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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산악회 오지팀의 A 코스인 '농평마을 → 당재 → 평도마을 능선 삼거리 → 황장산 → 중기 능선 삼거리 → 전망대 → 새끼미재 → 촛대봉 → 촛대바위 → 삼신마을 갈림길 → 삼신마을 → 쌍계사 십리벚꽃길 → 하천 주차장'의 15km 구간을 6시간 30분 동안 탐험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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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산[黃獐山]
높이: 942m
위치: 경남 하동군 화개면
지리산 황장산은 불무장등 능선으로 불무장등, 통꼭봉, 황장산, 촛대봉을 일으켜 세우고 섬진강에 그 꼬리를 내린다. 황장산은 지리산 3대 봉우리 중의 하나인 반야봉에서 삼도봉을 거쳐 남쪽으로 뻗어 내린 불무장등 능선에 있다.
“황장산의 한문 표기가 잘못되어, 지금은 ‘누른 노루’라는 ‘황장산(黃獐山)’으로 쓰고 있으나 원래의 지명은 정상(고개)까지 멀고도 먼 산이라는 뜻인 ‘항장산(項長山)’이었다.”
봉(峯)이 아닌 불무장등(不無長嶝·1,446m)이란 한자 이름 그대로 ‘없지 아니한 긴 산등성이’처럼 그저 밋밋한 고갯마루 같은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올바른 표기는 불교에서 최고의 지혜를 뜻하는 반야(般若) 또는 불모(佛母)란 용어를 사용하는 데서 유래한 것. 불모장등은 반야봉에서 시작한 반야장등(般若長嶝)에 있는 가장 높은 산이다. 반야라는 중복된 글자를 피하고 같은 의미인 불모장등(佛母長嶝)이란 표기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불모’는 ‘불무’로도 읽어 현재의 ‘불무장등’이란 표기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래서 불무장등 능선도 반야봉에서 시작돼 남쪽으로 화개면 탑리까지 이어진 능선을 이른다”라는 것이다.
황장산도 지리산 일부분이지만 지리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의 통제를 받지 않는 지역이라 산불방지 기간이면 부분적으로 출입이 제한되는 지리산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어 좋다.
황장산에서 2.6km 거리에 남근석 또는 올빼미 바위라고도 하는 촛대봉이 있다. ‘촛대봉(721.5m)에서, 화개 5.0km, 황장산 2.6km, 당재 3.4km이다.
봉래봉 또는 삼각봉이라 불렸다는 이곳은 숲에 가려 조망은 좋지 않다. 다행히 정상석 뒤편이 트여 삼신봉을 중심으로 지리산 남부 능선과 낙남정맥의 산줄기를 읽을 수 있다. 오른편에 시루봉 원강재 형제봉도 보인다. 정상석 뒤로는 삼신리로 내려서는 하산길이다. 촛대봉에서 황장산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린다. - 한국의 산하
3월 30일 목요일에는 한 안내산악회의 오지 전문 인솔 대장이 진행하는, 지리산 끝자락, 황장산에 오르기로 했다. 황장산은 2020년 9월 친구 셋과 지리산 삼도봉에서 화개장터까지 달리는 불무장등 산행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삼도봉에서 통꼭봉에 이르는 국립공원 구역에서 조리대 지옥을 통과하느라, 체력 소모가 심해, 시간은 여유가 있었으나, 능평마을에서 산행을 중단했다[산행기]. 해서 내게는 당시 불무장등 산행이 미완으로 남아 있었는데, 2023년 1월 안내산악회 산행 계획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황장산행을 발견하고, 1월 28일 바로 신청했다.
이번 산행은 벚꽃 철에 맞게 A, B, C 세 코스 모두 도로를 따라, 하동 쌍계사 십리벚꽃길을 걷도록 짜여 있어, 상춘이 목적인 관광객도 많이 신청했다. 덕분에 오지 산행으로는 드물게 28인승 버스 두 대의 정원을 채웠다. 그중 황장산이 포함된 A 코스를 달릴 산꾼은 안면이 있는, 1호차 10여 명에 불과할 거로 예상된다. 당연히 벚꽃에는 관심 없는 나는 A 코스도 마음에 안 들어, 벚꽃이 만개한 10리 도로를 버리고, 능선을 따라 화개장터로 내려갈 생각이다. 국제신문에서 만든 지도를 보면, 내가 목적으로 하는 불무장등에서 이어지는 능선이 도로를 따라 내려오는 코스보다 짧아 보인다. 하지만, 기복의 정도에 따라, 소요 시간이 결정되는 게 산행이라, 능평마을에서 촛대봉 갈림길까지의 소요 시간을 보고, 진행 방향을 결정할 예정이다. 와중에 하산주를 위한 시간도 확보해야 하고!
다만, 산림청 '2023년 봄철 등산로 통제구간' 자료에 의하면, 황장산행의 주 등산로인 당재에서 황장산, 촛대봉을 거쳐 화개장터에 이르는 능선이 통제구간에 걸쳐 있어, 입산 금지 대상일 수도 있다. 그런데, 통제구간을 보면, 위의 두 번째 이미지와 같이 '산불방지 통제구간(2월1일~5월15일)'이라 명기되어 있는데, 그게 없는 거로 봐선, 통제 대상이 아닐 확률이 높아 보이다. 하지만, 갔다가, 벚꽃만 보고 돌아오는 사태를 미리 방지하기 위해 인솔 대장에게 이와 관련된 문의를 문자로 보냈는데, 답이 없다. 고로 닥쳐봐야 아는 상황이다. 와중에 산림청 자료로 당재에서 화개장터에 이르는 구간의 거리와 소요 시간을 확인한 건 대단한 소득이다. 11.2km, 4시간 32분이다. 정확하다면 하산주에 두 시간을 할당할 수 있다.
