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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평안의 나날 원문보기 글쓴이: 청결
***간증: 1532. [역경의 열매] 황성주 (1-33) 만남은 축복, 변화의 시작… 하나님은 내 삶의 모든 것
김준곤 목사님 통해 하나님 만난 후
진리 깨닫고 복음 전하는 인생 살며
통합의학과 면역치료법 일생 연구
황성주 회장이 2022년 새해를 맞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사랑의병원 진료실 앞에서 ‘사랑의 혁명을 꿈꾸다’라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Kingdom Dream)을 제시하고 있다.
만남은 축복이요, 거룩한 변화의 시작이다. 19세에 만난 김준곤 목사님은 내 삶의 한 복판에 영성의 폭탄을 터뜨린 분이다. 이 분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만남의 축제가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켰다.
진정한 나를 찾았고 이웃을 재발견했다. 민족을 만나고 세계를 만났다. 그토록 찾아 헤맸던 진리를 알고 복음을 미친 듯이 전했다. 이때부터는 인생의 기류가 바뀌었다. 슬픔에서 기쁨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혼돈에서 질서로. 마치 내 속에서 터져 나오는 생명의 샘이랄까. 새로운 운동권인 신앙공동체가 캠퍼스 시절, 내 삶의 모든 것이었다.
나는 서울의대 재학시절 소의가 아닌 대의의 길을 선택했다. 본과 1학년 시절이었다. 당시 예일대학에서 의료경제학을 공부하고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처장을 지내신 신영수 교수님을 만나서 운명과 같이 예방의학을 선택했다. 그래서 예방의학 교수가 됐다. 그러다가 암의 재발을 막는 항암면역요법을 연구하기 위해 독일에 갔다. 거기서 부작용이 없는 항암치료라는 새로운 신세계를 보았다. 그 이후 대학교수를 그만두고 ‘사랑의병원’을 설립했다. 미슬토 면역치료법을 한국에 최초로 도입했고, 그래서 탄생한 것이 통합의학이다. 즉 현대의학에 자연의학을 융합한 것이다. 여기에 성경의 원리를 연결했더니 성경적이고 통합적이고 융·복합적인 암치료 모델이 탄생했다.
동시에 큰 틀에서 예방의학을 지속했다. 생식을 개발하여 전 국민을 건강하게 하는 ‘전인 건강 운동’, 암을 예방하고 재발을 막는 ‘암 제로(cancer free)’ 운동을 했다. 덕분에 비즈니스 영역에도 발을 내디뎠다. 전공 영역에서 가장 큰 보람은 일반인과 암 환우들을 위한 ‘전인 치유 시스템’과 ‘면역관리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고 암에 대한 5권의 대중서를 낸 것이다.
의대 교수 시절 프랜시스 쉐퍼 박사의 제자인 엘리스 포터를 만나 영성의 지적 체계를 구축한 것이 삶의 영역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그분은 ‘죄짓는 것을 빼고는 모든 것이 영적이다’라는 충격적인 선언을 했다. 많은 신앙인의 문제는 초월성을 추구하다 합리성을 버리는 것이다. 또 합리성만 추구하다 초월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분을 만나 합리성과 초월성을 동시에 추구한 것이 영적 패러다임의 전환점이었고 ‘내 모든 존재와 모든 영역의 삶이 영적인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 만남을 통해 형식적인 예배에서 벗어나 광활한 삶의 예배를 누리게 되었다. 종교적 틀에서 벗어나 진정한 ‘영성과 공동체성‘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쉐퍼 박사가 설립한 라브리 공동체를 연구하며 평생 공동체 운동에 헌신하게 되었다. 지금도 많은 동역자들과 함께 선교 사역과 문화 사역, 비즈니스와 교육을 묶고 강력한 성경적 비전으로 묶어 ‘사랑의 공동체’라는 경제문화교육선교 공동체를 이끌고 있다. 이 모든 일은 경이로운 만남의 축복, 그 열매였다.
약력=1957년 출생, 서울의대 졸업, 서울대 의학박사, 사랑의병원 원장, 국제사랑의봉사단 설립자, (주)이롬 회장, 꿈의학교 이사장, 사랑의 공동체 대표, KWMA 부이사장
* [역경의 열매] 황성주 (1) 만남은 축복, 변화의 시작… 하나님은 내 삶의 모든 것
* [역경의 열매] 황성주 (2) 영성 학자들 만남 통해 '사랑의 혁명운동' 영적 기초 쌓아
* [역경의 열매] 황성주 (3) '고통의 심연'을 '아름다운 호수'로 만들어주신 하나님
* [역경의 열매] 황성주 (4) 세계복음화 비전 영향받고 '평생 복음 전하는 의사 되게…'
* [역경의 열매] 황성주 (5) 3년 내 서울대 복음화 확신… 학우들 전도에 승부 걸어
* [역경의 열매] 황성주 (6) '살아있는 역할모델'과의 극적 만남은 '축복의 수혜'
* [역경의 열매] 황성주 (7) "청와대로 보내주세요"… 간절한 기도 응답 주신 주님
* [역경의 열매] 황성주 (8) 생활고와 절박함에 시작된 저술 사역이 작가 만들어
* [역경의 열매] 황성주 (9) '국제사랑의봉사단' 이끌고 다시 찾은 찔마리 마을
* [역경의 열매] 황성주 (10) 사역의 샘 근원이 된 빈민가와 무의촌 의료봉사
* [역경의 열매] 황성주 (11) 새로운 패러다임 암 치료법 발견… 사랑의병원 설립
* [역경의 열매] 황성주 (12)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 없는 제품 만들겠습니다"
* [역경의 열매] 황성주 (13) '자궁암 없음' 통보받은 한 남성, 사기로 검찰 고발
* [역경의 열매] 항성주 (14) 슈바이처 롤모델로 공부 집중… 두 달 만에 상위권 도약
* [역경의 열매] 황성주 (15) 성경적 대안 교육의 훌륭한 역할모델 된 '꿈의 학교'
* [역경의 열매] 황성주 (16) 산을 옮기는 '겨자씨 믿음'… 심는 것은 우리의 몫
* [역경의 열매] 황성주 (17) 결혼 환상 깨지고 부부 갈등 시작… 에로스 한계 깨달아
* [역경의 열매] 황성주 (18) 아티족 최초 예배당 세워지는 하나님의 역사 일어나
* [역경의 열매] 황성주 (19) '골고다의 죽음과 승리' 실존 체험한 고비 사막 마라톤
* [역경의 열매] 황성주 (20) '백만 자비량 선교 운동'으로 만인 선교사 시대 열어
* [역경의 열매] 황성주 (21) 한국 변혁 운동 이끌며 모든 분야서 선교영역 넓혀
* [역경의 열매] 황성주 (22) 날마다 킹덤 드림 펼치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목도하다
* [역경의 열매] 황성주 (23) '짐마' 릴레이 금식 기도 소식 듣고 본격적 사역 시작
* [역경의 열매] 황성주 (24) '킹덤 교육의 허브'로 우뚝 선 우간다 쿠미대학교
* [역경의 열매] 황성주 (25) 밤마다 빈대와 싸우며 DTS 훈련… 영적 담금질의 시간
* [역경의 열매] 황성주 (26) 절대 감사 통한 '5베이직' 운동으로 젊음과 건강 회복
* [역경의 열매] 황성주 (27) 이롬플러스 설립 후 '돈독 올라 다단계까지…' 오해
* [역경의 열매] 황성주 (28) 복음으로 전 세계 난민과 북한을 품는 원대한 꿈 꿔
* [역경의 열매] 황성주 (29) ‘빌리언 소울 하비스트’ 부활… 복음의 향기로 물들어
* [역경의 열매] 황성주 (30) 기도특전단 3만㎞ 기도행전 힘입어 축제의 도가니
* [역경의 열매] 황성주 (31) 기도의 씨앗 뿌리고 천국 입성한 중보자들
* [역경의 열매] 황성주 (32) 어머니가 남긴 기적의 선물은 '소중한 믿음의 자산'
* [역경의 열매] 황성주 (33·끝) "하나님 주신 푯대 향해 달리며 열정 불태우리라"
정리=윤중식 종교기획위원 yunjs@kmib.co.kr
***[역경의 열매] 황성주 (2) 영성 학자들 만남 통해 ‘사랑의 혁명운동’ 영적 기초 쌓아
프랜시스 쉐퍼 만나 영성 추구 깊어지고
유명 영성 학자들 통해 영적 여정 이해
영성·공동체성 체험하며 ‘킹덤 드림’ 꿈
황성주 회장(뒷줄 오른쪽 세번째)이 2007년 8월 미국 콜로라도 록키마운틴공원에서 콜로라도 개척팀과 함께 킹덤드림을 꿈꾸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50세에 미국 콜로라도를 간 것은 엄청난 도전이었다. 자연인의 삶을 누리는 계기가 되었다. 나보다 더 크고 위대한 것을 만나면 인생이 바뀐다. 이른바 ‘타자성’의 경험이다. 나를 객관화하고 상대화시켰다. 콜로라도의 대자연, 산과 들판, 강과 골짜기, 사시사철 계속되는 경이로움에 넋을 잃었다. 그리던 자연인의 삶이 시작되었다. 창조신앙의 본질을 알게 되었다. 이때 비로소 창조신앙과 구속신앙의 조화를 통해 절름발이 영성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프랜시스 쉐퍼를 통해 처음 접했던 영성의 추구가 깊어지기 시작했다.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는 은혜가 있었다. 콜로라도에 사는 레노바레 운동의 영성 학자인 리처드 포스터와 덴버신학교의 영성 신학자 브루스 디마레스트 교수를 통해 영적 여정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게 됐다. 중세 수도사였던 버나드 클레보의 사랑의 성숙 단계를 알게 돼 내 생애의 모토인 ‘사랑의 혁명운동’의 영적 기초를 쌓게 되었다.
물론 의대 교수 시절 합동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 박윤선, 신복윤, 박형용, 김명혁 교수님 등 탁월한 신학자들에게서 ‘오직 말씀’이라는 개혁신앙을 전수한 것이 엄청난 자산이었다. 그러다가 콜로라도에서 성령 신앙에 눈 뜨기 시작했다. 끝없는 영성 추구의 종착역은 결국 성령 신앙이었다.
내가 연구년을 보낸 콜로라도 스프링스는 미국의 예루살렘, 중보의 도시, 기름 부음의 도시라고 불리는 건강한 성령 운동의 중심 도시였다. 특히 뉴라이프 교회의 테드 헤거드 목사를 통해 기적같이 도시가 통째로 변화된 도시변혁의 대표적인 도시였다. 결국, 강권적인 은혜에 의해 진행된 콜로라도에서의 안식을 통해 말씀 신앙과 성령 신앙을 결합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경륜에 시간이 갈수록 경탄을 거듭하고 있다.
또한 콜로라도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영적 지평을 넓혀가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영성과 공동체성이라는 것을 더욱 깊이 체험했다. 최근 팬데믹 기간에 경기도 양평 서후리 센터에서 선교사님들과 선교공동체를 이루며 같이 생활했던 것도 맥을 같이 하는 것이라 하겠다. 아울러 얼마 전까지 강원도 횡성 둔내면에서 암 환우들과 공동체 생활을 하며 최상의 면역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통합의학적 암 치료법을 삶 속에서 탐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더 놀라운 일은 콜로라도에서 킹덤 드림을 꿈꾸게 된 것이다. 이곳에서 ‘마이드림’을 내려놓고 ‘킹덤 드림’을 붙잡게 되었다. 주님을 위해 산다고 했지만 내 야망이 섞여 있었던 내 꿈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하늘꿈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자기 부정의 본질을 알고 주님께 철저히 항복하는 것을 알면서 내 생애에 엄청난 가치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2007년 콜로라도에 킹덤드림센터를 설립하고 지금까지 미국과 세계를 위한 중보기도 센터와 킹덤드림 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전 세계 각국의 선교리더, 교회리더, 기도운동의 리더와 글로벌 운동의 리더들이 모여 2030년까지 10억의 영혼을 구원하자는 ‘빌리언 소울 하비스트’를 선포한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역경의 열매] 황성주 (3) ‘고통의 심연’을 ‘아름다운 호수’로 만들어주신 하나님
어린 시절 가정 폭력에 큰 상처 입은 후
볼 때마다 기분 상하게 하던 큰 웅덩이가
비바람 후 아름다운 호수로 변한 걸 보고…
황성주 회장 부부(앞줄)가 2002년 미국 워싱턴 한빛지구촌교회에서 목사 안수식 후 어머니(뒷줄 맨 왼쪽)를 모시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어머니, 이름을 부를수록 그 포근함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른다. 어머니는 할머니의 반대로 사범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평범한 주부로 아쉬운 일생을 사신 분이다. 아버지와의 불화로 난무하는 폭력과 폭언 등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사셨다. 처절한 고통을 때로는 인내로, 때로는 임기응변으로 극복하셨지만 가슴속에 맺힌 것이 무척 많으신 분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그때는 방과 후에 학교 도서실에서 밤 11시30분까지 공부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대부분의 아이가 점심과 저녁 도시락까지 싸서 왔는데, 나만은 예외였다. 저녁이 되면 하루도 빠짐없이 4㎞ 길을 걸어서 어머니가 손수 찬합에 따끈한 밥과 반찬, 국물을 담아서 찾아오셨다. 그 정성과 사랑에 나는 그저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에 대한 애착이 강했고 어머니의 고통과 슬픔에 나를 동일시하는 내면세계를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나는 어린 시절 내 영혼에 구멍을 뚫어버린 어머니의 슬픈 얼굴을 잊지 못한다. 다섯 살 때 일이다. 어머니를 마구 때리면서 피 흘리는 어머니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다니던 아버지의 모습과 교차하는 생생한 기억이다. 그 충격은 일생일대의 트라우마가 되어 처절한 상처를 안겨주었고, 청소년 시절 내내 ‘고통의 심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력감을 경험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고난받는 여인상’의 전형으로 극단적인 가정폭력의 희생자였다. 항상 슬픈 얼굴이지만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쏟아붓고 훌륭하게 키운 기품 있는 얼굴이기도 하다.
캠퍼스 복음화에 헌신하던 때의 일이다. 그 당시 나는 서울대 관악캠퍼스 버들골에서 주님과 나만의 시간을 누리며 산책하는 습관이 있었다. 거기에는 평소에 못마땅하게 여기던 큰 웅덩이가 있었다. 푸른 하늘과 녹색 잔디가 펼쳐져 있는 자연의 조화에 어울리지 않게 움푹 파인 그 웅덩이는 볼 때마다 나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그런데 비바람이 몰아친 어느날 아침 산책을 하다 놀라운 장면을 보게 됐다. 짧은 시간의 집중호우에 그 큰 웅덩이가 아름다운 호수로 변해 있는 것이 아닌가. 오랫동안의 안타까움이 탄성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웅덩이를 호수로 변화시키시는 하나님, 그 장면은 고통을 겪을 때마다 내 일생을 반전시키는 데자뷔가 됐다. 하나님은 그처럼 움푹 패 있는 내 ‘고통의 심연’을 아름다운 호수로 만들어 주신 것이다. 처절한 고통과 상처의 웅덩이에 쏟아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 그 상징적 사건은 미래를 통해 계속해서 펼쳐졌다.
이후 나는 대학 1학년 때 한국대학생선교회(CCC)를 통해 주님을 만났다. 고통의 심연에 복음의 샘이 터지고 은혜의 강이 흐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던지 복음을 받아들인 지 한달 만에 13명의 학생들을 전도해 성경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 폭발적인 은혜 이후 46년 동안 달려온 복음의 열정, 상처받은 얼굴들과 암 환우들을 향한 사랑, 매일처럼 세계를 누볐던 사랑의 혁명운동 열망! 그것은 바로 ‘고통의 심연’에 쏟아부은 하나님의 조건없는 사랑이 평생을 달릴 수 있는 불굴의 에너지로 변환된 것이었다. 이것이 내가 체험한 은혜의 해부학이다.
