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1960년대 지리산을 담은 지도 중 제일 앞줄에 놓일 1960년 제작 등산지도와,
1965년 구례군의 등산모임인 연하반이 만든 등산지도입니다.
이렇게 해서 1960년대 지리산 등산지도들의 얼개는 맞추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지리산을 '연하반'만큼 좋아했던 경남부산권 등산계의 그당시 지도도 입수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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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모두 대형 사이즈로 확대됩니다. 필요하신 분들에게 좋은 자료가 되면 좋겠습니다....
* 천하명승 지리산기(병 지리산 탐승 안내) 표지 *책등의 모습
1960년(4293년) 10월 15일,
서울 서대문 홍은사라는 출판사에서 발행한 '천하명승 지리산기(병 지리산탐승안내)' 입니다.
이 출판사는 '한국명승고적편람'과 '한라산기' 그리고 '금강산기' 등을 이후 편찬한다고 할 정도로
등산관광 쪽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지리산에 관한 가장 이른 시기에 발행된 안내서가 되겠는데요.
설악산 안내서의 처음이라 할 '설악산탐승인도지 (雪岳山探勝引導誌)'이 1960년에 만들어진 것과 비견됩니다. 그러나 설악에 비해서는 페이지 수가 적어 146p에 불과합니다.
표지를 보면 짐작하시겠지만, 이 책은 구례구역을 시발점으로 해서 화엄사 연곡사 천은사의 구례권역과 쌍계사 권역을 중심으로 해서 지리산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첫페이지에 삽입된 지리산 안내도는 이렇습니다.
노고단보다 반야봉이 더 강조하고 있음을 우선 알 수 있습니다.
설악산탐승 인도지가 내설악을 중심으로 하듯, 구례와 하동이 앞얼굴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반야봉 동쪽은 중세 지도의 '미지의 영역(tera incognita)’인양 단순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책에는 그래서 구례권인 반야봉에서 세석평전까지 가는 길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반야봉에서 지리산 전체를 종횡하려면 연봉의 등줄기를 따라 14km정도의 거리를 가면 '세석평전(잔돌평전)'에 이르게 된다. 이 사이에는 길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고, 유수하고 험준한 계곡이 허다하기 때문에 초행자는 가급적 안내인을 동반하는 것이 좋겠다.
책에는 또다른 안내도가 있어 지리산 전체를 담고 있습니다.
정확히 하자면 지리산 남쪽, 그러니까 구례, 하동, 산청을 넣고 남원과 함양은 없습니다.
뭐든지 일이 완성되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입니다.
몇년이 지나 지리산을 통으로 '두루' 보는 지도가 만들어 집니다.
이 지도에서 제가 관심을 갖는 것은 천왕봉의 성모상이나 칠불암의 신비의 '아자방'이 아니라
근대의 흔적입니다.
책에는 노고단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이 부근에는 속칭 진달랫들(척촉원(躑躅原)이라는 곳도 있어 수많은 진달래가 산을 덮어 만개할 5월 무렵에는 참으로 장관의 경지를 이루게 된다.
뜻있는 이들에 의해 노고단에 '진달래들'이 비정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연곡사 위 '대학연습림'도 이 이후의 지도에는 등장하지 않는 장소인데, 주목해 봅니다.
연곡사에서 약 6km쯤 피앗골(직전(稷田)계곡)을 더듬으 올라가면 옛날 왜정시대의 소위 일본 동경대 연습림사무소가 건설됐던 피앗골(稷田洞)에 이르게 된다.
해방전 이곳에는 훌륭한 건물들이 즐비해 있었으며 표고작업장의 시설도 상당히 좋았었는데,
이곳 역시 여순사건 당시 전부 소실되고 말았다. 이곳 일대의 임상미 계곡미는 절가무쌍이다.
음...
피앗골 직전동에 '훌륭한'(?) 건물들이 즐비했으며, 표고작업장도 시설이 상당히 좋았는데...
지금 그 흔적이 남아 있을까요?
연곡사에서 6km라고 한다면 버스가 다니는 직전 마을 위쪽이기 쉬울텐데요.
건물들은 당연히 계곡 근처에 있었을 테고요.
이제 이렇게 알게 되었으니, 언젠가 그 건물들 사진을 만날거라 기대합니다.~
서울대 연습림 또는 서울대 산림학과 관련 책에 들어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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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를 중심으로 한 작았던 지리산이 곧 높아지고 넓어집니다.
1962년 손경석이 단행본에 최초로 지리산 전부를 담게 되고요.
1965년에 그 이름이 영원히 남을 구례 연하반이 '두루산 지도'를 완성합니다.
지리산 초기 개척사에서 결코 빼어 놓지 못할 산악회가 '연하반'(후에 지리산악회로 개칭)입니다.
'하필이면' 지리산이 국립공원 제 1호가 되었을까를 궁금해하고자 한다면,
그건 어쩌면 '연하반'이 다른 산이 아니라 지리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1955년 5월 5일 태어난 연하반(烟霞伴)이 1962년 이 지도를 완성한 후 1965년 보완했다고 합니다.
지리산에 관한 기본 얼개를 모두 담고 있습니다.
1972년 개정판 지도에는 1962년 부산의 대륙산악회가 개척한 칠선계곡이 들어가 있고,
장터목 샘터의 샘이 원래 이름인 산희샘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이 이름 역시 연하반이 지었고요. 산희산장이라는 이름은 좀 낯설어 보입니다.
연하반(지리산악회)는 다음 카페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정회원이 되어야 중요한 글을 볼 수 있는데요. 탐험기 지리산의 모습에 반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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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장기적 의문 중의 하나인데요.
