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탈로서 지금은 각시,중,양반,선비, 초랭이,이매,부네,백정,할미 9개의 탈들만 전해지며, 3개의 탈이 분실되었다.
하회탈은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먼저 그 소중함을 알아주지 않던 중에 류한상 전 안동문화원장이 하회탈을 맥타카드(Arther Joseph Mactaggart)교수에게 소개하여, 1954년 그 가치를 인정하여 해외 학계에 발표함으로써 하회탈이 세계제일의 가면으로 극찬을 받았으며, 그 후에 국내 학계에서도 활발히 연구하여 국보로 인정하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하여 겉으로만 보지 말고 깊이 연구하여, 그 소중함을 알아야 함을 우리에게 시사한다. 잃어버린 탈(총각탈, 떡다리탈, 별채탈)을 저명한 조각가와 화가 및 미술사 관련 전문가들로 하여금 복원을 추진하기도 하였으나, 운보 김기창 화백과 그 일행이 하회탈을 면밀히 감상해 보고서 하회탈의 오묘한 이치와 조형적 탁월성에 놀라 자기들로서는 복원이 불가능하다.라고 하였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하회탈의 작가는 허도령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허도령에게는 사랑하는 처녀가 있었는데, 허도령이 신의 계시를 받고 탈의 조각을 위하여 홀로 외딴 집으로 가기 전에 탈을 완성하기까지는 절대로 찾아오지 말고 기다려달라!고 말하였으나, 오래 기다리던 처녀가 사모하는 정을 가누지 못하고 허도령이 혼자 있는 집을 찾아가서 차마 문을 열지는 못하고 문구멍을 뚫어서 안을 들어다 보는 중 허도령은 이를 보자 부정을 타서 죽었다고 한다.
이것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신의 계시란 강렬한 예술적 영감을 의미하며 부정을 타서 죽었다.란 심혈을 다하여 작업 중에 있던 허도령이 영감이 흩어지게 되자 쇼크에 의한 사망으로 생각되며, 이처럼 목숨바쳐 이룩한 작품이기에 오늘날 세계 제일의 가면으로 되어 있다.
양반탈은 위로 향하면 웃는 얼굴, 밑을 향하면 성낸 얼굴로 표정변화가 일어나도록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너털웃음을 웃을 때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성을 낼 때는 얼굴을 아래로 하는 인체공학을 연구하여 조각되어 있으므로 광대의 몸짓과 자연스럽게 일치되도록 한 점도 두드러진다.
각시탈은 한쪽 눈이 가늘다. 이는 각시 광대가 얼굴을 살짝 돌리면 상대에게 눈을 흘기는 교태(윙크)가 되도록 하였다. 다른 탈 들도 제각각의 특징을 고루 갖추고 있다
한국의 가면은 대개 바가지나 종이로 만들기 때문에 오래 보존된 예가 드물며, 그 해의 탈놀이가 끝난 후 태워버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하회탈은 재료가 오리나무로서 표면에 옻칠을 2겹 3겹으로 칠하여 정교한 색을 내었고, 격식과 세련됨을 갖추었으며, 부락에서는 별도로 동사(洞舍)를 세워서 가면들을 보존해 왔을 뿐만 아니라, 특히 각시 탈은 성황신을 대신한다고 믿어 별신굿을 할 때 외에는 볼 수 없었고, 부득이 꺼내볼 때는 반드시 제사를 지내야 하는 금기(禁忌)나 제약(制約)이 있었으므로 오늘날까지 전하여질 수 있었다.
백정탈
▶시대 : 고려시대
▶크기 : 높이24cm, 너비16cm
▶재료 : 오리나무
소를 잡는 백정역이 쓴다.
백정은 조선시대 계급구조에서도 최하층의 천민이었다. 이마에 주름살이 많은 것은 이같은 최하층 천민의 힘든 삶을 보여주는 듯하다.
전에는 이 가면을 '희광이'라 불렀다고 하며, 사람을 사형하는 형용을 하였다고 한다. 얼굴빛은 주황색이나 좀 검붉다. 머리와 눈썹은 검은 칠을 했고 양미간에 홈이 있다. 이마와 미간과 양볼에 주름살을 새겨 험상궂은 인상을 주며, 눈은 실눈으로 뚫려있다. 콧날이 넓고 큰 코에, 턱은 하회별신굿의 다른 탈들처럼 따로 달아서 움직이도록 되어 있다. 극중에는 천민복장에 삼색 띠를 매고 도끼와 칼을 가지고 나온다.
원래는 희광이라 불렀다 한다. 희광이는 신분상 고려 때 사형을 집행하는 망나니였다.
놀이에서는 살생을 하고는 늘 죄의식 속에서 살다가 천둥벼락이 치는 날 결국은 미쳐버리는 역할이다. 지금의 놀이에서는 소를 잡으며 우랑과 염통을 꺼내 주위 사람들에게 사라고 권유하다가 곧이어 낙뢰의 효과음악(풍물)이 나올 때 비틀거리며 헤매다가 퇴장하는 역할이다.
얼굴형은 이마가 다른 탈에 비해 크게 비뚤어져 있으며 작은 혹이 달렸고 눈꼬리는 뒤로 치켜 올라갔다. 콧날은 다른 탈에 비해 좁으며 입은 아랫입술이 앞으로 튀어나와 있으며 이마와 양 볼에 주름이 많이 나 있다. 험악해 보이는 표정이며 얼굴을 뒤로 젖히면 실성한 웃음으로 보이는 표정을 짓는다. 전체적인 얼굴형이 부드럽다고는 할 수 없으며, 이마나 아래 턱 또는 볼의 돌출 된 선, 코의 모양은 대체로 관상학에서 각형(角形)으로 분류될 수 있다.