***[역경의 열매] 황성주 (4) 세계복음화 비전 영향받고 ‘평생 복음 전하는 의사 되게…’
김준곤 목사의 비전·말씀 통한 은혜로
세계선교에 목숨 거는 삶의 기초 세워
졸업 후 의대 교수 돼 복음 사역 계속
대학생 시절 황성주 회장(오른쪽 첫번째)과 한국대학생선교회 형제들이 영적 스승인 김준곤 목사(맨 왼쪽)로부터 말씀을 듣고 민족복음화의 사명을 가슴에 아로새겼다.
김준곤 목사님과의 만남은 선물 그 자체였다. 특히 지상명령이라고 불리는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는 말씀에 근거한 세계복음화의 비전은 피 속을 흐르듯 내 일생일대의 신앙 철학이 됐다.
그래서 대학시절 미친 듯이 복음을 전했고, 주님 닮기를 열망하며 최고의 비전인 세계선교에 목숨 거는 삶의 기초를 세웠다. 지금도 김 목사님의 얼굴만 떠올리면 힘이 저절로 난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기쁨과 슬픔이 반쯤 섞어있는 우수에 찬 얼굴이 사진처럼 떠오른다. 목사님은 웃다가도 울고 울다가도 웃으셨다. 끝없이 기도하고 금식하며 난제들을 돌파해 가셨다. 목사님은 누가 봐도 성경에서 달려 나온 말씀의 사람이었고 항상 내면의 불꽃이 타오르는 성령의 사람이었다. 그 분은 주님이 없는 조국, 분단된 겨레의 현실을 품고 울고, 뜨거운 믿음의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웃었던 것 같다.
물론 그분에게도 개인적 고통과 상처는 엄청나게 크고 깊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인간적 한계와 연약함이 있었지만 대부분 고통스런 성장과정 및 시대상황과 연관된 불가항력적인 것이었다고 해석한다. 목사님이 소천하기 2년 전 어느 날이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찻집에서다. 상상을 초월한 성경적 비전과 일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말씀에 필자는 온몸에 전율을 느끼는 은혜를 받았다.
그 은혜로 사자처럼 포효하고 ‘캠퍼스 복음화’ ‘민족 복음화’ ‘세계 복음화’의 비전을 선포하며 달려갔다. 200만 성도가 모인 1980년 세계복음화 여의도 집회에서 10만 선교사 헌신을 끌어낸 그 엄청난 도전적 삶은 내 생애를 뒤흔드는 계기가 됐다. 그 영향력으로 의과 대학시절 내내 나의 기도는 ‘평생 복음을 전하는 의사가 되게 해 달라’는 오직 한 가지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졸업 후 의대교수가 돼 캠퍼스 복음 사역이 계속됐다. 그리고 이후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로 복음의 영역이 확대되면서 한 번도 생각지 못한 인생의 궤도를 달리게 됐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도 생각이 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거지순례 전도였다. 77년 남해안을 돌았던 19인조 형제들의 7박 8일 일정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는 거지 대장으로 ‘돈 주고 음식을 사 먹지 않는다.’ ‘만나는 마을마다 가정마다 빠짐없이 전도한다.’ ‘돈 주고 차를 타는 일 없이 마지막까지 걸어서 간다.’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전도도 하고 밥도 같이 얻어먹는다’ ‘대장의 명령에 절대 복종한다’ 등의 원칙을 정했다. 경남 진주에서 하동으로, 하동에서 전남 광양으로, 광양에서 순천으로, 경상도와 전라도를 누비며 전도의 기쁨과 청춘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던 순간들이었다. 그런데 이 체험이 나중에 무의촌 진료와 의료 선교, 세계 100여 개국을 누볐던 총체적 선교, 세계를 섬기는 사랑의봉사단과 기도특전단으로 연결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른바 ‘나그네 기질’의 발현이었다.
***[역경의 열매] 황성주 (5) 3년 내 서울대 복음화 확신… 학우들 전도에 승부 걸어
직접 작성한 ‘서울대 복음화 선언문’ 낭독
주께 헌신하며 캠퍼스 복음화에 청춘 던져
‘공수작전’ 펼쳐 학생들 교회까지 실어날라
40년 전 서울대 캠퍼스 복음화의 주역들. 왼쪽부터 이원재 조선대 교수, 홍종인 서울대 교수, 황성주 회장, 소영섭 전 연변과기대 교수.
1976년 10월 15일 서울대 개교 30주년 기념일이었다. 학생회관 뒤쪽 26동 대형 강의실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정신사의 강은 어디로 흐르는가?’라는 제목으로 김준곤 목사님의 신앙 강좌가 있었기 때문이다.
강연이 끝나고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서울대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총무 순장을 맡았던 나는 강단으로 뛰어올라가 ‘서울대 복음화 선언문’을 낭독했다. 그것은 당시 대표 순장이던 박하정 형제와 의논해 만든 것이었는데 초안을 작성한 내가 낭독했다. 그 내용은 ‘오늘의 서울대 복음화는 내일의 민족 복음화’라는 기치 아래 ‘앞으로 3년 내에 서울대를 복음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무모했던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 목표가 달성될 것을 추호도 의심치 않았다. 기도하고 금식하며 밀어붙이면 안 될 것이 없다고 확신에 차 있었다. 서울대 복음화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임에 틀림없고 하나님의 뜻이기에 ‘무엇이든지’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서울대 복음화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더욱 든든했던 것은 지금까지 박 형제와 내가 기숙사에서 이뤘던 복음의 놀라운 역사, 그 경험으로 인한 자신감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친구들을 전도하고 다음에는 후배들을 전도했다. 전도는 못해도 일단 채플에 데려가거나 2박 3일의 LTC세미나에 참석하게 되면 변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일단 예수님을 영접한 학생들은 순모임에 연결돼 양육을 계속했다. 대개의 학생들이 주일에 공허해 하면서도 교회에는 귀찮아 안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에 착안해서 시작한 아이디어가 ‘공수 작전’이었다. 나중에는 주일에 버스를 대절해서 기숙사 앞에 대기시켜 놓고 사내 방송을 통해 ‘신앙생활을 권면하는 식’으로 해서 학생들을 실어 날랐다. 한때는 참석자가 너무 많아 버스를 두 대 불러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그만큼 서울대 기숙사는 복음의 황금어장이었다. 당시 서울대 복음화의 정의는 ‘모든 학생들에게 1대 1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는데 ‘여호와 이레’로 그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 신비스럽고 놀라울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받은 은혜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회고하건대 정말 감사한 것은 내 젊음의 한 복판을 주님께 헌신하며 후회 없이 캠퍼스 복음화에 전 삶을 내던진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것은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예행연습이고 전주곡에 불과했다. 이 때부터 승부사 기질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의대교수 시절 교회 개척(1987)과 국제사랑의봉사단 설립(1992), 사랑의병원 설립(1994), 경제공동체 이롬 설립(1997), 꿈의 학교 설립(2002), 세계선교지도자회의(2002), 백만자비량 선교운동(2006), 평양대부흥 100주년 연합집회·Transform USA 운동(2007), 킹덤드림 선포(2010), 우간다 쿠미대학교 혁신(2018), 청년구국기도회(2021), Billion Soul Harvest(2021), 구국금식기도회(2022) 등을 이루는 과정에서 주님은 승부사 기질을 활용하셨다.
***[역경의 열매] 황성주 (6) ‘살아있는 역할모델’과의 극적 만남은 ‘축복의 수혜’
현실 속에 갇혀 허우적대던 청년 시절
김준곤 목사 빌 브라이트 박사 등 만나
삶 속에서 보여준 가르침으로 은혜받아
2008년 여름 황성주 회장(맨 오른쪽)의 영적 멘토 중 한 분인 루이스 부시 박사(뒷줄 오른쪽 두번째)와 변혁미국(Transform USA) 핵심 리더들이 기도회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나는 매일 매일 좋은 만남을 달라고 절박한 기도를 드린다. 특히 자아도취에 빠지기 쉽고 죄성에 노출되기 쉬운 청년 시절, 1970~80년대 절묘한 시점에 허락하신 만남은 엄청난 축복의 수혜였다.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해 허우적대는 나에게 ‘살아있는 역할모델’이 되어주신 분들과의 극적인 만남과 이야기를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한국대학생선교회(CCC)에서는 김준곤 목사님 외에도 강순영 조기철 김안신 이상규 김종식 간사님 등 모든 분에게서 무서운 흡입력을 갖고 가르침을 받았다. 무엇보다 당시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분은 CCC 국제 총재이자 창설자인 빌 브라이트 박사였다. 1995년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있었던 세계복음화를 위한 지구촌 전략회의(SM2000) 행사가 끝나고 귀빈석에 있던 브라이트 박사를 만났다. 15년 전에 처음 만났던 때를 회고하며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다. 그분의 세계를 품은 비전이 너무나 귀하게 여겨졌고 주님 앞에 철저한 종으로 사는 삶을 사는 태도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목회자로 내게 영향을 준 분은 한경직 목사님이다. 의대 본과 3학년 시절부터 영락교회에 출석했다. 한 목사님으로부터 섬기는 종으로서의 모습, 목자다운 성품, 깨끗하고 고결한 신앙 인격, 겸손과 온유, 그리고 폐부를 찔러오는 잔잔한 메시지에 깊은 은혜를 받았다. 김진홍 목사님은 역량과 유명세보다 겸손하시고 민주적인 리더십을 가진 분으로, 사랑의봉사단의 초대 이사장으로 계시면서 나와 함께 동역했었다. 곽선희 목사님은 우리 부부의 주례를 하신 분으로, 소망교회 청년부 시절 그분의 깊이 있는 메시지에 매료됐다. 조용기 목사님은 대학시절 경쟁의식을 자극했던 분으로 ‘저분이 전 세계를 복음화하면 나는 할 일이 없겠구나’라는 경탄과 탄식을 자아내게 했다. 방지일 목사님과 정진경 목사님 사랑도 잊을 수 없다. 소천하기 직전에 뵙고 은혜를 받았던 ‘기도의 용장’ 정필도 목사님도 잊을 수 없다.
옥한흠 목사님과 하용조 목사님으로부터는 교회에 출석하면서, 이동원 목사님과 홍정길 목사님은 같이 동역하면서 큰 은혜를 받았다. 그분들의 훌륭한 인격과 창조적인 사역에 큰 매력을 느꼈다. 특히 온누리교회에서 전인 치유위원장으로 사역할 때 형님같이 사역과 비전의 멘토링을 해준 하용조 목사님의 자상함을 잊을 수 없다. 지금도 틈틈이 연락을 주시고 좋은 책을 보내주시는 이동원 목사님의 사랑도 잊을 수 없다. 아처 토레이 신부님은 대학 시절부터 예수원을 찾아다니며 큰 은혜를 받았던 영적 거장이다. 아가페의 이건오 장로님, 한동대 김영길 전 총장님, 이랜드의 박성수 회장님도 큰 영향을 주신 분들이다. 모두가 훌륭한 역할모델로 나를 채찍질하고 계신 분들이다.
외국 분으로는 루이스 부시, SWAM의 설립자 로렌 커닝햄, 인도 가정교회 운동의 빅터 차우다리, 최근에는 기도의 거장 존 랍과 딕 이스트만, 뒤늦게 선교운동에 뛰어든 새들백 교회의 릭 워렌 등 많은 국제 리더들과 교제하며 끝없는 도전을 받고 있다.
***[역경의 열매] 황성주 (7) “청와대로 보내주세요”… 간절한 기도 응답 주신 주님
방배동 개척 교회 섬겨야 하는 상황에
원주로 발령 나 서울 차출 바라며 기도
신설된 예방의학과 초대 과장으로 부임
강원도 원주 1군 사령부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할 때 황성주(앞줄 왼쪽 두 번째) 회장의 기도 제목은 청와대로 가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제가 가진 전공을 가장 잘 활용하여 조국과 사회의 발전을 위해 공헌하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저를 청와대로 보내주십시오.”
의대 교수를 2년 하고 군의관으로 입대해 강원도 원주 1군 사령부에 근무를 했다. 의대 교수 시절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개척한 교회를 섬겨야 하는 상황도 업무의 특성이 나에게 맞지 않았다. 그래서 2년 차에 반드시 서울로 발령을 받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인데 정원이 없었다. 그런데 가끔 청와대에서 필요한 사람을 차출해간다는 사례를 언뜻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청와대로 보내 달라고 담대한 기도를 시작했다. 석 달째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출근을 해보니 두툼한 서류 봉투가 하나 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발신은 ‘서울 지구병원’이었다. 바로 대통령 전용병원이었다. 이곳에 예방의학과가 신설되는데 초대 과장으로 군에서 예방의학 전문의와 의학 박사 학위를 가진 3명이 추천된 것이었다.
마치 엘리야의 기도를 연상하게 되었다.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는 절박한 상태에서 기도했더니 아주 작은 구름이 일어났더라는 성경 본문이 생각나면서 이 서류 봉투야말로 손바닥만한 구름과 같은 하나님의 사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류 제출 6개월 만에 나는 서울 지구병원 초대 예방의학과장으로 부임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가 임기를 마치고 후배 한 명이 내 자리를 이어받게 되었는데 그 친구를 끝으로 예방의학과는 폐지되고 그 자리는 없어졌다. 나는 그 사실을 전해 듣고 ‘없는 자리까지 만드시고 다시 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다시금 절감했다.
나중에 알고 나니 그 기도 응답은 나에게만 임한 것이 아니었다. 나의 인사이동에는 또 다른 간절한 기도의 배경이 있음을 알게 됐다. 그것은 서울 지구병원의 진료부장으로 있던 군의관이 군에 와서 변화됐는데 병원 내에 사병들을 위한 교회를 설립하고 아침마다 의사들과 경건의 모임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한 수요일 점심때는 병원장을 비롯한 병원 직원과 보안사 핵심 요원들이 같이 참여하는 성경 공부를 인도하고 있었다. 그분이 나중에 의사로서는 최초로 중장 계급장(의무사령관)을 달았던 김록권 중령이다. 그러던 시점에 김 중령이 다른 야전병원의 병원장으로 승진 발령이 났다. 그래서 자신을 대신할 영적 리더가 후임으로 오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방배동 교회와 지구병원 교회를 동시에 섬기는 축복을 받았다.
나는 이 사건으로 하나님의 거대한 섭리의 네트워크와 기도의 연결성을 깊이 이해하게 됐다. 주님은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신다. 그러나 기도는 생애를 건 비전이요 인생관이다. 하나님을 향해 나를 내던지는 것이다. 기도는 동사가 아니고 명사다. 기도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태도다. 하나님을 향해 나의 중심을 드리는 자기 계시다. 주님께 집중하는 것이고 주님의 눈을 응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면 제한 없이 기도하게 되고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 81:10)는 말씀의 의미가 명확해진다.
***[역경의 열매] 황성주 (8) 생활고와 절박함에 시작된 저술 사역이 작가 만들어
사택 정원 넘쳐 따로 집 구하란 연락에
베스트셀러 돼 인세 받아 집 얻을 궁리
책 낼 출판사 없어 직접 1인 출판사 창업
치열한 글쓰기로 최근까지 ‘킹덤드림’(규장) 등 30여 권의 단행본을 출간한 황성주 회장은 10년 전 ‘선물’이라는 시집으로 문단에 데뷔한 이후 6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오아시스를 만나면 쉬었다 가라’는 말이 있다. ‘북악재’라고 불렀던 서울지구병원의 사택은 서울 성북동 꼭대기 외교관 촌에 위치해 있었다. 숲속이었고 산과 약수터가 5분 거리에 있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북악재로 이사 오기 전 사택이 다 차서 우리 가족은 따로 전세를 얻으라는 연락을 받았다. 청천병력 같은 소식이었다. 그 상황에서 건강 관련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되면 그 인세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예방의학의 전문 지식과 체험적 건강론을 바탕으로 1군 사령부 시절부터 쓰기 시작한 책이 ‘아빠를 젊고 건강하게’이다. 아무 출판사에서도 책을 내주지 않아 ‘호도애’라는 1인 출판사를 창업했다. 놀랍게도 이 책은 나오자마자 주요 일간지에 소개됐고 교보문고, 을지서적 등의 건강 서적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뜻하지 않은 은혜랄까. 생활고의 압박과 절박성이 불러온 저술사역이 나를 작가로 바꿔놓았다. 또한 ‘책 한권의 영향력이 대학 하나의 영향력과 맞먹는다’는 말이 마음에 자리잡았다.
