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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10
누가 전도 하는가? /
새 가족 환영주일이 두 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여러분은 열심히 전도하고 계시지요? 많은 성도들이 열심히 전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전도할 줄 몰라요' 하면서 아예 전도를 포기하고 계신 분들도 있습니다. 과연 누가 전도를 하게 될까요?
오늘 본문은 아람나라에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의 어떤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그 소녀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모릅니다. 성경은 그저 ‘어린 소녀’라고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소녀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그 소녀의 행적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람은 이스라엘 동북부에 위치한 나라였는데, 그 아람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아람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은 위대한 선지자 엘리사 때문이 아니라 그 아람나라에 포로로 잡혀 갔던 작은 소녀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소녀가 자기의 주인인, 문둥병에 걸려서 고생하는 장군에게 하나님의 종을 소개해서 고침을 받게 했고 그 장군이 자기 질병을 고침 받은 후에 하나님을 섬기기 시작해서 아람나라가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사람이 아닌 아주 작은, 이름 없는 사람을 사용하여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세상에서 잘 나고 훌륭하다고 인정받는 사람이 아니라 아주 약한 사람도 쓰셔서 대단히 중요한 일을 하게 하십니다. 지난 수요일에 복음찬송 작곡가 김석균 선교사가 와서 간증을 했는데 그분이 전한 말씀 중에 기억나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하나님을 전할 사람을 찾으신다’고요.
요한복음 4장에는 수가성의 한 불행한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온 동네 사람들에게 전도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가 성의 그 여인도 존경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동네 사람에게 욕먹는 여인이었지만 그 사람도 중요한 전도자의 역할을 했습니다. 수가 성 여인은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수가 성 여인이 어떤 사람이었던가요?
수가 성 여인은 버림받은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인종적으로는 개같이 취급 받던 사마리아 사람이었고, 사회적으로는 멸시를 받던 하층 계급의 사람이었고, 개인적으로는 다섯 남자로부터 버림받은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온 동네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을 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인종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월등하거나 행복한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의 사람들이 크고 아름다운 일에 쓰임을 받았습니다.
수가 성 여인은 자기를 찾아오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수가 성 여인은 이방 사람이었고, 창녀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 그 여인은 유대인인 예수님이 자기에게 물을 달라고 말을 거는 것 자체가 싫어서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예수님과 몇 마디 대화를 하는 중에 예수님의 범상함을 알아보고 즉시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여인은 자기의 과거를 다 그러내고 눈물로 회개하며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나는 남편 다섯을 두었던 불행한 죄인입니다”라고 자신을 드러내고 회개하면서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사람이 가슴을 열고 주님을 영접하는 일은 너무나 귀중한 일입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수가 성 여인은 자기를 찾아오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마음을 열고 눈물로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에게 사죄의 기쁨과 구원의 축복이 주어졌습니다.
수가 성 여인은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 했습니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28,29)
성경을 보면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주님을 만난 즉시에 주님을 증거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새 신자였을 때 전도 했다는 말입니다. 수가 성 여인은 주님을 만난 즉시 주님을 전도 했습니다. 그리고 평생 전도 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자기 물동이를 내던져두고 주님을 증거 하러 동네로 들어갔습니다.
거기는 물이 아주 귀한 지역입니다. 아침마다 물동이를 이고 와서 물을 길어 가야 하루를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물을 길러 우물가로 가면 사람들이 많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여러 번 재혼한 이 여인을 보면 수군수군 비난합니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당하는 것은 죽기보다 싫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물 길러 오지 않는 뜨거운 대낮에 혼자 물 길러 오곤 했습니다. 그에게 물은 하루의 생명을 연장해주는 물이고, 물을 길어오는 물동이는 생명의 그릇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물동이를 내던지고 용감하게 동네로 들어갔습니다. 자기를 비웃던 사람들에게 내가 만난 예수님을 당신네도 만나보라고 외치러 간 것입니다. 더이상 동네 사람들이 무섭지 않았고 오히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불쌍해졌기 때문입니다.
