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에 사는동안 늘 빛지고 사는 느낌이었다.
표면상으로는 세속의 입장이라면 정당한 행위를 하고 난뒤의 대가였다.
하지만 나는 정당성을 넘어서 그 이상의 것을 자신에게 요구했다.
박훈 변화사가 어떤 분류법인지 모르지만 처음 만났을 때 나를 《목탁노동자》라고 칭했다.
처음에 거부감이 들었다. 노동자라니....승려는 직업이 아닌데....곰곰히 생각해보니 아주
틀린말은 아니다. 승가의 한 맥락을 짚어준 말이라고 생각이든다.
선원이나강원에서 해제비 받는것은 노동의 대가라기 보다 기여비랄까 ?
기여는 뭘 기여했단 말인가?
3개월 동안 쭈그리고 앉아준 것이 기여란 말인지 큰 절에 공부하는 스님이 이렇게 많다.
관행치고는 더러운 관행이다. 이점 때문에 주지들은 부정을 저지르거나 돈많은 신도의
주머니를 털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물론 그 와중에 자신의 것도 챙기겠지만...1인당 5~6백(해×사의 경우 6백을 준다)
30명이면 얼마인가? 이런 분류에 속하지 않은 스님들은 대부분이 목탁노동자이다.
노동자라면 근로기준법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보호장치가 있어야 하는데 목탁승려에겐
그런게 없다. 주지맘에 안들면 겨울의 추운날씨에 노숙자로 전락할 수가 있다.
실제 노숙자 승려도 있다. 나같이 뛰어난 염불재능을 가진 사람도 한 두번 쫏겨난 경험이 있다.
내가 계율을 어기거나 잘못 살아서가 아니라 절 내부의 모순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주지가 바뀐지도 오래고 해서 어느 절이라고는 않겠다. 부처님께 공양올리는 행위는
그 자체부터 기도하는 마음이어야 한다. 설령 금붙이로 조성된 불상이던 허공이던
정성이 사무쳐야 반응이 오게 마련이다. 그런데 부처님께 재물을 차려 올리고 기도를
해서 올리면 중단을 거쳐 하단(영단)으로 내린 다음 재를 지내게 된다.
지장단에서 재를 올리기에 지장단에 내려갔던 과일이 다시 상단으로 올라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재를 끝내고 사람들이 다 내려가고 뒷정리를 하다보니 공양주가 과일을
정리하더니 박스에 담아 과일창고로 옮겨가려고 했다. 그래서물으니 나중에 다시
쓴다는 기막힌 말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주지에게 말했더니 뭘 그런거 가지고 마음에 두느냐고 오히려 나를
질책하였다. 주지가 시켜서 하지는 않았겠지만 원래 그렇게 하는거라는 말 속에
그런 사실을 알고있음에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태도를 보여서 황당했고,
절 사무장이나 처사들이 금전관리와 절 운영을 하다보니(주지는 거의 절에 없다)
부전 알기를 개똥으로 취급했다. 그래서 나가라고 주지가 하는데 겨울이어서 갈데는
없고 부처님께 빌었더니 이적을 보였고 나에게 행패를 부린 처사 한명은 급성백혈병으로
급사하게 이르렀으며 내가 외출한 사이에 주지는 내 짐을 빼내서 마을 가게에 던져놓았던
일이 있었다.
주지는 해당사찰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세속으로 말하면 갑질을
하는 것이다. 모름지기 어떤 행위를 하려면 이유와 절차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런 과정없이
같은 승려가 승려를 쫏아내는 일이 부지기수다. 몇 년 전에 단신기사 하나를 봤는데 절에
불을 지른 사건이 발생했고 범인인 승려가 3년 형을 받고 청송감호소에 수감되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불을 지르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그러지는 않고 참아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내가 가장 힘든 부분은 계율지키기도 아니고. 생활도 아니었으며,
대인관계도 아니었다. 나는 무엇을 하고있나.....중생을 다 건지오리다~~~법회 때
하는 사홍서원이라는 의식이다. 주지가 오너라면 나는 노동자이니 주지가 요구하는대로
해주고 돈만 받으면 된다고? 이런 황당한... 신도들이 베푸는 돈으로 먹고 자고 샐활을
누리기에 그에 대한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이런 치졸한 발상을 한다면
수행자가 아니라 거래소의 직원일 뿐이다.
나는 진정 신도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었다.
내 능력으로 기쁨을 주고 행복한 마음을 이입시키고 싶었다. 나는 행복한 마음으로
살았으니까..... 그런데 목탁노동자는 신도들에게 설법할 수가 없다.
주지가 싫어하니까..... 자신보다 나은 점이 있으면 싫어하니까 내가 할수 있는게 없다.
죽어라고 목탁이 깨지라고 기도하는 외엔 할수 있는게 없다.
그래서, 창원에 있을 때 불교역사 교실을 열었다. 박변이 세미나실을 이용하게 해서
사용하게 됐는데 처음 강의는 몇 명 오지 않았다. 계속 하려했는데 벌써 주지 귀로
말이 들어갔다. 인상이 틀려지고 나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는 것을 보고 알았다.
다른 이유가 없으니까....처음에 상의를 한 것이 아니기에 내가 터놓고 말하기가
싫었다. 주지성격을 아니까.... 내가 패를 까면 공격해 들어올게 뻔하니까....
그래서 덮었다. 생활과 타협한 것이다. 또 다시 다른 절을 알아봐야 하기에....
사람은 보람으로 산다고 할 수 있다. 배가 고파도 성취감이 일어나면 어려운
조건도 견뎌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런 성취감도 없는 삶에서 먹는 밥은 밥이 아닌 모래다.
소신하신 정원스님이 2015년 12월 13일 쓰신 글
첫댓글 절간에는 발원하신 스님들이 많으실텐데
운영 책임자 주지라고 처음부터 달랐을까요만,
운영구조가 이렇다 보니
서로 낯 불키는 절간이 되었네요.
모든 스님들께서 수양하실 수 있도록
절간에서도 적폐를 고쳐야겠네요.
누가 먼저 나서야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