기도하고 기다리면 기회는 꼭 오는 법이다. 국민일보에 1년 3개월 동안 ‘성서 건강학’을 연재하며 성경과 건강을 결부시켜 참신한 건강 메시지들을 전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 대학 교수로 다시 복귀한 다음에는 SBS TV에서 토요일 아침마다 ‘아빠를 젊고 건강하게’라는 프로가 신설돼 매주 건강 칼럼을 전하기도 했고 경제신문에도 건강 칼럼을 1년 동안 연재하기도 했다. 또한 각종 신문, 잡지와 사보에 글을 써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각종 단체에서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이 줄을 이었다. 그 이후로 1991년 ‘건강미인 만들기’, 92년 ‘성서건강학’, 95년 ‘스트레스는 인생의 양념’, 96년에 ‘암의 재발을 막으려면’과 ‘사랑의 치유일지’ 등을 출간했다. 사색의 환희와 글 쓰는 즐거움이 책으로 변해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 감격을 맛보기도 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아들아 사랑으로 세계를 품어라’ ‘꿈에도 전략이 필요하다’등의 청소년의 꿈을 위한 저서와 ‘암은 없다’ ‘암 재발은 없다’ ‘면역 관리없이 암 완치없다’ 등의 전공서적, ‘절대감사’ ‘킹덤 드림’ ‘킹덤 레이스’등 신앙서적들이 줄을 이었다. 그리고 10년 전 ‘선물’이라는 시집으로 문단에 데뷔한 이후 내리 6권의 시집을 내기도 했다.
모든 문학작품과 예술작품은 절박성의 산물이다. 도전과 자극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글이 나오고 새로운 만남에서 예술적 영감이 빛을 발한다. 이제는 ‘만인 작가시대’이다. 저술도 시작이 반이다. 놀랍게도 책을 쓰기로 마음먹고 나면 아이디어가 꼬리를 문다. 물론 쓰다가 막히면 쉬어야 한다. 쉬다 보면 재충전이 되고 새로운 소재와 영감이 떠오른다. 그래서 저술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출판사와 미리 기한을 정해서 책을 쓰는 것이 좋다. 그 압박감이 엄청난 자극이 되기 때문이다.
***[역경의 열매] 황성주 (9) ‘국제사랑의봉사단’ 이끌고 다시 찾은 찔마리 마을
최빈국 방글라데시 마을 아이들 웃음에
물질보다 ‘조건 없는 사랑’ 필요함 느껴
돌아올 약속하고 5년 만에 봉사단 창단
황성주 회장 등 국제사랑의봉사단 1기 43명이 1993년 1월 방글라데시 찔마리 마을에서 주민들과 함께 전통놀이 깨금발 싸움을 하고 있다.
의과대학 교수 2년째인 1988년 1월 처음으로 해외에 나갔다. 병원을 경영하는 조은제 집사님이 개인 재산을 털어 만든 아시아구제기금의 지원을 받아 8명이 의료 봉사를 위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 방글라데시 찔마리를 방문했다.
찔마리는 방글라데시의 맨 북단에 있는 고장으로 자무나강을 끼고 있었다. 연례행사처럼 홍수가 찾아와 피해가 극심했다. 강 가운데에 있는 큰 섬에는 7000~8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홍수만 나면 물에 잠겨 주민들은 지붕 위로 피신해 토란 몇 개로 한 달을 버티는 고통을 당한다는 것이었다. 몇 개의 섬을 방문해 진료했는데, 처음 방문했던 지역의 보건소는 설립 이래 처음으로 문을 연다고 했다. 먼지가 한 뼘 정도 쌓여 있는 책상을 치우고, 당시에 방글라데시에 계셨던 의료선교사 강원희 선생님과 함께 진료를 시작했다.
끝없이 몰려오는 환자, 부족한 의약품…. 해야 할 일은 많고 부족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히 토양에 요오드 성분이 부족해 갑상샘 질환 환자가 많았다. 감기, 신경통, 피부병, 기생충, 중이염, 안질환 등이 많았고 X-ray가 없어 확인할 수 없는 폐결핵 환자들 때문에 심적 고통을 받기도 했다. 환자를 보다 지쳐 잠깐 밖으로 나왔다. 눈짓 하나만으로도 많은 아이가 따라다녔다. 내가 아는 단어는 ‘께모나쵸(안녕)’와 ‘발로발로(좋아좋아)’ 두 마디였는데, 이 말을 할 때마다 아이들은 함박꽃 같은 웃음을 머금으며 나를 둘러쌌다.
그들의 얼굴과 반짝이는 눈동자를 주시하고 있자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빵도 아니요, 옷도 아니요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돌아오는 내내 나의 뇌리에서 그 아이들의 얼굴과 눈동자가 잊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반드시 이곳에 다시 온다. 오, 주님. 나에게 이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은혜를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약 5년 뒤인 1992년 크리스마스 날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나는 ‘세계는 나의 교실’ ‘인류 최후의 혁명은 사랑의 혁명’이라는 깃발을 내걸고 국제사랑의봉사단을 창단했다. 그리고 열흘 후 1993년 1월 사랑의봉사단 제1기 43명이 방글라데시 찔마리를 찾았다. 당시 사랑의봉사단을 모집하는 구호는 ‘찔마리로 가자’였다. 그래서 결국 마음의 빚을 갚게 되었다.
나는 그때의 감격과 은혜를 잊을 수가 없다. 에마누엘 레비나스는 ‘얼굴의 철학’으로 유명한 분이다. 자아도취에 빠진 자기중심적 철학에서 ‘타자성’이라는 개념으로 현대 철학계의 충격을 주신 분이다. 나치 치하에 유대인으로 모든 가족이 수용소에서 죽고 홀로 살아남은 이 철학자는 ‘이웃 사랑’을 외쳤다. 그분의 철학은 ‘나와 너’라는 책으로 유명한 마르틴 부버와 더불어 철학을 자아의 동굴에서 해방시켰다. 나는 평생을 사랑의봉사단 단원으로 사역하며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는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있다. 그 열매로 나는 30년 동안 125개국을 다니게 되었다.
***[역경의 열매] 황성주 (10) 사역의 샘 근원이 된 빈민가와 무의촌 의료봉사
의대 시절 아가페 봉사회 동참하며 시작
하나님 나라 비전의 소중한 사역 확신
지구촌 가난한 이웃과 함께하는 삶 노력
황성주 회장(앞줄 왼쪽 두번째)이 1996년 네팔의 도티로 의료봉사를 갔을 때 ‘네팔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강원희 장로(앞줄 왼쪽 세번째)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 팀으로 시작한 사랑의 봉사단은 1994년에는 4개 팀이 6개국을, 95년에는 8개 팀이 8개국, 96년에는 19개 팀이 13개국을 섬기게 됐다. 주님이 놀라운 특권을 허락하신 것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믿음으로만 시작했던 일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이 일이 정말 소중한 사역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놀랍게도 사랑의봉사단으로 다녀온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갖게 됨은 물론 ‘공동체’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되고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삶이 바뀐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의료사역에 동참할 때 가장 많은 감동을 하게 된다.
지금 돌이켜보면 사랑의봉사단은 의대 시절 빈민가 및 무의촌 진료의 경험과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의대 시절을 떠올리면 가장 인상 깊은 것이 해부학이다. 연건 캠퍼스에 라일락이 필 무렵, 첫 해부학 실습 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지금도 라일락을 보면 그 때 그 시절이 생각난다.
기초 의학을 배우던 1·2학년 시절에는 별로 흥미를 못 느끼던 의학 공부가 임상에 들어가면서부터 그토록 신바람 날 수가 없었다.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했다. 그런데 학생 신분으로 임상 실습을 할 때부터 내가 약간 노숙하게 보였는지 전공의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대병원에서 인턴을 할 때는 주치의로 오인을 받기도 했다.
조교 시절에는 간호학과 강의나 다른 대학 강의를 갔는데 일찍부터 ‘교수님’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본의 아니게 선생님 행세를 한 것이 유익했던 점은 병원 전도를 할 때였다. 물론 가운을 입고 다녔기에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고 모든 환자에게도 환영을 받았다. 이때 맺은 열매도 열매려니와 믿음이 좋은 환자들이 대부분 빨리 회복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관악캠퍼스 시대가 끝나고 연건캠퍼스로 오면서 아가페 의료 봉사회를 설립했다. 아가페 운동을 주도하는 분은 이건오 박사님으로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장기려 박사 밑에서 외과수련을 받으신 분이다. 아가페 모임이 계속 발전하면서 창동에 있는 진료소에서 무료 진료를 시작했는데 나는 본과 2학년 때부터 이 일에 동참했다. 처음 환자를 볼 때의 그 두근거리는 가슴과 생명에 대한 경외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그 이후 당시 목동과 상계동에서도 주말 진료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가난한 이웃과 함께 하는 삶’이 얼마나 숭고한 일인가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느 해 여름날, 최초로 무의촌 진료를 간 곳은 동해안이었다. 나는 당시 처음으로 강원도 땅을 밟아봤는데 버스가 굽이굽이 대관령을 넘어갈 때의 그 감격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하조대 해수욕장을 지날 때 처음 마주친 동해안의 푸르름에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당시 진료지는 고성군 아야진이라는 조그만 어촌 마을이었는데 그때 시작된 작은 진료 보따리는 이제 지구촌 어두운 곳이면 어디라도 가는 국제 사랑의봉사단의 큰 보따리로 바뀌었다. 대학 시절의 거지순례 전도와 슬럼가 진료의 경험이 지금 세계적인 사역의 샘 근원이 된 것이다.
***[역경의 열매] 황성주 (11) 새로운 패러다임 암 치료법 발견… 사랑의병원 설립
한 수양회서 접한 암 치유법에 감탄·충격
암 환우들의 고통 덜어주고 완치율 높여
삶의 질 높이는 면역치료 신기원 열게 돼
황성주 회장(왼쪽 네번째)이 2019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 자택에서 현재 의대교수와 병·의원 원장으로 일하는 한림의대 아가페 제자들과 함께 식사기도 후 의료선교사로서 손가락 하트로 예수님의 사랑 실천을 다짐하고 있다.
당시 서울의대에서는 지방에서 개척하는 의과대학에 교수요원을 공급하고 양성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나는 바로 신청을 했다. 그래서 엄청난 지원을 받고 춘천에 있는 한림의대 교수요원이 됐다. 부임하자마자 한림대 아가페를 설립해 학생들을 전도했다. 날마다 캠퍼스에서 성경을 공부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선교농장 등에서 수양회를 했던 것이 생각난다. 강원도 삼척 하장으로, 전남 보길도로, 강원도 홍천 명개리로 무의촌 진료를 다니며 제자들과 일체가 되었던 아름다운 추억을 잊을 수 없다.
1992년 여름 설악산 진부령의 알프스 리조트에서 개최된 한 수양회에서 스위스에 희한한 항암제가 있다는 정보를 들었다. 부작용이 없고 독일과 스위스에서 상당한 임상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얘기였다. 스위스 바젤 부근의 소도시 알레스 하임에 있는 루카스 병원은 ‘희한한 항암제’ 미슬토 요법의 원조라 할 만큼 그 요법을 최초로 시행한 병원이다. 폴스하임 근교의 외셀브론 병원도 인상적이었는데 환자들에게 제공된 정교한 치유 환경은 그야말로 감탄을 자아냈다.
나의 충격은 프리덴바일러 병원에서 말기 암 환자들을 만나면서 절정에 달했다. 프리덴바일러는 독일 남부 슈발츠발트에 있는 ‘평화의 마을’이라는 뜻의 휴양지다. 이 암 센터는 독일 전역뿐 아니라 유럽 각국에서 온 환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환자들은 자신이 최선의 치료를 받고 있다고 자부했고 날마다 최상의 삶을 누리는 희망찬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이것은 죽어 간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암 환자들의 상황과 너무나 대조를 이루었다. 우리 환자들은 암의 세력에 압도되어 ‘죽어가는’ 반면 그들은 암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암 치료법을 발견하고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결국 의대 교수를 그만두고 사랑의병원을 설립했다. 이를 통해 한국 최초로 암 환우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완치율을 높이며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전인치유적인 면역치료의 신기원을 열게 된 것이다.
나는 대학 시절부터 마르틴 부버라는 철학자를 좋아했다. 그는 ‘나와 너’라는 책에서 이 세상의 모든 만남을 ‘나와 너’라는 인격적인 관계와 ‘나와 그것’이라는, 만남을 수단화하는 비인격적인 관계로 분류했다. 대부분의 만남이 ‘나와 너’의 아름다운 관계로 시작했다가 ‘나와 그것’의 비극적인 관계로 전락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것은 상대방을 귀히 여기지 않기에 발생하는 ‘사랑 부재 현상’이고 여기에 대한 치유는 성경으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고귀한 존재’라는 가르침으로 회귀하지 않는 한 ‘나와 너’로의 가치이동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사랑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가 시작되었다. 특히 중세 학자 성 크로스 요한이 제시한 ‘사랑의 단계’에 매료됐다. CS 루이스와 에릭 프롬의 저서도 큰 울림이 있었다. 성경에 기초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16)를 선포한 사랑의병원이 사랑의봉사단에 이어 설립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역경의 열매] 황성주 (12)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 없는 제품 만들겠습니다”
암 환자들 ‘식이요법’ 절박함 공감하며
킹덤 비즈니스로 생식을 과학화·보편화
자연건강 제품 만드는 회사로 자리매김
황성주 회장이 2017년 킹덤 비즈니스를 지향하는 이롬 직원들과 12번째 의료봉사 지역인 아프리카 우간다로 떠나기 전 인천공항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랑의병원은 독일에서의 체험을 토대로 암환우들을 섬기는 비전에서 출발했는데 나는 이것을 ‘꿈의 재료’라고 불렀다. 암의 원인 중 70% 정도가 먹는 것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식이요법’은 정말 절박한 것이다. 암 환자의 고통을 생각해 식이요법을 연구하고 그 문제를 간과하지 않았기에 생식을 개발하며 ‘비즈니스’라는 새로운 세계에 진입할 수 있었다.
생식은 내가 최초 개발자가 아니다. 다만 의학자로서 생식을 과학화하고 보편화하는 일에 앞장섰기에 생식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1997년 회사 설립 첫해에 1억, 이듬해에 24억, 그다음 해에 무려 100억의 매출이 일어났다. 그 후로도 계속 수백 억대의 매출을 기록하며 성장했으니 이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은 두유의 매출액이 생식을 넘어섰고, 수십 가지 자연건강 제품을 만드는 회사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이것은 암 환우들을 귀히 여겼기에, 그들의 불편을 이해하고 배려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 긍휼히 여기는 마음,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야말로 비즈니스 영역에서 가장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된다. 이롬 춘천 공장에 가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제품을 만들겠습니다’라는 표어가 있다. 그래서 이롬 곁에는 ‘세상을 이롭게 인간을 이롭게’라는 철학에 기초해 ‘이웃사랑 과학’이라는 구호가 항상 따라 다닌다.
사실 비즈니스의 묘미는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 데 있다. 사랑의봉사단으로 에티오피아에 갔을 때 일이다. 인력시장에 나와 있는 수많은 사람, 그 중에는 최근 단 하루도 일하지 못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생기를 잃은 그들을 보면서 나는 마음이 아팠다. 가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빵이 아니라 ‘직업(job)이었다. 그때 ‘이롬’을 시작하며 내 안에 또 하나의 꿈이 생겼다. 이 비즈니스를 세계화해서 모든 선교지에 복음과 함께 직업을 일으키는 것이다. 또한 18세기 모라비안 공동체를 생각하면서 경제공동체인 이롬 가족을 선교공동체로 전환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래서 직원들을 이로미안이라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들이 전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제2의 모라비안이 되도록 기도하고 있다.