관상에서 "각형의 상은 우물쭈물하지 않고 남보다 먼저 해치워 버린다"고 한다. 이는 살생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백정 (또는 희광이)에게 합당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또 이마가 비뚤어진 상은 성질이 불량하고 잔인한 상이라 하고, 눈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가면 통상 살기가 있다하며 아랫입술이 윗입술보다 튀어나오면 성격이 포악하다고 하는데, 이 또한 백정의 신분에 맞는 상이다. 하회탈 가운데 백정탈은 신분적 특성에 지극히 합당한 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중탈에서 언급하듯 이마의 혹은 음성적 성격의 소유자임을 나타내며 험악하고 살기가 있는 상이다. 그러나 놀이에서 살생을 저지르고는 인간으로서 떳떳치 못함을 자책하여 천둥치는 날 미쳐 버리는 행동을 하는 것으로 보아 어쩌면 늘 죄의식 속에 쌓여 있는 상으로 표현한 것으로도 볼 수 있겠다.
동작은 '심술궂다 백정걸음'이라고 전한다. 소를 잡고 그 소의 염통과 우랑을 꺼내 관중들에게 사라고 하는 심술궂은 백정의 역할에 합당하다. 춤사위는 몽두리춤, 즉 뻗뻗한 동작의 춤사위다. 건장한 몸이 부드러울 수 없으리라.
부네탈
▶시대 : 고려시대
▶크기 : 높이24cm, 너비17cm
▶재료 : 오리나무
양반과 선비 사이에서 소첩역할을 하는 젊은 부인이 쓰는 가면이다. 얼굴 바탕은 살색으로 분칠을 하였으며, 이마와 양 볼에 연지, 곤지, 입술에도 붉은 칠을 하였다. 머리와 눈썹은 검게 칠하였고, 어리카락은 얼굴 상반부를 테두리같이 둘러 귀를 덮고 양 볼 끝까지 내려 드리웠으며, 뿔같이 양 쪽 머리위에 쪽졌다. 얼굴은 우뚝 솟은 날씬한 코, 눈썹, 눈, 양볼과 조화를 이루어 요염한 표정을 하고 있다. 젊은 부인의 복장으로 옥색저고리와 검정치마를 입는다.
전해져 오면서 일명 과부탈이라는 또 하나의 명칭이 붙어 있다. 신분은 과부, 기생 또는 양반, 선비의 소첩 등으로 전해 온다.
양반 . 선비바당에 양반과 선비가 부네를 불러 놓고 부네를 유혹하기 위하여 또는 부네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서로 자신의 지체 자랑과 학식 자랑을 한다. 이때 부네는 다리를 꼬는 듯한 무릎을 살폿살폿하는 오금춤을 추며 손가락을 턱부분에 대고 머리를 좌우로 까딱까딱 거리며 유혹하는 행동을 하다가 선비의 어깨를 주무르며 선비 앞에서 애교를 떨다가 다시 양반 곁으로 가서 양반의 머리에서 이도 잡아 주며 애교를 부린다.
이에 앞서 양반은 부네를 유혹하기 위하여 문자를 써가며 부네에게 정중한 인사를 한다. 이렇듯 양반과 선비는 서로 부네를 차지하기 위해 애를 쓴다. 이럴 때 부네는 이쪽저쪽 다니며 교태를 부린다.
형상을 보면 갸름한 얼굴, 반달 같은 눈썹, 오뚝한 코, 작은 입으로 우리 전통 사회에서의 미인의 조건에 합당한 얼굴형이다. 그러면서 눈과 작은 입에 가벼운 웃음기가 있으며 코는 날씬하게 잘 생겼다.
볼은 굴곡 없이 대체로 평평하며 검게 채색된 머리는 양쪽 귀밑까지 차롬하게 내려져 있다. 이는 다시 과부의 신분임을 나타내는 머리형이었다. 얼굴형은 둥그스름한 타원형, 즉 계란형이며 이마 부분은 두꺼우나 아래턱 부분은 얇게 만들어져 있다. 하회탈 가운데 얼굴이 약간 비뚤어져 있다.
움직일 때, 코가 바르게 세우면 머리가 왼쪽으로 틀어지며 머리를 세우며 코가 왼쪽으로 치우쳐진다.
관상학에서, 여자의 눈꼬리와 입언저리에 웃음기가 베어 있으며 바람기가 잇는 상으로 분류된다. 또한 중국 상학(相學)에서 여자의 이마가 비뚤어지면 여러 남자를 만날 상이라 한다. 동작도 머리를 좌우로 까딱까딱 거리면서 이 또한 정숙하지 못하여 뭇 남자를 유혹하는 바람기 있는 상이라 한다. 놀이에서 양반, 선비 사이를 오가며 교태를 부리는 부네의 역할과 일치하는 얼굴형으로써 증명된다.
이매탈
▶시대 : 고려시대
▶크기 : 높이15cm, 너비16.5cm
▶재료 : 오리나무
선비의 하인역으로 바보탈이라고도 한다.
얼굴빛은 주황색으로 양반, 백정가면과 같은 계통의 색깔이다. 눈은 실눈으로, 눈구석이 아래로 길게 처지고 이마와 볼의 주름살과 합쳐져 바보같이 웃는 표정을 나타낸다.
이 탈에는 하회별신굿에 나오는 다른 탈들과 달리 턱이 없다. 이 탈의 윕 입술에는 구멍이 있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턱이 있었던 것 같다.
한편 원래부터 이매탈에는 턱이 없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하회가면 제작자로 전해지는 허도령은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탈을 만들고 있었다. 탈을 만들 때 외부인, 특히 여자는 탈을 만드는 곳으로 들어와서는 안되었다. 허도령은 탈을 거의 다 만들고 마지막으로 '이매'의 턱을 만드는 중이었는데, 그만 그를 사모하는 처녀가 금기를 범하고 문틈으로 엿보았다. 이에 허도령은 이매탈을 완성하지 못하고 급사하였다. 이때문에 이매탈은 원래부터 턱이 없었다는 것이다.
극중에서 이매는 평민 남자들이 입는 옷을 입고 벙거지를 쓰고 나온다.
놀이에서 바보스러운 선비의 하인 역으로 등장한다. 초랭이와 이매는 같은 하급계층으로서 초랭이는 종(양반의 종)이라 하고 이매는 하인이라 칭한다. 종은 피할 수 없는 세습적 신분이고 하인은 필요에 따라 면할 수 있는 신분이라 할 수 잇다. 따라서 이매는 자기만 똑똑하고 수단만 있다면 하인을 면할 수도 있다.
