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그릇(딤후 2:21)
디모데는 사도 바울의 믿음의 아들(1:2)이자 동역자이고, 다음 세대를 이어가는 교회의 지도자였습니다. 교회의 지도자가 바뀐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 교회의 역사를 통해서 경험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이어 교회를 지도하며 섬기는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먼저 교회를 ‘큰 집(20절)’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헬라어로 교회(ἐκκλησία)는 밖으로 불러 모은 구별된 이들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고 부름을 받은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하나가 되어가는 것이 교회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집 안에 같이 사는 이들은 가족입니다. 한 집 안에 사는 가족에게는 상속자라는 특별한 지위가 있습니다. 부모의 가업을 이어가듯이 교회로 부름을 받아 가족이 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큰 집에는 금그릇, 은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이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천하게 쓰는 것도 있다(20절)는 의미는 교회 구성원의 다양성과 의미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방에서는 각기 다른 식재료와 요리에 따른 그릇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구성하는 이들도 각기 다른 모양으로 교회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에서 5 달란트, 2 달란트, 그리고 1 달란트 받은 종들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재능대로(마 25:15)’ 달란트를 나누어 주었는데 우리는 달란트 숫자에만 집중하는 오해를 하기도 합니다. 교회를 세우는 다양한 이들이 가르치는 자로, 찬양하는 자로, 섬기는 자로 나누어지는 것은 결코 귀천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토기장이(롬 9:21)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토기장이가 토기를 빚듯이 하나님은 다양한 그릇을 만드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빚어진 다양한 그릇인 우리는 다양한 소명을 가지고 다양한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금그릇처럼, 은그릇처럼 재료에 의해 가치있어 보이는 그릇으로 살고자 하는 욕심을 내지만 하나님의 손에서 빚어진 그릇들은 결코 귀하고 천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그릇 가운데 오직 ‘깨끗한 그릇(21절)’이 사용하실 뿐입니다. 금그릇, 은그릇이건 나무 그릇, 질 그릇이건 사용되어지는 그릇은 오직 깨끗한 그릇입니다. 음식을 담기 위해서 금그릇, 은그릇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 그릇이든 질 그릇이든 깨끗하게 준비된 그릇이 사용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시민들의 휴식처로 알려진 하늘 공원은 쓰레기 산이었던 난지도가 변한 곳입니다. 자연의 정화 능력은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릇은 스스로 깨끗한 그릇이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지성과 이성으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던 계몽주의와 근대사회는 인간의 추악한 본성과 탐욕에 의해 더 이상 기대를 갖지 못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청년이 ‘주의 말씀으로 깨끗하게 되리라(시 119:9)’고 노래합니다. 깨끗한 그릇이 되기 위해서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라야 합니다.
성경은 질그릇처럼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그릇(고후 4:7)이지만 우리는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담고 있는 존귀한 그릇이라고 선포합니다. 우리가 깨끗한 그릇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사용하시어 교회를 세우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도구로 삼으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