풀러신학교 총장이었던 리처드 마우는 사역의 본질을 ‘절대가치를 현시대의 고차원 문화 속에 집어넣는 전략’이라고 했다. 킹덤 비즈니스를 추구하는 이롬은 주님의 다스림에 순종하는 회사다. 킹덤 비즈니스를 세계화하면 그것이 바로 강력한 비즈니스선교(BAM)가 되는 것이다. 의대 교수로서 사랑의봉사단 사역을 할 때는 많은 분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그런데 사랑의병원을 하면서는 칭찬이 사라졌고 비즈니스에 진출하면서부터는 오히려 핀잔을 받기도 했다. ‘사역자가 지녀야 할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이라며 주변에서 반대가 많았다. 하지만 믿음으로 승리하리라는 각오로 소처럼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뚜벅뚜벅 사명의 길을 걷고 있다.
***[역경의 열매] 황성주 (13) ‘자궁암 없음’ 통보받은 한 남성, 사기로 검찰 고발
검진 관계자들 구속에 지상파 보도까지
단순 컴퓨터 작업 오류로 판명됐지만
“깨끗한 그릇 돼라” 주님의 교훈 깨달아
2021년 4월 강원도 횡성 클럽캐슬에서 열린 사랑의 치유학교에서 암 환우들이 환담을 나누고 있다.
개원 당시 시작된 병원의 적자는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적자 해소 방안을 놓고 고민하던 나는 그만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평소 알고 지내던 분의 권유로 혈액 검진 사업을 시작했다. 검진팀이 각 직장을 방문해 직원들의 혈액을 채취해 수십 가지 항목을 체크하고 종합적으로 건강을 진단하는 것이다. 처음 몇 달 동안은 순풍에 돛을 단 듯 사업이 번창했다. 그런데 어느 날 검진팀이 내려가 있던 제주도에서 급한 연락이 왔다. 제주도에서 혈액을 채취했는데 의료법 위반 혐의로 팀장이 구속되고 나머지는 모두 입건돼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의 발단은 이랬다. 제주도에서 검진한 고객들에게 결과가 통보되었는데, 한 남성에게 ‘검사 결과 자궁암 없음’이라는 통지가 날아간 것이다. 그것은 컴퓨터 작업 오류로 잘못 결과가 통보되었다. 그러나 검진 결과를 통보받은 당사자는 이를 사기로 판단해 검찰에 고발했다. 결국, 사무착오임이 판명되었으나 당시 검찰은 ‘의료보건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적용해 의사가 없는 상황에서의 모든 의료 행위가 불법임을 지적했다. 당시 관행으로 행해지던 것을 범죄로 규정한 것이다. 제주도의 한 신문은 사회면 톱으로 ‘서울에 있는 사랑의클리닉이라는 사이비 의료기관에서 혈액 검진을 미끼로 돈을 받고 제주도까지 와서 사기 행각을 했다’고 보도했다.
내가 검찰에 소환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혈액 검진팀장이 구속되었는데 병원의 원장이 구속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였다. 더 큰 문제는 지상파 TV 9시 뉴스에 보도되리라는 정보였다. 구속되는 것보다 믿음으로 시작한 사랑의 클리닉이 불법에 연루되어 세간의 조롱거리가 되는 것이 더 괴로웠다. 전국적인 뉴스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기가 막혔다. 나는 “오, 주님”이라 부르짖으며 탄식했다.
이 사건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라는 것이다. 마치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안 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먼저 ‘깨끗한 그릇이 돼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자 그 후부터 은혜의 개입이 이어졌다. 구속은 기우에 그쳤고 TV 보도는 9시 뉴스가 아닌, 밤 11시에 방송되는 뉴스 시간에 나갔는데 결과적으로 큰 쟁점이 되지는 않았다. 나는 극적인 은혜로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고 언론이 터트린 문제의 크기에 비교해 조용하게 수습되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항상 벼랑 끝에서 은혜를 부어주신다. 최악의 경영상황에서 문득 선교사와 목회자 부부를 위한 종합검진의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망할 바에야 좋은 일이나 실컷 해보고 망하자는 각오로 획기적으로 할인을 했다. 그런데 그 반응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광고가 나간 그 날부터 전국에서 목사님들의 검진 예약 전화가 빗발쳤다. 부작용 없는 항암 면역요법이 신문과 잡지에 소개되면서 암 환자의 내원도 부쩍 많아졌다. 결국 1년 동안 누적되었던 적자가 해소됐고 병원 경영도 정상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제주도 사건은 내게 일생일대의 뼈아픈 교훈을 남겼고 평생 ‘정도경영’이라는 경영원칙을 붙잡는 계기가 되었다.
***[역경의 열매] 항성주 (14) 슈바이처 롤모델로 공부 집중… 두 달 만에 상위권 도약
가난 벗어나려 목장주인 꿈꾸던 고1 시절
미술 선생님의 ‘봉사하는 삶’ 말씀에 감명
훌륭한 의사 돼 타인 위한 삶 살기로 다짐
황성주 회장의 고교 1학년 때 꿈은 목장주인이 되겠다는 것이었지만 양인옥 미술 선생님의 은퇴수업 시간에 감명을 받아 슈바이처 박사처럼 봉사하는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꾸게 됐다. 2015년 에티오피아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는 황 회장.
쇼펜하우어는 두 가지의 불행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꿈을 이루지 못한 불행이고 다른 하나는 꿈을 이룬 불행이다. 전자는 결핍과 좌절이 계속되고, 후자는 오만과 권태의 시기가 오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꿈은 특별한 상황에서 꾸게 되거나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나의 어린 시절은 가난했고 상처가 많았다. 그래서 늘 목가적 환경을 동경했고 커서 목장 주인이 되겠다는 꿈을 꿨다. 나는 호남의 명문 광주일고에 다녔다. 하지만 내 성적은 전교 450등이었다. 그런 내게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이 고교 1학년 학기말 마지막 수업 시간이었다. 양인옥 미술 선생님의 말씀은 영원히 잊을 수 없다.
“내가 40년간 교직 생활을 했는데 가장 보람 있었을 때가 언제였는지 아니? 내가 어느 섬마을에 부임했을 때였지. 섬마을에서 2년 동안 아이들과 주민들에게 헌신하며 봉사하다가 육지로 발령이 나서 그곳을 떠나게 되었는데, 떠나는 날 부둣가에 온 마을 사람들이 나와 울면서 가지 말라고 하더라고…. 지난 40여 년을 회고해보니 아낌없이 나 자신을 내어주고 봉사하며 섬겼던 그 때가 가장 보람 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
그 말씀을 듣고 내 마음에 큰 감동이 밀려왔다. 선생님의 인생 회고를 통해 ‘경이의 감정’을 느꼈다. 그래서 나만의 안락한 삶을 위해 목장 주인으로 살기보다는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의사가 되어 슈바이처 박사처럼 일생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된 것도 그때였다. 미술 선생님의 인생 이야기 속에서 추출한 경이로움은 ‘봉사’라는 단어였다. 봉사라는 단어가 ‘의사’라는 직업, 곧바로 슈바이처 박사가 롤모델로 떠올랐다. ‘꿈’이란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다. 나는 곧 의과대학에 가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꿈은 또한 ‘확장성’을 갖고 있다. 의과대학을 가는데 서울의대를 가겠다고 마음을 정한 것이다. 이왕이면 서울의대를 가서 최고의 의사가 돼 최상의 삶으로 봉사하겠다는 열망이 생겼다. 당시 성적으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놀랍게도 꿈은 집중력을 유발한다. 꿈을 꾸게 되면 반드시 집중하게 된다. 내가 이 꿈을 꾸기 전에는 항상 어머니가 제발 공부 좀 하라고 다그치실 정도였다. 그런데 내가 공부에 집중하자 어머니의 태도가 180도로 달라졌다. 좀 쉬면서 공부하라는 것이었다. 결국 다음 달에 전교 200등, 그 다음 달에 전교 19등을 했다. 그래도 역부족이어서 결국 재수 끝에 꿈을 이뤘다.
집중하지 않으면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 재능은 10배의 차이를 가져오지만 집중은 1000배의 차이를 가져온다. 꿈은 모든 일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역할을 하며 자동적으로 절제하는 생활을 하도록 만든다. 현대인들의 불행은 꿈을 이루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이루지 못할 꿈조차 없는 것이 불행이다. 나이에 관계없이 끝없이 꿈을 꾸며 미래를 현재처럼 사는 사람이 젊은이고, 꿈 없이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이 늙은이다.
***[역경의 열매] 황성주 (15) 성경적 대안 교육의 훌륭한 역할모델 된 ‘꿈의 학교’
‘꿈의 학습법’ 콘텐츠 세계화를 선포하며
답답한 교육 현실에서 산소 같은 학교로
성적·성공보다 성경적 가치 실현에 중점
2018년 일본 나오시마에서 열린 꿈의학교 교사연수회에서 교사들이 꿈과 비전을 나누고 있다.
2000년이 저물어 가는 날 두 분의 학부모가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랑의 클리닉으로 나를 찾아왔다. 당시 아가피아에서 운영하던 꿈의학교를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공동체 리더들과 상의했더니 모두가 반대했다. 자산이 없고 빚만 남은 학교를 왜 인수하느냐는 것이었다. 내 경험상 일제히 반대하면 하나님의 뜻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비전을 선포했다. 당시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학습법인 ‘꿈의 학습’이라는 콘텐츠를 살리고 세계화하자며 차세대 대안 교육에 뛰어들었다. 이후 꿈의학교는 사랑의 공동체의 최고의 정신적 자산이 되었다.
그래서 2002년 국제 사랑의봉사단 산하로 꿈의학교가 새롭게 탄생했고 교육 영역에서 ‘인류 최후의 혁명은 사랑의 혁명’이라는 깃발을 들었다. ‘사랑으로 세계를 품어라’는 모토와 ‘선교자원의 못자리판’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킹덤 드림’의 비전으로 설립된 것이다. 감사한 것은 꿈의학교가 성경적 대안 교육의 훌륭한 역할모델이 되었고 이후 수백 개의 기독교 대안학교가 같은 비전으로 설립되었다는 것이다.
올해로 설립 20주년을 맞았는데 졸업식에서 다음과 같은 감사 제목을 올려 드렸다. “꿈의학교만의 독특한 교육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동행하신 하나님, 꿈의학교가 많은 위기와 아픔, 부족함과 연약함이 있었지만 결국 승리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학교’로 세워져 가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성적이나 성공이 아닌 성경적 가치 실현을 열망하는 ‘시간이 갈수록 빛나는 하나님의 사람’을 키울 수 있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신 감동을 이렇게 토로했다. “두 알의 불씨/사랑과 꿈/하나는 횡으로/하나는 종으로/생의 직물을 짜다/쓰디쓴 시간/곱디고운 인생길” 이런 짧은 시를 통해 지난 20년 꿈의학교가 걸어온 꿈길과 사랑길을 되돌아봤다. 마치 요한복음 2장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떠 온 하인들은 알더라’라는 말씀도 생각났다. 본래 꿈의학교가 있는 영탑리 땅에는 암 환우들을 섬기는 병원이 있었지만, 주님의 강권적인 은혜로 미래의 꿈나무를 키우는 교육의 현장으로 바뀌었다. 지금까지 1000명 가까운 졸업생을 배출하게 되었는데 그들이 세계 곳곳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지금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제 꿈의학교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설립 20주년을 맞아 꿈의학교 3.0의 비전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오랫동안 사랑의 공동체 차원에서 기도하고 씨를 심었던 차세대 교육혁명을 위한 디지털 플랫폼 프로젝트도 싹이 트고 있다. 지금 세계는 ‘뉴노멀’ 시대를 맞고 있다. 다들 박탈의 시대,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며 불안해하고 있다. 그러나 꿈의학교는 오히려 훈훈한 봄이 오는 길목에 서 있다. 시편 23편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주시는 주님’을 묵상해본다. 꿈의 학교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성경적 대안학교이며 답답한 교육 현실에서 산소와 같은 학교이다. 꿈의학교에 갈 때마다 고백하는 말이 있다. “100% 성령님이 빚으신 작품입니다.”
***[역경의 열매] 황성주 (16) 산을 옮기는 ‘겨자씨 믿음’… 심는 것은 우리의 몫
선교사관학교로 쿠바에 심은 선교의 씨앗
17년 만에 쿠바 전역 주님의 역사 일어나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분은 오직 주님
2002년 2만 달러에 매입해 개교한 쿠바 선교사관학교. 17년 만인 2019년 다시 방문한 황성주 회장(앞줄 왼쪽 두번째)과 전재덕 선교사(뒷줄 맨 왼쪽) 등 선교팀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02년에 쿠바에 다녀왔다. 쿠바는 공산권 국가라 교회 설립과 복음 전파의 자유가 없는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처소교회가 부흥하고 있었다. 고학력자와 다재다능한 사람들이 많아 ‘이 나라는 선교의 나라’라는 영적 통찰력을 가지게 됐다. 2만 달러로 집 한 채를 매입해 ‘쿠바와 중남미, 세계 선교를 위한 선교사관학교(DAAM)를 시작했다. 겨자씨만 한 믿음으로 선교의 씨앗을 심었다.
그런데 2019년 17년 만에 쿠바를 다시 방문할 기회를 얻었는데 정말 놀라운 열매들을 보게 되었다. 그동안 이 선교사관학교에서 2300명의 졸업생이 나왔고, 쿠바 전역에서 교회를 개척해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킬 뿐 아니라 90개의 분교를 설립해서 현재 1600명의 사역자와 선교사 후보생들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비슷한 사례로 필리핀 일로일로에 한국인을 보낼 선교사관학교를 세운 적이 있었다. 그 사역은 무산됐지만, 오히려 필리핀인들을 해외에 선교사로 파송하는 기회가 됐다. 그리고 2005년 중국 가정교회 지도자들이 최초로 한국 선교사들의 선교지를 순례하는 현장으로 활용돼 그들에게 세계 선교 비전의 씨앗을 심는 기회가 됐다. 지금은 중국의 가정교회가 2030년까지 2만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엄청난 비전으로 기도하고 있다.
시카고 국제품성생활훈련원(IBLP)에서 성품 훈련을 받을 때의 일이다. 미국 선교사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 “그리스도인은 큰일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큰일은 다 세상 사람들이 합니다.” 여기서 그는 잠깐 멈추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작고 소박한 일을 하는 사람이란 말인가? 그가 갑자기 외쳤다. “그리스도인은 불가능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정말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요즘은 디지털 시대와 초연결 사회가 되다 보니 세상에서 ‘복잡계’(complexity)라는 말이 더욱 실감이 난다. 최근 팬데믹까지 가세해 불확실성과 복합성이 증가하여 일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게 됐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 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의 말씀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 같다.
40여 년 전엔 캠퍼스에 복음의 씨앗을, 30년 전에는 전 세계 곳곳에 사랑의 봉사단을 통한 복음과 사랑의 씨앗을, 27년 전에는 사랑의 병원 씨앗을, 25년 전에는 이롬을 비롯한 킹덤비즈니스 씨앗을, 20년 전에는 꿈의학교의 씨앗을 심었다. 겨자씨 믿음을 심는 것은 우리의 일이고, 산을 옮기고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 3:7) 주님은 겨자씨 같은 믿음을 통해서 일하신다. 그러나 겨자씨라도 심지 않으면 주님은 일하실 수 없다.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역경의 열매] 황성주 (17) 결혼 환상 깨지고 부부 갈등 시작… 에로스 한계 깨달아
서로 좋아 열렬한 연애 끝에 결혼했지만
성숙 되지 못한 내면의 존재들 서로 충돌
치유 비밀은 조건 없는 사랑 경험하는 것
2020년 장남 결혼식장에서 주례를 맡은 황성주 회장과 평생 동고동락한 부인 배미경 사모가 행복한 표정으로 활짝 웃고 있다.
