며 완성된 해는 1834년이다.
-운하와 계류되어 있는 유람선-
-운하와 주변 풍경-
-구 해군성 건물이 보이는 풍경-
-운하와 이사악 성당이 보이는 풍경-
-순양함 오로라(Cruiser Aurora)(필카 사진)-
**1917년 10월 1일 오전 9시40분에 함포 한방을 쏘아 10월혁명 시작의 신호를 울린 장본인으로
러일 전쟁의 참전하여 부상을 당하기도 했던 참전 용사이기도한 이 배는 현재 박물관이 되어 있다.
-뱃머리 모양의 장식을 한 기둥(1805~1810)-
**이 기둥은 마주 보고 있는 한 쌍(2개)중의 하나이다. 초기에는 네바강을 오르내리는 배들을 위한 등대였다고 한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