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인문학] 19세기 공포 소설
최초의 SF '프랑켄슈타인'… 19살 문학 소녀의 상상서 나왔죠
19세기 공포 소설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기획·구성=오주비 기자 입력 2024.07.08. 00:30 조선일보
기괴한 등장인물과 SF(공상과학) 같은 세계관을 보여준 공포 소설 ‘프랑켄슈타인’이 21세에 불과한 영국 여성 작가가 썼다는 걸 알고 있나요? 1816년 초여름, 스위스 제네바 근교에는 더위가 시작돼야 할 무렵인데 때아닌 추위와 폭우가 몰아쳤어요. 당시 19세이던 문학 소녀 메리 셸리는 제네바에 머물고 있던 유명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의 별장에 방문 중이었어요. 미래의 남편 퍼시 셸리와 함께 말이지요. 시대를 풍미했던 시인 바이런과 역시 시를 썼던 퍼시 셸리는 절친한 친구 사이였죠.
“무서운 이야기 하나씩 해볼까?”
화창한 날씨를 기대했던 메리와 퍼시, 바이런 등은 계속 내리는 비에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야 했어요. 그러자 바이런이 무서운 이야기를 해보자는 제안을 합니다.
메리는 한 과학자가 시체들을 모아 키가 240㎝가 넘는 인형을 만들고 전기 자극을 줘 괴물을 탄생시키는 이야기를 떠올려요. 그리고 2년 후 1818년 소설 ‘프랑켄슈타인’이 익명으로 출간됩니다. 당시 교육과 글쓰기는 남성의 전유물이었지만, 메리 셸리가 훗날 최초의 SF소설이자 고전으로 읽히는 소설을 완성한 것이죠. 그녀의 나이 불과 21세에 이뤄낸 일이에요. 이어 1831년 판본을 통해 작가의 본명을 세상에 밝히게 됩니다.
메리 셸리가 43세인 1840년에 아일랜드 화가 리처드 로스웰이 그린 초상. 메리 셸리는 54세에 사망했어요. /위키피디아
메리의 아버지는 급진적인 무정부주의 철학자였던 윌리엄 고드윈이었어요. 어머니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주장한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대표적 인물로, ‘여성의 권리 옹호’를 쓴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였죠. 어머니는 그녀를 낳고 10여 일 후 산욕열로 세상을 떠났지만, 메리 셸리는 어머니의 책들을 읽고 자라며 지식인으로 성장합니다.
특히 과학에 큰 관심이 있었던 메리는 ‘갈바니의 실험’을 응용해서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를 쓰게 됩니다. 1780년대 이탈리아 볼로냐대 교수였던 루이지 갈바니는 해부한 개구리의 뒷다리에 전기가 흐르는 금속이 닿으면 경련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훗날 자신의 이름을 붙여 ‘갈바니즘’이라는 이론을 만들어내는데요. 시체에 전기를 흐르게 하면 죽은 이를 살려내거나 새로운 생명을 창조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죠. 메리는 이 주장에 매혹되었다고 해요.
또 재미있는 건, 많은 이가 괴물 이름을 ‘프랑켄슈타인’으로 알고 있지만,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만들어 낸 제네바의 물리학자 이름이라는 사실이에요. 괴물은 그저 괴물로 불릴 뿐이죠.
괴물의 외로움과 분노 입체적으로 다뤄
2014년 국내 창작 뮤지컬로 초연돼 큰 성공을 거둔 ‘프랑켄슈타인’이 오는 8월 25일까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10주년 기념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이 뮤지컬은 괴물과 프랑켄슈타인의 대결이라는 큰 구도만 남겨두고 많은 부분이 각색되었습니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공연 장면. /EMK뮤지컬컴퍼니
소설 원작에서는 프랑켄슈타인이 왜 갑자기 자신의 인생을 걸고 생체 실험에 매달리는지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면, 뮤지컬에서는 프랑켄슈타인이 어린 시절 어머니의 죽음을 맞았고, 어머니를 다시 살려내고 싶은 마음에 실험을 시작하게 됐다는 인과 관계를 보여주면서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킵니다.
또 흉측한 얼굴과 괴력을 가진 괴물이 인간 사회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외로움과 분노의 심리를 연기를 통해 입체적으로 전해줍니다.
다시 1816년 초여름 어느 날로 돌아가 볼까요.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 중에서 메리는 ‘프랑켄슈타인’을 완성했죠. 그런데 책을 완성한 또 다른 한 사람이 있습니다. 시인 바이런은 당시 유행하던 흡혈귀 이야기를 떠올려 글을 써보려 했지만 잘되지 않아 그만두었는데요. 그의 주치의였던 존 윌리엄 폴리도리가 1819년 ‘흡혈귀’를 발표합니다. 이 책은 흡혈귀의 대명사인 아일랜드 소설가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1897)’보다 80년 가까이 먼저 쓰여 흡혈귀 이야기의 시조로 알려져 있지요.
여성 흡혈귀를 다룬 소설
한편 잘 알려지지 않은 매력적인 흡혈귀 소설이 한 권 더 있습니다. 바로 아일랜드 작가 셰리든 르 파뉴가 1872년에 발표한 최초의 여성 흡혈귀 소설 ‘카르밀라’라는 작품이지요.
뮤지컬 '카르밀라' 공연 장면. /네버엔딩플레이·라이브러리컴퍼니
카르밀라는 한 백작 부인의 이름으로, 흡혈귀가 되어 불멸의 삶을 살고 있지요. 주인공 소녀 로라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카르밀라를 만나고 가까운 사이가 됩니다. 하지만 카르밀라가 흡혈귀라는 사실이 주위 사람들에 의해 밝혀지면서 결국 카르밀라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특히 카르밀라가 흥미로운 건 우리가 흡혈귀를 생각했을 때 자연스레 떠올리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때문입니다. 흡혈귀는 보통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 활동하지만, 카르밀라는 한낮의 햇볕도 문제없이 생활해요. 피를 마시지 못해 힘이 없고 핏기가 없는 낯빛을 하고 있지 않으며, 따뜻한 체온을 가지고 있어 일반인과 구별하기 힘들지요.
뮤지컬 ‘카르밀라’(9월 8일까지·서울 대학로 링크아트센터드림) 역시 원작과 다르게 많은 부분이 각색됐습니다. ‘닉’이라는 또 다른 여성 흡혈귀 캐릭터가 등장해요. 닉은 카르밀라를 조종해서 로라를 흡혈귀로 만들려고 하죠. 로라를 아끼는 카르밀라는 로라를 닉의 위협에서 구해내지만, 결국 로라는 카르밀라와 영원히 함께하고자 흡혈귀의 삶을 선택합니다. 여성 흡혈귀라는 색다른 소재를 유쾌하고 밝은 분위기에서 풀어내면서도 격정적인 음악과 장면 전환으로 관객들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뮤지컬입니다. 이번 여름 괴물과 흡혈귀를 다룬 소설을 읽고 공연을 보며 무더위를 잠시 잊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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