물론 교통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당일 산악회 시간 계획을 보면, 11시 10분경 농평마을에 도착해 산행을 시작하는 걸로 되어 있다. 그럼 15시 40분경 산행을 마칠 수 있다는 얘기라, 양재역표 김밥을 사 가져 가, 산행 중 허기를 달래고, 본격적인 점심은 날머리에서 하산주를 반주로 먹을 예정이다. 그 외 준비는 다른 산행과 같다. 당일 날씨는 토요일 시산제를 지냈던 광교산과 비슷할 거라는 예보다. 차이가 있다면, 쾌청한 날씨라, 조망이 좋을 거라는 거. 그리고 요즘 요일을 따지지 않는 분위기라 어떨지 닥쳐봐야 알겠지만, 그래도 평일이라, 상춘객이 휴일보다는 많지 않아 날머리가 번잡하지 않을 거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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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에 기상해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은 후 준비해 둔 배낭을 둘러메고 5시 55분경 집을 나서 6시경 도착한 마을버스를 타고 불광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불광역 마을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시각이 6시 5분경이라, 7분 열차를 타려면 뛰어야 했다. 그나마, 지하철 구내로 들어가 열차 운행 정보에 연신내역 출발 전이라, 가쁜 숨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개찰구를 통과해 승차장으로 내려갔다. 좀 있다가 도착한 열차를 탔는데, 거의 만원이었으나, 첫 번째 환승역인 종로3가역에서 앉을 수 있었다. 그리고 6시 46분경 양재역에 도착해 개찰구를 통과하며, 앞을 보니, 청과물 가게 셔터가 아직 내려와 있다. 김밥을 사야 하는데, 낭패다. 그럼, 점심은 비상식으로 때워야 하나, 걱정하며, 그 자리를 떠나려는 데 옆에서 언뜻 '김밥'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액세서리 가게에서 팔고 있다. 경위야 모르겠지만, 청과물 가게의 김밥과 같은 '애란네 김밥'이고, 가격도 같다. 해서 김밥 본연의 맛에 충실한 야채 김밥 한 줄 사, 배낭에 넣었다. 다행히 점심을 비상식으로 때우는 일은 면했다.
역 구내에서 등산객의 면면을 대충 스캔하고, 12번 출구로 나가 국립외교원 앞으로 갔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흰색 버스를 선두로 사당에서 출발한 산악회 차량이 속속 도착한다. 그런데, 앞장선 버스를 보는 순간 내가 타야 할 차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 가까이 접근해 앞 유리창을 보니, 맞다. LED에 '1호 황장산'이 빛나고 있다. 해서 서둘러, 배낭을 짐칸에 넣고, 버스에 탔다. 자리에 앉은 후, 등산화를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고, 충전기를 콘센트에 꽂고, 핸드폰에 연결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독서와 졸기를 반복하면서, 가끔 창밖으로 어디까지 왔나 확인했다. 와중에 깊게 잠이 들어 깨어보니, 아직도 신나게 달리고 있어, 지도 앱으로 위치를 확인해 보니, 천안논산 고속도로다.
정체로 악명이 높은 고속도로는 피할 거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나마 평일이라 그런지, 휴일과 같은 정체는 없다. 그럼, 이 고속도로는 휴일 행락용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조금 지나자, 버스가 휴게소로 들어간다. 휴게소에 볼일이 있는 건 아니나, 정체가 궁금하고 스트레칭할 필요도 있어, 버스에 내려서 보니, '탄천'이다. 예의상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버스가 떠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아, 휴게소 주변을 얼쩡거리다, 의외의 걸 발견했다. '공주 장선리 유적'이란다. 해서 안내문을 읽어보니, 청동기 시대와 조선시대 유적이다. 당연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선사시대 움막집 모형을 지나, 유적을 보기 위해, '벌써 산행이냐?'고 투덜거리며 갑판 계단으로 올라갔다. 막상 유적에 도착해 보니, 볼 게 없어, 실망만 가득 안고 돌아내려 오는데, 오히려 아래로 보이는 경치가 좋아 그걸 사진으로 남겼다.
버스로 돌아와, 인솔 대장의 자리를 지나며, 그 위에 있는 지도를 기록으로 남겼다. 받아봐야, 휴지 조각에 불과해, 요즘 대장들은 거의 준비하지 않는데, 이 대장은 그래도 필요한 몇 사람을 위해 소량을 인쇄해 온다. 그런데 그 지도라는 것도, 산악회 산행 게시판에 있는 내용이다. 어쨌든 버스가 출발하자, 대장이 충격적인 얘기로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애초 A 코스는 농평마을에서 시작하기로 했는데, 도로의 경사가 심해, 농평까지 올라갈 수 없어, 1.3km 아래의 동치마을까지만 간다는 거다. 고로 동치에서 농평까지는 걸어 올라가야 한다. 2020년 9월 불무장등 산행 때 내려왔던 길이다[산행기]! 그리고 이 산악회에서만 5대의 버스가 출발할 정도로, 여기저기서 않은 차가 몰려와 버스 대기장소는 화개장터 부근의 주차장이 아니라, 면사무소 주차장으로 변경했다며, 죄송하다고 반복해서, 사과했다. 그에 따라 애초 책정한 소요 시간에 20분을 추가해 마감은 18시 즉 오후 6시로 한다고 공표했다. 물론 2호차도 비슷한 내용이 전달됐을 거다.