나는 결혼이라는 과정에서 나의 감춰진 실체를 깨달았다. 나는 결혼을 두 사람이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결혼해 보니 네 사람이 결혼한 것이었다. 내 속에 분노하는 소년이 있었고, 아내 속에 상처받은 소녀가 있었다. 나는 아내는 사랑할 수 있었지만, 내면의 상처받은 소녀는 사랑할 수 없었다. 아내도 내 속의 분노하는 소년은 사랑할 수 없었다. 겉으로는 성인이지만 아직 자라지 않은 성인 아이들이 내면에 존재했다. 두 아이가 부딪히면 부부싸움으로 이어졌다. 결혼 이후 내가 얼마나 비참한 존재인가를 깨달았다. 이 세상에서 사랑하겠다고 서약했던 유일한 여인을 사랑할 수 없는 저 자신을 수용할 수 없었다.
내적 아이는 조건 없는 사랑을 받지 못한 결과이고, 치유의 비밀은 조건 없는 사랑(아가페)을 경험하는 것이다. 나는 아내와 6개월 동안 열렬한 연애 끝에 결혼했다. 그만큼 아내는 내게 소중했고 물론 서로가 좋아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결혼의 환상은 깨지고 에로스의 한계를 깨닫게 됐다. 에로스는 가치를 느끼는 사랑이기에 그 가치가 떨어지면 급격하게 식어버린다. 성격과 취향과 비전의 미묘한 차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결혼한 지 일 년도 안 되어 환상이 깨지고 우리는 부부 갈등 시대에 진입했다. 그런데 부부 싸움을 하던 어느 날, 그토록 사랑을 고백했던 내 입으로 아내가 가장 상처받는 말을 골라서 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처럼 나에 대해 비참함을 느껴보긴 처음이었다. 나의 영적 파산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충격적인 낭패감 이후 10여 년 동안 나의 내면을 탐구하며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가정의 회복 없이 사역의 성공을 기대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과 피해의식이 끊임없이 교차했다. 교만과 자기 비하가 뒤섞인 불안정한 상태에서 ‘변화를 위한 몸부림’이 계속됐다. 처절한 절규 가운데 주님이 나를 만지셨다. 변화는 나의 실체를 깨달을 때 시작된다. 내가 온전한 부분이 없는 총체적인 환자임을 인정하게 됐다. 감추는 것이 은혜가 아니라 드러나는 것이 은혜였다. 때로는 가면을 벗고 나 자신의 진정한 모습과의 정면대결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 이런 자기 성찰을 통해 내면의 치유와 회복이 가속화되었고 아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게 됐다. 그리고 부부의 회복이 자녀에게까지 확산되는 ‘회복의 연쇄반응’을 경험했다.
작가 이청준의 표현대로 인간은 ‘본래 깨어진 존재’이다. 그래서 본질적인 취약점이 있는 인간 존재를 벗어나지 않는 한 완전한 치유도, 완전한 관계도 없다. 사랑은 우정(필레오)이다. 주님의 사랑(아가페) 안에서 부부가 다정한 친구로 서로를 수용해야 한다. 에릭 프롬의 표현대로 하면 ‘상대방의 성장에 대한 적극적 관심’이다. 이렇게 만남의 목표를 설정하면서부터 나는 자유인이 됐다. 이 체험을 통해 시작한 사역이 전인 치유사역이다. 1995년 사랑의 클리닉에서 시작한 인격치유학교가 그 효시다. 이후 전인 치유학교로 20여 년간 이어지고 있다.
***[역경의 열매] 황성주 (18) 아티족 최초 예배당 세워지는 하나님의 역사 일어나
병원 등 선교 허브 활용한 전략적 선교부터
재난지역 의료팀 파송 등 모바일 선교까지
주님이 만들어 놓은 복음 생태계 100% 활용
황성주 회장과 사랑의봉사단 단원들이 2018년 베네수엘라에서 청년리더 70명을 훈련시키고 있다.
“비행기가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초록빛 섬으로 진입하니 수십 개의 나지막한 산봉우리들이 마치 춤추는 것처럼 현란하게 우리를 맞았다. ‘일로일로’라는 지역으로 대표되는 강원도 만한 크기인 필리핀의 파나이섬. 거기에는 자연의 경치보다 더 아름다운 감동을 자아내는 많은 사건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파나이섬에 간 지 셋째 날, 우리는 아티족이라는 미전도 종족이 사는 안티끼의 바닷가 마을을 방문했다. 이들은 본래 필리핀의 원주민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소수 부족으로 전락해 국가 보호를 받는 처지에 있었다. 이들을 위해 기도하던 중, 서태원 선교사님의 현지 제자 한 분이 스스로 자원해 이곳에 복음을 전하게 됐다고 한다.
10인용 미니버스에 30명의 어린 단원과 의료 장비, 약품, 기타 사역을 위한 짐까지 가득 싣고 이들을 찾아가는 길은 기쁨으로 충만했다. 단원들은 버스 지붕 위에 타는 것을 좋아해서 본의 아니게 2층 버스가 되기도 했다. 울퉁불퉁한 길이나 험한 산길일수록 더 신바람 나는 단원들. 해안선을 따라 아티족을 찾아가는 길은 전형적인 아열대 풍경이었다. 어릴 적 꿈에서나 아스라이 그리던 바닷가의 가난한 마을에서 의료 진료와 인형극, 어린이 사역이 시작됐다. 결국 이곳에 미전도 종족인 아티족 최초의 예배당이 세워지는 역사가 일어났다.
처음 사랑의봉사단 체험은 어쩔 수 없이 모든 초기 선교가 그렇듯 감상적 측면이 강했다. 그러다가 아프리카 마사이 땅에 사랑의 병원을, 인도 봄베이 슬럼가에 사랑의 진료소를 세우고 선교의 허브(Hub)를 확보하는 전략적 선교를 시도하곤 했다. 물론 초기에는 동아프리카와 인도의 고통받는 지역에 주력했지만 모잠비크의 대홍수, 인도네시아의 지진, 소말리아 내전, 아이티의 대지진, 아프간 전쟁, 이라크 전쟁 등 재난 지역에 의료선교팀을 파송하는 모바일 선교를 병행했다. 중국의 가정교회와 중앙아시아 지역에는 말씀 선포와 전인치유 사역을 했는데 남가주 은혜교회의 김광신 목사님과 감비아의 이재환 선교사님을 만나 ‘성령과 기도’ ‘성육신’이라는 선교의 본질을 알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케냐의 안찬호 선교사, 인도의 백종태 선교사, 네팔의 백종윤 선교사, 카자흐스탄의 김삼성 선교사, 쿠바의 전재덕 선교사, 태국의 정도연 선교사 등 훌륭한 선교사들과 만나 배우고 깊이 동역하는 기쁨도 있었다.
북한의 청소년들을 위한 연변 사랑의 집 사역과 유럽 CBMC 순회를 통한 유럽 재복음화 사역, 미국 변혁운동과 중남미 순회 사역, 최근 집중한 에티오피아와 우간다, 베네수엘라 사역 등이 기억에 남는다. 120여 개국을 다니며 현지 선교사들과 협력해 끝없이 복음과 사랑의 씨앗을 심는 씨앗 선교가 핵심이었던 것 같다. 특히 가장 고통받는 지역과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지역에 집중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선교는 하나님이 이미 만들어 놓으신 복음의 생태계를 100% 활용하는 것이다. 특히 요즈음 같이 거대한 풍랑이 일어나는 팬데믹 시대에는 킹덤 드림의 파도를 타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선교가 진행 중이다. 지금이야말로 선교의 황금기이다.
***[역경의 열매] 황성주 (19) ‘골고다의 죽음과 승리’ 실존 체험한 고비 사막 마라톤
철인들도 1년간 훈련하는 죽음의 마라톤
주님의 임재 증명하기 위해 무모한 출전
사투 중에 주님 사랑과 은혜의 진수 경험
황성주 회장이 2011년 6월 목숨을 건 고비사막 마라톤 4일째 1구간에서 짐바브웨 대표와 미국 대표를 추월해 달리고 있다.
50대 중반이던 2011년 여름 고비사막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면서 ‘죽어도 좋다’는 사인을 했다. 주님의 인도하심은 참으로 놀랍고 신기했다. 원래 나는 달리기보다는 등산을 좋아했다. 그래서 위험한 등반을 강행하다 큰 재난을 당한 적이 많았다. 1990년 서울대 병원 전공의 시절 2박 3일 휴가 중 지리산 종주를 강행하다 조난을 당해 구조대에 의해 구조된 일도 있었다. 의대 교수 시절에는 겨울철 등반이 금지된 한라산 북벽을 타고 내려가다 15시간 길을 잃은 적도 있었다. 어드벤처 레이스는 그야말로 모험의 연속이고 죽음의 마라톤이라는 별명답게 도전의식을 자극하는 종목이다.
나는 고비사막 마라톤에서 십자가 영성의 진수를 경험했다. 거듭남의 원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골고다의 죽음을 실존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나는 그전에는 10㎞ 단축 마라톤도 뛰어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 철인 3종, 5종 선수들과 노련한 산악인들이 출전한다. 그들은 극한 상황에서의 생존을 위해 1년 정도 훈련하며 몸을 만든다. 그리고 일주일 치 식량과 수십 가지 장비가 든 배낭을 메고 산맥과 사막을 횡단하는 오지 레이스에 나선다. 이 대회에 중년 나이에 참석한다는 것은 매우 무모한 일이었다. 깊이 기도하던 중 ‘다른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참석하지만 너는 나의 임재를 증명하기 위해 가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래서 준비하는 과정에서 말할 수 없는 평강이 있었다. 우선 나 스스로를 몰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갔다. 현실적 과제는 고비사막에서 살아남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존을 위해 나를 변화시켜갔다. 변화는 압박감이 클 때 일어난다. 뒤늦게 참가를 결정했기에 몸을 만들 시간이 없어 처음부터 초강도 훈련에 들어갔다. 5월 말에는 9㎏의 배낭을 메고 불곡산을 2시간30분 동안 등반했고, 6월 초순에는 청계산과 대둔산을, 대회 일주일 전에는 1박 2일 지리산 등반으로 훈련을 마무리했다.
드디어 6월 24일. 중국 우루무치로 향하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오직 한 가지 목표에 몰입했고, 눈에는 타오르는 불이 있었다. 어느 날 고비사막 마라톤을 준비하다 내 눈빛을 본 적이 있었다. 내 생애 그 어느 때보다 빛나는 눈빛, 강렬한 눈빛이었다. 실제로 고비사막을 달릴 때 기온이 50도 이상으로 올라간 적이 있었다. 그때 보았던 이글거리는 태양의 강렬한 빛처럼 당시 내 눈빛은 지울 수 없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는 온몸이 부서지고 온 뼈가 망가지는 처절한 사투를 벌였다. 사막의 한복판에서 절대고독과 결핍의 은혜를 깊이 누릴 수 있었다. 지금도 사막 마라톤 복장을 하고 배낭을 메고 달릴 준비를 하면 눈빛이 바뀐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결국 하루에 12시간씩 3박 4일을 완주하며 순간마다 쏟아지는 하나님의 사랑, 상상할 수 없는 은혜의 진수를 경험했다. 그 결과 ‘킹덤레이스(규장)’라는 책이 한 권 탄생했다. 고비사막에서 영적 전투의 핵심과 승리의 비결을 완벽하게 터득할 수 있었다. 지금의 인생 달리는 킹덤 레이스를 위한 준비 작업이다.
***[역경의 열매] 황성주 (20) ‘백만 자비량 선교 운동’으로 만인 선교사 시대 열어
꿈의 학교 영성 훈련 모임 위한 기도 중
성령 인도로 새로운 ‘복음 비전’ 떠올라
장기 비전 기획 세우고 선교 전략 선포
황성주 회장이 2018년 KWMA 세계선교대회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세계선교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2004년 미국 시카고에서 한인세계선교협의회(KWMC)가 주관하는 세계선교대회가 있었다. 나도 그곳에서 강사로 섬기게 되었는데 ‘전인 치유 선교’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그때 대회를 공동주관한 KWMA 대표회장이셨던 박종순 목사님의 제안으로 생각지도 않은 법인 이사가 됐다.
2005년 1월 한국 세계선교협의회 총회와 이사회가 열리는 날을 앞두고 나는 꿈의학교 교사 6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교육사관학교에서 영성 훈련을 인도하고 있었다. 그 모임을 위해 기도하던 중 나는 다른 중보 기도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급하신 마음, 선포할 것을 명령하시는 것만 같은 마음을 받아 그 마음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비전 한 가지가 떠올랐다. 그것은 ‘지상명령에 순종한 백만의 평신도들이 현장과 자기 영역에서 복음을 전하다 전 세계로 보냄을 받고 대추수의 역사를 이루시는’ 비전이다. 나는 속으로 규모가 엄청난 데다 나 혼자만의 엉뚱한 생각이라 여기며 그 마음을 억눌러왔다. 하지만 거역할 수 없는 성령의 터치가 있었다.
일단 무조건 순종하기로 했다. 그리고 한국 교회의 리더들에게 도전하기 위해 밤새 자료를 만들었다. 백만 자비량 선교운동(MT 2020) 기획서였다. 다음 날 아침 이사회와 총회에서 박종순 대표회장, 강승삼 사무총장, 한정국 총무의 적극적인 지지로 통과됐다. 당시 ‘Target 2030’(2030년까지 십만 명의 전임 선교사를 파송하는 비전)과 함께 한국 선교의 새로운 장기 비전을 세웠다. 2006년 1월 9일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에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63개 교단, KWMA 소속 선교단체 대표, 해외한인교회 대표, 한인 선교사 대표들이 모여 ‘백만 자비량 선교사 운동’ 선포식을 가졌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중보자 한 분에게 백만 자비량 선교사 운동을 놓고 기도해주시도록 부탁했다. 후에 그분은 “제가 박사님 앞에서는 좋은 비전이라고 맞장구를 쳤지만,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하나님, 백만 명을 보내다니 말이 됩니까?’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너 무슨 말을 하고 있니? 나는 천만 성도를 다 보내고 싶다’는 마음을 주셨다”고 했다. 많은 분이 처음에는 황당해하다가 결국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읽고 동역하는 일들이 일어났다.
결국 이 운동은 Target 2030운동에 흡수되어 조용히 추진되고 있다. 놀라운 일은 뜨겁게 이 운동을 진행하던 당시보다 팬데믹 상황에 더욱 딱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최근 크리스천 최고경영인, 교육자, 언론인, 금융인들이 모인 모임에서 비전을 나누었더니 많은 분들이 ‘나도 백만 자비량 선교사로 파송받고 싶다’고 했다. 2020년 평창포럼에 참석했던 한 목사님은 출석한 만 명의 성도들에게 2030년까지 모든 성도를 다 ‘비전 선교사’로 파송하겠다며 ‘한 명도 남지 말라’고 도전했다고 한다. 팬데믹과 핍박의 시대에 교회 부흥은 ‘얼마나 모이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파송하느냐’에 달려있다. 만인 제사장을 넘어 ‘만인 선교사 시대’가 열리고 있다.
***[역경의 열매] 황성주 (21) 한국 변혁 운동 이끌며 모든 분야서 선교영역 넓혀
선교전략가 루이스 부시 박사 만난 후
선교와 변혁 양 날개의 중요성 깨닫고
세계복음화 완성 위해 변혁운동에 투신
황성주 회장이 2007년 1월에 열린 평양 대부흥 100주년 변혁대회에서 말씀을 선포하고 있다.
2006년 김준곤 목사님의 소개로 세계적인 선교전략가 루이스 부시 박사를 만났다. 그분을 통해 선교와 변혁이라는 양 날개의 중요성을 알았다. 즉 개척 선교와 영역 선교가 병행해야만 세계복음화를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역선교는 교회 영역뿐 아니라 비즈니스, 교육, 정부, 문화, 미디어, 가정의 모든 영역을 변화시키자는 운동이다. 나는 곧바로 세계변혁운동(Transform World)에 뛰어들었다.
곧바로 한국 변혁 운동이 시작되었고 김상복 목사님과 함께 이 운동을 이끌어 갔다. 그러던 중 평양 대부흥 100주년 변혁 집회를 섬길 기회가 왔다. 2007년 1월 7~14일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2만 명의 성도가 모여 큰 집회를 열었다. 한국교회에 쏟아부으신 성령의 역사가 넘치는 집회였다. ‘부흥을 넘어 변혁으로’라는 주제로 열린 이 대회는 세계 최초의 3계열 연합집회였다. 즉 복음주의, 오순절주의, 은사주의가 모였고 강사로는 로렌 커닝햄, 루이스 부시, 하이디 베이커, 조용기 목사, 김준곤 목사, 홍정길 목사, 이동원 목사, 오정현 목사 등이 섬겨주셨다. 이 대회에서 2가지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다.