놀이에서 선비가 바보스러운 이매를 하인으로 삼은 것은 선비의 격정적인 면과도 관계가 있으리라 본다. 이매는 양반 선비마당에 등장하여 다리 한쪽이 틀어져 절름거리며 비틀거리는 바보스러운 행위로 인해 초랭이로부터 조롱을 당하기도 한다.
형상을 보면, 눈과 눈썹은 아래로 축 처져 있으며 입의 웃는 모양은 바보스럽기도 한 반면 순진해 보이기도 한다. 전체적인 표정 또한 바보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순진해 보이기도 한다. 아래턱이 없는 것에 관여는 하회탈을 제작한 것으로 전해지는 허도령이 턱을 미처 만들지 못한 채 죽어 버려 지금까지 턱이 없는 채로 전해져 온다는 전설이 있다.
관상에서 드러나는 것은 코가 비뚤어져 있으면 몸의 어느 한 부분이 비뚤어져 있다는 점이다. 이는 놀이에서 다리 한쪽이 틀어져 비틀거리는 내용과 쉽게 일치한다. 또 눈꼬리가 아래로 처져 있으면 심성이 순하고 착하다고 하는데, 놀이에서 남을 비방하거나 해롭게 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이 오히려 당하는 것을 보면 일면 바보스러운 성격이나 착하고 순한 성격이라 할 것이다.
동작을 보면, 전해져 오는 말 가운데 '비틀비틀 이매걸음'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한쪽다리가 불편한 병신 역의 이매의 행동에 합당한 말이다.
초랭이탈
▶시대 : 고려시대
▶크기 : 높이20cm, 너비14cm
▶재료 : 오리나무
양반의 하인역으로 경망하게 까불어대는 성격이다. 오늘날도 경망되고 주책없이 까부는 사람을 보고 '초랭이 떨음한다'고 하는 것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초랭이는 다른 말로는 '초란이'라고도 한다.
얼굴빛은 주홍색바탕에 갈색이 덮혔다. 눈썹은 검게 칠했고, 둥글고 조그만 눈은 톡 튀어나오게 생겼으며, 눈시울은 흰 테를 돌렸다. 턱이 움직이지 않게 고정되어 있는 대신 입을 벌리고 있으며, 벌린 입에는 아래윗니가 드러나 보인다. 양쪽 볼에 약간의 주름살이 새겨져 있으며, 짧고 빨간 수염을 달아 코믹한 효과를 나타낸다. 별신굿에서는 바지 저고리 위에 붉은 쾌자를 입고 두 어깨와 허리에 걸쳐 청홍색 띠를 두르고 나온다.
놀이에서 양반의 종의 신분으로 대체로 경망스럽다.
상전인 양반을 해하는 행동이 불손하며 양반과 선비가 서로 인사를 나눌 때 초랭이는 엎드린 양반의 머리 위에 올라 타 선비와 대신 인사를 한다. 또한 정좌한 양반의 좌편에서 '양반요'하고 부르다가 양반이 돌아보면 다시 우편에서 '양반요'하고 부르고, 또 돌아보면 다시 좌편에서, 또 우편에서 양반을 부른다. 이때 양반은 초랭이가 부르는 쪽으로 고개를 좌우로 몇 번 돌리다가 번거로워 하며 손에 쥔 부채로 초랭이를 친다.
또한 중이 여자(부네)와 놀아나다 초랭이에게 들키자 중이 여자를 꿰어차고 도망가는 것을 목격하고는 이매를 불러내 놀이 중에 그 상황을 이야기하여 주며 나중엔 상전에게 일러바친다. 이처럼 초랭이는 양반의 종으로 양반을 곯리는 듯한 행동을 하며 영악하고 해동거지가 가볍다.
형상을 보면, 이마는 툭 튀어나오고 코는 대체로 짧은 편이며, 코끝은 납작하고 콧등과 콧방울에 주름이 있고, 힘을 주고 잇는 듯 가볍게 벌린 입에 이빨을 드러낸 모양이 앙심을 품은 듯한 형이며, 입술은 아주 얇고 아래턱은 뾰족하다. 눈은 정면을 향해 동그랗게 뚫려 있으며, 볼의 근육과 주름은 좌측은 아래를 또 우측은 위를 향해 있다.
이마가 불거진 상은 관상학적으로 윗사람과 의견이 맞지 않아 파가하고 고생이 많으며 고집불통이라 한다. 이는 자기의 상전인 양반을 조롱하는 놀이에서의 역할에서 드러난다. 또, 관상학적으로 콧등에 주름이 있는 사람은 재산이 쌓이지 않는다고 한다. 좋은 신분으로는 부자이기가 어려우며 이 주름은 놀이에서 가난한 선비의 콧등 주름이나 떠돌이 중의 콧등 주름과 다름이 없으리라 본다.
'코가 짧은 사람은 성품이 조급하고 생활의 안정을 얻기 어렵다'는 것도 초랭이의 신분이나 놀이에서의 역할로 보아 합당하다고 여겨지며, 눈썹 뼈가 튀어나온 사람은 성질이 조급하다 하는데 이 역시 일러바치기 좋아하는 초랭이의 성품상 합당한 상이라 할 것이다. 뺨에 살이 쏙 빠진 사람 역시 '신경질적이며 가난하여 고생한다'고 되어있다. 가난한 선비탈의 볼에 살이 없는 것이나 초랭이의 뺨에 살이 없는 것은 가난함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것이다.
동작은 '방정맞다 초랭이 걸음'이라는 말이 전해진다. 이는 놀이에서 점잖지 못하게 까불거리며 촐랑거리는 초랭이 역할에 합당한 동작이다.
중탈
▶시대 : 고려시대
▶크기 : 높이20cm, 너비16cm
▶재료 : 오리나무
세째과장에서 파계승이 쓰는 가면이다.
얼굴은 주홍색이며, 머리부분과 눈썹은 검은색을 칠한 흔적이 있다. 양쪽 뺨과 눈 구석 언저리에 주름살이 있고, 두 눈은 실눈으로 미소를 지으며 벌린 입과 함께 해괴한 웃음을 보여준다.
