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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나해 사순 제4주일
<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
복음: 요한 3,14-21
‘대통령의 글쓰기’의 저자 강원국 작가는 세바시에 출현해 ‘글쓰기의 두려움을 이기는 법’에 대해 강연한 적이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글쓰기에만 전념한 이런 분도 여전히 글쓰기가 두렵다고 말합니다. 강원국 작가는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시절 대통령의 연설문을 쓰는 일을 하였습니다. 대통령의 연설문을 대통령의 마음에 들게 쓰는 것은 매우 큰 어려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2~3일에 한 번은 써내야 하며 어떤 때는 단어가, 어떤 때는 문장이, 어떤 때는 문단이, 어떤 때는 페이지 전체에 엑스표가 되어 다시 내려옵니다. 그렇게 자신의 글에 칼질을 해 대는 인물이 대통령일 때는 그 스트레스가 엄청날 수밖에 없습니다.
강원국 작가는 그때 매우 간절하고 절실할 때 글이 잘 써졌다고 합니다. 다음 날 아침 일곱 시까지 대통령에게 보내야 하는 연설문을 새벽까지 한 줄도 쓰지 못하고 머리를 쥐어뜯을 때가 많았는데, 다음날 아침까지 한 자도 쓰지 못하고 대통령을 만나는 상상을 하면 겁이 나 안 나오던 글이 빠르게 써질 때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마치 시험 직전 초치기 공부가 엄청난 초능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글도 간절하고 절실할수록 잘 써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며 글을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강 작가는 더 좋은 방법을 소개합니다. 은퇴하여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을 내겠다고 아내에게 말하고 책상에 앉았습니다. 하지만 이십일이 넘도록 한 자도 써지지 않았습니다. 아내의 눈치를 보아야 했기 때문에 일정한 시간에 산책을 하고 또 일정 시간 동안은 꼭 책상에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이십 며칠이 지났는데 갑자기 글이 봇물 터지듯이 써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이것이 ‘습관의 힘’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뇌는 인간이 좋은 일을 하려고 하면 저항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정 시간 계속 그 습관을 들이면 뇌도 저항하는 것을 힘들어하게 됩니다. 그러다 결국 “이렇게까지 저항했는데도 끝까지 하려고 하니 차라리 도와주고 끝내자”는 식으로 일에 협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아의 저항을 이기는 데 습관의 힘처럼 큰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도 구원은 결국 습관의 힘을 키우는 것과 매우 큰 관련이 있음을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찾아온 니코데모에게 구원의 신비에 대해 설명하십니다.
먼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당신도 그렇게 들어 올려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인간의 구원이 모세의 뱀처럼 당신의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각자가 다 자신의 불 뱀들에게 물려 죽어가는 이들에게 모세는 자신의 뱀을 장대에 매달고 그것을 바라보아야만 뱀에서 치유될 수 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바라본다는 말은 닮아간다는 말과 같고 결국 자신의 뱀도 그렇게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뱀은 자아(에고)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들어오면 자아는 저항합니다. 모세는 자아의 저항을 이긴 사람입니다. 모세는 자신의 뱀을 장대에 매달아 이스라엘 백성의 모범이 된 그리스도의 전형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 뜻을 십자가에 매달아 그 피를 땅에 흘렸습니다. 십자가에 매단 당신 자아에서 흘러나오는 피로 세상이 그분의 뜻을 받아들여 자신 안에 있는 자아와의 싸움을 시작합니다. 이는 마치 하느님의 피인 성령을 받아들여 사십 일 동안 광야에서의 싸움을 시작하셨던 예수님의 경우와 같습니다. 사십(40)은 땅, 혹은 인간을 나타내는 숫자 ‘4(동서남북)’와 계명(법, 토라)을 나타내는 숫자 ‘10’이 곱하여져 하나가 된 숫자입니다. 즉 땅으로 만들어진 인간이 자신 안에 있는 뱀을 죽여 대신 하느님의 뜻이 자신 안에 이루어지게 만드는 시간입니다. 40일, 혹은 40년은 세례 받을 때의 자기 자신을 온전히 죽여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는 시기인 것입니다.