누구 만날까봐서 사람들 없는 곳으로 피해 다니던 여자가 자기 발로 사람들을 찾아갔습니다. 조용히 말을 건넨 것이 아니라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동안은 평범한 생활을 못한 자기가 불행하고 부끄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 구주를 만나지 못해서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사람이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그를 바꾸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 여인은 자기가 만난 그리스도를 증거 했습니다.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29) 내 생각과 내 삶을 변화시킨 예수가 틀림없이 우리가 기다린 그리스도이시다. 당신들도 어서 가서 만나봐라. 그렇게 외쳤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만난 변화가 있습니까?
가장 강력한 전도는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간증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멋진 사람인 것처럼 꾸미는 전도보다는, 자기의 부끄러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고백적인 전도가 가장 효과적이고 감동적인 전도입니다.
그 수가성 여인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39) 이 여인은 사마리아 복음화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수가성 여인은 가장 불행한 사람 중에 하나였지만 주님을 만나고 나서, 동네 가운데로 들어가서 그리스도 예수를 증거 한 뒤로는 가장 자랑스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그는 계속 주님을 증거 했을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그 여인을 비난한 것이 아니라 당신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고 굉장히 고마워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자의 축복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람에 포로로 잡혀 간 소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가 어떤 일을 했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소녀도 겉으로 드러난 상황을 보면 가장 불행한 아이인데, 그 아이가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고통 속에서 사는 주인을 구원했습니다. 소녀는 어떤 사람일까요?
첫째, 이 소녀는 고향과 부모를 잃은 외로운 포로 소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용하신 복된 사람들을 보면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행복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경우에 고향과 가정을 떠난 외로운 사람들을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붙잡혀서 고향과 가정을 떠났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포로로 붙잡혀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고향 친척을 다 등지고 떠나야 했고, 요셉은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고, 다니엘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람 복음화의 중요한 역할을 한 이 소녀도 포로로 잡혀간 신세였습니다.
아람에 포로로 끌려간 이 소녀는 밤마다 고향과 부모 형제들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외로움도 어떤 때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되고, 눈물도 어떤 때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보통 사람은 그런 환경을 당하면 원망과 불평의 하면서 불행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절망 같은 상황을 만나도 진지하고 겸허한 자세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강인하게 살아갑니다.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난 아브라함이나, 애굽에 노예로 팔려간 요셉이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은 그가 당한 고난을 외로워하고 절망하며 원망하는 기회로 삼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기회로 삼아서 자신도 구원하고 남도 구원했습니다. 이 포로 소녀는 고향과 집을 떠난 외로운 처지에서 원망과 불평 대신 진지하고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최선을 다해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주인에게 하나님을 전도할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전도는 아무런 문제가 없이 항상 행복하기만 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 속에 살면서 하나님께 매달리고 의지하다가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둘째, 포로로 잡혀 간 소녀는 자기 주인을 선대했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포로로 잡혀 갔던 소녀는 자기를 잡아다가 하녀를 삼은 주인을 미워한 것이 아니라 사랑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불행한 형편에 처하면 누구 때문에 내가 이렇게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을 원수로 삼고 악하게 살아갑니다. 그 사람 때문에 자기가 그렇게 된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 자체를 싫어하고 사람들을 원망하며 그 원망에 매여서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불행도 해결할 수 없고 남들을 돕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소녀는 주인이 자기를 포로로 잡아갔기 때문에 자기가 불행에 빠졌으니까 주인을 원망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주인의 집에서 일을 열심히 했고, 주인을 존경하며 사랑했습니다. 주인을 위하는 마음, 주인을 돕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인 부부도 그 소녀를 믿었고, 그 소녀의 말을 들어주었습니다. 마치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지만 주인의 집에서 일을 잘 했고, 주인의 신임을 받았던 것과 같았습니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주인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2-4).
