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교사가 또 죽었다.
목동 신목초.
내가 나온 모교 옆.
(나, 목동 월촌초 2회..)
내부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서도...
이걸 극단적 선택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냥 시대에 만연한,
슬픈 풍조는 아닐까?
서이초 교사에 이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본다.
하긴 물리적 죽음들이 있기 전에도
이미 교사들의 영혼이 죽은진 오래되었고,
교육의 죽음은 더 오래전 일이었다.
몇몇 교사들의 헌신적인 애씀들로 인해
여기까지 온 건 아니었을까?
제도교육 현장에서는
9월 4일 휴무와 관련해서
구성원들 간의 갈등이 커져가는데,
태풍의 눈에서
살짝 비껴나있는 우리는,
평화로워 보인다.
하지만 우리 역시도
같은 시대의 그늘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대의 문제에서
교육의 과제가 생겨나야 한다는
슈타이너의 통찰도 잊어서는 안된다.
. . . . . .
20여년 전쯤,
교대를 졸업하고 임용고사 볼 때
서울에 원서쓰고
목동으로 발령받아
내가 살던 주거환경이 참 좋은(좋은 입시환경이 아니라),
목동 아파트 단지에서
애들 가르치며 안정되게 살려고 했는데..
그게 그렇게 되진 않았다.
지난 20년,
참 힘들게 살아왔다 싶었는데
어쩜
신의 계획된 보호 속에서 산 것이었을 수도...
언제나 운명의 손길은 남의 편이라 생각했었는데,
실은 나를 보호했던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었을 수도...
아니라면
저 교사의 삶이
내 삶이었을 수도 있었겠지.
. . . . . .
중요한 건
(사태가 일어난 문제의 핵심은)
교육권과 학습권,
그러니까
'교사의 교권'과 '아동의 인권'이 부딪히는 지점이 아닌데,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그쪽으로만 보고 몰고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마치 20년 전, 軍가산점에 대한 헌법소원 문제가 양성 모두 국가 제도에 대해 개선점을 찾는 방향으로 나인가야 하는데, 남녀의 싸움으로 변질 된 것과 유사하다.)
문제의 핵심은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지식과 경험으로는
'현대 아이들'이라는 존재와
그 존재가 보여주는 현상을
이해하고 적절히 대처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짧게 말하면,
발달이 어려운 아이들이 많아졌다는 점.
근데 어떤 발달이 부족하고 어려운지,
또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
그러니 매번 아이들 마음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최선이어서
그리 하긴 하는데,
문제는 그럴수록 아이의 행동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엉망이 되어간다는 점.ㅜㅜ
어떤 교사가 인터넷에 내부자의 관점에서 쓴 글을 잠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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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공교육 초등 학교 돌아가는 꼴
(이 상황은 보편적인 상황이며, 고 신목초 교사의 상황이 아님. 혹 그런 상황이었다고 하더라도 우연의 일치임. 관련자들의 명예를 훼손할 의도가 전혀 없음.)
말을 안 듣는 아이들: 교사 앞에서 그냥 집에 가도 제재할 수단이 없음. 아동학대 됨.
'야! 가자. 어차피 우리 막지도 못해.'
'와. 소리질렀어. 이거 아동학대 아냐?'
학부모들:
'왜 우리 애한테만 그래요. 아니 막말로 선생님이 제대로 안하니깐 애들이 그러지.'
'아니 애들이 좀 그럴 수도 있지. 그거 제대로 가르치라고 내 세금으로 월급 주는거 아냐?'
'금쪽이 때문에 애들이 힘들어하는데 담임은 도대체 뭐하는거에요? 애들도 통제 못하냐. 넌 선생 자격도 없어.'
학교:
(교장) :ㅇ선생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왔어. 알지? 내가 교육청에 신고 안하면 벌금이 1000만원이야. 알지알지. 내가 ㅇ선생 억울한거 알지. 근데 법이 그런데 어떡해. 집에서 좀 쉬다가 잠잠해 지면 와.
변호는 언제 하냐고? 어머 자기야.아동학대는 신고만 들어오면 변호가 아니라 무조건 잘못했다고 해야해. 일단 보자. 신고자랑 격리해야하네. 저기 교무 불러서 기간제 공고 올리라고 하고, ㅇ선생은 낼 부터 학교 나오면 안 돼. 큰일나.(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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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자기들이 처한 입장 외에
다른 입장이 어디 있을까?
학교를 둘러싼 논의에
학교가 존재하는 중요한 이유인
'교육'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 하는 이들이 없다.
교사 역시도
아이들에 대해
몰라서 말 못하고,
또,
알아도 말 못한다. ㅠㅠ
(왠지 아이들의 안 좋은 점을 보고 그것만 말하는 나쁜 교사라는, 혹은 부모나 동료교사들이 내가 아이들을 나쁘게 보는 교사로 보이면 어쩌나하는,
착한 교사 컴플렉스가 작동한다.)
그러니
실은
부모도 교사도
다 피해자 아닐까?
그리고 가장 큰 피해자는
그 속에서
말 못한채 힘들어하고
방황할
아이들 아닐까?
아이들의 어려운 부분을
아이들마다 그냥 '다르다'는 관점(post modernism)으로 바라봐서
틀리거나 부족한 부분을
교정해 주거나,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점.
그것이 이 시대 어른들의 업(業, karma)일 것이다.
