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찬송가 516장 (구 265장) / 사도행전 13 : 32 - 41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516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사도행전 13장 32절 – 41절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32.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34.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35.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37.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40.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41.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아멘!
우리가 살면서 누구나 하는 질문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존재의 질문입니다. 나는 왜 살아 있는가? 둘째는 의미의 질문입니다. 내 삶은 중요한가? 셋째는 목표의 질문입니다. 나의 목적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어느 것도 목적 없이 창조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나의 삶에도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를 두고 에베소서 1장 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아멘!
우리는 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의도하신 목적을 떠나서 살아왔습니다. 탈선한 기차처럼 우리도 자신의 고집과 죄의 선택으로 궤도를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53장 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아멘! -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목적을 위하여 지으셨지만, 우리는 다 자기가 더 잘 아는 줄 알고 우리 마음대로 살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보내셨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시고, 삶의 방향을 되찾아 주시고, 원래의 삶의 목적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악으로부터 구원받을 뿐 아니라 선을 위하여 구원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우리에게 내어주신 이유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주었으니, 당연히 그를 위하여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상합니까? 사도 바울을 오늘 본문에서 다윗을 예로 들어 말씀합니다. 양치기 목동에 불과했던 다윗이, 사울에게 미움을 받아 광야로 쫓겨나갔던 다윗이, 살기 위해 미친 척하며 침까지 흘렸던 다윗이 왕이 되었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왕이 된 다윗은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참으로 많았습니다. 다윗이 그 중에 제일 먼저 한 일은 당시 천대받고 있던 하나님의 법궤를 자신이 사는 다윗 성으로 모셔오는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가 온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온 이스라엘을 동원하여 춤추며 노래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왕인데도 하나님 앞에서는 체면을 차리지 않았습니다. 바지가 내려가는 줄도 모르고 춤을 추었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오신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법궤를 내 집에 모신다는 사실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다윗의 마음이 온전히 자신을 향함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도 좋기는 매한가지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좋아 춤을 췄을 뿐인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다윗을 향해 아낌없는 축복을 베푸셨습니다. 다윗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입니다. 역대상 17장 13절, 14절 말씀입니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니, 나의 인자를 그에게서 빼앗지 아니하기를, 내가 네 전에 있던 자에게서 빼앗음과 같이 하지 아니할 것이며, 내가 영원히 그를 내 집과 내 나라에 세우리니,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아멘! - 이런 다윗의 인생을 한 마디로 정의한 구절이 오늘 본문 36절입니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 다윗은 한 평생 하나님의 뜻을 잘 받들었던 사람입니다. 예수쟁이로서 이보다 더 귀한 칭찬을 들을 수 있을까요?
주어진 시간과 시대 속에서 한평생 시간을 초월하는 영원한 일,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과 목적’ 에 인생을 바치는 것입니다. 늘 변하는 세상의 환경 속에서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 즉 하나님의 말씀을 받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목적이 이끄는 삶입니다. 이보다 더 큰 모험도 없고, 이보다 더 큰 만족도 없습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가장 위대한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적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고, 빚으셨고, 재능을 주셨고, 부르셨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6장 13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아멘! - 왜 탕자가 아버지의 집에 돌아왔을 때 감격했을까? 자기의 있어야 할 곳, 자기가 해야 할 일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기 위해 창조 받았으므로, 지음 받은 목적대로 살아야 합니다.
노량진 수산시장의 충남상회 류양선 78세의 할머니는 “내 직업은 기부하는 것” 이라고 말합니다. ‘노란 옷 아가씨’ ‘책 할머니’ 36년간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젓갈장사를 해온 유양선 할머니에게 붙여진 별명입니다. 노란 옷을 입고 장사를 하고, 노란 옷을 입고 기부를 합니다. 산간 오지 아이들에게 책을 보내는 게 알려지면서 책 할머니가 됐습니다. 처음 기부를 했던 게 벌써 20년도 훨씬 전입니다. 중학교에 입학할 학비가 없었던 소년은 할머니의 장학금으로 학업을 마치고, 초등학생 자녀를 둔 작은 기업의 사장이 됐습니다. 할머니가 보내준 장학금으로 간호대를 졸업한 어느 여학생은 서울대학 병원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기부를 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걸 세고 있나? 주고 나서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거지?” - 한두 번으로 그친 것도 아니고 대가를 바란 것도 아닌데 굳이 기억할 이유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매스컴을 통해 공개된 할머니의 기부 내역은 화려합니다. 150여 명 이상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했고, 10만권 가까운 책을 산간오지 학교와 양로원 등에 기증했습니다. 그가 기부한 금액은 어림잡아도 수십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1000원 한 장 허투루 쓰질 않았습니다. 다 헤져 버려야 마땅할 걸레를 들어 보이며 말합니다. “이거 낡아도 구석구석 닦기엔 최고야. 세상에 헤져서 버릴 건 없지.” 집에서는 전기세를 아끼기 위해 불도 안 켜고 가로등빛을 형광등 삼아 생활할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안 쓰고 차곡차곡 모아 20년 이상 기부를 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음 받은 목적은 성공을 훨씬 벗어나 의미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재물이나 쾌락이나 지위에는 그 의미가 없습니다. 의미란 섬김에서 옵니다. 즉, 자신보다 큰 목적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내주는데 있습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아멘!(마 10:39)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신 목적,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는 목적, 그 목적을 마침내 이루기 시작하면 그제야 깨닫게 됩니다. “여기가 내 자리다! 난 그래서 살아 있는 거다! 이것이 내 존재 이유다. 내가 왜 존재하는지 이제야 알겠다!” 이런 깨달음을 얻은 이후에는 세상의 어떤 성공을 통해서도 절대 깊은 만족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언제나 빈자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신뢰하고, 섬기도록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까지 시도한 어떤 일도 당신은 영혼의 그 갈망을 채워주지 못했음을 알면서, 이제 당신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예수님을 당신의 구주로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질문을 받고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고 살아가면 지난날을 용서받고, 구원을 받고, 분명한 삶의 목적을 얻고, 영원한 천국에 집이 생깁니다. 그리고 “내 삶은 무엇으로 인해 의미가 있는가? 내 삶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 삶의 목적도 분명해집니다. 예수님처럼 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 한 분만으로 여러분의 삶의 방향이 분명해지고, 삶의 목적이 분명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