첫째는 조용기 목사님이 말씀을 선포할 때였다. 모든 복음주의 목사들이 ‘성령 사역을 비판했던 일을 회개합니다’라며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는 역사가 일어났다. 같이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진정한 연합의 본질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두 번째는 남미의 알베르토 모테시라는 강사가 갑자기 ‘혹시 여기에 모슬렘권이나 공산권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할 사람 있으면 나와라. 기도해 주겠다’라며 도전을 했다. 나는 순간 당황을 했다. ‘한 명도 안 나오면 어떡하나’라고 눈을 감았다. 그런데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 눈을 떠보니 1분도 안 돼 수천 명이 뛰쳐 나와 ‘내가 죽겠나이다’라며 기도 받기를 원했다. 그 날의 감격은 잊혀지지 않는다.
이 대회를 섬기고 나서 개인적으로도 진기한 일이 생겼다. 파격적인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2007년 2월 나를 위해 깊이 중보해주시던 한 선교사가 나를 만나러 오면서 A4용지 4장을 가져왔다. 거기엔 당시 내가 처해 있던 모든 상황이 구구절절 다 적혀 있었다. 다른 사람이 도저히 알 수 없는, 나만이 아는 내용이 열거돼 있었다. 그 핵심은 모든 사역을 중단하고 미국 콜로라도로 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많은 사역을 원하지 않는다. 너의 열심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나는 많은 사역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교제를 원한다. 네가 내 안에서 안식하기를 원한다. 그곳에서 영적 거인들을 만나 기름 부음을 체험하고 다음 사역을 준비하라.”
거역할 수 없는 부르심이었기에 순종을 결단했다. 물론 이 말씀을 확증하는 기도가 필요했고 가족의 동의, 사역들을 위임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 등으로 3개월의 준비 기간을 거쳤다. 콜로라도 스프링스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나는 그곳에서 순간순간 하나님의 경이로움에 빨려드는 경험을 했다.
***[역경의 열매] 황성주 (22) 날마다 킹덤 드림 펼치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목도하다
미주 사랑의 봉사단과 한국일행 합류로
공동체 형성되며 모든 기관서 비전 확산
킹덤 드림 선포 후 성령 충만함 모두 경험
황성주 회장이 2010년 9월 콜로라도 아스펜에서 킹덤 미니스트리 스쿨에서 ‘하나님의 세계 경영’을 주제로 강의한 후 학생들과 합심 기도를 하고 있다.
2007년 5월 미국 콜로라도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하나님께서는 내게 시편 37편의 말씀을 주셨다. 영어 성경을 보는데 ‘settle down’이라는 단어가 눈에 확 들어왔다. 나는 이 말씀을 붙잡았다. 그러자 내 안의 심리적 갈등과 막연한 불안이 사라지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게 됐다. 콜로라도의 연구년 기간 덴버신학교의 객원 연구원으로 브루스 디마레스트 교수에게 영성신학을 배웠다. 세계적인 영적 흐름의 큰 그림을 볼 수 있게 된 것이 큰 수확이었다.
LA에 있던 미주 사랑의봉사단 본부가 콜로라도 스프링스로 이전하면서 당시 미주법인 CEO였던 김태진 장로가 합류하고, 한국에서도 어용희 실장 일행이 입국하여 콜로라도 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지체들이 오는 날, 다 같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찬양하며 깊은 감사의 시간을 가졌다. 6월에 김 장로님이 이사 오는 날, 그들을 마중하러 아스펜으로 가던 산길에서 축복의 무지개와 함박눈을 동시에 경험할 때에는 마치 하나 됨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사인을 본 것만 같았다.
콜로라도에서 지내는 동안 하나님은 모든 사역의 틀을 바꾸셨다. 날마다 킹덤 드림을 펼치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목도했다. 이후 점진적으로 킹덤 드림이 모든 기관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킹덤사역학교(KMS)는 후에 킹덤드림스쿨로 확장되었지만, 당시 이 학교를 통해 공동체의 지체들에 비전이 확산됐다. 헐벗은 산처럼 삭막했던 공동체에 하나님이 새 일을 시작하신 것이다. 2009년 7월 제1기 KMS가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열흘 동안 열렸다. 그 기간 사랑의 공동체(이롬, 사랑의 병원, 꿈의학교, 국제사랑의봉사단 등 10개 기관)의 리더들이 모여 기도하며 함께 킹덤 드림 선언문을 만들어 선포했다.
말씀과 기도와 안식과 누림의 충만함을 모두가 경험했다. 모든 리더들은 사랑의공동체가 축복의 통로로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데 동역하기를 열망했다. 그래서 2009년 7월 8일 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워크숍을 개최해 2010년을 킹덤 드림 원년으로 삼아 2020년까지 추구할 ‘킹덤 드림 2020’ 10개 선언문을 발표했다. ‘한 몸으로 사역한다’ ‘변혁의 기초는 개인과 가정의 변화이다’ ‘기쁨의 일터를 지향한다’ ‘콜로라도에 킹덤드림센터를 운영한다’ 등이다.
최근 ‘킹덤드림 2030’을 선언하며 ‘새로운 시즌, 새로운 세대’라는 주제로 제2기 사역이 시작되었다. 이는 2020년 전 세계 영적 리더들이 콜로라도에서 선언한 ‘빌리언 소울 하비스트’운동과 깊은 연관이 있다.
연구년 기간 순복음 뉴욕교회의 김남수 목사와의 만남은 정말 특이한 것이었다. 그 만남을 통해 2008년 뉴욕의 초대형교회를 4개월 동안 풀타임으로 목회하는 은혜가 있었고 콜로라도에서 김 목사님과 루이스 부시를 연결해 준 것이 세계적 차세대 사역인 ‘4/14 운동’ 계기가 됐다. 뉴욕에서 예수서원을 운영하는 인문학의 대가 고석희 목사님의 권면을 통해 사진예술에 심취하게 된 것도 큰 은혜였다.
***[역경의 열매] 황성주 (23) ‘짐마’ 릴레이 금식 기도 소식 듣고 본격적 사역 시작
교회 부흥에 흥분해 폭동 일어난 짐마
집회 중 치유와 회복 차원서 금식 선포
선교대국 잠재력 발견하고 봉사단 파송
선교특전단 단원들이 에티오피아 짐마 지역 대도교회에서 어린이들을 축복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사소한 일이 없다. 하나님의 역사는 항상 사소하게 보이는 일에서 일어난다. 위대한 일은 사소한 것, 하찮은 것, 귀찮은 것을 귀히 여길 때에 이뤄진다. 2012년 한 선교사님을 통해 에티오피아 짐마지역에서 집회를 해달라는 부탁이 왔다. 이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한국대사님을 만났는데 그분은 다른 지역은 몰라도 짐마 지역은 절대 가면 안된다고 6번이나 강조했다. 정말 특이한 일이었다. 그래도 속으로 ‘짐마로 가라는 뜻이구나’하며 결단하게 됐다.
짐마의 본 이름은 ‘카파(Kappa)’로 세계적인 커피 원산지이다. 이 지역은 95% 이상 모슬렘지역인데 교회들의 큰 부흥이 일어났고 여기에 흥분한 과격 무슬림들이 63개 교회에 불을 지르고 폭동을 일으킨 사건이 발생했다. 현지인들의 열망에 의해 치유와 회복의 차원에서 말씀집회를 하게 되었는데 3000명이 모이는 큰 역사가 일어났다. 그 때 강사로 말씀을 선포할 때 하나님께서 ‘짐마 지역의 부흥과 변혁을 위해 금식을 선포하라’는 강한 마음을 주셨다. 그래서 짐마를 위한 40일 금식을 선포하고 같이 뜨겁게 기도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귀국했는데 얼마 후 그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릴레이 금식을 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모든 사랑의 공동체 기관 리더와 임원등 40여명이 에티오피아로 향했고 본격적인 짐마 사역이 시작됐다. 10년 동안의 기도와 사역의 열매로 짐마 지역을 붙잡고 있는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졌고 교회의 부흥은 물론 지역사회에도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사실 에피오피아는 한국 전쟁때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참전한 혈맹국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셀라시에 황제의 황실 근위대 6000명이 참전했는데 그들은 ‘강뉴부대’라고 불렸고 한국전의 크고 작은 전투에서 253전 253승의 전과를 올린 진기록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80년대 극심한 기근과 대규모 기아로 알려진 나라였기에 사랑의 빚을 진 나라라는 큰 부담감이 마음에 밀려와 97년 사랑의 봉사단을 파송하며 에티오피아를 처음 방문하게 됐다. 그들이 교회에서 금식을 하며 주님께 매달리는 모습과 무슬림들에게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 또한 아프리카에서 식민통치를 받지 않은 유일한 국가로 자긍심과 품격을 가진 나라임을 알고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아프리카에서 선교대국이 될 수 있는 엄청난 잠재력이 있음을 알고 간절히 기도했다.
국제사랑의 봉사단에서는 ‘눈맞추기’라는 은어가 있다. 어린 아이들의 눈망울 마주보고 있으면 사랑이 피어난다. 그들을 붙잡고 기도하면 평생 동지가 되고 자비량 선교사가 된다. 평소 김준곤 목사님은 ‘돈을 보내주는 것보다 가서 손 한번 잡아주는 인격적 터치가 중요하다’고 역설하셨다. 일단 가야 한다. 그 땅을 밟고 중보하는 타문화 섬김 체험을 하고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고 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초기에는 ‘러브 에티오피아’라는 이름으로 의료사역, 교육사역, 스포츠 및 비즈니스 사역(BAM)을 비롯한 복음 전파를 위한 총체적 선교를 시도했다. 후기에는 지도자 집중훈련과 청년들에게 선교의 꿈을 심는 ‘미션 에티오피아’ 사역으로 전환했다. 도중에 엄청난 방해와 역경과 좌절이 있긴 했으나 절대 감사하며 줄기차게 복음의 씨앗, 사랑의 씨앗, 선교의 씨앗을 심었다. 지금까지 짐마를 중심으로 대도, 아가로, 아코, 툴레마, 고까, 토바에서 사역을 했다. 지역 이름만 들어도 밀려오는 감동과 잊혀지지 않는 얼굴들이 눈에 선하다.
***[역경의 열매] 황성주 (24) ‘킹덤 교육의 허브’로 우뚝 선 우간다 쿠미대학교
폐교위기에 경영난 겹친 학교 운영 맡아
초기 데모와 캠퍼스 방화로 힘들었지만
학생들 사랑으로 섬기며 평판·신뢰 쌓아
쿠미대학교 챈슬러인 황성주 회장이 2018년 졸업식장에 입장하고 있다.
경영의 본질은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고, 리더십의 본질은 스토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어느 날 우간다 쿠미대학교에 파송된 국제사랑의 봉사단의 허종학 대표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 대학을 맡아서는 안 되는 20가지 이유를 보내왔다. 특히 신입생이 반으로 줄어 폐교 위기에 있는데 직원들로 구성된 대학의회가 급여를 50% 인상하기로 했다는 것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약속된 모임이었기에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 기아대책의 고 정정섭 회장과 함께 졸업식에 참석했다. 그 전날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 도착해 무려 9시간을 비포장도로로 달려왔기에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래서 아침을 금식하며 법인 이사회에 참석했는데 이 대학의 설립 주체인 정 회장이 차기 이사장 겸 챈슬러(Chancellor·오너십을 가진 총장)로 나를 지명했다. 그래서 ‘도저히 못 하겠습니다’라고 하려고 입을 여는데 내면에서 강한 음성이 들려왔다. ‘어차피 너는 못 한다. 내가 한다’ 결국 그 제안을 ‘아멘’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쿠미대는 20여 년 전 한국 선교사가 해외에 설립한 최초의 크리스천 종합대학교이다. 쿠미라는 우간다 오지에 50여 명의 교직원과 1300명 내외 학생들이 있는 소규모 대학이다. 그래도 지난 20년 동안 수많은 크리스천 리더들을 키워내 주지사만 2명을 배출한 영향력 있는 학교이다. 우간다는 국가 평균연령 15세로 세계에서 가장 젊은 나라이고 여성의 평균 가임수가 7.0이 넘는 세계 1위의 다 출산 국가이다. 쿠미대는 지난해 사범대학만 700여명의 졸업생을 내며 크리스천 교사들을 공급하고 있다. 아프리카 전역에서 어린 심령들을 누가 차지하느냐의 영혼 빼앗기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고, 쿠미대는 이슬람의 남진을 저지하는 최전선에 있다. 교수 촌인 모라이까라에서 매년 열리는 중보기도회는 그만큼 뜨겁고 간절하다.
대학 경영을 맡은 초기에 학생들이 데모하며 캠퍼스에 불을 지르는 사태로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고통에다 모든 리더십들이 사퇴하는 아픔도 있었다. 감사하게도 지금 쿠미대는 팬데믹으로 우간다의 대학들이 급여를 지급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급여가 나가는 유일한 대학이 되었다. 홍세기 총장을 비롯한 훌륭한 교수들이 학생들을 사랑으로 섬기며 평판과 신뢰를 쌓아온 결과이고 강력한 중보팀으로 구성된 후원자들이 헌신한 열매이다.
최근 전 세계 교육학자들과 함께 ‘교육혁명’이라는 책을 펴낸 비샤 망갈와디 박사는 쿠미대에서 힌트를 얻어 전 세계 교회의 인프라를 100% 활용해 저렴한 학비로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킹덤교육의 허브(KEH)를 꿈꾸고 있다. 놀랍게도 최고의 인재를 키우는 ‘영역 선교’, 우간다의 오지라는 ‘개척 선교’, 아프리카의 질병과 먹거리 문제를 해결하는 ‘이슈 선교’라는 3가지의 선교 쟁점이 만나는 지점에 쿠미대가 있다. 그리고 세계적인 선교학자 랄프 윈터 박사가 현대 선교의 맹점 중 하나로 중요하게 지적한 고등교육(대학·대학원 교육) 영역에서의 실패를 만회할 은혜를 구하고 있다.
***[역경의 열매] 황성주 (25) 밤마다 빈대와 싸우며 DTS 훈련… 영적 담금질의 시간
훈련 과정 중 ‘워크 듀티’ 노동 사역
빌딩 내 쓰레기통과 화장실 청소 맡아
삶 점검하고 가장 은혜받은 시간 돼
미국 하와이 코나 열방대학 DTS 수료식에서 한국 학생들과 함께 기념 촬영하고 있는 황성주 회장 부부.
성경은 일의 효용성보다 안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안식이란 내가 죽는 것이고 내가 하나님 됨을 포기하는 것이다. 질적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공간 확장을 포기하는 것이다. 임시로 맡았던 삶의 주도권을 본래 주인에게 양도하는 것이다. 2015년 초 아내와 나는 아들 딸 사위가 이미 수료한 미국 하와이 코나 열방대학의 DTS(예수제자훈련학교) 훈련을 받기로 했다. 2007년 콜로라도 영적 재충전 이후 7년 만이었다. 하와이 코나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무지개다. 섬의 구석구석 거대한 겹무지개가 하늘을 덮는 장관이 펼쳐졌다. 코나 일정은 마치 무지개처럼 피어난 축제의 삶이었다. 코나에서 3개월을 보내며 감사가 넘쳤다. 영적 담금질과 안식, 사색의 시간을 주셔서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감격을 맛봤다. 또 역할 모델이 될 수 있는 인격과 사역의 경험을 겸비한 영적 거장들과 좋은 동역자들을 만나 깊은 영적 터치를 받았다. 모두 경배와 찬양과 춤을 통해 주님께 올려드리는 축제의 예배를 마음껏 누리게 하신 것이었다.