급경사의 도로를 올라갈 일이 걱정이나, 버스가 못 올라간다니, 어쩔 수 없다.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던 버스가 구례로 빠진 후 섬진강 변을 따라, 하동 방향으로 달리다가, 피아골로 접어드는 순간, 슬리퍼를 벗고 등산화로 갈아 신었다. 그리고 아예 바람막이도 벗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배낭을 넣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 그런데, 피아골 상류인 직전마을 방향으로 달리던 차가 농평마을 방향으로 우회전해 급경사를 올라갈 때 왜, 버스가 못 올라간다고 했는지 이해가 됐다. 급경사에 비좁은 도로는 버스가 다닐 길이 아니다. 오죽하면 여기서 내려서 걸어 올라갈까 고민했을 정도다. 그리고 과연 버스를 돌릴 공간이 있을지도 궁금했다. 11시 1분경 버스가 당치마을에 도착해, 내려서 보니, 휴게소에서 우리보다 먼저 출발한 2호차가 차를 돌리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 보인다. 와중에 버스가 두 대라 돌리는 게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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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타고 당치마을까지 올라오며 창밖으로 정자를 보자, 2020년 9월 농평마을에서 정자까지 꽤 먼 거리를 걸어 내려왔던 게 기억났다. 그걸 거꾸로 올라갈 생각을 하니, 암담해진다. 인솔 대장은 이 길 또한 지리산 둘레길이니, 둘레길을 걷는다고 생각하라고 했지만, 그건 그때 얘기고. 어쨌든 버스에서 내려 늘 해왔듯이, 당치마을 입구의 고도를 확인했다. 477m! 농평마을이 700m에 가까우니, 농평과 당치의 표고차만 230m가량이다! 그리고 당치마을에 있는 이정표에 의하면, 농평마을까지는 1.3km, 황장산은 6.0km다. 현재 시각 11시 4분! 애초 계획인 농평마을이 아니라, 당치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시각이다. 마감은 18시 정각으로 주어진 시간은 6시간 56분이다. 목표 마감 시각은 4시다! 물론 인솔 대장은 모두가 일찍 도착하면, 일찍 출발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예상대로 급경사의 아스팔트는 쉽지 않다. 그나마 왼쪽으로 보이는 황장산 능선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그 힘든 걸 조금 잊게 해줬다. 그렇게 올라가, 11시 21분경 갈림길에 도착했다. 대장의 말에 의하면 왼쪽이 농평마을로 가는 길이고, 직진은 당재로 가는 지름길이다. 해서 뒤에서 따라오는 일행을 위해 길 표지를 바닥에 깔고, 지름길로 갔다. 가며 보니, 이 또한 임도로 아스팔트를 내기 전 사용했던 거다. 지금은 곳곳에 나무를 가로질러 놓아 통행을 막고 있다. 물론 그 방해물들을 우회해 과거 임도를 따라 위로 가,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 농평마을 갈림길 등산로가 나타났다. 오른쪽으로 가면 화개로 황장산 능선이란 얘기다. 당연히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등산로를 따라 30여 미터를 가자 '당재' 명패가 붙어 있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꿈에서도 보고 싶어 하던 당재다. 여기서 황장산까지 4.2km, 농평마을 0.5km!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농평에서 당재까지 500m가 끊어진 거!
당재에 있는 지도로 이번 산행을 다시 검토하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그 시작이란 게 급경사를 올라가는 거다. 울창한 숲이라 보이는 게 없는 와중에 미세먼지까지 끼어,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보면 모든 게 한 겹의 뿌연 장막에 가린 모습이다. 그래도 급경사를 올라가다가 한숨 돌리기 위해 쉴 때는 뒤로 돌면 보이는 모습을 감상하고 기록으로도 남겼다. 힘들게 올라, 11시 41분경 무명의 봉우리에 도착하니, 등산로는 갑자기 거의 평지 수준으로 바뀐다. 그리고 곳곳에 만개한 진달래가 반겨준다. 그걸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을 맛을 봤는데, 역시 어디나 진달래 맛은 같다! 높낮이가 심하지 않은 기복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황장산 직전까지 이어져, 오지 산행이라기보다는 트레킹에 가까웠다. 아쉬운 게 있다면, 숲에 가려 보이는 게 없다는 거.
11시 30분이 지났으니, 점심시간이다. 그리고 능선이 평탄해 김밥을 먹으면서 가기 좋은 등산로다. 해서 배낭에서 김밥을 꺼내 먹으며, 황장산을 향해 갔다. 김밥을 다 먹고, 얼려온 차를 마시고, 그 빈자리를 다시 차로 채우는 작업을 하며 전진해, 12시 24분에 '평도마을 능선 삼거리'를 통과했다. 황장산까지 남은 거리는 1.3km! 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황장산 방향으로 가는데 왼쪽으로 의외 것이 보인다. 철조망이다. 그럼, 철조망을 친 이유를 매다는데, 없다. 정확히는 낡아서 다 찢어졌다. 오지 산에서 늘 만나는 약초 재배지 출입 금지 아니었을까? 그렇게 보이는 게 없어 앞만 보고 가는데, 12시 40분경 울창한 숲 사이로 봉우리가 보인다. 거리로나, 시간으로나 황장산이다.