난자는 일생이 있습니다. 태어나서 성장하고 황체, 백체가 되어 몸 밖으로 빠져나갑니다. 그런데 난자도 새로 태어나면 굉장히 오래 살게 됩니다. 바로 난자가 정자를 받아들여 완전히 변하여 인간이 될 때입니다. 난자가 정자를 받아들여 이렇게 새로 태어나야 하는 것처럼 하느님의 법이자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그 사람은 새로 태어나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흘린 피를 받아들이는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진정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너무도 사랑하시어 아드님을 보내주셔서 그를 받아들이는 이는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하느님은 아드님을 통해 이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면 구원을 받는데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일까요? 바로 변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새로 태어나기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 안에 있는 자아를 죽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어둠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스스로 자아의 영향에서 벗어나려 노력해야합니다. 강원국 작가가 꾸준히 습관을 들였더니 자아까지도 그 저항을 포기하게 된 것처럼 규칙적으로 선한 일을 하도록 노력해야합니다. 그러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어둠보다는 빛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갑니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처음에는 자아의 저항에 부딪히겠지만 어둠보다는 빛을 더 좋아하는 사람으로 새로 태어나게 됩니다.
로봇다리 수영선수 김세진 군은 두 다리가 없고 한 손도 온전하지 않은 장애인이지만 장애인 수영선수로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희망의 전도사입니다. 그를 수차례의 뼈를 깎아내는 수술을 받게 하여 로봇다리로 걷게 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장애인 수영선수로 키운 것은 그의 어머니 양정숙 씨입니다. 양정숙 씨는 딸 아이 하나만 낳아 극도의 가난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낮에는 막노동판에서, 밤에는 졸지 않기 위해 혀를 깨물어가며 청소와 대리운전을 하며 생계를 유지할 때였습니다. 겨우겨우 주일 하루를 쉴 수 있게 되었을 때 양정숙 씨는 고아원에 딸과 함께 봉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세진이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양정숙 씨 딸은 여덟 살이었는데 엄마에게 이렇게 말하더란 것입니다.
“엄마 나는 팔 년 동안 엄마에게 사랑을 받았잖아. 그러니까 엄마 팔 년 동안 이 아이를 사랑해주면 안 돼? 이 아이는 우리가 아니면 데려갈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이 아이 입양하자 엄마. 내가 도와줄게. 내 동생이 되었으면 좋겠어.”
이 두 모녀는 두 다리와 온전하지 못한 팔을 가진 세진이를 극진히 사랑하고 강하게 교육하여 스스로 세상의 희망이 되겠다는 훌륭한 아이로 성장시켰습니다. 세진이 또한 자신이 타는 상금은 이웃에게 기부하는 천사와 같은 청년이 되었고 세계 곳곳에서 장애인들의 희망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에는 양정숙 씨를 키워준 아버지의 교육이 중요했습니다.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은 일주일에 하루는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다”라고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힘든 상황에서도 봉사하러 간 것이고 딸도 아들도 훌륭한 인성으로 교육시킬 수 있습니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습니다. 습관이 되면 힘이 덜 듭니다. 힘이 덜 들어야 남는 힘으로 누군가에게 좋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힘이 덜 들게 하기 위해 습관의 힘은 가장 좋은 무기가 됩니다. 습관적으로 자아를 이기는 일을 하다보면 어느새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공부의 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강성태 씨는 처음에 학생들에게 공부의 좋은 방법들을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하더랍니다. 그래서 동기부여 프로그램을 만들어 닦달하기도 하고 안아주기도 하고 비전을 주며 공부를 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뿐이더랍니다. 하지만 런던 대학교에서 같은 일을 66일 정도 반복하면 습관이 된다는 결과를 바탕으로 습관 달력을 만들었고 그 칸을 다 채우도록 하였습니다. 결과는 매우 놀라웠습니다. 하루하루 자기를 이겨가는 그 달력은 결국 자아가 자신을 포기하게 만들었습니다. 더 이상 자아가 저항하지 않고 도와주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로 보자면 습관을 들이는 66일은 40일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죄와 싸워 이기실 수 있다면 3년도 버틸 수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3년을 버틸 수 있다면 영원히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음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아의 저항을 40일 동안 끊어보도록 권하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도 자신의 육체를 이기기 위해 장미 밭에서 수없이 굴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 구르는 시간은 훨씬 적어졌을 것입니다. 항상 처음이 힘들지 습관이 되면 자아를 이기는 것이 덜 힘듭니다.