이마에 작은 혹이 있고, 코는 매부리코로 우뚝하다.
턱은 따로 노끈으로 매어 달아 움직인다.
지팡이를 들고 고깔을 쓰고 가사와 장삼을 입는다.
놀이에서 파계승으로 등장한다. 절간에 공부하는 수도승이 아니라 떠돌아다니는 떠돌이 중 또는 파계승이다.
놀이에서 파계승 마당이 있으며 이 마당에서 중이 길을 가다가 여자(부네 또는 각시)가 오줌누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순간적으로 성욕을 억제하지 못하고 여자가 오줌눈 자리의 흙을 긁어 움켜쥐고 코에 대어 냄새를 맡고서 여자를 탐한다. 그러다 각시와 어울리고, 총각과 결혼하여 신방에든 각시의 방안의 궤 속에 숨어 있다가 총각이 잠든 틈을 타 총각을 살해하고 각시를 채어 가는 역할을 한다.
형상을 보면, 코와 콧방울이 크며 눈은 초생달처럼 가늘게 휘어졌고 정면을 보고 있으며 눈썹과의 사이가 멀다. 이마에 굶은 혹이 있으며 윗입술을 아래로 길쭉하고 뾰족하게 나 있고, 따로 달린 턱에 붙은 아랫입술이 돌출되었고, 턱끝은 모나게 앞으로 나와 있다. 눈꼬리 위로 주름이 두 개씩 있으며 코와 볼, 눈누덩, 윗입술에 주름이 나 있다. 눈에서 능청스러움이 느껴지고, 보는 이에 따라 웃음이 교활하게도 보인다. 얼굴을 뒤로 젖히면 전체적으로 큰 웃음을 띤 표정이 되고, 이 웃음은 어쩌면 해탈한 웃음으로도 보인다.
관상학적으로는, 눈이 둥글게 생기면 호색가라 하였고, 아래 눈두덩이 주름이 있으며 자손 연(緣)이 희박하고 친척과도 인연이 없다 하였다. 이는 중의 신분상 걸맞은 상이라 할 것이다. 콧등에 주름이 있으면 재산이 쌓이지 않으며, 아울러 콧등에 세로금이 있으면 자식이 없는 수가 많다고 하였다. 이 또한 떠돌이 중으로서 재산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자식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한 것 또한 중의 신분에 합당한 상이다.
이마에 혹이 있으면 음성적 성격의 소유자라는 말이 있다. 이 혹에 대하여 혹자는 부처의 이마에 있는 백호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부처의 혹을 파계승의 혹에 비유하는 것은 어딘가 합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아무리 파계승일지라도 중의 신분으로 여자를 탐한다면 이는 그 스스로도 부끄러운 일이라 여겨진다.
놀이에서도, 행여 누가 볼까하여 주변을 살피다 남(초랭이)의 눈에 띄게되자 여자를 업고 달아난다. 이러한 행동은, 중의 신분으로 해서는 안될 일을 행하여 떳떳치 않음을 스스로 느끼며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는 행동으로 볼 수 있으므로 중의 큰 혹은 놀이에서의 역할에 합당하다 생각하다.(참고로, 명쾌한 규명은 아니나, 코가 짧은 사람은 마음이 조급하고 생활의 안정을 얻기 어렵다고 상법(相法)에서 말하고 있다.)
이는 하회탈 가운데 중탈과 초랭이탈과 선비탈과 백정탈의 코가 대체로 얼굴에 비해 짧은 편으로, 위의 언급에 합치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중은 떠돌이 중으로서 부자 일 수가 없겠고, 초랭이 역시 신분상 양반의 종이며, 선비 역시 글공부나 하는 살이 푹 꺼진 상으로서 부자로 보기 어려우며, 다음에 할미 부분에서 언급하겠으나 할미 또한 지극히 가난한 상이다.
능청맞은 중의 걸음은 놀이에서 당당함도 아닌 여유스러움도 아닌, 여자 오줌눈 자리의 흙을 긁어모아 움켜쥐고 냄새를 맡고 여자를 탐하는 파계승의 동작에 합당한 걸음이다.
양반탈
▶시대 : 고려시대
▶크기 : 높이23cm, 너비17cm
▶재료 : 오리나무
하회별신굿 탈놀이 네째과장인 양반과 선비놀이에서 양반역이 쓰는 가면이다.
'한국의 탈'하면 언제나 제일 먼저 연상되는 이미지로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다. 특히 분리된 턱이 만들어내는 표정은 한국탈이 지닌 백미로 알려진다. 외모를 보아도 탈에 나타난 둥근 곡선에는 양반의 여유로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얼굴은 주황색으로, 머리와 눈썹은 검게 칠했으며, 코는 매부리코에 가깝고 콧날이 벌어진 큰 코로 강한 인상을 준다.
양볼 위와 눈구석 언저리에 가느다란 주름살이 잡혀 실눈과 함께 웃는 모습이다.
눈과 코는 뚫렸고, 턱은 따로 달아 움직인다.
극중에 나올 때는 흰색 도포를 입고 정자관을 쓴채 한 손에 부채를 든다. 후대의 양반탈들과 달리 이 탈을 보고 있으면 어딘가에서 권위와 위엄이 느껴지는 듯하다.
조형적 면에서 볼 때 얼굴형에서부터 눈썹. 눈. 코. 볼. 입 등이 대단히 부드러운 선으로 묘사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여유 있는 전체적으로 여유 있는 표정을 하고 있다.
즉, '양반은 길을 가다가 소나기를 만나도 경망스럽게 뛰어 다니지 않는다.'
'대추 세 알 먹고도 배부르다' '양반은 냉수 마시고도, 이빨 쑤신다.'
라는 말 등과 매우 일치되는 표정이라 하겠다. 또한 시각을 달리하여 돌출된 선들과 음각된 면을 동시에 보면 허풍스러운 면도 엿볼 수 있다. 허풍과 여유는 서로 다른 느낌이나, 보는 관점에 따라 미묘하게 작용하여 허풍스럽게도 여유 있게 보이게 되나. 대추 세 알을 먹고 배부르다고 하는 말은 여유일 수도 있고 허풍일 수도 있는 말이며 또한 양반은 냉수를 마시고도 이빨을 쑤신다고 하듯이 양반탈이 허풍스럽게 보일 때가 있다.
