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고록6막51장 (3부-1)
"설악산"
말만 들어도 마음이 들뜨는 산이다.
인근의 속초, 강릉과 더불어 한국인이 제주도 다음으로 가고 싶어하는 곳이다.
진부령,한계령,미시령.태백산맥의 고개들이 뱀의 자태처럼 요사스러운 곳.
태백산맥의 메이커인 한국의 허리부분이다.
동해바다의 일출이 천하절경이요,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더한층 환상적이라
산악인이면 모두 대청봉 정상에서의 일출보기를 꿈꿔본다.
내가 설악산을 처음 접한 것은 고2때 수학여행때였다.
국립공원 초입에 있는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에 오른것이 설악산과의 첫대면 이였다.
그후 "후"와 "정"을 데리고 흔들바위와 울산바위, 오색약수터를 구경하고, 한계령 넘기 이전 우측에 있던 한옥 민박집에서 온가족이 숙박을 하게 되였다.
그리고 지금도 어렴풋이 생각나는 민박집이 있었다.
그 민박집은 사랑의 요새였다.
효도(孝道)의 종착지였다.
그당시에 민박집은 1박하는데 2만원을 받았다.
민박집은 지은지 2~3년도 안된 깨끗한 한옥집이였다.
써가래가 있고 허리만한 나무 기둥들이 집을 받쳐주며 검은 기와가 질서 정연하게 얹힌 한옥집이였다.
방문은 전형적인 한옥 문살에 창호지를 바른 민속촌 같은 집이였다.
방앞에는 조그마한 툇마루가 있어 방문 들어가기전
신발을 벗는 쉼터같은 공간이 있었다.
그런데 그 민박집의 주인은 70세가 되여 보이는 할머니셨다.
백발머리에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주름살이 이마에 은은히 패인 어르신이였다.
"그래 올해 나이가 몇이고?"
하며 우리한테 말을 걸어오신 어르신.
그리고는 부엌으로 들어가셔서 냄비에 손만두를
잔뜩넣고 끓이기 시작하였다.
얼마후 어르신은 우리 가족들을 부르셨다.
" 전부 이리와 보게
내가 직접 만든 만두 한번 맛보시게.
맛이 없어도 허기칠 테니 천천히들 드시게나."
나는 놀라고 말았다.
한옥민박을 2만원 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주시고 만두까지 한상 채려 주시니 무엇이 남기나 하겠어.
그리고 우리 가족은 부엌으로 몰려가 어르신이 주신 만두를 맛나게 먹기 시작하였다.
"후" 와 "정"이도 허기가 졌는지 맛나게 먹었다.
그때 할머님이 말씀하셨다.
" 사실 이 한옥민박집은 우리 자식들이(3명) 모두 돈을 합쳐 나보고 노후에 공기좋은 설악산에서 살라고 지어준 것이여,.
그리고 가끔 민박으로 수입이 생기면 용돈으로 쓰고 손님이 없으면 그냥 두고 그래.
다음에 이쪽으로 올시면 또 오구그래.
아무 부담갔지 말고.."
그랬다.
누군지 모를 효을 행한 삼남매의 따스한 분위기가 방안 가득 느껴진다.
70대 고령의 어머님을 위해 설악산 오색천이 흐르는 심산유곡에 집을 장만하여 남은 여생을 편히 지내시게 하다니...
세상에 이런 자식들도 있었구먼...
그래서 인지 어르신은 편한 얼굴에 미소 가득 행복한 표정을 하고 계셨다.
보통자식들은 용돈이나 주고 행사때나 찾아뵙고
요양병원이나 실버타운에 부모님을 모시거늘
이 할머니의 자식들은 부모님을 설악산 심산유곡으로 모셔 살게 하다니...
나는 깊은 감명을 받게 되였다.
그리고 몇년후 그 한옥 민박집을 찾아가서 할머니를 찾았으나 할머니는 보이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