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공원 아래 인천 '찐역사', 송학동
발간일 2021.07.05 (월) 16:02
제물포구락부~인천시민애집~이음1977 잇는 투어 진행
1981년 7월 1일, ‘인천시’는 경기도에서 분리돼 ‘인천직할시’가 되었다. 40주년을 맞이하여 인천의 지난 발자취를 돌아보고 미래를 모색하는 다양한 행사가 진행 중이다. 제물포구락부에서는 ‘인천 독립 40년’을 기념하는 체험행사로 자유공원 남쪽 기슭 일대를 둘러보는 ‘송학동 역사 산책길 투어’를 마련했다.
인천개항과 함께 서양인들을 위해 마련된 ‘각국 조계지’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응봉산 구릉지에 형성됐다. 응봉산은 1888년 서양식 공원으로 조성되어 만국공원으로 불렸고, 각국 조계지에는 다양한 양식의 서양 건축물이 들어서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냈다. 만국공원은 한국전쟁 이후 맥아더 장군 동상이 들어서면서 자유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서양 건축물들은 한국전쟁과 화재 등으로 거의 사라졌다.
해방 후 송학동 일대를 소유했던 미군정은 한국전쟁 후 필지를 나누어 유상 분배했다. 일부는 도서관, 박물관, 시장관사 등 공공의 공간으로 남았고, 인천항을 향해 남쪽으로 경사진 부지에는 고급 개인 주택들이 들어섰다.
‘송학동 역사 산책길 투어’는 역사와 이야기가 담긴 길을 걷고 최근 인천 시민에게 한 발짝 더 가깝게 열린 공간들인 ‘인천시민愛집’, ‘인천이음1977’ 등을 탐방하며 시간의 흔적을 오감으로 느껴보는 도보여행 프로그램이다. 7월1일부터 5일 동안 오전 11시, 오후 5시 두 차례 진행되었고, 회당 10명씩 인터넷으로 사전 신청을 받았다.
▲인천독립 40년을 기념해 제물포구락부에서는 인천시민애집~이음1977~제물포구락부~플라타너스나무~ 조미수호통상조약체결지를 도는 투어를 지난 7월 1일~ 4일, 하루 두차례씩 열렸다. 사진은 조미수호 통상조약체결지 표지석 앞에서 설명하고 있는 이원영 제물포구락부 관장.
산책길 투어는 청·일 조계지계단과 삼국지 벽화 거리가 만나는 곳에 세워진 ‘조미수호통상조약체결지’ 표지석 앞에서 시작됐다. 제물포구락부의 이원영 관장은 직접 마이크를 들고 투어를 이끌었다. 나눠준 리시버와 이어폰을 통해 투어 참여자들은 이 관장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편리하고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개항기의 여러 사건과 그 의미, 각 사건의 연결,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등 유익한 이야기들이 귓속으로 쏙쏙 들어왔다.
“그동안 각국 조계지가 있던 송학동 일대는 개항장 일본인 거리나 차이나타운에 비해 조명을 덜 받아왔습니다.” 이 관장은 다양한 문화, 흥미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는 이 일대의 역사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때 이곳에서 미국군악대가 연주하곤 했다는 신나는 행진곡풍의 ‘양키두들’을 이어폰으로 들으며 자유공원에 들어섰다. 한여름이지만 초록이 가득한 공원길을 귀에 익숙한 경쾌한 멜로디에 맞춰 걸으니 신이 났다.
옛날 인천 학생들이 자유공원으로 소풍을 올 때면 사진의 배경이 되곤 했던 6각 정자 ‘연오정’과 전망이 좋은 2층 누각 ‘석정루(石汀樓)’를 지나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을 둘러보았다. 방향을 바꾸어 숲이 우거진 계단을 내려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플라타너스로 향했다. 걷는 동안 느낌이 좋은 노래, ‘나만 볼 수 없던 이야기’(잔나비)가 이어폰으로 흘러나왔다. 기획팀의 세심한 배려 속에 감성이 말랑말랑해졌다.
▲옛날 인천 학생들이 자유공원으로 소풍을 올 때면 사진의 배경이 되곤 했던 6각 정자 ‘연오정’.
“나무의 뿌리가 어디까지 뻗는지 아세요? 일반적으로 가지가 뻗어있는 곳까지 땅속에서 뻗어 나간다고 합니다.” 4명이 팔을 힘껏 벌려 안아야 겨우 잡을 수 있을 만큼 우람한 나무 둥치 규모에 감탄하곤 했는데, 땅속 깊이 멀리 단단하게 뻗어있을 뿌리를 생각하니 세월의 무게가 눈앞에 그려진다.