연희 때에 탈 쓴 광대의 동작에서 나타나는 표정을 보자.
양반(양반탈을 쓴 광대)이 기분이 좋거나 하여 고개를 뒤로 젖히고 크게 웃는 동작을 취하면 이때 탈은 윗 얼굴과 아래턱이 크게 벌어지며 윗입술과 아랫입술의 양 언저리 쪽이 부드럽게 위로 올라가 박장대소하는 듯한 표정을 띠게 되며 고개를 숙이면 반대로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탁 붙으면서 노한 표정을 띠게된다.
할미탈
▶시대 : 고려시대
▶크기 : 높이20cm, 너비14cm
▶재료 : 오리나무
늙은 할미역이 쓰는 가면이다.
얼굴바탕은 검붉은 색깔이고, 얼굴 전면에 녹색반점을 찍어 기미를 나타냈다. 머리와 눈썹은 검은칠을 하였고, 눈은 둥글게 뚫렸고, 미간은 깊이 파지고, 작은 코가 오뚝 솟았다. 양볼과 눈언저리와 입가에 주름살이 새겨져 있고, 턱은 움직이지 않는다. 평민계급의 노인복장으로 흰저고리와 회색치마를 입고 쪽박을 들고 나온다.
놀이에서 가난하고 찌든 생활을 하면서 세상을 오래 산 노파로 등장한다.
할미마당에서 할미는 베틀에 올라앉아 베를 짜면서 일평생 고달프게만 살아 온 자신의 생에 대한 신세타령을 베틀가로 풀어낸다. 일평생 베를 짰으면서도 서낭대에 새옷 한 번 못 걸어 보고 (당시 서낭대에 새옷을 걸면 자신에게 복이 온다고 하여 서로 다투어 서낭대에 새옷을 걸었다고 한다) 스스로 팔자가 안된다고 하며 허리에 찬 쪽박을 풀어 동냥하는 시늉을 한다.
또한 양반. 선비마당에서 할미가 등장하여 주책없이 젊은 여자(부네)와 춤추며 놀고 있는 양반 곁에 다가가 양반과 춤을 추려다 양반에게 떠밀려 나고 선비 곁에 가서는 선비에게도 떠밀리는 퇴색된 할미의 처량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백정이 들고 나온 우랑을 양반과 선비가 서로 자기가 사겠다고 당기다가 결굴 땅에 떨어뜨렸을 때, - 이 상황에서 백정은 자기가 팔려고 들고 나왔기 때문에 자기 것이고, 양반은 자기에게 먼저 사라고 했기 때문에 자기 것이고, 선비는 자기가 먼저 사려고 했기에 자기 것이라며 서로 뺏으려다 땅에 떨어뜨리고 만다- 할미는 우랑을 주워 들고 소불알 하나 가지고 서로 자기 것이라고 한다고 힐책을 한다. 이는 세상 오래 산 할미의 강인한 정신에서 나오는 행동이라 할 것이다.
형상을 보면, 머리는 위로 뾰족하게 솟아있고, 눈은 동그랗게 돌출 된 것이 강인하게 보이며, 코는 살 없이 뾰족하며, 입은 이빨없는 할미의 합죽한 모양으로서 또 다른 면에서 보면 허기진 표정이기도 하다. 아래턱은 얼굴과 함께 붙어 있으며 뾰족하게 만들어져 있다. 아래 눈두덩과 볼과 윗입술에 주름이 있다. 그리고 얼굴에 흑반(검버섯)이 피어 있다.
관상학적으로 정수리가 위로 솟은 사람은 한평생 쓰라린 노고가 많다고 하고, 눈 아래(와잠)에 수직의 주름이 있으면 일생 동안 남이 빚을 갚기 어렵다고 한다. 또 코끝이 뾰족하면 빈곤을 면치 못할 상이며 입술 끝이 아래로 향하면 가난할 상이며 턱이 살이 없고 뾰족하면 말년에 박복할 상이라고 되어 있다. 아울러 노인이 흑반(검버섯)이 생기면 장수할 상이라 한다. 놀이에서 베틀에 앉아 신세타령을 하는 내용이나 서낭대에 한평생 새옷 한 번 못 거는 내용, 쪽박을 들고 동냥하는 내용과 너무나 일치되는 상이라 하겠다. 또한 흑반은 오래 산 할미의 상에 합당하다.
삐뚝삐뚝한 할미걸음은 늙어 허리는 굽고 엉덩이는 뒤로 쑥빠진 꼬부라진 할미의 동작이다. 할미춤은 엉덩이를 삐뚝거리는 엉덩이춤이다.
선비탈
▶시대 : 고려시대
▶크기 : 높이19cm, 너비16cm
▶재료 : 오리나무
네째과장에서 선비역이 쓰는 가면이다.
얼굴빛은 주홍색 바탕에 갈색이 덮혔다.
머리부분과 눈썹은 검게 칠했고, 이마와 양 볼과 눈 가장자리에 주름살이 새겨져 있다. 눈은 둥글게 뚫려 있어 웃는 얼굴이 아니고 다소 거만한 느낌을 주는 표정이다. 코는 매부리코로 크며, 턱은 따로 달아서 움직인다. 도포를 입고 갓을 썼으며, 담뱃대를 든다.
선비란 풍부한 학식을 바탕으로 대쪽같은 지조와 세속에 타협하지 않는 고고한 성품을 지닌 학자라 할 수 있다.
선비탈의 전체적인 표정은 위엄 있게도 보이며 지조 있게도 보이고, 엄하게도 보이며 노한 것 같기도 하다. 얼굴형은 역삼각형으로 이는 관상학적으로 볼 때 치밀한 두뇌와 복잡한 심사를 지닌 상이며, 세속적인 면으로 볼 때 매사에 사서 고생하는 형이며 대체로 내성적인 상이다.
광대뼈가 돌출 되고 눈두덩과 볼의 살이 푹꺼진 것은 학문에만 열중한 나머지 살림살이는 돌보지 않는 것을 나타내고, 눈이 툭 튀어나온 것은 열심히 글을 읽은 탓으로 볼 수 있다.
