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교회는 친일 문제 앞에서 우물쭈물 하는가?
- 한상봉 편집장
- 승인 2024.08.27 11:05
다시 주교님들께 올리는 전상서(前上書)-1
2024년 8월 15일, 광복절은 성모승천대축일이었습니다. 이날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년 한데 모여 이집트 종살이에서 구출하신 하느님을 경배하며 ‘해방절’을 지내는 것처럼, 우리 교회 역시 성모님과 더불어 우리 겨레가 일본제국주의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하지만 이날을 기념하는 한국천주교회 주교님들의 메시지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친일사대외교에 집중하고, 고위관료들과 하필이면 역사관련 기관장들을 죄다 친일파에 버금가는 이들로 채워넣은 상황에서 기념하는 ‘광복절’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뉴라이트’(새로운 우익, New Right)가 아니라 ‘뉴 재패니스 팩션’(새로운 친일파, new pro-Japanese faction)이라 불러야 마땅합니다. 교구장 메시지는 진공 상태에서 허공에 흩뿌리는 소음이 아닙니다. 교구장의 메시지는 분명한 수신인이 있는 발화(發話)입니다. ‘한국인’ 신앙인에게 복음의 빛 안에서 가르치는 말입니다. 신자이면서 동시에 한국인인 교우들이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한 복음적 식별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몇몇 교구장님들의 메시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구석에도 현재 국민/신자들이 겼고 있는 현실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특히 광복절에 걸맞게 ‘군국주의’를 다시 모색하는 일본정부와 국내 친일파들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대응해야 하는지 복음적 지침을 내리지 않습니다. 모든 주교님들이 성모신심만 강조할 뿐 광복절의 의미에 대해서는 힐끗 바라보고 고개를 돌리는 듯한 인상이 짙습니다. 그나마 이 문제에 대한 나름대로 언급하신 분은 의정부교구의 손희송 주교님 뿐입니다. 손 주교님은 “파스카 축제의 정신으로 광복절을 지내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우리 민족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고도 그것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데에 인색한 일본에 대해 밉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더라도 거기에 머물지는 말자”고 합니다. 아픈 과거사는 그만 잊고 미래만 생각하자는 것이지요. 그러나 십자가 없는 부활이 없고, 회개 없이 구원은 없다는 게 우리의 신앙입니다. 과거의 전쟁범죄에 대한 반성이 없는 이들을 용서할 도리가 없고, 일제잔재의 청산이 없다면 우리는 아직 해방된 것이 아닙니다. 더러워진 옷을 세탁도 하지 않고 계속 입고 살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목욕을 한들 때묻은 옷을 걸치면 헛일이 됩니다.
저는 한국교회와 주교님들이 왜 이토록 친일문제에 대해 애써 외면하고 싶어하는지 그 심정을 이해는 합니다. 우리 교회 역시 친일문제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자신이 일제잔재를 청산하고 충분히 ‘공적으로’ 반성하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이었던 2000년에 한국주교회의가 12월 3일 자로 발표한 <한국천주교회의 2000년 ‘쇄신과 화해’>라는 문서에서도 일제식민지 시절 교회의 친일행적에 대해선 한 마디도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우리 교회는 열강의 침략과 일제의 식민통치로 민족이 고통을 당하던 시기에 교회의 안녕을 보장받고자 정교분리를 이유로 민족 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때로 제재하기도 하였음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을 뿐입니다. 정말 끈질기게 비겁한 교회입니다.
한국교회는 일본교회보다 염치가 없습니다. 당시 일본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이케나가 준 대주교는 2000년 8월 6일부터 ‘평화주간’을 선포하면서, “한일합병 100년을 맞아 일본 자국이 행한 일을 진지하게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히면서 “이처럼 역사적으로 중대한 시기에 우리 가톨릭교회의 책임을 포함하여 일본의 식민지 정책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그리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는지를 진지하게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용기를 갖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청하는 일은 자신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바라시는 참된 인간의 모습에 가까이 다가가는 일”이라며 “우리가 이러한 자세를 가질 때 비로소 그리스도께서는 적의라고 하는 장애의 벽을 헐어버리고 참된 화해의 길로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솔직하게 일제 강점기에 행한 교회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고 반성하는 이유는 “두 번 다시 같은 비극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하는 맹세인 동시에 미래에 대해서도 책임지는 일임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결국 한국교회는 이런 일본주교와 같은 역사의식이 없다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대충 교회의 과거사를 묻어두고 가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사진출처=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 사전
민족문제연구소는 2009년에 <친일인명사전>을 펴내면서 천주교인 가운데 7명(노기남 대주교, 김명제 신부, 김윤근 신부, 신인식 신부, 오기선 신부, 장면, 남상철)을 친일 인사로 등재하였습니다. 특히 서울교구장이었던 노기남 대주교는 2009년 7월 초 정부산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공식 결정되기도 했습니다. 이때 서울대교구 측은 “당시 노 주교 행동은 개인의 사적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천주교회 수장’으로서 교회와 교인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행위였다는 점에서 다른 친일 행위자들과 분명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해방공간에서 반민특위에 잡혀온 친일파들이 “이렇게 빨리 해방될 줄은 몰랐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어설픈 변명에 앞서 먼저 사죄하고 역사 앞에서 용서를 청해야 옳았습니다.
더 뼈아픈 사실은 한국천주교회의 친일이 전방위적이었다는 점입니다. <친일인명사전>에는 불교 54명, 개신교 51명, 유림 41명, 천도교 29명이 등재되었는데, 천주교인은 7명만 명단에 올랐습니다. 이를 두고 김승태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은 이렇게 말햇습니다. “천주교회의 친일인물 명단은 다른 종교에 비해 적은 편이다. 이는 천주교의 특성상 개인적 차원에서 친일행적을 보인 사람들보다 교단 차원에서 친일행동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이 부끄러운 과거를 우리 교회가 통렬하게 반성하지 않는다면, 한국교회는 내내 친일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광복절’을 성모승천대축일로 대충 뭉개고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반복할 것입니다. 저는 지금 고백소에서 진솔하게 자기 죄를 고백하거나 용서를 청하지 않고 우물쭈물하는 신자가 있다면 과연 이 고해사제는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합니다.
게다가 서울대교구 정순택 대주교는 “‘빛을 회복한 대사건’인 광복을 통해 자유를 되찾은 우리 대한민국은 전쟁이 남긴 깊은 상처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가 경탄해 마지않는 민주주의 국가, 문화 국가로 성장했다”면서 “과연 우리는 우리 안에 깊게 자리한 반목과 미움에서 해방되었을까?” 묻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1970년대 군사독재정권 시대도 아니고 아예 일제강점기로 되돌아간 것처럼 느끼는 국민들이 있는 상황에서 이 얼마나 한가한 이야기입니까?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혐오와 갈등, 반목과 미움을 조장하는 자들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막연하게 화해와 일치를 논하는 게 얼마나 무기력한 발언입니까?
그래서 주교님들께 간청드립니다. 제발 현실을 보고 현실적인 이야기로 주님께서 맡기신 백성을 돌보아 주십시오. 관념적인 언어를 신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성모님에 대한 사랑은 나자렛의 가난한 처녀에 대한 사랑이며, 자식을 정치-종교권력에게 빼앗긴 여인에 대한 사랑이며, 로마제국과 식민지 행정당국에 의해 살해된 예수님에 대한 사랑입니다. 복음은 지상을 비껴나 선포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순결한 사랑은 정직하고 아픈 사랑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출처: 왜 교회는 친일 문제 앞에서 우물쭈물 하는가? - 가톨릭일꾼 (catholicwork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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