그 소녀는 자기 주인이 나병으로 절망하며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그를 고칠 방법을 생각하다가 자기나라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시는 엘리사가 떠올랐습니다. 우리 주인이 엘리사 선지자님에게 가시기만 하면 틀림없이 나아서 돌아올텐데 하고 생각하다가 선지자에게 가라고 권합니다. 소녀는 자기 주인을 사랑했고 주인을 돕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다니는 회사가 주는 월급으로 살고 자식 키우면서도 파업 때에 회사 망해버리라고 기계를 부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옳은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소녀는 자기를 붙잡아가서 노예를 삼은 주인을 미워한 것이 아니라 사랑했고 돕고자 했습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귀중한 일이었습니다(잠25:21).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도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몇 해 전 돌아가신 서남석 장로님은 우리 동네 노인들을 모두 사랑했습니다. 서장로님은 나이가 너무 많거나 몸이 약해서 다른 사람들이 귀찮아하고 외면하는 노인들을 너무나 사랑해서 날마다 식당으로 불러 점심을 사드리며 위로하고 전도했습니다. 주일이면 그분들 모두가 예배를 드리게 하려고 1부, 2부, 3부 예배를 모두 참석하면서 그 할아버지들을 주님께로 인도했습니다. 사람을 귀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 전도자의 마음입니다.
셋째, 이 소녀는 하나님의 이름을 아람 나라에 나타내기를 원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읽어보면 포로로 잡혀 갔던 소녀는 하나님을 믿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라면 다 하실 수 있다고 하는 믿음이 가득했고, 하나님의 위대하신 이름이 아람 나라에 널리 알려지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라고 여주인에게 당당히 말해 주었습니다.
포로로 잡혀 간 소녀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만약 주인이 엘리사를 찾아갔어도 낫지 않는다면 그때는 어린 것이 주인을 놀렸다고 큰 화가 돌아올 까봐서 걱정이 될 수도 있는데, 그런 일은 절대 생기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도리어 우리 주인이 병 고침을 받고 오시면, 이 나라 사람들도 다 하나님을 믿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전도자의 마음입니다.
옛날 소년 다윗이 그런 마음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불레셋의 장수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를 조롱할 때 돌멩이 다섯 개를 가지고 달려가면서 “너는 칼과 창으로 내게 오지만 나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내가 너를 쳐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세상에 보여 주마”하고 돌을 던졌습니다. 다윗은 추호도 의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다윗과 함께 하셔서 돌멩이 한 개로 골리앗을 쓰러뜨리게 하시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천하에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온 천하에 드러내려고 하는 사람들의 소원은 틀림 없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장관 나아만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기를 위하는 소녀의 착한 마음과 하나님을 믿는 그의 확실한 믿음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아만은 왕에게 가서 그 소녀의 말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아람 왕도 감동을 받았습니다. 결국 나아만은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랬더니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만 말했습니다. 나아만은 처음에는 거부하다가 측근들의 말을 듣고 요단강에 가서 씻었더니 그 병을 깨끗하게 고침을 받았습니다.
나아만은 엘리사를 찾아와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그리고 이렇게 약속을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자기 집에 끌려와서 일하는 포로 소녀 때문에 나아만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불행한 소녀 한명이 아람의 고관을 구했고, 그 한명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아람 땅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높임을 받게 된 것입니다. 불행해 보이는 포로 소녀 한 명이 수많은 아람 사람들이 옳은 데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이것이 전도의 놀라운 열매입니다.
누가 전도하는 사람이 될까요?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여유있는 사람입니까?
성공하고 존경받는 사람, 그래서 사람들에게 말발이 서는 사람, 여유 있는 사람, 말을 잘하는 사람만 전도합니까?
아닙니다. 전혀 아닙니다.
그와 완전히 반대 상황을 겪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포로로 끌려와서 남의 집 종살이하는 노예 소녀와, 그 집의 주인이자 아람의 군대장관인 나아만을 비교하면, 소녀가 주인에게 은혜를 입고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주인이 포로 소녀에게 너무나 큰 은혜를 입고 새 생명을 얻게 됩니다. 소녀는 겉으로는 지극히 불행하고 꿈도 없어 보이는 포로였지만, 사실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알고 믿으며 당당하게 사는 사람이었고 남을 돕고 싶은 착한 마음이 가득한 소녀였습니다.
누가 힘이 있습니까?
겉으로는 대단한 권세가 있어 보이지만 실제는 문둥병 때문에 죽음의 절망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주인이 힘이 있습니까?
아니면 그 주인을 사랑하며 도와주려고 하나님을 소개하는 노예 소녀가 힘이 있습니까?
포로 노예인 소녀와 군대장관인 주인 나아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시민권의 차이도, 재산의 차이도, 권력의 차이도 아닙니다.