정상이 멀지 않았음을 기뻐하며 가다가, 의외의 복병을 만났다. 바위에 매단 밧줄이다. 당연히 밧줄은 무시하고 바위를 내려와, 다시 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향해 가자, 등산 앱이 황장산 반경 50m 내라고 음성으로 알려준다. 해서 동영상을 찍으며 황장산을 향해 갔다. 그런데 정상까지 얼마나 평탄하고 등산로가 좋으면 1분이 걸리지 않았다. 다른 산의 50m 거리에 2~3분과는 많이 비교된다. 12시 45분 영상을 찍으며 황장산 장성에 오르자, 서너 명의 등산객이 인증을 찍고 막, 정상을 떠나고, 정상의 한쪽 구석에서는 여성 산꾼이 점심을 먹고 있다. 고로 인증을 부탁할 사람이 없어, 삼각대를 꺼내려고 배낭을 벗어 내려놓았다. 그리고 삼각대를 꺼내는데, 뒤에서 따라오던 등산객이 그걸 보고, 상부상조하자고 해, 서로의 인증을 찍어줬다.
일단 인증을 남긴 후 정상 주위를 둘러보니, 지리산 주 능선 방향으로 안내판이 보여 가까이 다가갔다. '황장산에서 바라본 지리산'이다. 대부분 산이 이런 형태의 안내문에는 사진을 사용하는데, 그림이다. 그림이든 사진이든 미세먼지로 뿌옇게 보여, 뭐가 뭔지 구분이 잘 안된다는 거! 그나마 보이는 걸 기록으로 남기고, 12시 48분경 황장산 정상을 떠나려는데, 점심을 먹던 산꾼이 일어나, 인증을 부탁해 찍어줬다. 그리고 다음 봉우리인 촛대봉을 향하는데, 등산로 좌우로 앞서갔던 산꾼이 두셋이 모여 앉아 점심을 먹고 있다. 그들을 뒤로하고, 10여 분을 가자, 황장산과 같이 울창한 숲사이로 봉우리가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촛대봉이 아닐까 생각하며, 진달래가 만개한 암릉을 따라갔다. 그런데 아니다. 아직 촛대봉까지는 멀었다. 산림청 지도에서 황장산에서 촛대봉까지 28분으로 봤는데, 아니었다. 도착한 봉우리도 꽤 높아 보였는데, 이정표만 달랑 있을 뿐이다. '작은재'까지 4.2km! 촛대봉은?
역시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는 길이라, 그저 앞만 보고 가, 1시 12분에 '중기 능선 삼거리'에 도착했다. '작은재'까지 3.5km, 촛대봉은? 그런데, 중기 능선 삼거리를 지나자, 기존의 펑퍼짐하던 등산로가 칼등으로 바뀌어, 그나마 숲 사이로 오른쪽은 피아골과 그 주변 마을이, 왼쪽은 목통골과 마을이 간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오른쪽의 피아골 건너편은 왕시루봉 능선인데, 왼쪽의 목통골 건너편의 정체가 궁금했다. 처음에는 지리산 남부 능선이라 생각했는데, 지리산 남부 능선은 삼신봉에서 쌍계사 방향으로 방향을 트는데, 저 능선은 쌍계사 아래에 있다. 등산로를 따라 촛대봉으로 가며 능선의 정체를 추측하다가, 아래로 보이는 마을을 보자, 번뜩 떠오르는 게 있다. 형제봉! 형의 경상도 사투리인 '성'을 聖으로 표기한 성제봉, 꼭 그래야만 했냐? 하동 사람들아[산행기]! 맞다. '상불재'에서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모노레일이 설치되어 있고, 케이블카도 설치한다고 했나, 했다고 했나? 어쨌든 저 능선은 황장산 능선이 불무장등 능선의 연장이듯, 지리산 남부 능선의 연장이다.
궁금증을 해소해 기쁜 마음으로 칼등 능선을 따라가자, 아직 촛대봉은 감감한데, 능선은 아래로 향한다. 내려간 만큼 올라간다는 등산의 원칙이 구현되는 순간이다. 해서 조금만 내려가기를 빌며, 암릉을 따라 내려가자, 저 아래로 전망대가 보인다. 당시에는 '웬? 전망대?' 했는데, 이후 산악회 게시판의 코스 설명을 보니, 촛대봉 전에 '전망대'라고 있다. 어쨌든 전망대로 큰 기대를 걸고 갔는데, 미세먼지로 보이는 게 없다. 그나마 섬진강 넘어 광양 백운산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일 뿐이다. 그리고 가야 할 능선 위의 촛대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와 왼쪽 아래로 화개! 그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다시 촛대봉을 향해 아래로 내려가 1시 24분에 고개에 도착했다. 신 이정표 옆의 구 이정표에 의하면 '새끼미재'다. 그런데 이정표에 방향만 있을 뿐 거리에 관한 정보가 전혀 없다.