눈꼬리가 위로 치켜졌고, 오른쪽 눈썹은 아래쪽으로 당겨졌으며 입의 오른쪽 언저리는 위로 향하였다. 즉, 뭔가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는 얼굴에 깊은 상념을 담고 찡그리는 표정을 하고 있다. 이에 덧붙여 눈썹의 카락이 곤두선 것은 불만에 의한 노여움을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각시탈
▶시대 : 고려시대
▶크기 : 높이39.5cm, 너비20cm
▶재료 : 오리나무
세째 과장에서 처녀가 사용하는 가면이다.
머리 위에 한일자로 여섯 타래의 큰머리를 얹었고, 다시 두 귀를 덮으며 좌우로 똑같이 머리채를 턱아래까지 드리웠다. 비교적 넓은 광대뼈에 입은 다물었고, 머리와 눈썹은 검게 칠했다. 얼굴전체는 살색 위에 분을 칠했고 양 볼의 둥근 연지와 이마에 곤지의 흔적이 있고 입술도 붉은 색을 칠하였다. 눈은 실눈으로 떴고 코는 평평한 편이다. 처녀의 옷차림인데 보통 노랑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는다.
얼굴 표정은 대체로 무겁고 조용한 분위기이다. 눈은 아래로 살포시 내려깔고 있으며 입은 힘을 주어 꾹 다물고 있다. 윗머리타래는 가채(얹은머리)이며, 왼쪽 머리타래는 앞으로 나와 있고 오른쪽 머리타래는 뒤로 빠져 있다. 이 때문에 좌우 머리 타래는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각시탈의 돌출 된 광대뼈는 관상학에서 과부상으로 해석된다.
옛날의 각시는 '봉사 행세 3년, 벙어리 행세 3년, 귀머거리 행세 3년'이라는 말처럼 시집살이의 많은 어려움을 참고 살아야 하는데, 하회탈 가운데 다른 탈들은 모두 입이 열려 있는 데 반해 각시탈만은 입이 다물어져 있다. 더구나 입 옆에 근육이 선 것으로 보아 힘을 주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는 시집살이의 어려움을 속으로 삭히면 살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눈이 아래로 향한 것은 함부로 고개를 들고 살 수 없는 각시의 신분을 짐작케 해준다. 또한 머리타래가 흔들거리는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은 걸을 때에 얼굴을 움직이지 않고 걸음걸이가 조용조용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령 각시가 한 걸음을 걸으면 그때엔 오른쪽 머리타래가 앞으로, 왼쪽 머리타래는 뒤로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각시의 춤사위는 '사뿐사뿐 각시걸음'이라는 말처럼 눈을 아래로 깔고 움직임 없이 조용히 가볍게 걷는 것으로 이는 부네의 동작과 대조를 이룬다.
원래 하회마을의 서낭신은 무진생 김씨 각시신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이는 무진생 의성 김씨 각시가 17살에 하회마을에 시집을 왔다가 시집오던 그 해에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살다가 나중에 죽게 되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죽은 그 각시의 혼이 마을을 지켜 줄 것이라 믿으며 서낭신으로 모셨다 한데서 유래한다.
글.이미지 출처 : 안동河回 마을. 탈 박물관
탈은 한자로는 면(面), 면구(面具), 가수(假首), 가두(假頭), 가면(假面), 대면(代面, 大面) 등으로 표기한다.
우리말로는 탈, 탈박, 탈바가지, 광대, 초라니라 불려왔으나 현재는 일반적으로 '탈'이라 통칭되고 있으며,얼굴 전체를 가리는 면구(面具) 가면과 머리 전체를 가리는 가두(假頭), 투두(套頭), 가수(假首)로 구별하기도 한다.
탈이란 말은 가면을 뜻할 뿐만 아니라 [탈나다]의 말에서처럼 재앙이나 병을 뜻하기도 한다.
그 예로 음식을 잘못 먹어 배가 아플 때 '배탈'이 났다고 하고, 다친 곳이 덧나도 '탈났다'고 하며 무슨 일이건
잘못되어도 '탈났다'라는 말을 사용한다. 또한 남사당에서는 탈놀이를 '덧뵈기'라고 하는데, 다른 무엇을 하나 쓰고 본다는 의미이다. 가면은 사용하는 것은 재앙이나 병을 가져오는 악신이나 역신을 쫓으려고 할 때는 그보다 더 무섭고 힘이 있는 것을 쓰고 쫓아 버려야 한다는 신앙이 있었다. 이러한 가면은 주변에 가까이 두기를 꺼려했다. 장례식에서 쓴 방상씨는 물론이고, 한 마을의 지킴이로 모셨던 탈들도 마을에서 좀 떨어진 당집에 보관하였다. 수렵생활을 하던 원시인들이 수렵 대상물인 동물에게 접근하기 위한 위장면으로, 뒤에는 살상한 동물의 영혼을 위로하며, 또한 그 주술력을 몸에 지니기 위한 주술적 목적에서 비롯하여 점차 의식용으로 변모. 발전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가면으로 최초의 것으로 알려진 것은 6세기경 신라시대의 방상씨로서 1946년 경주 노서리 호우총 고분에서 출토되었다. 그 외에 덕물산가면, 국보 121호로 지정된 하회탈, 병산탈 등 옛 탈이 현존하고 있다. 옛부터 사용된 탈 중에서 고구려의 무악면은 서역의 영향을 받았고, 백제의 기악면, 신라의 월전, 속독, 산예 등도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방상씨는 중국에서 전해 받았다고 한다.
탈을 사용한 의례와 놀이는 여러 형태로 남아 있었으나, 현재 무형문화재로 등록된 탈놀이는 해서탈춤계, 산대놀이계, 오광대계, 야류계, 서낭신제탈춤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해서탈춤계열은 황해도의 봉산, 강령, 은율탈춤, 산대놀이계는 송파산대놀이와 양주별산대놀이가 있다. 오광대계열로는 통영.고성.가산 오광대, 야류계는 수영.동래 야류, 서낭신제 탈놀이로는 하회별신굿탈놀이와 강릉관노가면극이 있다. 그 외 남사당놀이 가운데 덧뵈기가 있다. 예천 청단놀음, 지방문화재로 등록된 영해별신굿의 탈굿과 영광농악의 잡색놀음이 있다.
