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찬송가 321장 (구 351장) / 사도행전 13 : 13 - 31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321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사도행전 13장 13절 – 31절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3.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14.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15.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16.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18.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
19.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
20.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21.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23.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24. 그가 오시기에 앞서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25.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26.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27.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28.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29. 성경에 그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30.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지라.
31.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그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의 증인이라. 아멘!
오늘 본문에 보면 구브로 선교가 나오는데, 이때부터 바울이 주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쓴 누가는 여기서부터 '바나바와 바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바울과 그 일행' 또는 '바울과 바나바' 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버가는 앗달리아 항구에서 13km정도 북쪽에 있는 도시인데, 여기서 수종자였던 마가 요한이 선교 여행이 힘들다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여전히 버가에서 다시 160km 정도 떨어진 비시디아 안디옥에 있는 회당에서 안식일에 전도하며 설교를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는 사도 베드로의 설교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는 스데반집사님의 설교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사도행전 13장에는 사도 바울의 설교가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스데반, 바울의 설교를 보면 공통점이 있는데 모두 이스라엘 역사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기독교는 바로 역사적 사건 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요셉때 애굽에 들어가게 하시고, 모세를 중심으로 출애굽해서 광야 40년 생활하다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것, 모두 역사입니다. 기독교는 어떤 개인이 도를 닦다가 환상보고, 능력 받아 생긴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의 모든 교리는 역사입니다. 역사란 바꾸어 말하면 '사실' 입니다. 사실에 근거한 것이 바로 우리 기독교의 복음입니다. 그래서 성경 속의 많은 설교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설교를 하면서 먼저 역사를 말했던 것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 18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참으셨다 했습니다. 몇 년을요? 40년간.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잊기는 잘하고 참기는 잘 못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것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광야에서 어려운 일 만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돌보심, 인도하심을 까맣게 잊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기가 막히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참으시니까 우리가 이렇게 살지, 배은망덕 하는 대로 벌하셨다면, 세상에 살아남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바울의 설교인 19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들어간 것은 그들의 힘으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심으로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입니다. 빼앗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셨고 이스라엘은 그냥 받았습니다. 그런데 살만하니까 왕을 세워달라고 합니다. 왕 세우는 것을 하나님은 좋지 않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두 졸라대니까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처음 세운 왕이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은 외모가 출중했습니다. 부모에게도 대단한 효도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울은 대단히 겸손했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고 나서 바뀌기 시작합니다. 교만해졌습니다. 시기와 질투가 많아졌고 심지어 제사장만이 드리는 제사를 자신이 드리는 잘못까지 범했습니다. 그 다음 세운 왕이 다윗입니다. 다윗의 용모는 사울에 비해 별로였던 것 같습니다. 다윗은 또 완전한 사람도 아니었어요. 우리아의 아내를 보고 욕심이 나서 우리아를 전쟁터에 나가 죽게 하고는 자기 아내로 삼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법궤가 들어올 때 옷이 벗겨진 줄도 모르고 너무 기뻐하며 춤까지 췄어요. 시편을 보면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깊은 마음을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시편 18:1, 23:6)
뿐만 아니라 다윗은 회개할 줄 아는 왕이었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우리아의 아내 빼앗은 것을 책망하자 어떻게 했습니까? 다윗은 즉시 고백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대단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충성스럽고 영적으로 바로 서려고 애쓰는 다윗을 들어 이스라엘 왕국의 탄탄한 기초를 놓으시고, 그 가문에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결론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우리의 속을 고치는 것, 바꾸는 것입니다. 곧 속사람이 변해야 함을 말합니다. 또 하나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죄를 용서함 받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한분 예수님이십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이심이라."(마1:21)
그래서 사도 바울이 설교를 통해서 말하고자 했던 첫 번째 교훈은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설교를 정리하면, 하나님이 택하시고, 하나님이 인도하여 내시고, 하나님이 참으시고,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 하나님이 사울을 왕으로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으로 다시 왕을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지금 설교 중에 분명하게 선포하는 것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가 좋은 계획을 세우고, 또 이제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꼭 될만한 일이라도 틀어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상식도, 인간관계도 통하지 않아요. 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믿으십니까? 여러분 인생,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믿으십니까? 믿으신다면 그렇게 사십시오. 무슨 일을 계획하고 행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물으세요. 결재를 받으세요. 하나님 음성을 들으세요.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계획대로 역사를 진행시키십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위대하게 쓰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들어 쓰셨습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워 일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도구로 쓰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사도 바울의 설교의 주제,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23절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바울은 예수님에 대하여 '구주' 라고 표현했습니다. 죄악 된 우리 인간에게 용서와 치유를 통해 새로운 사람으로의 변화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절대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용서를 받은 체험을 한 사람을 통해 깨어진 가정이 다시 회복될 수 있고, 깨어진 인간관계도 회복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구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용서할 수 있고 용서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회와 역사와 개인 모두에 대한 변화와 치유를 가능케 하시는 분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예수를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그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 모인 유대인들에게 설교를 통해 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사는데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 이루어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 믿는 것이 성도의 신앙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하는데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고, 그 일이 어떤 일이 되었든 "나는 하나님께 쓰임 받았다." 는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 행복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은 어떻게 쓰임 받고 계십니까? 하나님 뜻을 깨닫고, 그분 음성을 들으며, 쓰임 받기에 합당한 도구로 훈련받으시고, 또 쓰임 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쓰임 받으시기 바랍니다. 용서하며 사랑하며 나눔과 섬기는 시역을 감당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그 기쁨 맛보며 사시는 행복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