어쨌든 시간상, 거리상 올라가야 하는 봉우리가 촛대봉이라 믿고, 기쁜 마음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새끼미재에서 10분 정도 올라가자, 등산 앱이 촛대봉 반경 50m 내라고 알려준다. 그 메시지를 확인한 후 동영상을 찍으며 정상으로 향해 역시 1분 전에 도착했다. 황장산 능선이 기복은 많으나, 의외로 표고차가 얼마 나지 않아 산행이 쉽다. 정상에는 황장산에서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여성 산꾼이 인증을 위해 날 기다리고 있다. 덕분에 나도 힘들이지 않고, 인증을 남겼다. 그리고 산꾼이 떠난 후 '쌍계사 십리벚꽃길'로 내려가는 등산로를 찾았다. 없다. 산악회 게시판에 있는 지도와 코스 소개에는, 촛대봉 정상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나마 구례에서 설치해 거리에 관한 정보가 있는 이정표에도 없다. 어차피 나야 능선을 타고 섬진강까지 달려갈 거라, 내려가는 길이야 있든 없든 상관없으나, 벚꽃길이 목표인 산꾼과 등산객에게는 낭패다.
이번 산행은 A, B, C 세 코스로, A는 당재에서 촛대봉에 도착한 다음, 쌍계사 십리벚꽃길로 내려가는 산행이고, B는 화개장터에서 시작해 촛대봉까지 올라와 촛대봉에서 벚꽃길로 내려가는 산행이다. C는 아예 산행은 없고, 쌍계사까지 벚꽃길을 왕복하는 꽃놀이다. 그럼, 촛대봉부터는 반대쪽에서 올라오는 일행을 만나야 한다. 버스에서 인솔 대장이 산꾼과 등산객, 상춘객을 구분하기 위해, B나 C 코스로 갈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을 때, 8명에 불과해 놀랐다. 대장도 놀란 듯했다. 애초 1호차는 산이 목적인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고 2호차는 다를 거로 생각했는데, 마찬가지였다. 당치마을에서 농평마을까지 올라가는 중에 대장이 했던 얘기가, A 코스가 20명 선이 될 거라 예상해 버스 한 대에 그들을 태우고 농평마을로 가고, 나머지 승객은 다른 한 차로 화개로 보내려고 했는데, A 코스가 40명이 넘어 어쩔 수 없이 두 차 다 농평마을로 향했다고 했다. 결과적인 얘기나, 촛대봉에서 화개장터에 도착할 때까지 반대편에서 오는 일행을 한 명도 못 만났으니, B 코스는 아예 없었나?
쌍계사 십리벚꽃길로 내려가는 길이 있나, 왼쪽의 목통골 방향을 주시하며, 능선을 따라, 섬진강을 향해 가는데, 길목에 우뚝 선 바위가 갑자기 나타났다. '갑자기'라는 부사를 사용한 건 하늘에서 툭 떨어진 듯 혼자 서 있어서다. 그리고 그 앞에는 촛대봉에서 서로의 인증을 찍어줬던, 여성 산꾼이 셀카를 찍고 있다가, 나를 보더니, 이 바위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고 한마디 한다. 이 바위의 정체를 모르니, 당연히 "이게 뭡니까?"하고 물었다. 촛대봉의 이름이 있게 한 "촛대바위!"란다. 그 말을 듣자 산악회의 코스 소개에서 본 기억이 났다. 그리고 당연히 바위를 배경으로 인증을 부탁해, 요구대로 다양한 자세와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줬다. 그리고 내게도 찍어주겠다는 걸 거절했다. 그렇게 사진을 다 찍은 후 '촛대'를 닮지 않았는데, 촛대라 부르는 게 이상하다는 말을 해, 원래 한국의 모든 촛대바위는 촛대의 초성이 애초 'ㅊ'이 아니라 'ㅈ'이 변형된 거라는 얘기를 해주려다 말았다.
인증을 남긴 후 역시 목통골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나 살피며, 산에서 날아다니는 그 산꾼을 놓치지 않게 열심히 따라갔다. 나야 능선을 따라 계속 섬진강까지 가지만, 그는 갈림길에서 벚꽃길 방향으로 좌회전할 예정인데, 도대체 갈림길이 어디에 있나 궁금해서다. 그렇게 능선을 따라가는데, 저 앞 돌 위에 외롭게 혼자 앉아 쉬고 있는 등산객이 있다. 그를 지나쳐 가려는데, 왼쪽으로 산벚꽃이 보여 그걸 초점이 안 맞는 사진 몇 장 찍었다. 이후 그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 산벚나무 아래로 희미하게 등산로가 보인다. 드디어 발견했다. 속으로 유레카를 외치고 주위를 유심히 살펴보니, 그 등산객이 앉아 있는 곳이 무덤을 둘러싼 둘이다. 그리고 쉬고 있는 게 아니라,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 거 같다.
날아다니는 산꾼은 그 갈림길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그걸 지나쳐 계속 가고 있어, 역시 서둘러 그를 따라갔다. 그리고 그 갈림길에서 3분가량 가자, 저 앞에 이정표가 서 있고, 그걸 산꾼이 유심히 살펴보더니, 좌회전한다. 벚꽃길로 내려가는 정규 등산로다. 그런데, 쌍계사 기준으로 섬진강 쪽으로 너무 내려온 위치라, 벚꽃길을 즐기기에는 짧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산악회 A 코스는 여기서 하산하는 계획으로 그가 코스를 완벽하게 숙지했다는 얘기다. 그가 왼쪽으로 사라지고 난 후 그보다 늦은 내가 갈림길에 도착해 이정표를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그와는 반대로 우회전해 화개장터로 향했다. 이론적으로야 직진해야 하나, 등산로가 언덕을 우회해 갈림길로 올라온 거라, 다시 능선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우회전해야 한다.
