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신하
명나라 영락제가 지은 북경의 자금성은 명·청나라 황제들이 살며 정사를 보던 곳이다. 그곳에 황제가 머무는 곳이 ‘태화전(太和殿)인데 아래에서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한다.
천상(天上)인 황제는 지상(地上)인 신하들이 앞에서 만날 수 없는 존재였다. 해서 정전(正殿)인 태화전은 지상으로부터 까마득한 계단 위 월대(月臺)에 위치해 놓았고, 신하들은 지상인 아래에서 황제에게 업무를 보고해야 했다.
알현(謁見)을 못 하니 직접 대화할 수도 없었다. 계단 아래의 내시격인 사위(侍衛)에게 말하면 그들이 황제에게 그 말을 전달했다. 황제에 대한 존칭인 폐하(陛라)는 말은 ‘나는 당신의 저 아래 계단 아래 있다’라는 의미다.
조선시대 사극에서는 ‘전하’라는 호칭이 많이 나온다. 옛날 중화권의 동아시아 국가들은 감히 ‘황제’라는 호칭을 쓰지 못했다. 해서 황제보다 낮은 왕(王)이라 호칭하고 존칭은 전하(殿下)라고 했다. 궁궐은 행사하던 ‘정전’ 왕의 근무처인 ‘편전’, 침실인 ‘침전’으로 분간되고 ‘전(殿)’이라 칭했으며 전하(殿下)는 왕 아래 있다는 의미다. 부처님 모신 곳도 전(殿)이라 하고 궁궐처럼 단청을 하는데 귀중한 분이 계신 가장 큰집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
왕족에게만 존칭이 있었던 건 아니다. 신하도 높은 지위에 올라가면 합하(閤下)나 각하(閣下)같은 존칭이 있다. 이 또한 건물 명칭에서 나온 말이며 합(閤)과 각(閣)은 전(殿)과 당(堂) 다음 서열을 차지하는 궁궐 내 건축물이라 한다.
제 3공화국 드라마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부하들이 ‘각하’라 불렀으며 전두환 대통령도 한때는 부하들이 ‘각하’라 불렀다 한다. 절대 권력의 왕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겸손(?)의 의미로 조선시대 삼정승 급인 ‘각하’라 칭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조선시대에 백성들이 머리 조아리기 싫어 피맛골이 생긴 것이 부담됐는지 이젠 대통령을 ‘각하’라고 칭하지 않는다. 국군의 날 “ 대통령 각하께 대해여 받들어 총~”이 이젠 “대통령님께 대하여 받들어 총~)으로 구령도 바뀌었다.
정상적인 선거로 통치자를 선출하는 민주국가 국민은 통치자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통치자가 아니라 국가 경영자 인식이 강하니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빌붙어 한자리라도 해 먹고자 하는 자들은 아직도 대통령을 황제나 왕으로 받든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실력보다는 충성이 출세하는데 가장 쉬운 방법이다. 조선시대에는 그래도 “아니 되옵니다. 죽여 주시 옵소서~“ 했다는 전설 같은 대사가 사극에 등장하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아니 되옵니다. 죽여 주시 옵소서~“했다는 신하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여당의 전당대회를 보면 하나같이 자기만이 대통령을 지킬 수 있다고 외치고 있지 않은가!
조선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500년 이상 왕권이 지속된 것도 바로 신하들의 백성을 위한 충정으로 왕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면서 이루어 낸 결과지만 망한 것도 자신만의 안위를 지키고자 또 다른 외세권력에 아부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중심축이던 미국에서 트럼프라는 별난 대통령이 나타나고 아부꾼들만 장관이나 보좌관으로 임명하고 독재에 가까운 통치를 하니 세계가 바람 잘 날이 없다. 한국도 권력 주위엔 미국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다행히 대한민국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국민이 존재한다. 왕에 대한 맹목적 충성자들에 둘러싸여 국가를 망치면 국민이 왕까지 끌어 내리는 게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래서 나는 IT니 BTS보다 역동적인 KOREAN이라는 것이 더 자랑스럽다.
/虛堂의 허당 같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