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우연이 질서를 만든다.(4)
지난해 사천성의 의혈단이 무너지고 생존자들이 무림맹으로 복귀했을 때,
무림맹에서는 그들에게 창천각을 내주었다. 그리고 창천각이 독립된 개체로
운영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것은 의혈단이나 무림맹 모두에게 만족
스러운 조치였다. 그렇게 되기까지 무림맹주의 결단이 필요했다는 것을 아
는 사람은 드물다.
사실상 의혈단의 단주는 구대문파 장문인들과 비슷한 신분상의 대우를 받
아 왔다. 누구도 의혈단이 화를 입어 근거지를 떠나게 될 줄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거지를 떠나 무림맹에 더부살이를 하게 되자, 의혈단
단주의 신분이란 애매하기만 했다.
한동안 골머리를 싸매던 경재학은 결국 창천각을 의혈단에게 내어 주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들이 그곳에서 지내며 무엇을 하든지 개의치 않았다.
그 뒤로 창천각은 자연스럽게 사천성의 의혈단이 되었다.
과거 의혈단의 내단 순찰총감 벽력장 왕지는 살해 당한 무력부장 최일선
의 사인(死因)을 규명하기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하고 있었다. 어제는 최
일선 주변 인물들을 만나 그의 죽기 직전 행적을 조사했다. 별 다른 소득이
없자 오늘은 최일선이 살해당한 자리로 다시 와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대체 어떤 담 큰 자가 무림맹 까지 들어와 의혈단의 무력부장을 죽일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 해도 답답하기만 했다. 최일선이 죽은 곳은 의혈단의 창천각
과 아미파의 청심각을 연결하는 소로(小路)였다. 사철나무와 향나무로 잘
꾸며진 이곳에서 최일선이 발견되었다. 그는 한그루 작은 향나무 아래에서
전신의 피가 말라 비틀어진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왕지는 향나무 주변을 둘러보았다. 최일선은 의혈단의 무력부장으로 그
무공이 최고수의 반열에 드는 자이다. 그런 사람이 살해 당했다면 근처에
결투의 흔적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나무 사이에 뚫린 길은 깨끗했다. 살겁
이 일어난 장소 치고는 너무 깨끗해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왕지가 저도 모르게 중얼 거렸다.
'너무 깨끗하군...'
그때였다. 마치 그의 중얼거림에 대답하듯 울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그렇지? 너무 깨끗하지?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특별히 조금 지저
분 하게 만들어 주마.'
왕지의 신형이 가늘게 떨렸다. 귓전으로 파고드는 소리는 가늘었지만 분
명해서 말하는 사람의 입술이 붙었다가 떨어지는 것까지 느낄 수 있었다.
'누구냐! 감히 어느 놈이 무림맹에서 이따위 짓을 벌이는 거냐!'
왕지의 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졌다. 왕지가 은근히 밀려오는 공포로 힘껏
소리를 질렀지만 상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크흐흐, 겁이 나는가 보구나. 그래, 그렇게 겁을 집어 먹거라. 그래야
나도 예까지 나온 보람이 있지 않겠느냐?'
왕지는 누군가 귀에 속삭이자 벼락같이 몸을 틀며 두 손을 내질렀다. 오
늘날의 벽력장 왕지를 있게 한 절기 혼천장(混天掌)이었다.
파파팟!
왕지의 두 손바닥이 현란하게 날아갔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의 두 손 바
닥은 빈 공간을 때리고 말았다.
'헉!'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왕지가 놀란 눈을 치켜 뜰 때 였다. 그의 등위에
솟아난 하얀 손목이 목줄기를 움켜 쥐었다.
'커헉!'
왕지의 눈이 부릅떠졌다. 목을 붙잡힌 왕지는 상대의 얼굴도 볼 수 없었
다. 왕지의 육중한 몸이 허공으로 들려졌다. 왕지가 두 발을 버둥 거렸지만
애석하게도 발은 땅에 닿지 않았다. 왕지는 눈부신 태양을 마주 보다가 정
신을 잃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왕지를 발견한 사람은 무림맹의 주간 순찰조였다. 대낮에 산책로에서 발
견된 왕지의 시신은 참혹했다. 사지가 뽑혀 사철나무와 향나무 아래에 하나
씩 놓여져 있었다. 왕지로서는 먼저 죽기를 잘 한 것인지도 몰랐다.
참혹한 시신을 보고 무림맹의 감찰단 전원이 움직였다. 구대문파의 장문
인들은 이 사건이 원한에 의한 것이라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잔인할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대체 누구를 대상으로
한 원한이란 말인가?
무림맹의 분위기가 흉흉해졌다. 사람들은 자기의 등뒤에서 누군가 다가오
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뒤를 돌아 보아 안면이 있는 사람이면 너털
웃음을 지었고, 낮선 사람일 경우 그가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장염은 무림맹에서 살겁이 일어나든 말든 영빈관에서 나가지 않았다. 그
것은 장염이나 무림맹에게 서로 좋은 것이었다. 장염이 움직이면 무림맹의
고수들이 감시를 하느라고 따라 붙을 것이며, 그럴 경우 순찰에 투입될 인
원이 줄어 들기 때문이다.