코나에서 훈련받을 때 가장 큰 은혜를 받은 일은 ‘워크 듀티’(work duty)라고 하는 노동 시간이었다. 3개월 동안 주 5회 하루 2시간씩 노동 사역을 하는 것인데, 학교 입구에 있는 ‘임팩트 빌딩’을 청소했다. 그 빌딩의 22개 쓰레기통과 4개의 화장실을 청소했다. 내게는 서울대병원 인턴과 3사관학교 군의관 훈련 시절 이후 처음 해보는 밑바닥 경험이었다. 그런데 그 시간이 엄청난 은혜의 시간이었다. 아열대 더위 속, 큰 쓰레기통 2개를 밀면서 쓰레기차로 이동하는 시간을 통해 나는 주님의 임재를 경험했다.
코나에서 훈련을 받는 동안 한 가지 당혹스러운 일을 겪었다. 렌트한 집에서 자고 난 첫날 하얀 시트에 6개의 핏자국이 있는 것이 아닌가. 몸에 물린 자국이 있는 것으로 보아 무슨 벌레가 있는 것으로 짐작은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현지인들은 침대에 빈대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불편했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감사했다. 당시 매일 감사 노트를 실천하고 있었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에 순종했다. 문제는 두 달 정도 지났을 때였다. 강의와 예배를 통해 큰 은혜를 경험하고 있었는데 빈대들이 온몸을 공격해 극심한 가려움증에 시달렸다.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조사해 보니 내가 쓰던 침대 매트리스가 빈대들의 서식처였다. 이 지역 빈대를 ‘불사조 빈대’라고 하는데 생존 능력이 뛰어나 먹지 않고도 3개월을 버틴다고 했다. 하루는 십자가 나무 아래 캠퍼스에서 묵상하고 있는데 감사해야 할 이유가 떠올랐다. 그동안 평생 빈대에 안 물리고 산 것이 너무 감사했다. ‘주님. 어젯밤 빈대에 물리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했다. 그 감격과 은혜와 감사는 경험해 본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밤새 빈대에 물리는 것에 비하면 밤잠을 조금 설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빈대로 인한 고통이 감사를 회복하는 은혜의 계기가 됐다. ‘빈대 사건’으로 주님은 나를 지극히 겸손하게 만드셨다.
***[역경의 열매] 황성주 (26) 절대 감사 통한 ‘5베이직’ 운동으로 젊음과 건강 회복
내적 치유의 완성이 감사라는 걸 깨닫고
주께 드리는 오감사 통해 전인치유 경험
체험한 비결 보편화시켜 예방의학 결실
황성주(원 안) 회장이 열방대학 DTS 훈련을 마치고 학생들과 파티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빈대사건으로 많은 감사가 터져 나왔다. 이 사건 이후 ‘절대감사(규장)’라는 책이 나왔고 1년 동안 세계 각국을 돌며 무려 60회의 감사 집회를 하게 됐다. 빈대가 붙인 감사의 불이 세계로 번진 것이다. 나에게 감사의 신세계를 열어주신 분은 IBLP의 설립자 빌 가서드 박사이다. 그를 통해 모든 짜증 요인을 감사로 바꾸는 비결을 알게 됐다. 대부분 짜증은 자신의 안전이 위협받을 때 생겨난다. 분노는 나의 소유와 권리를 빼앗겼을 때 생긴다. 바로 그때 이 모든 것을 지금까지 누리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면 감사의 놀라운 세계가 열린다. 모든 짜증과 분노는 주님이 주신 특혜를 특권으로 인식할 때 생겨난다. 이를 바로잡는 것이 절대감사를 통한 은혜의 고백이다.
나는 어린 시절 내면의 세계에 구멍을 뚫어버린 아버지의 가정폭력이 축복이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를 절대감사로 믿고 나서야 온전한 치유를 경험하게 됐다. 그리고 내적 치유의 완성이 감사라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마음속 쓴 뿌리가 다시 올라오지 못하도록 하는 영혼의 뚜껑을 발견한 것이다. 매일 주님께 드리는 다섯 가지 감사(오감사)를 통해 전인 치유와 회복은 물론 더 놀라운 은혜, 광범위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더 놀라운 은혜는 절대감사를 통해 ‘5베이직’이라는 전인건강 운동이 탄생한 것이다. 5베이직은 원래 매일 한 끼 생식, 매일 만보 걷기, 매일 오감사의 세 가지를 실천하는 건강운동으로 시작됐다. 내가 개인적으로 체험한 노하우를 보편화시킨 것이다. 창세기 1장 29절에 근거한 태초의 식사이자 최상의 자연식인 생식을 하루 한 끼 먹다 보니 모든 세포가 새롭게 되는 은혜가 있었다. 매일 만보를 걸으니 온몸이 깨어나고 기능이 활성화되며 생각이 깊어졌다. 오감사를 실천하니 신체적 정신적 영적 스트레스로부터 해방감을 누리게 됐다. 요즘은 여기에 ‘바이블 타임’이라는 성경 묵상과 ‘블레싱 타임’이라는 영혼 사랑을 더해 5베이직이 정착됐다. 건강은 프로젝트가 아니고 라이프 스타일의 열매이다. 아무리 좋은 원리도 실천하며 체험돼야 현실화된다. 5베이직을 통해 젊음과 건강을 회복하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평생 연구한 예방의학의 결실을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번은 KBS ‘비타민’ 프로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제목이 ‘11가지 직업을 가진 남자’였다. 의사이자 목사이자 교수로, 병원 경영자이자 비즈니스맨으로, 저술가이자 여행가로, NGO와 대안학교 설립자 등 ‘멀티플레이어의 전형’으로 소개된 것이다. 무엇보다 건강의 시스템을 허락하신 하나님 은총이었다. 모든 영역으로 사역이 확산되다 보니 ‘선택과 집중’의 중요성과 함께 ‘사역의 질’은 ‘건강의 질’과 직결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일 처리의 마무리는 절대감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한 가지를 매듭지으면 새로운 일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이때부터 ‘킹덤드림’의 기존 엔진에 ‘절대감사’라는 엔진이 장착되며 사역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역경의 열매] 황성주 (27) 이롬플러스 설립 후 ‘돈독 올라 다단계까지…’ 오해
선교경제공동체 현대화·확산 방법 찾다
다단계로 알려진 네트워크 마케팅 선택
미개척지 진출해 그리스도의 영역 확장
이롬플러스 창립 1주년 기념대회에 참석한 이로미안들이 2019년 6월 ‘이웃사랑 과학’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짐하고 있다.
조선 후기 거상 임상옥은 ‘장사는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는 유명한 이야기를 남겼다. 세계 기독교 공동체 운동을 연구하면서 모라비안 선교경제공동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를 모델 삼아 1세기의 성경적 경제공동체를 현대화(상황화)하고 확산시킬 수 있는 열쇠가 무엇일까를 깊이 생각했다. 그러다 연구한 것이 네트워크 마케팅이었다.
이 방식은 다단계로 알려져 부정적인 이미지가 남아있지만 놀랍게도 그 원칙은 성경적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잘 섬길수록 결과적으로 내가 성공하는 시스템이었다. 서번트 리더십을 실천할 수 있는 기가 막힌 시스템인 셈이다. 그래서 2018년 6월 이롬플러스라는 이름의 하나님 나라를 위한 네트워크 회사를 설립했다. 초기엔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다. ‘황 박사가 돈독이 올라 이제는 다단계까지 진출하려고 한다’는 소문이 나며 대외적으로 곤란한 상황으로 이어졌다. 이런 부류의 회사들이 맘모니즘의 온상이 돼가는 현실을 반영한 거였기에 반대 의견은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었다.
이때 생각난 분이 영국 에버딘대학의 앤드루 윌즈 교수였다. 그는 기독교 영성의 핵심은 ‘침투성’이라고 정의했다. 유대적 기독교가 로마 세계에 침투함으로 보편성을 확보했고 로마의 기독교는 게르만 세계에 침투함으로 유럽을 구원했고, 루터와 칼뱅은 종교개혁을 통해 문화와 사회 속에 침투해 서구문화를 이끌어 갔고, 유럽의 기독교는 신대륙에 침투하고 미국의 기독교는 제3 세계에 침투함으로 글로벌 기독교가 되었다고 했다.
이제 마지막 남은 미개척지는 영역(scope)이다. 지금은 비즈니스와 미디어 세계에 깊숙이 침투할 시기이다. 이 상황에서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Kingdom of heaven has been forcefully advancing)’라는 마태복음(11:12) 말씀에 큰 힘을 얻었다. 그래서 ‘섬기는 리더를 키우자’ ‘기부를 위해 사업하자’ ‘자비량 선교운동을 일으키자’라는 비전으로 이롬플러스를 론칭했다. 2018년 창립 1주년 기념대회 당시 6000명이었던 회원이 지금은 7만여 명으로 늘었다. 우리는 회사를 모라비안 공동체를 모델로 삼아 이로미안 공동체라고 부르고 있다.
많은 분이 경제적 동기로 왔다가 킹덤 드림에 매료됐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로미안’들에게 ‘사랑의 혁명’이라는 꿈을 분양하고 있다. 하나님이 주셨던 선교적 비전과 모든 은혜를 나누며 지상명령 성취를 위해 같이 기도한다. 회사 프로모션으로 에티오피아, 우간다 등 선교를 위해 선교 현장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을 가진 회사는 없다.
돈을 많이 벌수록 기부를 많이 하는 영적 생태계를 가진 회사는 드물 것이다. 비즈니스의 치열한 현장에서 사랑과 섬김, 복음과 선교를 강조하는 믿음의 역주행이 진행 중인 것이다.
지난 2월 열린 구국 금식기도회를 통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열정적으로 기도하는 이로미안들을 보고 큰 감동이 밀려왔다. 2030년까지 10억 인구를 구원하자는 빌리언 소울 하비스트 운동에 기도특전단으로, 선교특전단으로 헌신한 분들도 대부분 이로미안이다.
***[역경의 열매] 황성주 (28) 복음으로 전 세계 난민과 북한을 품는 원대한 꿈 꿔
팬데믹으로 돌보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줌 예배로 난민 텐트에 가정교회 열고
북한서 땅 밟기 기도하며 선교통일 선포
황성주 회장이 2018년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주여! 남북이 하나 되어 세계복음화를 완성하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하고 선교통일을 선포하고 있다.
2020년 초 팬데믹이 중국에 이어 한국을 강타할 때 나는 모슬렘 난민사역을 위해 그리스 레스보스섬에 가 있었다. 터키에서 최단 거리에 있는 이 섬은 시리아 내전을 피해 유럽으로 가다가 파도에 휩쓸려 죽은 사람들로 많이 알려진 섬이다. 백만 그루의 올리브나무가 있는 너무나 아름다운 지중해 섬이지만 비극의 현장이었다. 당시에도 터키가 국경을 열자 시리아 난민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이 섬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난민들이 우리의 봉사를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한국인들은 기피 대상이 되었기에 사역 대상인 그들이 오히려 우리를 염려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정처 없이 떠도는 난민들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전 세계 난민은 약 8000만 명으로 그야말로 나그네들이다. 대부분 복음에 닫혀있는 모슬렘 나라에서 왔는데 우리가 ‘가라’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자 주님이 그들을 흩어 내보신 것이다. 팬데믹으로 그들을 돌보기 어려운 상황이고 더욱이 복음 전도나 제자 훈련은 엄두도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반전의 역사가 일어났다. 다행히 그들은 대부분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었기에 줌 예배가 가능했다. 그래서 개종자들이 있는 텐트마다 가정교회가 시작됐다. 그래서 ‘난민이 난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새로운 선교전략이 시작됐다.
난민을 생각하다 보니 한반도 북쪽에 갇혀있는 2500만 난민들이 생각났다. 세계를 품고 기도하다 보면 항상 걸리는 것이 북한이다. 지상 명령의 범위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인데 세계선교에서 항상 사마리아인 북녘땅을 건너뛰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다 UN 장애인 협약 이행을 위한 조사단으로 2018년 두 번째로 평양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정말 감회가 새로웠다. 평양지역은 물론 개성과 원산, 금강산과 마식령을 돌아보며 계속 땅 밟기 기도를 했다. 그리고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선교통일’을 선포하며 감격스러운 기도를 하게 되었다.
1990년대 후반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 계속될 때 만주를 간 적이 있었다. 그때 같이 가던 선교사님이 놀라운 말을 했다. “남북이 통일되면 영토가 수십 배로 늘어나고 인구도 4억에 달하는 그레이트 코리아가 됩니다. 경제력과 문화적 흡입력을 고려하면 사실상 동북 3성은 한국 땅입니다. 러시아의 연해주나 사할린도 한국 땅입니다. 알타이어족인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는 물론 터키까지 한국의 영향권에 들어오기에 한국은 유라시아를 지배하는 그레이트 코리아가 됩니다.”
나는 속으로 ‘맞다, 맞네’하며 그 통찰력에 감탄했다. 그러면서 13세기 대초원을 지배했던 몽골제국이 생각났다. 그들은 무력으로 유라시아를 정복했지만 우리는 성경에 기초한 ‘서번트 리더십’으로 그 땅을 정복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말 그대로 ‘사랑으로 세계를 품는 원대한 비전’이 민족의 가슴에 심어지는 것이다. 선교통일은 선교 이외에도 세계의 분쟁을 해결하는 평화 대국으로, 받은 은혜를 전 세계에 흘려보내는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이다. 이런 비전을 가지고 2018년 9월 선교통일한국협의회를 세웠다.
***[역경의 열매] 황성주 (29) ‘빌리언 소울 하비스트’ 부활… 복음의 향기로 물들어
10년 안에 10억 인구 구원하자는 비전
전 세계 글로벌 리더들 모여 선포 합의
참된 진리 목말라하다 비전의 폭탄 터져
세계 45개국 137명의 대표가 2021년 10월 미국 콜로라도에서 열린 ‘빌리언 소울 하비스트’ 대회에서 선교 비전을 선포하고 있다.
2020년 가을 미국 뉴욕은 복음의 향기로 물들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450개 한인교회가 연합해 할렐루야 2020 집회를 강행했다. 나는 이 대회에서 말씀을 선포하면서 큰 은혜를 받았다. 이 집회를 준비하면서 모든 성도가 거룩한 그리스도의 신부로 회복되고 사명자로 세워지는 역사가 일어나길 기도했다. 놀랍게도 ‘모든 교회가 사도행전적 교회로 선교적 야성을 회복하는 비전, 모든 성도가 지금 있는 현장에서 복음의 불씨가 되고 땅끝까지 증인 되는 비전’을 받아들이게 됐다. 뉴욕에 이어 방문했던 콜로라도에서는 한국의 선교비전이 세계화되는 2030년 글로벌 목표(Global Target 2030) 선포와 현판식이 있었는데 미국에 있는 영적 리더들과 선교 리더들도 흥분하면서 이 비전에 기쁨으로 동참했다. 그분들과 기도하다가 댈러스 모임 이후 15년 만에 빌리언 소울 하비스트(Billion Soul Harvest) 라는 비전을 부활시켰다.
2005년 댈러스 모임이 생각났다. 당시 ‘빌 브라잇 이니시어티브’라는 모임이 열리고 있었는데 대학생선교회(CCC) 설립자인 빌 브라잇 박사의 유언인 빌리언 소울 하비스트(Billion Soul Harvest)를 집행하기 위해 세계적인 추수꾼들이 모이 게 된 것인데 공교롭게도 그 모임에 초청받게 된 것이다. 이후 그 모임은 계속되지 못했지만, 주님은 한 번도 세계복음화를 포기하신 적이 없다. 한참 후에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이 비전이 불타오를 줄은 아무도 몰랐으리라. 이를 위해 전 세계 교회와 선교기관들이 위대한 연합을 이루어 남은 과업을 완수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는데 정말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었다. 2030년까지 10억의 인구를 구원하자는 최후의 비전, 현재 복음적 그리스인을 10억으로 보고 이를 10년 안에 배가시키자는 비전, 여기에 참석했던 리더들은 가슴이 터질 듯한 역사적인 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드디어 2021년 4월 콜로라도 킹덤 드림센터에서 ‘빌리언 소울 하비스트 글로벌 게더링’을 열었다. 일주일 전에 통보했음에도 불구하고 25명의 글로벌 리더들이 참석했다. 꼭 혁명 동지들이 모인 것 같았다. 이 모임에서 2021년 하반기에 전 세계 리더들을 불러 빌리언 소울 하비스트 비전을 선포하자는 중요한 합의가 이뤄지고 결국 10월 3~6일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역사적 장소인 ‘글렌 에리’에서 ‘빌리언 소울 하비스트 글로벌 서밋’이 열렸다. 팬데믹 이후 영적 감각이 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각이 있다. ‘모든 것이 한 방에 바뀔 수 있다, 세계질서는 한순간에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진화론 체계에 익숙했던 인류는 대격변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이제는 주님 다시 오실 날이 가까웠다는 것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팬데믹과 전쟁으로 혼란스러운 지금은 오히려 복음 전파의 호기, 선교의 황금기이다. 전 세계가 참된 진리에 목말라하고 있다. 이때 감사하게도 ‘빌리언 소울 하비스트’라는 비전의 폭탄이 터진 것이다.