모든 궁금증을 해소해, 아주 기분 좋게, 섬진강을 향해 가는데, 갈림길이다. 이정표 따위는 없다. 해서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등산객이 나타나더니, 어느 쪽으로 가도 둘이 만난다고 한다. 그런데, 무엇에 홀렸는지, 산악회 리본이 있는 길을 버리고, 얇은 밧줄이 설치된 급경사 길을 택했다. 문제는 그 길은 경사가 생각 이상이고, 상태도 안 좋다. 이대로 가면 능선이 아니라, 벚꽃길로 하산하는 분위기라, 갈림길로 돌아갈까 하다가 그 등산객을 믿어보기로 하고 계속 내려가는데, 갑자기 산신이 머리에 쓰고 있는 두건을 요구한다. 황장산 신이 요구하는 거라, 주고 가는 게 당연하지만, 지금까지 다른 산신은 모르는 사이에 가져갔는데, 이건 대놓고 요구하는 거라, 무시하고 다시 둘러쓰고 가던 길을 갔다. 그리고 2시 25분에 제대로 된 등산로와 합류했다.
아주 당연히 오르막이 아닌 내리막인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가고 있는데, 무언가 이상하다. 이거야말로 벚꽃길로 바로 내려가는 길 분위기다. 해서 방향을 틀어 오르막으로 올라갔다. 그 느낌이 맞았다. 방향을 돌려 100여 미터를 올라가자, 이번 산행에서 익숙한 등산로로 합류한다. 역시 산악회 리본을 믿었어야 했다. 괜히, 고집부리다, 거리만 더 멀어졌고, 그만큼 시간을 낭비했다. 재빨리 알아차리고 되돌아서서 많은 거리와 시간은 아니지만. 다시 정규 등산로로 300여 미터를 가자, 서너 개의 이정표가 서 있는 사거리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이정표를 보고 있던 두 여성 등산객이 막 떠나는 걸 보며, 사거리에 도착해 이정표를 살폈다.
지리산 둘레길 '작은재'다! 좌·우가 둘레길이고, 두 등산객이 간 방향인 직진이 섬진강으로 간다. 해서 그들의 뒤를 따라가며, 그들의 정체를 추측해봤다. 일단 우리 일행인지, 배낭 주위를 살펴봤다. 명패는 없으나, 분위기로 봐서 일행은 아니다. 그런데, 말투를 보면, 이 주변 사람 같은데, 길을 모르는 거로 봐서 초행이다. 오리무중이다. 더 추측해봐야 답이 나올 것도 아니고, 생각을 중단하고, 그들을 추월 앞서갔다. 그리고 100여 미터를 가자, 등산로가 좌회전해 능선에서 벗어난다. 무언가 이상해 능선을 따라 길이 있나, 살펴보니, 희미한 인적은 있으나, 명확히 등산로라고 말할 수 없다. 해서 정규 등산로를 따라, 왼쪽으로 50여 미터를 내려가자, 저 아래로 임도가 보인다. 깜짝 놀라,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했는데, 길이 명확하지 않아, 일단 능선으로 다시 올라갔다.
길이 이상하다며 다시 돌아가는 날 보더니, 위에서 길을 찾으면 불러달라고 해, '그러마' 했다. 그리고 위에 도착해 인적이 있는 능선을 따라가는데, 왼쪽 아래에서 길이 맞는지 묻는 고함이 들린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잠깐 고민 후, 아니라고 소리쳤다. 이번 산행에서 내가 제일 잘한 일이다. 만약 맞았다고 했다면, 인생 최고의 고역을 치를뻔했다. 말인즉 인적은 있으나, 길이 아니다. 낙엽 쌓인 급경사에 미끄러지고, 가시덩굴을 통과하느라,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며, 능선을 따라 내려갔다. 해서 아무래도 정규 등산로로 가야 할 거 같아,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했다. 갈수록 정규 등산로에서 벗어나고 있다. 해서 가능하면 정규 등산로가 있는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아래로 내려갔다.
작은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가, 능선으로 올라가기도 하고, 다시 계곡으로 내려가며 보니, 밑에 섬진강이 보인다. 문제는 강으로 가는 길이 없다는 거. 어쨌든 정규 등산로 방향인 왼쪽 능선에 붙어, 아래로 내려가니, 임도가 보인다. 그걸 보자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임도에 내려서 아주 당연히 화개장터 방향인 왼쪽으로 갔다. 아래로 보이는 섬진강과 강 건너의 백운산 줄기를 감상하며 유유자적 임도를 따라 400여 미터를 가자, 길이 끝났다. 이런 낭패가, 그나마 아래로 정체로 꼼짝 못 하는 도로라기보다는 주차장 같은 길이 보인다는 것에 안도하며, 다시 가시덩굴을 헤치고, 내려가 3시 34분에 도롯가의 철책에 도착했다. 작은재를 떠날 때만 해도, 날머리인 화개장터에, 마감 3시간 전인, 3시가 조금 안 된 시각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하산주도 한두 시간이지 나머지 시간은 뭘 하나 고민했는데, 화개장터도 아니고, 그 길목 도로에 3시 34분에 도착했다. 결과적으로 길을 만들며 내려온 게 멍때리고 버스가 떠나기만 기다리고 있는 거보다 잘한 선택이 됐다.
