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에 한국은 온통 월드컵 준비로 한창이었다. 지구촌의 정말 대단한 대축제인 월드컵이 한국에서 열린다는 것만으로도 한국인의 마음은 흡족했다. 흥분됐다. 전국의 월드컵 경기장은 마지막 점검에 들어갔고 언론들도 연일 출전하는 나라의 선수들의 특징들을 소개하느라 분주했다. 나도 모 방송국에서 라디오 뉴스 진행자로 근무하고 있었다. 3월 중순쯤으로 기억하는데 여대생이 총상을 입고 숨진채 발견됐다는 짧은 단신 뉴스를 전한 기억이 난다. 취재부서도 편집부서도 이런 저런 사건가운데 하나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이 사건이 몰고올 엄청난 파장을 나는 그때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그 이후 지방 재벌인 영남제분의 안주인이 살인을 지시했고 현역 판사와도 관련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그동안 지냈다.그리고 나는 그 여대생 살인 사건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나 며칠전 모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전율했다. 나는 느꼈다. 아 그것이 정말 단순한 사건이 아니였구나. 이 나라의 지저분한 모든 요소들이 함축된 희대의 살인사건이구나 판단했다.그리고 이 나라가 이정도밖에 되지 않는구나 절실히 깨닳았다. 천민자본주의와 졸부주의, 일등 지상주의, 배금주의,한탕주의, 유전무죄, 공권력의 실종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엄청난 요소들이 함축된 너무도 비참한 사건인 것을 깨닳고 나는 말을 잊었다. 그리고 가슴이 너무 아파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법 없이도 살아갈만한 그런 자그마한 가정도 지켜줄 수 없는 이 나라의 무능함과 무기력에 나는 절망했다.
이야기는 지난 2002년 3월 6일 월드컵이 열리기 2달 25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3살의 여대생 하지혜양은 새벽 5시 수영장으로 향했다. 명문대 법대생으로 정의로운 변호사를 꿈꾸던 하양은 공부에 지장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새벽시간을 이용해 수영을 했다. 그날 하양은 휴대폰과 지갑을 모두 집에 둔 채 운동복 차림에 수영장 카드 하나만 들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아버지는 급히 경찰서로 달려가 딸의 실종 신고를 했다. 그러나 경찰 측은 단순한 가출로 여기며 아버지를 돌려보내려 했다. 아버지는 집과 학교, 도서관 밖에 모르는 딸이 가출을 할 리가 없다며 경찰에 사정사정했다. 경찰이 한 일은 가출 신고를 하고 기다려보자는 말이 다였다. 하양은 실종된지 열흘만에 차가운 시체로 발견됐다. 집에서 20킬로 떨어진 경기도 하남시 검단산의 인적이 드문 등산로 초입에서 낙엽이 덮인 쌀포대에서 시신이 발견됐다. 손과 발은 빨랫줄로 묶이고 얼굴은 박스테이프로 감겨있었고 언뜻 봤을 때 특별한 외상은 없어 질식사로 추정했다. 그러나 부검 결과 사인은 총상이었다.
범인들은 사건발생 일년정도 지난뒤 중국에서 검거됐다. 그리고 그동안 경찰대신 이 사건을 뒤쫒았던 것은 하양의 아버지였다. 일당가운데 검거된 조무래기들의 진술은 핵심 범인들이 해외로 도피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베트남 그리고 중국 등지로 정처없이 다니며 전단지를 뿌렸다. 용의자들의 사진이 담긴 전단지였다. 그리고 거액의 현상금도 걸었다. 범인들이 결국 검거됐고 국내로 이송됐다. 그리고 나온 충격적인 발언. 범인의 고모가 시킨 살인청부였고 그 고모는 지방 재벌인 영남제분의 안주인이었다는 것이다.
그 돈만 많고 집착증 편집증상을 보인 그 여자는 딸을 최고의 신랑과 짝지어주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그리고 서울에서 판사를 하는 한 남자를 목표로 정했다. 서민들은 상상못할 거금을 들여 사위로 삼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집착으로 무장된 그여자는 사위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했다. 혹시 한 눈을 팔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런데 한통의 핸드폰 전화가 빌미가 됐다. 젊은 여자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장모는 사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뒤를 조사하니 그 전화를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사위의 이종사촌동생인 하지혜양이었다. 이종사촌사이에 무슨 일이 있겠는가. 하지만 정신적 문제자인 장모는 하양을 없애려 했다. 결정적인 불륜현장을 찾아내라고 살해범인인 조카에게 지시한 것이다. 하지만 조카는 아무리 미행해도 별다른 꼬투리를 찾을 수 없었다. 아침 일찍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밤늦게 집에 돌아가는 학생에게 무슨 불륜이 있겠는가. 그것도 이종사촌 오빠와 말이다. 무려 25명의 미행자를 투입해도 얻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당연한 것 아닌가.
