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긴장된 하루였다. 95년 들어 처음 갖는 콘서트의 첫날이기도 했고 공연이 끝나면 다시 잠적의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기에 마지막 콘서트의 의미도 담고 있는 아주 중요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공연은 예정된 시각보다 30분 가량 늦게 시작되었다. 너무 긴장했던 탓인지 몇 군데서 춤이 틀리기도 했는데 팬들이 눈치를 챘는지 모르겠다. 이번 공연이 키포인트는 바로 음향이었다. 국내 콘서트의 가장 큰 문제점이자 항상 '말썽꾸러기'로 지적을 받아온 음향을 제대로 한번 들려줘보자는 의도아래 많은 비용을 들여 외국의 큰 공연시 사용되고있는 메이어라는 스피커를 들여와 공중에 매달았다.
이 스피커는 고음질 고음량의 것으로 기존의 국내 콘서트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우리들도 만족스러웠지만 더욱 기쁜 것은 팬들의 반응이 무척 좋았다는 점이다.
'95 다른 하늘이 열리고.... 이 콘서트를 기획하면서 내용상 역점을 두었던 것이 있다. 하나 하나의 곡마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노력했다는 점이다. 신곡 발표회도 아닌데 그저 노래 한곡, 두곡 부르는 것으로 끝내기엔 무언가 허전함이 남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떤 장면은 따뜻함과 다정함이 가득 배어나게, 또 다른 장면에선 소름이 끼칠만큼 섬찝하게,또 어떤 부분에서는 밝고 천진난만하게, '서태지와 아이들'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수 없을 만큼 다양하게 내용을 꾸며보았다. 각각의 메시지들이 팬들에게 어떤 식으로 다가갔는지는 알수 없지만 최소한 우리의 노력만은 인정해줄 것이라 믿고싶다.
[둘째날] 95년 1월 12일
오늘은 어제보다 내용상 조금 더 첨가된 부분이 있었다. 나의 솔로시간과 양군의 하모니카 연주가 선보여졌기 때문이다. 어제 우리의 공연을 보았던 친구들은 서운함을 토로할 테지. 친구들아, 미안해. 사실 양군도 나도 어제는 연습 부족으로 그것을 무대 위에 올릴 수가 없었다. 억지로 하라면 할수도 있었겠지만 하루정도 더 시간을 두고 보자는 생각에 팬들의 비난을 각오하고 오늘부터 그것을 무대에 올리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공연과 이 번 공연의 가장 큰 차이점이 뭘까? 양군과 주노형의 비중이 더 커졌다는 점이다. 드럼 연주와 하모니카 연주, 그리고 노래로 팬들을 사로잡은 양군, 통기타 연주를 직접하며 자작곡을 감미로운 목소리로 들려주었는가 하면 일렉기타를 치며 이리저리 거칠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여줘 관중들을 놀래킨 주노형, 팬들은 분명 기뻤을 것이다.
특히 주노 형이 팬들에게 들려주겠다며 오래전부터 준비했던 따뜻한 노래 한곡은 팬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한 것이었으리라. 평소 무뚝뚝해 보이고 조금 어두워 보이는는 모습때문에 팬들의 접근을 무언 중에 꺼리는 듯 보이는게 아닐까
걱정하던 주노 형의 여린 본심이 잘 드러나 있었기에 말이다.
[셋째날] 95년 1월 13일
'지킬 박사와 하이드' 연출과 나의 솔로가 무서웠다는 이야기가 많단다. 피가 잔뜩 묻은 찢어진 옷에 얼굴은 괴물처럼 화장을 한 모습으로 무대를 누비며 춤을 추는 모습과 기타를 뚱땅거리며 이상한 소리로 노래를, 그리고 갑자기 울고 그러다가 웃고 하는 모습이 아마도 팬들에겐 공포로 다가섰던 모양이다.
얘들아 무서워하지마. 노래에 맞게 상황을 연출한 거니까. 일본의 요요기획 스태프들은 1월 21일 일본에서 발매되는 우리들의 2집앨범 CD와 포스터를 가지고 들어왔다. 드디어 또 한장의 앨범이 일본땅에 뿌려진다.
일본에서 온 팬클럽이라고 해서 그들과의 만남을 따로 갖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이 국내 팬들을 속상하게 하는 일임을 아는 까닭이다.
다만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은 충분히 갖고 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섭섭한 마음이 있을 테지만 우리의 상황과 입장을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일본에서의 2집 앨범 발매일이 21일인것은 우연의 일치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내 생일이 2월 21일이라 그날에 맞춘 것이라고들 하던데... 아마도 팬들의 관심에서 나온 얘기들일 것이다.
지금 우리가 팬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 하고 싶은 말은 단 하나, 공연 끝무렵에 펼쳐보였던 플래카드에 씌여있던 글귀 그대로이다.
'우리 역시 영원토록 너희들을 사랑할거야'.