도로가 보이기는 하나, 철책을 넘어야 한다. 차량이 빠른 속도로 오가는 것도 아니고, 정체로 꼼짝 못 해 승객이 도로변의 벚꽃을 감상하고 있다. 와중에 철책을 넘으면, 군사정부 시절이면 바로 무장 공비로 신고할 상황이다. 거기다 당시와는 달리 핸드폰으로 앉은 자리에서 신고가 가능한 세상이다. 그나마 다행은 철책 직전에 묘가 있고, 그 바로 아래에 움막이 있는 건 어딘가에 사람이 오가는 문이 있다는 얘기다. 문을 찾아, 철책을 따라 아래로 조금 가자 예상대로다. 아주 당당히 문을 열고 나온 후, 다시 문을 닫고 잠갔다. 그리고 도로로 내려가, 길을 건너 섬진강 변으로 가 강과 그걸 가로지르는 남도대교를 기록으로 남겼다. 이후 동영상을 찍으며, 장터로 향해 3시 43분에 화개터미널에 도착했다. 2021년 11월 지리산 목통골 산행 때 여기서 점심을 먹고, 서울로 출발했으니[산행기], 1년 4개월 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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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 43분에 산행은 끝났고,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오가는 차량과 인파로 완벽한 시장 바닥인 화개장터 주변의 혼술이 가능한 적당한 식당으로 들어가, 먼저 하산주를 마신 후 버스로 가는 것과 역으로 버스로 가서 먼저 모든 짐을 풀어놓고, 홀가분하게 식당으로 들어가 하산주를 마시는 것. 현재 상태는 길을 만들며 내려오느라, 등산화는 물론이고, 온몸이 만신창이라, 그저 씻고 싶다. 해서 후자를 선택했다. 버스는 면사무소 주차장에 있다. 그런데, 면사무소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 지도 앱으로 찾아보니, 쌍계사 방향으로 거의 600m를 올라가야 한다. 그럼 갔다가 다시 600m를 와야 한다는 얘기라, 잠깐 망설이다가, 남는 게 시간이라 면사무소를 향해 벚꽃길을 따라, 면사무소를 향해 갔다. 이 순간부터는 산꾼이 아니라 상춘객이다.
3시 53분 다리를 건너 면사무소로 가며, 그 넓은 주차장과 가득 찬 차량에 깜짝 놀랐다. 예상은 했지만, 오늘은 목요일, 평일이다! 그럼, 휴일은? 인솔 대장이 언급한 다섯 대의 산악회 버스도 보인다. 두 대는 우리가 타고 온 거, 남은 세 대는 천연기념물인 화엄사 황매 감상 후 쌍계사 십리벚꽃길 감상을 위해 두 대는 서울에서, 한 대는 김포에서 출발한 거다. 우리 버스가 있는 곳으로 가자, 촛대봉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삼신마을 갈림길에서 헤어진 산꾼이 버스 앞 주차장 턱에 앉아 쉬고 있어, 그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등산화를 벗어 낙엽 등의 이물질 빼냈다. 그 모습을 보더니, 어디 갔다 왔냐고 묻는다. 어디라고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워, 오지를 헤매다 왔다고 했다. 등산화 정리가 끝나고, 배낭을 짐칸에 넣고 버스에 타서 양말을 벗어 비닐봉지에 넣어 바람이 통하지 않게 꼭꼭 묶었다. 그리고 슬리퍼로 갈아 신고 내렸다.
다시 그의 옆자리에 앉자, 자기는 면사무소 뒤의 축제 시장에서 비빔밥을 먹었다고 알려준다. 당시는 별거 아니라, 생각해 무시했다. 사실은 주차장을 찾아오는 길목에서 갈비탕과 도가니탕 전문집을 발견해 그 식당으로 갈 생각이었다. 혼자는 '주문이 되네, 안 되네'로 스트레스받을 필요 없는 탕 전문 식당! 오지를 헤매느라 피곤한데, 먹는 거로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았다. 해서 잠깐 앉아서, 나이가 어리다고 난 안 끼워주는, 상춘을 즐기는 노인네들을 감상한 후, 밥 먹으러 간다고 얘기하고 그 자리를 떴다. 그리고 다시 다리를 건널 때, 아래로 내려가 씻는 게 가능한지 살폈다. 불가능한 건 아니나, 쉽지 않았다. 냇물에 씻는 건 포기하고, 식당을 찾아 화개장터 방향으로 내려가, 갈비탕 집으로 들어갔다. 꽤 넓은 홀에 손님이라고 한 테이블에 네 명이 다다.
텅 빈 홀의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도가니탕을 주문하고, 화장실로 갔다. 그리고 노출된 모든 곳을 깨끗이 씻었다. 알탕을 못 할 바에는 식당 화장실에서 씻는 게 더 낫다. 화장실에서 나와 바로 술이 있는 냉장고로 가, 뭐가 있나 살펴봤는데, 지역 소주는 보지 않아, 이슬이 한 병을 들고 테이블에 가 탕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4시 17분경 주문한 음식이 나와, 먼저 도가니는 다 건져 내고, 탕은 밥을 말았다. 그렇게 건져낸 도가니를 안주로 이슬이를 마시며, 밥도 먹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이슬이 한 병으로 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최대한 천천히 이슬이 한 병과 탕을 비우고 나니, 4시 55분이다. 모두가 일찍 도착하면 일찍 출발한다는 대장의 말을 믿어 보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먹었으니, 딱히 자리에 앉아 있을 이유도 없었지만.