하지만 정신집착증에 함몰된 장모는 결국 하양을 살해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조카는 살인을 하고 해외로 도피한 것이다. 범행 대가로 거금이 건네진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재판장은 이들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다. 그러면 그 여자는 교도소에서 제대로 수감생활을 하고 있을까. 돈으로 안되는 것이 없는 나라라는 것을 감안할때 과연 그랬을까. 하지만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여왕 수감생활을 하고 있었다. 무려 12개의 병을 진단받아 2007년 7월부터 2013년 6월까지 형 집행정지 3번, 7번의 연장을 하며 6년 중 2년 11개월 20일, 3년에 달하는 시간을 외부 병원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유롭게 외출까지 하며 귀족 감방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 드러났다.
교도소 안에서도 사사건건 트집잡았다. 돈의 힘이 그곳에서도 당연히 통했다. 다른 재소자들과 교도관들에게 청소와 빨래 등을 시켰다. 함께 수감생활을 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인간적으로 동등하게 보이지 않아요. 다만 동정심을 가지고 대할 뿐이지. 제발 술집에 다녔던 여자들은 내 방에 넣지 말아 주세요"라고 비하했다. 또한 자신은 암환자라 환경호르몬이 나오는 식수를 먹을 수 없다며 이온 음료를 마셨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면 숨진 하양의 가족들은 어땠을까. 집안이 완전히 붕괴되고 말았다. 말로 설명할 수없을 정도가 된 것이다. 어머니는 하루종일 술로 살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루도 살 수가 없었을테니까. 너무도 허망하게 가버린 딸 생각에 모든 것을 잃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귀에서 나는 엄청난 이명에 견디지 못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오빠도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결국 사망했고 아버지는 암에 걸렸다. 아버지는 암에 걸려 다행이라고 말한다. 가족들이 겪었던 고통을 함께 할 수 있으니 오히려 기쁘다고 말한다. 아무 원인도 모른채 불귀의 객이 된 하양과 그런 딸에게 죄스러워 긴 세월을 비참하게 살았던 그 가족...그런데 살인을 지시한 장본인은 여왕 수감을 하고 있다...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정말로 하양 살해사건은 이 나라의 문제점이란 문제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 사건이다. 지방의 재벌 안주인으로 돈이면 안되는 것이 없다는 졸부사상이 바로 대표적이다. 대부분 국민이 가지고 있다는 그 졸부 추종사상이 여실히 드러난 사건이 아닌가. 일등 지상주의로 대표되는 판사님 그것도 이 사건의 핵심이다. 돈만 주면 사람도 마구 죽이는 현실앞에 무능력한 구멍난 공권력도 이 사건의 중요한 요소이다. 돈만 주면 허위진단서도 마구 작성하는 이 나라 의료시스템도 이 사건에 빠지지 않는다. 진단서만 있으면 무조건 형 집행정지를 해주는 이 나라 교도시스템도 한 몫한다. 그 유명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공식이 여기에도 당연히 존재한다.
여왕 수감생활을 도운 의사, 검사 등은 모두 자신의 책임을 회피했다. 하지만 형 집행정지 판단을 한 검사 3명 중 2명은 영남제분 안주인의 변호인단들과 동기 동창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사모님의 이상한 진단서를 발급해 준 주치의는 허위진단서 발급 혐의로 벌금 500만 원을 내는 것이 끝이었다.
나는 단연코 주장한다. 사법 개혁은 검찰총장 그리고 대법원장이 바뀐다고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아래에서부터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 나라 사법 개혁은 백년하청이다. 아니 불가능하다. 의사들에대해서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법추진도 그 대단한 의사협회의 파업불사 등 강력한 저항으로 무산되지 않았는가.
하양 살해사건에 연루된 이 나라의 비리가 하양사건에 국한되겠는가. 지금도 정도의 차이만 있지 하양살해사건은 계속되고 있을 것이 뻔하다. 정말 착하고 정직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려던 사람들이 이렇게 무참히 짓밟혀도 되는 것인가. 이게 정말 나라인가. 이게 정말 공권력인가. 이런 것이 검찰개혁이요 사법개혁인가.
이런 글이 무슨 힘이 있겠는가 마는 그래도 커피속에 아주 작은 흔들림에 그칠지라도 또 말하고 또 떠들어야 한다. 이 땅에 하양같은 이런 비극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말이다. 마지막으로 고인이 된 하양과 하양 어머니의 명복을 빌고 투병중인 하양 아버지 그리고 많은 괴로움속에 살아가는 하양 오빠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기원한다.
2021년 4월 6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