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0년대🍁 | |
✿1623년 6월 19일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태어나다.
블레즈 파스칼은 프랑스의 클레르몽페랑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회계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 파스칼은 어려서부터 수학에 많은 관심과 비상하기까지 한 능력을 비추기 시작했는데요. 몸이 허약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만 어린 시절을 보낸 파스칼은 가정교사에게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사실 파스칼의 아버지는 어릴 때 수학을 배우면 어려운 문제를 풀거나 고민을 할 때 약한 파스칼의 몸이 더욱 악화 될 것이라 생각해 수학을 가르치지 않기로 결심했는데요. 하지만 이런 아버지의 행동이 어린 파스칼의 호기심에 불을 지펴 더욱 수학에 매달리는 결과를 가져왔답니다. 그 결과, 파스칼은 어린 나이에 많은 수학적 발견을 하게 됩니다.
12세 삼각형의 내각이 180도라는 사실을 스스로 발견 13세 ‘블레즈 파스칼의 삼각형’을 발견 14세 프랑스 수학자 단체의 주 정기 회동 참가 16세 사영기하학의 기초가 되는 ‘플레즈 파스칼의 정리’ 증명 17세 ‘블레즈 파스칼의 정리’를 이용해 명제 400개 유도
많은 수학적 업적을 모두 10대에 이루어 낸 사실이 참으로 놀랍지 않으세요? 그리고 플레즈 파스칼의 업적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계산기의 발명은 19세에 이루어졌답니다. 파스칼은 회계사인 아버지의 일을 돕다가 계산을 하는 것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고 오류나 나면 치명적이라는 문제를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확하고 빠른 계산을 할 수 있는 최고의 계산기인 파스칼린(Pascaline)을 발명하게 되었습니다.
파스칼린은 덧셈과 뺄셈, 반복을 통한 곱셈과 나눗셈도 할 수 있었는데요. 이 후 파스칼은 50개의 시제품을 만들어 시험했고, 이 후 10년 동안 계속 기계를 개선해 약 20여개의 완성품을 만들어 냈다고 합니다. 비록 아버지로 인해 수학을 전혀 배울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할 뻔 했지만 스스로 공부하고 연구한 끝에 아버지의 일을 도울 수 있는 계산기를 발명하기에 이른 파스칼! 평생 걸려도 힘든 업적을 10대에 모두 이루어낸 것이 대단해 보입니다. | |
| 🌹1900년대🌹 | |
🌻17년 박용만 , 뉴욕 세계약소민족대표회의에 한국대표로 참석 🌻28년 미산리 천주교회, 김대건 신부 묘소에 기념성당 건립 🌻32년 제1차 쌍성보 전투 : 한중 연합군이 쌍성보를 일시 점령함. 🌻55년 이승만 대통령이 한글 간소화 안을 거두어 들임. | |
🌻60년 미 대통령 아이젠하워 방한
1960년 6월 19일 방한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오른쪽)을 허정 과도정부 대표가 영접하고 있다.
1960년 6월 19일,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1882년 한·미수호통상조약 이후 78년 만의 첫 방문이었고, 아이젠하워로서는 두 번째였다. “당선되면 한국을 방문, 한국전쟁을 종식시키겠다”고 한 선거 공약을 지키기 위해 1952년 12월 당선자 자격으로 방문했다.
오후 4시3분, 미 대통령 전용기가 김포공항에 착륙했다. 원래는 필리핀(14일)·대만(18일)·일본(19일)을 거쳐 22일에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일본 내 좌익 세력의 극렬 반대로 방일을 포기하고 한국행을 앞당긴 것이었다. 용산 미군기지로부터 카퍼레이드를 벌이며 숙소인 덕수궁 뒤 미 대사관저로 가려 했으나 “아이크(Ike·아이젠하워의 애칭)! 아이크”를 연호하며 서울역부터 시청 앞까지 도로를 가득 메운 인파 때문에 결국 샛길을 이용해야 할 만큼 그를 맞는 한국인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신문들도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의 방문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1면에 ‘Dear Ike, Welcome to New Korea’라는 장문의 영문 기사를 쓴 신문도 있었고, 조병화 시인은 ‘세기의 날개’라는 제목의 시를 신문에 기고하기도 했다. | |
🌻65년 한일기본조약 반대투쟁
1965년 6월 19일 을사년. 굴욕적인 한일기본조약을 둘러싸고 뜨거운 싸움이 벌어졌던 해였지요. 1964년 계엄령으로 치열했던 6·3항쟁을 진압했던 박정희 정부가 끝내 조약 체결과 비준을 강행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반대투쟁에는 학생들을 선봉으로 야당, 종교계 등 각계각층이 참여했어요. 거기에는 오래 침묵을 지키던 대학교수들도 가담했습니다.