그 외에도 많은 탈놀이들이 현존하였었다.
방상씨는 본래 주, 한, 등 중국 고대 나례(궁중과 민간에서 잡귀를 쫓기 위하여 베풀던 의식의 대표적인 신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5-6세기 시작하여 1930 사용했었다.
4개의 금빛 눈을 가지고 있는데 금빛은 귀신을 물리친다는 벽사의 색이다. 방상씨는 장례행렬의 맨 앞에서춤을 추며 잡귀를 물리치는 역할을 하고, 광중(시신을 묻는 곳)에 도착하여 네 귀퉁이를 찔러 악귀를 쫓는다. 사용한 탈은 무덤 근처에 묻거나 태워 버려 장례식마다 새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나무, 종이 짚 등으로 만들었는데, 나무로 된 방상씨는 조정이나 규모가 있는사대부가에서 썼고, 종이로 된 것은 양반층이, 짚으로 엮어서 만든 것은 일반 서민들이 사용하였다.
하회탈의 유래전설 1
꿈에 신으로부터 탈을 만들라는 명을 받은 허도령은 잡인이 근접을 못하도록 집에 금줄 (禁索)을 둘렀으며, 누구도 가까이 못 하도록 휘장을 드리우고 매일같이 목욕재계로 온 성력(誠力)을 탈을 만드는 작업에 쏟아 일이 거의 이루어져 가는 단계에서 얄궂은 마장(魔障)이 생겼다는 것이다.
허도령을 몹시도 사모하는 한 이웃 처녀가 애틋한 그리움을 걷잡을 길 없어 도령의 얼굴을 먼 발치에서나마 보지 않고는 못 견딜 지경이었다. 처녀는 몰래 도령의 집에 숨어 들어가 가만히 휘장에 구멍을 내고 들여다 본 것이 부정(不淨)을 탄 바 되어, 삼매(三昧)의 경지에서 일에 열중하던 도령이 갑자기 피를 토하면서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지막 열두 번째의 '이매' 탈은 턱이 이루어지지 못한 미완성품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마을에서 도령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서낭당 근처에 단(檀)을 베풀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게 되었는데, 상당 아래에 있었다는 바로 그 단이었을 것이라고 하며, 무진(戊辰)년마다 벌이는 별신굿은 허도령의 혼령을 위로함과 함께 마을의 평온을 비는 행사였다.
탈은 신성(神聖)을 지녔다하여 탈을 소중히 그리고 극진한 정성으로 조심히 간직해 왔다.
마을 사람들도 별신굿 행사 때에만 이 탈을 볼 수 있었다. 만일 탈을 공경하는 정성이 소홀하면 재앙을 받는다고 하여 탈을 간직한 궤에 손을 대는 것은 누구에게도 금기(禁忌)로 되어 있었다.
별신행사 때에도 광대들이 한 장소에서 다 합숙생활을 하는 것은 마음과 몸을 정성되고 정결하게 가지려는 뜻으로, 별신굿 기간 중에는 그 가족들의 면회조차 금기로 되어 있었고, 더욱 여자를 가까이 하면 당장에 변고가 일어난다고 했다. 우연의 일치일까는 모르나, 별신 행사 때 갑자기 말을 못 하거나 위급한 병에 걸려 온갖 치료로도 도무지 효험이 없다가 마침내 별신굿에서 빌고라야 씻은 듯이 회복되는 기적을 여러 번 보았다고, 유한상씨는 말한다.
하회탈의 유래전설 2
전설에 의하면 허도령은 삼십이 넘도록 장가를 들지 못했다 한다. 집안이 가난함은 물론 엄격한 부모 슬하에서 성장하였는데 우연히 이웃집 처녀를 사모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뜻대로 장가들지 못하고 번민하던 중 꿈에 집안에 금줄을 치고 신이 계시한 열 두 개의 탈을 완성하면 그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다음날부터 성심성의껏 탈제작에 임했다. 그 일에 몰두한 지 수 개월 만에 열 한 개의 탈을 제작하고 열 두 개째인 이매탈을 제작할 찰나에 허도령을 사모하던 안씨 처녀가 궁금한 나머지 어느날 밤 담을 넘어 문구멍으로 그 광경을 들여다보자 이상하게도 허도령은 피를 토하며 죽고 말았다는 전설이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하회탈에 전설이 명료할 리가 없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이런 이야기도 있다. 마을에 전염병이 만연했다. 백약이 무효한 형편이라 성황님을 누구나 찾았다. 18세기 초인 숙종 연간에도 괴질로 2만명이 죽었고 18세기 후반인 영조 때도 2만명이 죽은 기록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그 위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하루는 지성껏 기도하던 허도령의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현몽하기를 ‘탈 12개를 만들어 자신에게 제사를 지내면 전염병을 물리칠 수 있다’고 했다. 깜짝 놀라 꿈에서 깨어난 허도령은 즉시 산 속 계견불문처(鷄犬不聞處)에 움막을 짓고 탈 제작에 몰두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시련이 닥쳤다.
평소 허도령을 사모하던 처녀가 있었고 그 기한을 지키지 못하고 문을 열고 말았다. 그 뒤의 결과는 동일하다. 그래서인지 현존하는 열 두 개의 탈 가운데 이매탈만 턱이 없다.
하회탈의 유래전설 3
옛날 허(許)도령이라는 청년(靑年)이 있었다. 그는 꿈에 마을의 수호신(守護神)으로부터 가면제작(假面製作)의 계시(啓示)를 받았다. 이튿날 그는 목욕재계하여 집안에 외인(外人)의 출입(出入)을 막는 금삭(禁索, 금줄)을 치고 전심전력으로 가면제작에 몰두했다. 그때 허도령을 몹시 연모(戀慕)하는 처녀가 있어서 여러 날을 기다렸으나 허도령을 볼 수가 없어 하루는 허도령이 무엇을 하는지 그 모습이나 보고자 창(窓)에 구멍을 뚫어 엿보고 말았다. 금단(禁斷)의 계율(戒律)을 어긴 것이다. 입신지경(入神之境)이던 허도령은 그 자리에서 피를 토(吐)하고 숨을 거두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만들던 <이매> 가면(假面)은 턱이 없이 남게 되었다. 그 후 마을에서는 허도령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성황당 근처에 단(壇)을 지어 해마다 제를 올렸다고 한다.