자아의 저항은 삼구, 즉 세속-육신-마귀이기 때문에 자선-단식-기도로 자아를 길들일 수 있습니다. 사순절 때 자선, 단식, 기도에 더 열중해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사십 일만 할 수 있으면 삼 년도 문제없기 때문입니다. TV와 인터넷을 40일 간 달력에 체크하며 끊어봅시다. 술과 담배를 그렇게 해 봅시다. 아침기도 한 시간을 40일 동안 해 봅시다. 매일 미사를 40일 동안 해 봅시다. 그렇게 되면 그것에 대해서는 자아가 더 이상 저항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자아가 “그냥 도와주고 끝내자!”라는 항복의 말을 할 때까지 싸움을 포기하지 말아야합니다. 그것을 이기기 전까지 가나안 땅에는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2018년 03월 11일 일요일
[자] 사순 제4주일
신경
교중
이 미사에서는 보라색 또는 분홍색 제의를 입는다. 악기를 사용할 수 있고, 제대에 꽃 장식을 할 수 있다.
파스카 성야에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들을 받을 예비 신자들을 위한 세례 준비로 둘째 수련식을 이 주일에 거행한다. 이 수련식에서는 고유 기도문과 고유 전구를 사용한다.
오늘의 전례
▦ 오늘은 사순 제4주일입니다. 선하고 진실하신 하느님께서는 끝없이 방황하는 이들을 회개하도록 부르시고, 성자의 십자가로 악의 상처를 낫게 하십니다. 우리는 은총으로 새로운 영을 받아 주님의 영원한 사랑에 응답하여야 합니다.
입당송
이사 66,10-11 참조
즐거워하여라, 예루살렘아. 그를 사랑하는 이들아, 모두 모여라. 슬퍼하던 이들아,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위로의 젖을 먹고 기뻐 뛰리라.
본기도
하느님,
말씀이신 성자를 통하여 오묘하게 인류를 구원하셨으니
그리스도인들이 다가오는 파스카 축제를
열렬한 믿음과 정성으로 준비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는 온 나라에 명을 내리고 칙서를 반포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게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으며 이는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니코데모에게,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이스라엘 백성의 유배와 해방으로 주님의 분노와 자비가 드러난다.>
▥ 역대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36,14-16.19-23
그 무렵 14 모든 지도 사제와 백성이
이방인들의 온갖 역겨운 짓을 따라 주님을 크게 배신하고,
주님께서 친히 예루살렘에서 성별하신 주님의 집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15 주 그들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당신의 처소를 불쌍히 여기셨으므로,
당신의 사자들을 줄곧 그들에게 보내셨다.
16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의 사자들을 조롱하고 그분의 말씀을 무시하였으며,
그분의 예언자들을 비웃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주님의 진노가 당신 백성을 향하여 타올라
구제할 길이 없게 되었다.
19 그들은 하느님의 집을 불태우고 예루살렘의 성벽을 허물었으며,
궁들을 모두 불에 태우고 값진 기물을 모조리 파괴하였다.
20 그리고 칼데아 임금은 칼을 피하여 살아남은 자들을 바빌론으로 유배시켜,
그와 그 자손들의 종이 되게 하였는데,
이는 페르시아 제국이 통치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21 그리하여 주님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이 땅은 밀린 안식년을 다 갚을 때까지
줄곧 황폐해진 채 안식년을 지내며 일흔 해를 채울 것이다.”
22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 제일년이었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그리하여 키루스는 온 나라에 어명을 내리고 칙서도 반포하였다.
23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는 이렇게 선포한다.
주 하늘의 하느님께서 세상의 모든 나라를 나에게 주셨다.
그리고 유다의 예루살렘에 당신을 위한 집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맡기셨다.
나는 너희 가운데 그분 백성에 속한 이들에게는
누구나 주 그들의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 그들을 올라가게 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37(136),1-2.3.4-5.6(◎ 6ㄴㄹ)
◎ 내가 너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내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으리라.
