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양(그레고리오) 안동의료원장은 생명지킴이다.
지난 28년간 임신중절수술을 거부해온 의사다.
이 원장은 "생명은 하느님께서 주신 권리이며, 태아의 살 권리는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며 가톨릭교회 가르침을 강조했다.
그가 30년 가까이 생명지킴이로서 생명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신앙과 가족 덕분이었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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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인은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고 외쳤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예수님과의) 만남이 없는 기다림은 생명이 없는 기다림에 불과하다. 그리스도인은 주님 없이는 홀로 설 수 없는 존재인 까닭이다.
임신한 엄마는 아기를 기다린다.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을 말을 하고, 좋은 음악을 들으며 태교에 정성을 쏟는다. 건강한 아기를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에게 대림은 아기를 기다리는 엄마 아빠와 같은 마음을 갖는 시간이다.
'기다림'과 '보속'의 시기인 대림을 맞아 경북 안동에 있는 경상북도 안동의료원(의료원장 이한양)을 찾았다. 새 생명을 기다리는 산부인과 의료진과 예비 엄마의 기다림에서 예수님을 기다리는 그 마음을 엿봤다.
경북 '안동의료원 산부인과'와 임산부들
▲ 임신 25주차 태아의 모습.
초음파 사진 가운데가 손이고, 손 오른쪽이 얼굴이다. 이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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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평일 오후 안동의료원 산부인과 "뱃속에서 아기가 자꾸 움직이는 것은 엄마에게 보내는 경고예요. 자세가 불편하니 바꿔달라고 하는 거죠. 임신부는 항상 왼쪽으로 누워야 해요. 절대 똑바로 눕지 마세요. 그러면 아기에게 가야 할 산소가 줄어들어 아기가 불편해 합니다."
대림시기를 열흘 앞둔 11월 21일 오후 안동의료원 산부인과. 산부인과 및 가정의학과 전문의 이한양(그레고리오, 66, 안동교구 목성동본당) 안동의료원장이 출산을 2개월여 앞둔 같은 병원 간호사 김효진(33)씨를 직접 초음파로 검진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이 원장은 "뱃속 아기가 너무 많이 움직이는 것은 좋지 않다"며 "엄마가 편안한 자세를 취해야 아기도 편안함을 느낀다. 편안한 아기는 잠자는 것처럼 자주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초음파 장비로 아기 얼굴이 잘 보이도록 곳곳을 비췄다. 25주 차에 접어들어 체중 1㎏이 조금 넘는 '밝음이'(태명)가 부끄러운 듯 손으로 얼굴을 가리거나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모니터를 통해 태아 재롱(?)을 바라보던 김씨가 환한 미소를 짓는다. 어서 태어나 '진짜로 재롱을 부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행복한 상상도 해본다.
김씨는 "결혼 6개월 만에 아기를 가졌는데, 딱 적당한 시기에 임신해 신랑과 가족들이 아주 기뻐한다"면서 "병원에서 근무해서 그런지 건강하게만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남산만한 배를 손으로 문질렀다.
안동의료원 산부인과에는 환자가 줄을 잇는다. 임산모가 아니더라도 부인과 질환이나 각종 검사를 받으러 온 이들로 평소 대기실 의자가 비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하지만 요즘 경북 지역 산부인과에서 아기 울음소리를 듣기는 매우 어렵다. 아기를 분만하는 산부인과가 드물기 때문이다. 진료비(의료수가)가 너무 낮아 아기를 받을수록 병원이 손해를 보는 구조 탓이다. 그래서 종합병원이나 대형산부인과에서만 갓난아기를 볼 수 있다.
특히 농촌 지역이 많은 안동교구에는 태어나는 아기 수 자체가 크게 줄어 산부인과는 씨가 말랐다. 이곳 엄마들은 대구와 같은 대도시에서 원정 출산하는 경우가 잦다. 요즘 시대에도 아기 낳을 곳이 마땅치 않은 지역이 많다니, 아기 예수 낳을 곳을 찾으러 추운 겨울 베들레헴 일대를 떠돌며 발을 동동 구르던 마리아와 요셉 모습이 떠오른다.
안동의료원은 이러한 예비 엄마들을 위해 '찾아가는 산부인과' 서비스를 운영한다. 45인승 대형버스에 3억 원어치가 넘는 최신 산부인과 의료장비를 갖추고 의사와 간호사, 운전기사 등이 조를 이뤄 일주일에 두 차례 의료 사각지대를 찾아가 임산부를 돌본다. 전국 공공 의료시설 가운데에서도 보기 드물다. 만약 2000년 전에도 찾아가는 산부인과 서비스가 있었다면 '동방의 별'이 이 버스 위에 떠올랐을지 모를 일이다.