그런데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이야기 할 때, 6·3을 비롯한 한일기본조약 반대투쟁은 생략되는 경우가 많아요. 1960년 4·19에서 1980년 5·18로 바로 넘어가는 거지요. 하지만 이 운동은 계엄령과 위수령이 선포되었을 정도로 박정희 정권과 치열하게 맞섰던 투쟁이었어요. 게다가 박정희가 당시의 지식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던 사실도 잘 기억되지 않습니다. | |
🌻68년 서울 서대문-아현 고가도로 개통
1968년 6월 19맇..서울 서대문-아현 고가도로 개통
지난 1968년 9월 19일 개통한 아현고가도로는 45년 동안 서대문구 충정로에서 아현동을 이으며 서울 도심 교통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서울시는 3월 말까지는 철거작업을 한 후 6월 말까지 중앙차로 공사를 완료할 계획이다. | |
🌻72년 태풍 헬렌호 동해안에 해일 🌻74년 일본 진사 특사(8ㆍ15사건) 내한, 박정희 대통령에 田中 총리 친서 전달 🌻74년 울산 현대조선 근로자 2500여 명, 도급제 반대· 임금 인상·노조 결성 보장 등을 요구하며 공장에 방화. 🌻76년 북, 최용건 부 주석 사망. 🌻81년 문화재관리국, 신안 해저에서 청자 등 유물 2500여 점 인양 발표 🌻81년 중앙의료보험조합 연합회 발족 🌻84년 국무회의, 11월3일을 '학생의날'로 결정 🌻84년 광운대학 원정대, 히말리야의 칸쿠루봉 (6881m)을 무 산소로 등정 🌻85년 멕시코 강진 사망 실종 2만8000명-멕시코시티 3분의1 폐허 🌻85년 서울지방검찰청,'고려대 학생시위현장 방문사건'관련 박찬종·조순형 의원 등 7명을 전격 기소 🌻88년 영화감독 50여명, 미국 UPI사 영화 직접 배급에 항의 철야 농성 🌻89년 조세감면규제법 개정안을 마련, 공한지, 비업무용 토지 국가양도시 양도세 부과 🌻89년 수출입은행, 인도네시아에 89억원의 차관을 제공하는 계약 체결 🌻89년 가수 패티 김, 대중가수로서 세종문화회관 첫공연에 대해 회관운영위원 박용구, 김성태씨 사퇴 성명 🌻90년 북한, '범민족음악회(평양)'에 한국측 황병익 교수 등 17명을 초청. 20일 정부, 방북 허용 🌻90년 건설부, 국토종합개발계획(92~2001년)이 시작되기 전인 91년까지 서해안 7,470만평을 매립키로. 🌻90년 노태우 대통령, 3부 장관 1 도지사를 수해 항명 파동과 관련 전격 경질 🌻90년 제11회 북경 아시안게임 한국선수단, 선수촌에 입촌 🌻91년 합참. 주한미군사령부, 주한미군이 담당해오던 판문점 구역경비임무를 10월1일부터 한국군 인수 합의 🌻91년 도로공사,연말까지 하동-광양, 시흥-안양의 3개 고속도로를 착공하고 기존 5개 고속도로를 확장키로. 🌻91년 국내31개 증권사, 88년이후 9월말까지 민자당과 중앙선관위에 80억2300만원의 정치자금을 납부 🌻93년 제7회 아시아 남자 배구선수권대회 우승 🌻94년 지존파 사건 : 부유층을 대상으로 납치·살해 사건을 벌임 🌻96년 한국 대표단, 제96차 국제의원연맹(IPU) 총회(북경)에 참석중 기조연설 🌻97년 법무부, 현행 父系 혈통주의를 폐지하고 부모 양계 혈통주의를 골자로 한 국적법 개정안 마련 🌻97년 주가 700선 붕괴 | |
| 🌸2000년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