그렇다면 왜 구례의 연하반은 국립공원을 추진하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 중 하나는 일제 때 총독부가 지리산을 국립공원으로 추진했고, 외국인 휴양소도 노고단에 있었고, 또 화엄사 쪽 지리산을 사랑한 구례의 젊은이들이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의문을 품게 된 이야기는 따로 올리겠습니다.
첫댓글 위에 연하반 지도는 우측 지도가 좌측이 약간 없어요. 연하반 카페 쥔장께 요청했는데 받으면 알려드릴게요.
좌측이 약간 없긴 하지만, 무시해도 될 정도라고 저는 보는데요...
연하반 카페지기로부터 더 많은 이야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외국인 별장이 노고단에 있다 했는데 노고단가는 왕시루봉 능선에 있던 거로 기억(81~83)
네 맞습니다. 왕시루봉이라고 하는 글도 많고요.
알기 쉽게 노고단으로 하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아모튼 1960년 지도는 지리산 지도사에 있어서,
적어도^^ 인터넷에 관한 한 발굴의 이름에 걸맞지 않나 생각합니다.~
@모자이크-등산박물관 아하.... 60년 지도...
설악산엔 삼연이 있어기에... 그 분들의 유산기가 현대 등반보고서와 같다는 생각인데..
지리산은 ...높아서일까요 넓어서일까요...
@여름날 ^^ 조선은 제 관심 바깥이라...~~~ 형님에게 바톤을 넘깁니다.
노고단 지역에 피서지라고 표기된 부분은 원래 있던 외국인 휴양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노고단 대피소 근처에 폐건물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왕시루봉에 있는 선교사 별장은 6.25사변과 빨치산 토벌작전으로 노고단 휴양지가 파괴된 후 왕시루봉에 새로 마련한 휴양시설입니다. 아직도 건물들이 다수 남아있고 수영장과 테니스장으로 사용했다던 공터가 확인됩니다.
하로동선님...말씀 감사드립니다....~~~
구례군에서 내는 '구례소식'최근호를 지난 주말 '항일운동, 결핵퇴치에 온 삶 바친 린튼 가문(요즘 티비에 가끔씩 나오는 존 린튼(한국명 인요한) 교수의 선대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 글에 노고단과 왕시루봉의 휴양지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서,
어이쿠나 제가 한참 혼동을 하고 있구나 생각하던 터였습니다.
이렇게 정확히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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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사로 기사 일부를 보탭니다.
'왕시루봉의 건물들은 세계 각국의 선교사들이 자국의 건축양식으로 지어....2013년 1월 내셔널 트러스터 시민단체가 주최한 '이곳만은 지키자'공모전에 참가해 '소중한 문화유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기독교 일부에서 문화유적으로 지정해 줄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왕시루봉 유적의 경우 석조나 콘크리트도 아니고 목조와 콘셑 건물이라 훼손상태가 심하고 관리도 부실합니다. 매년 한두차례 그쪽으로 산행을 하는데 몇 년 전 그곳에서 인요한 박사님을 우연히 만나 앞으로 관리 계획을 물었더니 솔직히 뚜렷한 방법이 없다고 대답하시더군요. 그나저나 1960년대 지리산 지도를 꼼꼼히 살펴보니 요즘 디지털 지도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거리와 방위가 정확해서 놀랍습니다
일본의 국보급 목조사찰 복원을 수십년걸쳐 완벽하게 '복원'을 한다는 기사를 읽곤 합니다.
우리나라(와 기독교계)도 뜻만 있으면, 조금씩 허물어져갈 목조와 콘셑 건물 '관리'나 '이곳만은 지키자' 류가 아니라, 원래 모양대로 '복원'을 할 수 없지 않을 수도 있을텐데요.
(건물 복원에 돈을 스폰하는 나라의 건물이라도^^ - 농담입니다..)
지리산에도 사찰 뿐 아니라 허술할지라도 근대를 담은 건물들이 좀 더 많았으면....
저는 부끄럽게도 고향이 그쪽이지만 지리산을 잘 알지는 못합니다.(노고단과 왕시루봉 관련 글을 보시면 아시겠죠~) 60년대 지리산 지도들이 하로동선님께 더 많은 이야기를 싹트게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은 '구례소식(통권 172호, 2018 여름호)'에 있는 지리사 노고단 휴양소 모습입니다...
건물이 어떻게 지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자료가 아닐까 싶습니다.
현재 왕시루봉에 남아있는 선교사 휴양지 모습입니다.
사진 감사드립니다...
제가 상상하는 이국적이거나 로맨틱한 그런 곳이 아니군요....
당장 드는 선입견이긴 하지만, - 이런 상태로는 보전이 안되겠는데요...
할려면, 복원을 해야지 않을까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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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저 휴양소 지금도 운영되는지요? 아니면 폐건물로 근근히 생명만 유지하고 있는건지요?
궁금해서 여쭈어 봅니다....
@모자이크-등산박물관 저곳이 예전에는 기독교 단체에서 여름철 수련회 장소로도 이용을 했던 모양인데 건물도 워낙 낡았고 또 국립공원에서 비법정탐방지역으로 막아 버리는 바람에 이젠 일반인들의 접근이 금지된 곳입니다. 그리고 건물들도 거의 버려지다시피 한 상태입니다. 그러니 많은 건물들이 허물어졌고 남은 것들도 그냥 시간 흐름따라 자연으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하로동선 말씀 그대로 '시간의 흐름따라 자연으로 돌아가는 중입니다.'인 것 같습니다.
사실 그러고보면, 건물만 보존해서 될 일이 아니고, 그곳을 채울 사진은 많겠지만,
당시 물품들은 충분히 있을지 그게 좀 의구심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