아미파의 정현, 정경, 정원 세 스님들이 찾아와 무림맹의 살인 사건에 대
해 장황하게 늘어 놓고 간 뒤로 장염은 더욱 출입을 삼가했다. 장염은 무림
맹의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오해를 받기 싫었다. 그렇지 않아도 꼬투리를 잡
으려고 벼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때에 돌아 다녀 봤자 좋을 일이 없는
것이다.
하후연과 지염도는 공동파 사람들과 함께 태평객점에 머물기로 했다. 공
동파의 차기장문인 굉료는 향이가 장염을 따라 영빈관으로 들어가고, 하후
연과 지염도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자 반가워 했다. 향이가 여자였기 때
문에 함께 묵기에는 하후연등이 편했던 것이다.
하후연과 지염도는 객점에 거하며 수시로 장염을 찾아 왔다. 두 사람이
찾아 오면 향이가 접대를 도맡으려 했다. 영화가 몇 번이나 자기에게 맡겨
달라고 부탁했지만, 향이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화매는 이 즐거운 일을 내게서 빼앗지 말아줘요.'
'언니가 그러시면, 나도 나중에 좋아하는 일을 나눠주지 않을 거예요.'
그쯤 되면 향이도 어쩔수 없이 영화에게 찻 상을 들려줘야 했다.
보통은 다섯 사람이 대청에 모여 차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었는데, 주로
떠드는 사람은 하후연이었다. 하후연은 사람들에게 강호의 기담(奇談)을 들
려 주느라 입술에 침이 마를 때가 없었다.
산도둑처럼 생긴 지염도는 보기와 달리 의외로 수줍음을 많이 탔다. 그러
면서도 눈에 띄도록 향이의 말을 잘 따랐다. 향이의 말이라면 고분고분해지
는 지염도를 보며 하후연이 몇 번이나 놀려 댈 정도였다.
언젠가 하후연이 '왜 그렇게 향소저의 말이라면 껌벅 죽느냐?'고 하자 지
염도는 '어머니 같다'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히후연은 흙으로 빚은 아궁이
속처럼 생긴 지염도를 보며 '네 어머니가 그처럼 미인이실 리가 없다'고 중
얼거렸다. 하후연이 뭐라고 생각하든 지염도는 향이를 맹목적으로 따랐다.
향이도 지염도가 보기와 달리 심성이 착하다는 것을 알고 동생처럼 아껴
주었다. 나이만 아니라면 향이와 지염도의 관계는 모자지간(母子之間)이라
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향이는 후에 장염과 상의 한 뒤 지염도에게 검술을
가르쳐 주었다.
장염과 향이가 영화와 함께 영빈관에 머문지 칠 일 쯤 지났을 때였다. 하
후연이 지염도를 데리고 영빈관을 찾아왔다. 그날도 지염도가 안뜰에서 향
이에게 검술을 지도 받느라 정신이 없을 때였다. 하후연이 장염에게 넌지시
말했다.
'장소협, 요즘은 어디를 가든지 누군가 지켜보는 느낌이 듭니다.'
'그렇습니까? 혹시 무림맹의 사람들이 아닐까요?'
하후연이 의아하다는 듯이 장염을 바라았다. 무림맹에서 자기 같이 별볼
일 없는 사람을 감시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괜히 저 때문에 두분 만 곤란하게 된 것 같습니다. 우리 세 사람이 처음
에 함께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그뒤로 제가 영빈관에 머물게 되었으니, 자
연히 드나드는 두 분에게도 신경이 쓰일 테지요.'
하후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혹시라도 우리를 그 살인마로 의심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고 있었습니
다.'
'하하하, 그럴 리가 있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살인마가 날 뛴다고 하니
오히려 잘 되었습니다. 두 분은 밤 낮으로 지켜 주는 사람이 있으니 말입니
다.'
하후연이 피식 웃으며 말을 받았다.
'하하, 그렇게 되는 겁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아주 듬직한 호위를 데리고
다니는 셈이로군요.'
'편하게 생각 하십시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라고 하지 않습니까? 모
든 것은 받아 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달린 것이지요.'
말을 마친 장염이 하후연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뭔가 마음속에 하고 싶은
말이 남은 듯 했다.
'무슨 근심이라도 있습니까?'
'...'
하후연이 멋쩍은 표정으로 은행나무의 연한 외피를 툭툭 건드렸다.
'사실 요즘 지소협을 볼 때마다 제 자신이 답답해져서 말입니다...'
하후연의 뒷말은 거의 들리지도 않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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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즐 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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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감사합니다.
오래 기다렸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ㅈㄷㄳ..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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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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