인천개항 이듬해인 1884년부터 제물포 앞바다가 보이는 자리에 서서 138년의 세월 동안 묵묵히 서 있는 플라타너스, 그 아래 서서 인천항을 바라보고 있자니 거대한 나무가 오랜 세월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만 같다.
▲인천개항 이듬해인 1884년부터 제물포 앞바다가 보이는 자리에 서서 138년의 세월 동안 묵묵히 서 있는 플라타너스, 그 아래 서서 인천항을 바라보고 있자니 거대한 나무가 오랜 세월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만 같다.
▲제물포구락부에서 개최하는 나무가 들려주는 인천 이야기 특별전시
울창한 플라타너스의 녹음을 뒤로하며 길을 따라 걸으니 제물포구락부가 지척이다. 제물포구락부는 1901년 개항장 일대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친교와 외교를 위해 만들어진 건물로, ‘구락부’는 클럽(club)의 일본식 음역어다. 이후 일본군과 미군들이 사용하기도 하고, 시립박물관, 문화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지금은 구락부 시절의 원형을 살려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창고로 사용했던 석축으로 마감된 1층 공간을 전시, 음악회, 영화감상이 가능한 공간으로 재생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현재 제물포구락부 1, 2층과 야외 공간에서 제물포구락부 120주년 특별전 ‘나무가 들려주는 인천 이야기’가 전시 중이다.
▲인천시민애집 역사전망대에서 바라본 인천항 모습. 인천 개항로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제물포구락부 바로 맞은편, ‘인천시민애(愛)집’으로 산책이 이어졌다. 인천시민애집은 일본인 고노 다케노스케의 주택이 있던 자리다. 풍경과 위치가 좋은 곳이라 해방 이후에 사교홀로 사용되다가 1966년부터 인천시장관사로 사용됐다.
2001년부터는 인천 역사자료관으로 쓰이다가 2021년 7월 1일 시민에게 활짝 열린 공간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관리동이 있던 곳에 새롭게 조성된 전망대에 서면 월미도와 인천항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인천독립 40년을 맞은 지난 7월 1일 송학동 옛 시장관사는 인천시민애집으로 바뀌었다. 사진은 인천시민애집 한옥본관 내부 모습.
일본식이 가미된 독특한 한옥 본관은 전시와 쉼터 공간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인천시립박물관이 기획한 '어서오십시오. 인천직할시입니다' 기획전시가 진행 중이다. 넓은 공간과 복도를 따라 미로처럼 이어지는 흥미로운 공간을 따라 다양한 구성의 전시회가 펼쳐지고, 책과 함께 햇빛 가득한 창가에 앉아 쉴 수 있는 ‘역사북쉼터’가 마련되어있다.
본관 앞마당을 지나면 좁고 구불구불한 돌계단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옛 모습이 보존된 아름다운 정원 구석구석을 여러 갈래로 난 돌계단을 따라 오르내리며 소요할 수 있다.
정원 한쪽에 마련된 ‘제물포 잔디 광장’ 벤치에 둘러앉아 개그우먼 김정현 씨의 재치있는 진행으로 역사 퀴즈를 함께 풀어보고, 커피와 텀블러를 선물로 받았다. 함께 걸었던 1시간이 넘는 송학동 역사 산책 투어는 여기서 마무리되었고, 개별적으로 탐방하는 ‘이음 1977’ 마지막 순서가 남았다.
▲인천시민애집 야외정원은 제물포잔디광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투어참가자들이 제물포잔디광장을 둘러보고 있다.
인천시민애집과 담벼락을 공유하고 있는 옆집 ‘이음 1977’은 1977년에 지어진 단독주택이다. 오랫동안 이 집에 머물렀던 가족의 삶이 담겨있던 독특한 주거공간과 외관이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최근 공공문화공간으로 재생되어 운영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다.
‘송학동 역사 산책길 투어’는 이벤트로 기획되어 5일 동안만 진행했지만, 앞으로 송학길 전체를 잇는 도보여행길로 확장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기획팀은 정성 들여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인천은 한국의 근·현대사 전체를 안고 있는 지역입니다. 특히 송학동 일대는 숨은 역사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숨어있는 역사문화자원으로서 가치가 높은 곳입니다. 다채로운 스토리텔링과 각 공간의 전시에 따른 도슨트를 개발하면 다른 지역과는 차별화된 도보역사문화 관광 상품을 마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원영 제물포구락부 관장)
송학동의 오랜 역사와 인천항 풍경을 가로막고 있던 높은 담장 속 공간들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면서 인천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도보 산책길이 마련되었다. 날씨는 덥지만 마음은 여유로운 여름, 자유공원과 송학동 일대를 여유롭게 걸으면서 인천항 풍경을 두 눈 가득 담아보자. 어제를 돌아보고 내일을 그리는 시간이 될 것이다.
글· 사진 박수희 i-View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