○ 바빌론 강 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그리며 눈물짓노라. 그 언덕 버드나무 가지에 우리의 비파를 걸었노라. ◎
○ 우리를 포로로 잡아간 자들이 노래를 부르라 하는구나. 압제자들이 흥을 돋우라 을러대는구나. “시온의 노래를 불러라. 우리에게 한 가락 불러 보아라.”◎
○ 우리 어찌 남의 나라 낯선 땅에서 주님의 노래 부를 수 있으랴? 예루살렘아,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손이 굳어 버리리라. ◎
○ 내가 만일 예루살렘 너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너를 가장 큰 기쁨으로 삼지 않는다면, 내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으리라. ◎
제2독서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여러분은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2,4-10
형제 여러분, 4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5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 여러분은 이렇게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
6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일으키시고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7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호의로, 당신의 은총이 얼마나 엄청나게 풍성한지를
앞으로 올 모든 시대에 보여 주려고 하셨습니다.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9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10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 그 선행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환호송
요한 3,16 참조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네.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복음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4-21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20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1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기쁜 마음으로 이 예물을 바치며 간절히 비오니
저희가 올바른 마음으로 천상 영약인 성체를 기리며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이 제사를 정성껏 드리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사순 감사송 1 : 사순 시기의 영성적 의미>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신자들이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하여
해마다 깨끗하고 기쁜 마음으로 파스카 축제를 맞이하게 하셨으며
새 생명을 주는 구원의 신비에 자주 참여하여
은총을 가득히 받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또는>
<사순 감사송 2 : 참회>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자녀들의 마음을 다시 깨끗하게 하시려고
구원과 은총의 시기를 특별히 마련하시어
그릇된 욕망에서 벗어나 덧없는 일을 피하고
영원한 구원을 향하여 힘쓰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모든 천사와 성인과 함께
저희도 주님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시편 122(121),3-4 참조
예루살렘은 튼튼한 도성, 견고하게 세워졌나이다. 그리로 지파들이 올라가나이다, 주님의 지파들이 올라가나이다. 주님, 당신 이름 찬양하러 올라가나이다.
영성체 후 묵상
▦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날까 두려워하는 이는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멀리하지만,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고 빛으로 나아갑니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비추시니
은총의 빛으로 저희 마음도 밝혀 주시어
저희가 언제나 하느님 뜻에 맞는 것을 생각하며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 주 …….
백성을 위한 기도
주님,
주님께 탄원하는 이들을 지켜 주시고
약한 이들의 힘을 북돋아 주시며
세상의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이들을
언제나 주님 빛으로 이끄시고
온갖 악에서 인자로이 구해 주시어
모두 완전한 행복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즐거워하여라, 예루살렘아. 그를 사랑하는 이들아, 모두 모여라. 슬퍼하던 이들아,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위로의 젖을 먹고 기뻐 뛰리라.” 오늘 미사의 입당송은 사순 제4주일의 의미를 밝혀 줍니다. 교회는 희생과 단식을 하며 사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부활의 영광이 있음을 미리 알려 주며 격려하고 있습니다. 이 주일에는 사제도 보라색 제의 대신 기쁨을 나타내는 분홍색 제의를 입을 수 있습니다.
바빌론강 기슭에서 시온을 그리워하며 눈물짓던 사람들, 예루살렘을 그리워하던 사람들이 키루스왕의 칙령으로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사랑하심을 깨달았습니다. 유배의 고통 중에도 하느님께서 그들을 버리지 않으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영화와 치욕 속에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존재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치욕적인 죽음을 맞으실 때에 영광을 받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죽음과 생명, 낮춤과 올림의 역학이 함께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류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세계에 내려가셔서 죽음을 정복하시고 하늘 높이 올라가시어 닫혔던 하늘 나라의 문을 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온 세상에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십자가의 신비를 통하여 당신의 무한한 사랑을 발견하기를 원하십니다. 십자가에 대한 믿음으로 하느님의 풍성한 구원을 체험한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사순 시기의 재계는 십자가의 비움을 향해 걸어가는 행위인 동시에 영광의 행진입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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