[넷째날] 95년 1월 14일
매공연 마지막에 팬들에게 힘껏 던져주는 꽃다발과 소지품들 그것은 나, 양군, 주노 형의 마음이다. “더 드릴 게 없어요”하며 주위를 둘러보다 결국은 자신의 마지막 셔츠를 벗어서 던지던 양군의 모습.
그것 하나만으로도 팬들은 우리의 마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이즈음에서 팬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미안해'. 오랜 잠적끝에 3집 앨범을내놓고도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해 팬들과 만나는 시간이 적었다는 것에 대한 사과이다.
하지만 우리가 처했던 상황들을 팬들은 이해해 주리라 믿고 있다. 오늘 공연이 더욱 부담스럽고 신경쓰였던 이유는 공연 후 발매될 뮤직비디오 촬영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전과 후에 있을 공연도 짜집기가 되겠지만 그래도 오늘 공연이 주가 될 것이기에 우리는 더욱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오늘 공연만 특별히 더 열심히 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신경을 더 곤두세운 탓인지 어제와 그저께 공연에서는 하지 않았던 실수를 하기도 했다.
[다섯째날] 95년 1월 15일
오늘은 낮에 공연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지방팬들이 많이 와주었던 것 같다. 관중석은 1층은 물론 2,3층 모두 형광봉으로 꽉 메워져 있어 어두운 조명에도 불구하고 장내가 무척 환했다.
참! 오늘 무척 놀라운 일이 있었다. 앵콜곡으로 '너와 함께 한 시간 속에서'를 부르고 있는데 한 여학생이 무대위로 달려나와 나를 안았다.
그냥 얼떨결에 나도 그 친구를 안았는데 그게 문제가 될 줄이야. 그 여학생이 잠시 후 털썩 주저 앉더니 기절을 했다. 다행히 그 여학생은 이를 보고 달려나온 군인 아저씨에 의해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다. 더 놀랐던 것은 공연후 들은 얘기인데 그 장면을 보고 관람석 앞쪽에 있던 여학생 2명이 다시 기절해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것이었다.
가슴이 아팠다. 그러면서도 온몸으로 우리 서태지와 아이들을 사랑해주는 팬들에게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 공연이 끝나면 우리는 또 한번의 잠적을 하게 된다. 이번엔 좀더 긴 시간의 헤어짐을 가지게 될 것 같아 더 마음이 아프다. 양군이 무대에서 8개월 후 만나자고 했다는데 사실은 그보다 좀더 긴 시간일 것이다.
오는 10월이나 11월쯤 되어야 4집 앨범을 가지고 나올 수 있을 것 같으므로.
헤어져 있는 동안 마음 변하면 여자 친구를 사귀겠다는 양군과 결혼해 버리겠다는 주노 형의 귀여운(?) 협박을 팬들은 어떻게 받아 들였는지.
다들 너무나 아쉬워 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서로를 믿고 기다려주는 마음이 있기에 우리는 그뒤에 오는 더 큰 선물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팬들에게 크게 외치고 싶다. 보고 싶어도 조금만 참고 기다려 달라고, 우리들 역시 그럴 거라고.
[마지막날] 95년 1월 16일
마지막 콘서트의 마지막 날. 가슴이 막 메이는 느낌이었다. 잠적 전 마지막 으로 팬들과 마주하는 자리였기에.
겨우겨우 아쉬움을 달래가며 공연을 끝내었는데 펜싱경기장에서의 6일이 영상처럼 계속 머리 속에 남아 있다. 앞으로 20여일간은 뮤직 비디오와 라이브 앨범 준비로 바쁠 것 같다. 일단 그 작업이 끝나면 일본으로 건너가 2월 21일 발매될 앨범의 홍보활동을 잠깐 하게 될 것이다.
소니사측에서 5월쯤에 일본 지역에서 2번 정도 콘서트를 하자는 제의를 해왔는데 가능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일본의 대형 레코드숍에서는 우리들의 음반 코너를 따로 마련해 두고 있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은 듯 하다. 앨범 판매량이 저조하다면 아마도 소니사측에서 우리들에게 콘서트 제의를 해오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에서 콘서트를 하게 될 경우에도 국내처럼 대규모 무대에서 해야 하는데 그 많은 경비를 손해보면서 공연을 치르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팬클럽인 'IVY Japan'도 그렇지만 일본인들 중 우리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학생 이상이다.
'IVY Japan'의 회장이 25세인 것만 봐도 그것을 알수 있다. 이것이 우리들의 콘서트가 일본에서 가능하다고 보는 이유 중 하나이고 어려움이 많지만 올해 안에 꼭 공연을 갖자고 하는 이유라 본다.
그건 그렇고 지금 우리에게 닥친 가장 큰 숙제는 4집 앨범 준비이다. 95년을 오롯이 바쳐 만들게 될 4집 앨범, 그것을 위해 우리는 또 한번 앞으로 전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