***[역경의 열매] 황성주 (30) 기도특전단 3만㎞ 기도행전 힘입어 축제의 도가니
미국 37개주 돌며 축복 기도 온힘
빌리언 소울 하비스트 ‘영적 팬데믹’
국가·교파 넘어 화학적 결합 큰 기쁨
황성주 회장 등 기도특전단이 2021년 10월 콜로라도에서 열린 ‘빌리언 소울 하비스트’를 통해 모든 것을 압도하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있다.
빌리언 소울하비스트 대회의 성패는 오직 주님의 손에 달려 있었다. 팬데믹 상황에서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대회 80일 전에 이로미안으로 ‘기도특전단’을 조직해 한국과 미국에서 기도를 시작했다. 30명의 기도사역자가 70일 동안 대회 장소인 콜로라도를 비롯해 미국 37개 주를 돌며 미국을 위해 축복하며 기도했다. 미국 곳곳에 있는 선교운동과 기도운동의 글로벌 리더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도전하며 중보의 배수진을 쳤다. 온 힘을 다해 70일간 무려 3만㎞의 기도행전을 펼쳤다.
가장 잘한 일은 기도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10가지 기도 제목을 선포하고 기도에 전력했다. 그래서 대회가 끝나자마자 정확한 기도 응답을 확인하고 무릎을 꿇었다. “모든 것을 주님이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강력한 아버지 하나님의 임재,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주도권, 강권적인 성령의 역사가 있었다. 세계적인 영적 거장들도 메시지는 단 5분이었다. 대부분 시간을 찬양 가운데 합심 기도와 그룹 기도, 서로 사랑과 축복으로 채웠다. 시작부터 감동의 물결이 몰려왔다. 둘째 날 밤과 셋째 날 밤은 강력한 기름 부음이 있는 추수와 돌파에 대한 메시지가 선포되었다. 국가, 인종, 교파, 세대를 초월해 모두가 하나가 되는 기쁨으로 충만한 연합과 화합의 역사가 있었다. 기도 운동과 선교운동이 하나로 엮어졌다. 복음주의와 은사주의의 화학적 결합이 이뤄졌다. 시간이 갈수록 놀라운 은혜가 쏟아지는 축제의 도가니였다.
대부분의 글로벌 선교 운동과 기도운동, 교회개척 운동의 리더들이 포함돼 45개국에서 137명의 대표가 모인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엄청난 열기였고 모든 것을 압도하는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됨을 모두가 체험한 경이로운 시간이었다. 마스크 없이 진행된 이 대회에서 한 명의 코로나 환자도 발생하지 않았고 비상 약품을 준비했지만 아픈 사람도 없었다. 참석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부분 미국 입국에 성공했다. 모든 것이 기적이었다. 미국과 각 대륙을 대표한 섬김이들의 면모도 대단했지만, 모두가 자신을 비우고 낮아져서 거룩, 겸손, 은닉의 원칙에 따라 섬김의 공동체를 형성했다. 모든 리더들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이 드러나도록 기도하며 하나 돼 보좌 앞에 엎드렸다. 일체 외부엔 알리지 않았고 대회 자체를 ‘오직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원칙을 고수했다. 그동안 절박하게 기도했던 대로 모두가 코로나바이러스보다 강한 복음의 바이러스에 감염됐고 팬데믹보다 전파력이 빠른 빌리언 소울 하비스트라는 새로운 영적 팬데믹이 일어났다.
지난 1월엔 3주간 세이레 다니엘 금식 기도회를 개최했다. 다니엘 금식을 하다가 나라를 위한 ‘구국 금식 기도회’를 하라는 강한 마음을 주셔서 이 비전을 목사님들과 공유했는데 반응이 너무 뜨거웠다. 제20대 대선을 앞두고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금식’이라는 기도 제목에 대해 모두가 큰 기쁨으로 동참했다.
***[역경의 열매] 황성주 (31) 기도의 씨앗 뿌리고 천국 입성한 중보자들
조선족 전도자 통해 복음 접하고 탈북한 자매는 지하교회 위해 기도
암 투병하다 소천한 ‘기도 용장’ 장로 미국 영적 대각성에 헌신해
미국의 중보기도자들이 2019년 말 한 알의 밀알처럼 살아온 김태진 장로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다.
제20대 대선 결과는 한 편의 각본 없는 드라마였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반드시 한 알의 밀알처럼 헌신적인 기도를 동반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 빌리언 소울 하비스트를 위해 ‘기도특전단’이, 대한민국의 뉴 시즌을 위해 ‘성도들의 기도와 금식’이라는 기도의 씨앗이 필요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삶 속에 스며드는 하나님의 임재와 순간순간 세밀하게 인도하심을 깊이 느꼈다. 그리고 가장 연역한 자와 보잘것없는 공동체를 들어 쓰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의 경륜을 찬양할 수밖에 없었다.
빌리언 소울 하비스트의 열매는 충성스러운 중보자들의 기도에서 비롯됐다. 기도의 씨앗을 묵상하다 보면 현하은 자매를 잊을 수 없다. 그는 북한에서 조선족 전도자를 통해 복음을 받아 뜨거운 마음으로 많은 지하교회를 개척했고, 신분이 탄로 나고 붙잡혀 총살형 직전에 기적적으로 두만강을 건너 탈북했다. 그 자매를 통해 북한의 많은 지하교회 성도들이 남한 교회와 세계선교를 위해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는지를 알았다. 그리고 순교를 각오하다보니 매 순간 동행하시는 주님의 강한 임재를 느끼는 북한이 얼마나 신앙 생활하기 좋은 곳인지, 유혹 거리가 많은 남한이 얼마나 신앙을 유지하기 어려운 곳인지를 고백하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직선적으로 믿음의 생태계라는 차원에서 북한은 천국, 남한은 지옥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래서 자기는 남한을 위해서만 간절히 중보한다며 매일 기도의 씨앗을 심었다. 그 자매가 불의의 사고로 2017년 그토록 그리던 하늘나라에 입성했다.
기도의 용장인 김태진 장로도 잊을 수 없는 분이다. 미국에서 삼성의 주재원으로 근무하다 1985년 주님의 강권적인 은혜와 사랑으로 변화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이후 오직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의 길을 갔다. 2000년부터 이롬에서 근무하며 사랑의 공동체의 핵심가치인 킹덤 비즈니스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이롬 미국 법인 및 국제사랑의봉사단 미주 대표를 역임하며 킹덤 드림을 붙잡고 하나님 나라에 충성했다. 김 장로는 이후 콜로라도에 거주하며 2007년부터 루이스 부시 박사를 포함한 미국 리더들과 Transform USA 중보기도 운동을 일으키며 미국의 영적 대각성을 위해 12년 동안 목숨을 건 기도로 헌신했다. 그는 한국인이라는 약점과 영적 쇠퇴기에 들어서고 있는 미국의 어려운 상황에도 초지일관 불퇴전의 믿음으로 미국 땅에 기도의 씨앗을 심었다.
안타깝게도 김 장로는 암으로 투병하다 2019년 연말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눈 폭풍이 부는 날 천국으로 갔다. 암으로 투병하는 5년 동안 빠지지 않고 기도회를 인도하는 열정에 모두 매료되었다. 나는 그분의 장례식에 그토록 많은 미국인이 온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 달 후 추모예배에는 미국 전역에서 영적 리더들이 몰려왔다고 한다. 생명력의 근원은 줄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뿌리에 있다. 전도와 선교는 중요하지만 추수꾼을 보내 달라는 중보기도는 더욱 중요하다. 순교도 중요하지만 순교적 삶은 더욱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깨달았다.
***[역경의 열매] 황성주 (32) 어머니가 남긴 기적의 선물은 ‘소중한 믿음의 자산’
아들 감사편지 통해 존재 이유 발견하고
육체와 정신적 건강까지 완전히 회복
‘이중감사’ 임상효과 어머니 통해 깨달아
황성주 회장의 어머니 남연순 권사가 소천하기 9년 전인 2010년 5월 용인자연농원 화단 연분홍 철쭉 앞에서 온아한 미소를 짓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 모든 사람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단어가 ‘어머니’이다. 2015년 어머니가 위독한 상황에서 몇 번이나 자녀들을 불러 모았다. 고통 가운데 계셨던 어머니의 부탁은 ‘빨리 데려가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미국 하와이 코나 열방대학에 공부하러 가야 하는 상황이라 아주 난감했다. 그러다가 어머니께 감사의 편지를 쓰고 코나로 향했다. 어머니가 잘 볼 수 있도록 10가지 감사 제목을 만들어서 벽에 붙여놓았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어머니는 제게 선물입니다. 살아 계셔서 감사합니다. 오래 사셔서 계속 기도의 사명을 감당해주세요. 평생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랬다. 감사가 기적을 낳았다는 낭보였다. 어머니는 아들이 쓴 편지를 보고 건강이 완전히 회복됐다는 것이다. 병석에서 일어나 조금씩 걸어 다니더니 점점 좋아져 가끔 밖에도 나갈 정도로 건강을 되찾았다. 나중에 귀국해서 뵈니 육신의 회복은 물론 정신까지 맑아지고 특유의 기품을 회복하신 것이 너무 기뻤다. 아들의 감사를 통해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 즉 존재 이유를 발견하신 것이다. 이를 통해 감사의 충격적인 임상효과는 물론 ‘이중감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어머니로 인해 기존의 절대 감사에다 모든 만남에 감사하는 이중감사의 날개를 달게 됐다.
하지만 어머니도 가는 세월을 막을 순 없었다. 건강을 회복한 어머니는 2019년 초 92세로 천국에 입성하셨다. 발인예배를 통해 어머니의 삶을 회고하면서 갑자기 터진 나온 눈물과 오열로 조사가 엉망이 되었지만, 앞서 형님인 황학주 시인이 자신의 묘비에 ‘세상에서 가장 좋은 어머니를 만나고 간 사람’으로 기록해 달라며 ‘내가 너 때문에 다른 기도를 못 한다’는 어머니의 아픔과 애통해 하는 마음을 잘 전달해 가슴 뭉클하게 해 주었다. 어머니를 통해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 사랑과 헌신’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도록 엄청난 선물을 내게 주셨다.
어머니는 가셨지만, 기적의 선물을 남기셨다. 3명의 자녀, 9명의 손주, 10명의 증손을 남겼다. 어머니는 진정한 가족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등 많은 은혜를 주셨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마 12:50)라는 예수님의 선포를 소중히 여기게 되었고 새 계명으로 주신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에 따라 영적 가족인 ‘킹덤 패밀리’ 확장에 몰입하고 있다. 이 모든 게 어머니가 주신 기적의 선물이다. 우리는 부모님으로부터 수만 가지 은혜를 입었음에도 한두 가지 또는 서너 가지 섭섭한 일로 감사하지 않을 때가 많다. 도스토옙스키가 말한 대로 ‘인간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감사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가정의 달, 사흘 후면 어버이날이다. “아, 나의 어머니 남연순 권사님! 당신의 헌신적인 사랑과 뜨거운 눈물의 강. 그것은 내가 물려받은 가장 소중한 믿음의 자산입니다.” 하지만 나에겐 어머니처럼 후손들에게 물려줄 사랑과 눈물이 없다. 그래서 오늘도 조용히 어머니의 이름을 불러본다.
***[역경의 열매] 황성주 (33·끝) “하나님 주신 푯대 향해 달리며 열정 불태우리라”
주를 만나 ‘자유인’→대자연 통해 ‘자연인’
→내면의 삶 성찰하며 ‘자성인’으로 성장
세상의 영향력 벗어나 믿음 강건해지길…
황성주 회장이 2021년 여름 지리산 대포마을 삼장천 맑은 물에 발을 담그고 ‘소확행’을 체험하고 있다.
인상파 화가인 클로드 모네는 43년을 지베르니의 정원에서 살며 수련을 그렸다. 그는 ‘오래 들여다보면 깊이 보인다’는 유명한 이야기를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종착점에서 역경의 열매를 연재하다가 나의 인생을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대학 시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 ‘자유인’이 되었다. 내면을 탐구하다 관계치유를 경험하며 자유가 깊어지고 틈틈이 여행하고 시를 쓰면서 자유의 영역이 넓어졌다. 성경에서는 다윗의 시편과 바울의 로마서를 연구하면서 놀라운 자유를 경험했다.
특히, 생식을 개발하고 건강식을 탐구하면서 자연과의 일체감을 느끼게 되었다. 암 치료에 있어서 현대의학에 자연 의학을 접목한 것도 큰 유익이 있었다. 몸의 영성을 알게 되어 포괄적인 성서 건강학을 정립한 것도 큰 은혜였다.
미국 콜로라도에 와서 대자연을 통한 타자성을 경험하고 나서 ‘자연인’이 됐다. 콜로라도에서 1박 2일짜리 골든 7코스를 개발하며 수많은 방문자를 자연인으로 변모시킨 즐거움도 잊지 못할 것이다. 또한 덴버신학교의 브루스 디마레스트 교수를 만나 영적 여정을 이해하며 영적 차원에서 자연인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자녀 교육의 영역에서도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나게 하라’는 자연적 원리를 터득했다. 골프처럼 사역에서도 ‘힘을 빼야 한다’는 원리를 알게 되었다.
지난 40여 년간 앞만 보고 열정적으로 복음을 외치고 말씀을 선포했다. 병원, 비즈니스, 학교, 미디어, 가정, NGO(비정부기구) 등 모든 영역에서 증인의 삶을 살고 전 세계를 다니며 선교에 목숨을 걸었다. 피상적으로는 그런대로 괜찮아 보인다. 그러나 표면적 관찰에서 벗어나 깊은 통찰을 통해 성찰의 단계로 들어가 은혜를 경험하다 보니 문제가 없지 않았다.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다 보니 거울을 바라보듯 내면을 성찰하게 됐다. 삶을 역사로 보고 매일의 삶을 복기하듯 범사에 감사하다 보니 ‘자성인’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세상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연약함과 뿌리가 약한 믿음을 한탄하게 된다. 사람을 의식해서 성경대로 마음껏 말씀을 선포하지 못하니 삯꾼 목자요, 성경을 가르치지만 말씀대로 살지 못하니 영적 사기꾼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 폭포수와 같은 사랑과 은혜를 받고도 제 역할을 못 하니 죄인 중의 괴수요, 세계선교와 영혼 구원을 외치면서 가장 가까운 가족조차 사랑하지 못하니 어찌 위선자가 아니겠는가. 기도 많이 못 하면서 ‘기도의 사람’인 척 해야 하니 외식하는 자나 다를 바 없다. 인생의 성취가 수많은 동역자 수고에 기초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한 것처럼 가끔 우쭐대는 천박함이 안타깝기만 하다. 아직 미완성이지만 언젠가 주님의 형상으로 빚어질 것을 믿고 주님이 주신 푯대를 향하여 오늘도 달리며 아름다운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마지막 33회까지 읽어주신 국내 유일의 복음 실은 종합일간지 국민일보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지극히 작은 나에게 일방적으로 베푸신, 말도 안 되는 은혜를 미션라이프 영성면을 통해 나눌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