하회탈의 유래전설 4
허(許)도령(이름 미상)이 있었다. 그는 꿈에 신(神, 마을의 수호신)으로부터 가면제작의 명을 받게 되었다. 가면을 다 만들기까지 작업장에는 외인이 들어올 수 없는 금색이 쳐 있었고, 그는 매일 목욕재계하여 전심전력으로 가면을 만들었다. 그런데 허도령을 몹시도 연모하는 처녀가 있었으니, 그녀는 불타는 연심을 억제하지 못하고 하루는 허도령의 얼굴 모습이나마 보고 싶어 그만 휘장에 구멍을 뚫고 허도령의 모습을 엿보고 말았다. 금단의 일을 저지른 것이다.
입신지경이던 허도령은 그 자리에서 토혈(吐血)을 하고 숨을 거두었다. 그러므로 마지막 열 두번재의 이매탈은 미완성인 채 턱없는 탈이 되고 말았다. 그후 마을에서는 허도령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성황당(城隍堂) 근처에 단(壇)을 지어 해마다 제(祭)를 올린다고 하였다. 마을 주민들은 별신행사시(別神行事時) 외에는 가면을 못 보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부득이 보아야 할 경우, 신(神)에게 고(告)하고 나서 보아야 하는 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가면을 만약 함부로 다루게 되면 탈(變怪)이 난다고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하회탈의 유래전설 5
하회마을 동사(洞舍) 앞마당에는 부락민 모두가 모여 재미있는 놀이를 만들기 위한 의논이 분분하였다. 놀이의 인물은 양반, 선비, 초랭이, 영감, 부네, 이매, 백정, 할미, 주지, 소 등으로 결정이 되었다.
이때 총각 하나가 “아닙니다요 얼마 전 윗마을에서 중이 나타나 각시를 업고 도망갔다는데 기왕지사 비뚜러진 양반사회를 풍자하기로 했으니 중, 각시 마당도 집어넣지요 어떻읍니까?”
젊은이의 말에 모든 사람들은 박장대소하며 찬성하였다. 온 마을 사람들은 놀이를 꾸미는 데 신바람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놀이는 당시 철저한 계급사회제도 속에서 하천배들에 의해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표현으로 지체 높은 양반 지배계급에 대한 신랄한 야유와 비판으로 내용을 꾸몄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맨얼굴로 춤을 추게 되면 누가 어떤 역할을 했는가 다 알게 되므로 춤추는 자도 꺼리게 되고 보는 사람도 흥이 덜 나므로 탈을 만들어 쓰기로 합의되었다. 그리하여 이 마을에 번을 서고 있는 손재주 좋은 허도령에게 이 일을 부탁하기로 했다. 허도령은 극구 사양했으나 꿈에 마을의 수호신으로부터 가면제작의 계시를 받고 승낙했다.
이렇게 해서 허도령은 가을이 깊어가는 무렵 하회마을의 수목이 울창한 깊고 한적한 곳에 외인의 출입을 막는 금색을 친 후 목욕재계하고 전심전력으로 12개의 가면제작에 몰두했다.
허도령은 “12개의 탈을 다 만들려면 3달을 걸려야 할 텐데 모든 정성을 다하여 훌륭한 탈을 만들어야겠다. 백정에게는 사나우면서도 솔직한 모습을, 할미에게는 주름지고 고생에 찌든 늙은 탈을, 초랭이는 진짜 촐랑대는 얄밉고 익살스러운 탈을 섬세하고 교묘하게 만들어 놀이를 한층 즐겁게 해 줘야지.”
허도령이 깊은 산속에서 탈 제작에 전념하고 있을 때 마을 처녀들 사이에는 종종 화제가 되었다. 허도령의 탈 제작에 전념하는 모습이 신선 같다느니, 빼어난 귀공자 같다느니 하며 은근히 사모하는 처녀들이 많았다. 신선 같다는 허도령의 모습을 소문으로 듣고 몹시 사모하던 한 처녀는 그리움을 참지 못하여 한밤중에 홀로 일어나 뒤 곁 은행나무에 정화수를 떠놓고 막 기도를 올리려는데 이상하게도 정화수 속에 허도령의 모습과 그 만들어 놓은 탈들이 비치는 것이었다. 이제야 탈을 다 만들었나 보다고 생각하니 더욱 허도령이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처녀는 참지 못하여 허도령의 처소를 찾아갔다. 교교한 달빛은 처녀의 가슴을 더욱 애타게 만들었다. 늦은 밤인데도 불을 밝히고 허도령은 탈제작에 여념이 없었다. 마지막 탈 이매탈의 턱을 만들려는 중이었다.
그 모습은 과연 천상의 신선이 내려와 앉은 것 같았다. 그 아름다운 모습을 문틈으로 훔쳐보던 처녀는 욕정을 이기 못하여 입을 열었다.
“허도령님 허도령님 작업을 잠시 멈추고 저와 이야기를 좀 나누어요 네!”
도령이 턱을 깎으려다가 여인의 소리에 깜짝 놀랐다.
“아니! 이 밤중에 왠 계집이... 밖에 뉘시요?”,
“허도령님 도령님이 그리워서 찾아 왔어요..저를 좀 만나주세요?”
“에잇! 이 부정한 계집이 탈 만드는 광경을 훔쳐보다니.”
이때였다. 갑자기 벼락이 치며 마른 번개가 번쩍이더니 허도령은 그 자리에 피를 토하고 죽어버렸다. 처녀는 기색혼절하며 도망쳤으나 역시 벼랑에 굴러 죽고 말았다. 이 때문에 이매의 턱은 완성되지 못 하였고 턱없는 이매탈이 이제까지 놀이에 쓰여지게 된 것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