이슬이도 한 병 비웠고, 배도 부르니, 배낭을 짊어지고 주차장을 찾아 올라갈 때와는 달리 주변을 둘러보면, 유유자적 주차장을 향해 갔다. 와중에 도로를 가로질러, 걸려있는 축하 플래카드를 보고, 누가 저따위로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대표선발전에서 여고부 3등이라는 건 알겠는데, 무슨 종목? 내건 주체가 두 식당이라, 둘러보니, 마주 보고 있다. 혜성은 토속 음식, 숙이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대중 음식. 종목이 뭐든 그 친구의 대표선발을 축하하고, 위로 가다가, 식당의 수족관에 노니는 고기를 관찰했다. 아직 이른 시기라 은어는 없고, 참게, 메기와 이름을 알 수 없는 고기가 있어, 나중에 확인하기 위해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다시 다리를 건너며 상류의 지리산 남부 능선과 하류의 백운산 줄기도 사진 찍었다.
5시 13분, 주차장에 도착해 보니, 버스는 텅 비었다. 해서 축제 시장이 있다는 면사무소 뒤로 가봤다. 난장이다. 그걸 보는 순간, 여성 산꾼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은 걸 후회했다. 여기라면, 혼술 걱정 안 하고 마음껏 즐길 수 있어, 굳이 화개장터까지 가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 다만, 마음껏 씻지는 못 했겠지만! 거의 파장 분위기의 난장을 끝에서 끝까지 구경했는데, 이런 게 장사가 될까 하는 생필품이나 그림이 들어 있는 커다란 액자를 파는 곳도 있다. 와중에 눈길을 끈 건 고래고기다! 고래고기가 울산이 아니라, 이 오지까지 왔다는 건, 상업용 포경을 재개한 일본에서 수입했다는 건데, 불법 아닌가? 하긴 후쿠시마산 멍게도 수입한다는 마당에 고래고기 정도야?!
풍물시장 구경을 끝내고, 간이 화장실에 들러, 승차 전 볼일을 보고, 주차장으로 돌아온 시각이 5시 50분으로 출발 10분 전이다. 해서 마지막으로 벚나무를 배경으로 화개면사무소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버스에 타고 보니, 대략 3명 정도가 타기 전이다. 아직 도착을 안 한 것은 아니고, 화장실에 간 듯했다. 그리고 조금 지나, 53분경 버스는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비록 7분에 불과하나, 대장의 공언대로 예정보다 일찍 출발했다. 버스가 출발하는 걸 보고,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고 있다. 위치가 궁금해 지도 앱으로 확인하자, 익산 근처다. 응? 벌써? 그리고 다시 잠이 들었다 깨었는데, 천안논산 고속도로다! 역시 휴일 행락용 고속도로라, 막힘없이 최고 속도로 달린다.
그렇게 달리던 버스에 실내등이 들어오자, 인솔 대장이 휴게소에서 10분간 휴식한다고 했다. 버스가 정차하자, 차에서 내려 명패를 확인했다. '이인 휴게소'다. 일단 화장실로 가 볼일을 보고, 목이 타고 배고 고픈 증상에 적당한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오랜만에 식혜를 마셨다. 다행히 코로나가 종료된 상태라 억지로 다 마시지 않고, 남은 걸 들고 가다가, 벚나무에 걸린 달이 보기 좋아 사진 찍은 후 버스에 탔다. 휴식이 끝나고 버스가 출발하자, 멍때리고 창밖을 보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죽전이 멀지 않았다. 1차로 인솔 대장을 비록 죽전 승객이 내린 후, 9시 26분에 양재 국립외교원 앞에서 내리는 거로 산행을 마감했다. 갈 때는 4시간 조금 넘게 걸렸는데, 올 때는 3시간 31분이 걸렸다! 대단하다! 그리고 집에 도착한 시각이 10시 30분경으로 씻은 후 무언가 얼큰한 게 먹고 싶어 라면을 끓여 먹는 거로 지리산 불무장등 종주 달성을 자축했다.
안내산악회 오지팀의 A 코스에서 변경된 '당치마을 → 농평마을 → 당재 → 평도마을 능선 삼거리 → 황장산 → 중기 능선 삼거리 → 전망대 → 새끼미재 → 촛대봉 → 촛대바위 → 삼신마을 갈림길 → 작은재 → 능선 → 섬진강변 → 화개면사무소 주차장'의 14.3km(트랭글) 구간을 5시간 16분 동안 즐겼다. 이동 5시간 11분, 휴식 5분!
이번 산행으로 지리산 삼도동에서 시작해 화개장터에서 끝나는 불무장등 능선 종주를 끝냈다
생각보다는 등산로 상태가 좋아, 오지 산행의 즐거움은 덜했으나, 막판 등산로 선택에 문제가 있어, 2km 넘게 길을 만드는 거로 보충했다
미세먼지로 주변이 뿌옇게 보여 조망은 좋지 않았으나, 목통골을 따라 이어진 벚꽃길은 감탄을 자아냈다. 인산인해를 이룬 상춘인파에 평일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