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십 대 중반에 한 아이의 할머니가 되었다. 그 일은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 ‘할머니’라는 새로운 이름이 생기면서 주위를 돌아보는 시간이 늘었다. 나와 같은 사람이 참 많았다. (...) 노년 육아로 고군분투하는 동시대 사람들도 꽤 있었다. (...) 지금까지 헛되이 살아왔다는 자괴감, 헌신하며 온 정성을 다해 키운 자식들을 떠난 보낸 후에 찾아오는 빈둥지증후군, 은퇴 후 맥없이 사는 남편을 보듬어야 하는 부담감, 온몸이 쑤시며 극렬하게 찾아오는 통증, 게다가 노년 육아까지 떠맡게 되었을 때 오는 책임감, 문득 찾아온 죽음에 대한 공포감 등 무거운 화두에 짓눌려 찬란한 시기를 놓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웠다. --- p.7
숙제를 하다 궁금한 것을 수시로 묻는 손주 앞에서 할머니는 절망할 때가 많았다. 손주가 묻는 말의 뜻조차 모를 때가 많아 자괴감마저 들었다. (...) 할머니는 손주가 학교에 간 사이,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해 공부를 시작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온 자신의 무지를 채우기 위해서였다. 할머니는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방통대 국문과 수업까지 듣게 됐고 손주와의 갈등을 해소해나가는 중이라고 했다. 일흔이 훨씬 넘었지만 손주가 중학교에 들어갈 것에 대비해 논술학원에 접수했다는 내용으로 글을 맺었다. --- p.57
“말도 마세요. 큰딸은 내 얼굴만 보면, 전세금 올려줘야 한다며 한숨부터 쉬지를 않나, 애들 학원비가 없어서 속상하다며 죽는소리부터 합디다. 작은딸은 식당에 손님이 없어서 가겟세도 못 낸다고… 우윳값이며 기저귓값 벌기도 힘들다며 애만 보고 그냥 갈 때가 있어요. 어느 때는 내가 알아
서 아이한테 필요한 거 사다가 먹이고 입히는데, 애 봐주는 값이라도 달라고 하면 아마 까무러칠 거예요.” --- pp.74-75
내가 준비되지 못한 엄마였을 때, 큰아이에게 실수를 많이 했다. 혹독한 시집살이를 하면서 받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 화풀이를 많이 했다. 그때의 내 모습은 엄마가 아닌 환자 같았다. 그래서인지 큰아이는 우등생으로 무엇이든 잘하면서도 늘 의기소침했다. 소극적이고 자신감이 없어져가는 것을 보며,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엄마가 믿고 지지해주지 않는데 아이가 전쟁터 같은 세상에 나가 당당할 수 있을까? --- p.145
나를 할머니라 불러주는 어여쁜 아민이를 만나며, 내 삶은 많이 변했다. 그전까지는 개인 ‘박경희’에 초점을 맞추어 산 삶이라면, 지금은 ‘가족’ 그리고 ‘오아민의 할머니’로 삶의 초점이 바뀌었다. (...) 우선, 욕심이나 욕망으로 들끓던 마음을 많이 내려놓게 되었다. 무명에서 유명을 향해가는 길목에 서 있던 나는 늘 조급했다. 남보다 잘 쓰고 싶고 주목받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광야 같은 세상에서 총을 든 군인처럼 살았다. 시도 때도 없이 가슴에 바람이 일렁였다. 감정의 너울 속에 휘청이는 나를 구해준 것은 오아민이었다. 아민이의 눈망울과 마주치는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내 안의 파도가 잠잠해지는 듯했다.
--- p.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