진짜 사람의 가치를 구분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믿는 사람과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포로 소녀는 어떻게 주인을 도울 수 있었습니까?
자기 육신의 처지만 한탄하며 살지 않고 하나님을 보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사람을 보는 눈이 남달랐습니다.
수가 성 여인은, 전에는 자기가 인생실패자,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 부끄러워서 사람을 만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비관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수가 성 여인은, 주님을 만난 자기가 가장 행복한 사람임을 깨달았고 주님을 만나지 못해서 육신적인 사소한 것으로 자랑을 삼고 남을 비난하는 것으로 자기 위안을 삼는 동네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순간 그녀는 물동이를 내던지고 동네로 뛰어가서 외쳤습니다. “나를 만나주신 저 예수님을 당신들도 만나보라. 당신들도 어서 그분을 만나서 자유와 평안을 얻으라.”
그동안은 남들 부끄러워서 우물가에도 나오지 못했던 그 여자가, 자기가 예수를 만난 것이 너무나 자랑스러워서 자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뛰어 들어가 전도한 것입니다. 세상과 사람을 보는 눈이 바뀐 것입니다.
포로 소녀는, 밖에서는 장군 계급장이 빛나지만 집에 와서 옷을 벗는 순간 그 살이 썩는 냄새가 집안을 진동하고 언제 죽을지 몰라서 공포에 떨며, 그것 때문에 온 가족의 얼굴이 잿빛이 되어 살아가는 주인의 가정이 너무나 불쌍했습니다.
자기는 비록 종이지만 몸이 건강하니 감사했고, 무엇보다 자기는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우리 주인도 행복하게 살 수가 있을 텐데 하나님을 모르고 저렇게 매일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면서 권세있는 척 하는 모습이 너무나 불쌍했습니다.
소녀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어서 자기 나라에 계신 하나님의 종에게 가시면 주인이 나을 수 있다고 알려줍니다.
그래서 나아만이 문둥병을 고쳤고, 나아만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바람에 아람 나라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누가 전도합니까?
전도자는 겉으로 드러난 것을 자랑하며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의 허상을 제대로 아는 사람입니다.
겉으로는 돈 많고 좋은 옷 입고 높은 사람들을 상대하며 살아서 부족한 것 없어 보이지만, 한 꺼풀만 벗기면, 두려움과 초조함이 가득하고 불안과 고민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도 어떻게 해야 이 고통을 벗어나는지조차 알지도 못해서 점쟁이한테나 몰래 찾아가는 그들의 허상을 아는 사람은 더 이상 입을 다물지 못하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주인의 고통스런 내면을 아는 소녀는 주인이 하나도 부럽지 않았고 차라리 포로이지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가는 자기가 훨씬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주인을 불쌍히 여기고 선지자를 소개해준 것입니다.
전도하는 사람은 보는 눈이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의 겉모습을 부러워하면서 저 사람들은 무슨 복이 많아서 저렇게 잘 살고 저렇게 높은 자리에 올라갔나 하는 사람은 전도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행복은 물질이나 세상 명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모시고 사는데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 전도하게 됩니다.
내게는 외로울 때 만나주시고 힘들 때 동행하며 도와주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내가 지은 죄를 용서하기 위해 대신 형벌을 받아주신 주님이 이 세상 다하는 날까지 나를 책임져 보호하고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 이것이 자랑스러운 사람이 전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모시지 못한 사람은 겉모습이 화려해 보여도 그 안에 온갖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하지만, 그것을 해결할 방법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고 그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이 전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람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주역이 누구였습니까?
엘리사였습니까?
이스라엘의 어떤 장관이었습니까?
아닙니다.
포로로 잡혀갔던 한 노예 소녀였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할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자기도 불행한 처지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빌미로 남을 원망하지 않고, 도리어 영의 눈을 떠서 사람들의 화려한 겉모습 안에 감추어진 불안과 불행을 꿰뚫어보며 그들을 도와주려는 마음이 가득하고 그들도 하나님을 섬기게 하려고 애쓰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여러분이 그 사람이 되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모두 그런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불행하고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을 때에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원망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만나는 사람, 불신자들의 허망한 실상을 알고 그들을 도우려는 마음이 가득한 사람, 온 천하에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전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이웃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위대한 전도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