#예비 엄마들의 기다림 아기를 기다리는 엄마 마음은 누구나 같다. 신자이든 아니든 늘 기도하는 마음이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열 달 동안의 임신 기간에 성모님과 예수님께 '건강한 아기를 낳게 해주세요' '순산하게 해주세요' 하고 손을 모은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다시 오실 때까지 깨어 기다리는 것이 교회의 삶이라면, 대림은 이러한 교회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나는 시기이다. 아기를 가진 엄마의 삶에서 대림시기를 엿볼 수 있는 것도 과언은 아니다.
요즘은 의학기술이 좋아져 임신과 동시에 '출산 예정일'을 알 수 있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출생일을 짐작만 할 수 있었다. 배가 점점 불러올 때면 예비엄마의 불안은 커져만 갔다. '열 처녀들의 비유'(마태 25,1-13)에서처럼 아기가 언제 태어날지 알 수 없어 '늘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 했다.
예비 엄마들은 보통 1~2주에 한 번씩 산부인과에 간다. 각종 검진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은 물론, 태아 초음파 검사도 하면서 아기가 정상적으로 자라고 있는지 매번 확인을 받는다. 예비엄마는 '혹시 우리 아기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 혹은 '아기가 건강해야 할 텐데' 등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래서 늘 기도한다. 이러한 점에서 아기 탄생을 기다리는 예비 엄마들은 대림을(?) 열 달 동안 보내는 셈이다.
신앙을 가진 이든, 그렇지 않은 이든 한 가정에서 아기의 탄생은 예수님께서 구유 속 아기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그 순간을 연상케 한다. 하느님께서는 아기를 통해 어느 가정에나 예수ㆍ마리아ㆍ요셉의 성가정 모습을 선물해주시는 것 같다.
33년간 7500여 명의 아기 탄생을 지켜봐온 이 원장은 "아기가 태어나서 엄마와 처음으로 만나는 그 순간, 엄마 표정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표정이 된다"고 말했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산고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다가도, 출산 후 아기를 바라보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엄마 모습은 아기 예수님을 안은 성모님처럼 아름답다는 것이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낙태 안 하고 생명 지키는 이한양 원장
이한양(그레고리오) 안동의료원장은 생명지킴이다. 지난 28년간 임신중절수술을 거부해온 의사다. 이 원장은 "생명은 하느님께서 주신 권리이며, 태아의 살 권리는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며 가톨릭교회 가르침을 강조했다. 그가 30년 가까이 생명지킴이로서 생명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신앙과 가족 덕분이었다고 고백했다.
이 원장은 "천주교 신자가 아니었고, 돈 못 버는 가장을 이해해주는 아내(윤순희 클라라)와 낙태수술을 안 하는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두 아들(이동기 안젤로, 이동수 도미니코)이 없었다면 악마의 유혹에 넘어갔을지도 모른다"고 회고했다.
이 원장은 1997년 IMF 직격탄을 맞고 운영하던 산부인과가 적자에 시달렸음에도 임신중절수술을 하지 않았다. 물론 유혹도 많았다. 그의 병원은 당시 매달 400~500만 원씩 손해를 봤다. 그는 당시 살던 집까지 처분해 직원 월급을 줘야 했을 정도로 경제적 혹한기를 보냈다.
그가 낙태를 거부하게 된 계기가 있다. 가톨릭대 의대 출신인 그는 1985년 산부인과를 개업하고 딱 1주일 낙태수술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어느날 한 할아버지가 병원에 찾아와 "내 손자를 살려내라"고 소동을 벌였던 것. 이 원장이 환자들 앞에서 할아버지에게 지팡이 세례를 받으며 용서를 빌었던 뼈아픈 기억은 그를 생명을 수호하는 의사로 거듭나게 했다.
"두봉 주교님과 돌아가신 박석희(전 안동교구장) 주교님, 권혁주 주교님께서 많이 격려해 주시고 도와주셨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유혹에 빠지려 할 때마다 '낙태는 절대 안 된다'고 만류해준 동료 의사와 가족 덕분에 생명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7월 안동의료원장으로 부임한 그는 이제는 개인병원을 벗어나 가톨릭교회 생명수호 정신을 지역사회에 전파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그의 생명수호 정신은 국경도 넘었다. 11월 25일, 태풍으로 큰 피해를 본 필리핀 일로일로 지역으로 떠난 이 원장은 한국 의료단 단장 자격으로 현지에서 예수님 사랑을 전하고 있다.
이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