어른인 우리가
학생으로 살았던 시대(70~90년대)의 교육이
정답만 찾아내는 것에 골몰하느라,
정답이 아닌 오답을 선택한
수많은 삶들을
틀린 것으로 매도했고,
그렇게 학교에서부터
내면에 하나씩 상처를 가진 이들이
그 상처를 가지고 세상에 나와
어른으로 살다보니
꼭 답대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내 답이 틀렸지만,
그렇다고 내 삶까지 틀린 것은 아니며
그 오답대로도 살만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well being'의 시대)
그리고 오답을 선택한 것이 꼭 나쁜 건만도 아니며
살면서 조금씩 바꿔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틀린 답이 꼭 나쁜 것은 아니고,
세상에는 정답이 꼭 하나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에...
(그러다보니 내가 받은 상처가 받을 받한 상처가 아니란 걸 알게 됬고, 우리 각자가 자신이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데 무던히 애를 쓰게 되었다. 드디어 Healing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세상에 나와보니
정답대로 사는 사람은 잘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시험지 속에서 정답을 잘 찾아 내었던 이들이,
실은 그들은 누군가가 원하는 답을
잘 찾아내는 기술을 익혔던 것이지
삶에선 별로 그렇게 살지 않는다는 것도 보게 되었다.
정답대로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사회 속에서 당장의 행복과는 거리가 먼,
더 어렵고 힘든 삶을 산다는 것이
많은 이들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
(지금 당장 이슈가 되고 있는 '홍범도' 장군의 문제만 바라봐도 그렇지 않은가?
평생을 조국과 민중의 독립에 바쳐 삶을 살았음에도,
말년엔 소비에트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하고... 돌아가시고 백년이 지난 지금도 '육사'에서 쫒겨나고, 이름 붙여진 잠수함이 강제 개명될 처지에 놓여있다.)
그런 모습을 본 우리는,
아이들에게 남들을 위해 훌륭하게 사는 삶,
자신만을 위해 사는
동물들의 세계를 인간의 세상으로
변화시키려 사는 삶보다는
그냥 잘먹고 걱정없이 사는 소시민적 삶에 잘 적응하도록
심적,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게 되었다.
( 00야~~, 꽃길만 걷길 바래~~~
워라벨을 삶의 지향이라 생각하는, 현 시대)
대부분의 대안학교(발도르프 학교 포함)가
이런 무의식적 정서 속에서 시작되었고,
또 그렇게 마무리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아이들이 꽃길을 걸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꽃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모든 답이 정답은 아닐게다.
2+3을 6이나 7이라 할 순 없다.
모든 아이들의 존재가
사랑받고 존중받아아 하지만,
아이들의 모든 행동과 모습을
그냥 인정해주고 사랑해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다시 답이 하나 뿐인,
야만과 폭력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 역시 아니다.
2 + 5를
7이라는 한 가지 답으로만 몰고가는
그런 획일화된 시대를 넘어
진리를 진실되게 찾으면서도
자신의 개별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그런 방식도 있지 않을까?
7 = ? 이라 물을 수 있는 교육.
'획일'과 '나'를 넘어
개별과 보편을 아우를 수 있는 교육.
7은 3+4도, 9 - 2도 될 수 있는
혹은 1+1+1+1+1+1+1도 되는
아이마다 자신의 정답을 적어갈 수 있는 교육.
하지만
5+8은, 10-6은
정답이 아니라 말할 수 있는 교육.
아니 삶.
그런 삶이 필요한 시대인 듯 하다.
그런데
그걸 찾아가는 길은
끊임없이 공부하고 삶을 돌아봐야 하는 일이니
쉽고 빠름, 편안함과 안락함만을 선호하는 이 시대에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또 나는 뭘 해야 하는지도 고민하게 된다.
첫댓글 개인적인 소회같아 지웠는데,
올려달란 분들이 몇 분 있어
다시 올립니다.
저는 선생님 글을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찾아 읽곤 해요. 처음엔 지나갔던 내용인데 나중에 다시 읽으며 이런 말이었구나 하거든요. 그래서 다시 읽어보고 싶어 찿았는데 글이 사라져 있으면 허망하더라고요.
얼마 전 더웨일 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줌으로 대학생들에게 에세이 쓰는 것을 강의하는 주인공이 보통 말하는 일반론 '글은 고쳐쓰면 쓸 수록 좋은 글이 된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써라' 라고 해요. 그런데 죽어가며 마지막으로 한 강의에서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솔직하게 자기 얘기를 쓰는 것'이다. 라고 하더라고요.
선생님의 개인적인 소회가 담긴 글들이라서 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읽어 주시는 것도 감사하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럴만한 글인가 돌아볼 땐, 좀 부끄럽기도 하고요.
순간순간 드는 감정과 생각들에 치우쳐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좀 긴 시간을 지나 글을 읽어보면 낯을 붉힐 때가 많아요...그래도 어쩌겠어요. 그렇게 쓰고 읽고 다시 배워야, 그런 내 모습을 잘 돌아봐야 좀 나은 내가 되겠지요.
그래서 숨기기보단 나를 더 드러내려고요. ^^;;
사적인 글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뭐... 완전히 사적인 글이 어딨겠어요? 히힛.
저도 유단엄마 말에 동감해요.
한번 읽고 알수없어 다시 읽게되는 글들.
쭉 토해내어 주세요.
呼하되 吐하지 않는?
개우지 않고, 잘 호소해 볼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