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 (679)
제21장 무송(武松) 2회
“청룡사(靑龍寺)에 있소이다”
무송은 시치미를 뚝 떼고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절 이름 하나를 댄다. 그동안 수많은 절을 찾아 신세를 졌던 것이다. 운수승(雲水僧)인 양 하면서 말이다.
“청룡사... 청룡사가 어디 있는 절이오?”
“정주(鄭州)땅에 있지요”
“정주 땅이라… 아니 그럼 그 먼 곳에서 여기까지 왔단 말이오”
그 수문군은 정주라는 곳이 어딘지를 알고 있는 듯 놀라는 기색이다.
“거기서 여기까지 올려면 몇 달이 거릴텐데요”
“맞아요. 석 달째 들어섰다오. 이 수염을 좀 보시구려”
무송은 삿갓 밑으로 드러나 보이는 검실검실한 턱수염을 한손으로 슬슬 쓰다듬어 보인다.
“흠~ 그 먼데서 여긴 뭘 하러 왔소”
“볼일이 있어서 왔죠”
“무슨 볼일이오”
“그것까지 일일이 알아야 되겠소”
무송은 절로 어투가 좀 무뚝뚝해진다.
몇해 전 자기가 순포도두로 있을 때 같았으면 수문군도 다 부하들이었으니 자기를 보면 그저 쩔쩔맬 터인데, 그런 녀석한테 꼬치꼬치 검문을 당하는 꼴이 되어 슬그머니 화가 나고, 아니꼽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지금 횃불을 들고 자기를 검문하고 있는 녀석이 그 당시의 부하는 아닌 듯 낯선 얼굴이어서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중이 건방지게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할 것이지…”
그 수문군은 도대체 어떻게 생긴 중인지 그 얼굴이나 좀 보자는 듯이 한손을 뻗어 올려 무송의 삿갓을 훌떡 들춘다.
“어허, 이게 무슨 짓이야”
무송은 거침없이 반말로 언성을 높인다.
“뭣이 어째, 이놈의 중이 누구한테 함부로 말을…”
“너 이놈!”
냅다 그만 무송은 호통을 친다.
“아니 이놈이… 간뎅이가 부었어. 허, 나참 기가 막혀서… 맛을 좀 보고 싶은 모양이지”
그러자 성문 한쪽을 닫고서 멀뚱히 지켜보고 있던 문지기도 놀라 후다닥 다가온다.
“뭐야? 중놈이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나…”
무송은 두 놈을 싸잡아 노려보며, “이놈들아 내가 누군지 아느냐”하고 으름장을 내뱉는다.
뜻밖에 성문을 지나면서 수문군과 무송 사이에 시비가 붙어 고성이 오가게 되자, 내왕이는 어쩌면 일이 여기서 틀려 버리는 게 아닌가 싶어 바짝 긴장이 되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된다는 식으로 일부러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려 성문을 통과하려고 했던 무송이 수문군을 상대로 분통을 터뜨려 언성을 높이다니 어리석기 짝이 없다 싶으며 내왕이는 조마조마한 눈길로 그를 지켜본다.
“이놈아, 네놈이 중놈이지 누구란 말이냐?”
횃불을 든 수문군이 눈을 부라리며 내뱉자, 무송은 그만 웃음을 터뜨린다.
“엇헛헛허…”
호걸웃음이다. 그리고 굵은 목소리로 점잖게 뇌까린다.
“내가 누구냐 하면 서문경이의 처남이다. 서문경이가 내 매부란 말이다. 알겠느냐”
그 말에 두 수문군은 그만 표정이 눈에 띄게 달라진다. 그들의 기가 팍 꺽이는 것을 보자 무송은 더욱 기세를 돋구어 서슴없이 내뱉는다.
“서문경이의 다섯 번째 마누라 반금련이가 내 여동생이라 그말이다. 이녀석들아. 헛헛헛…”
내왕이는 어이가 없는 모양이다. 곧 저도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눌러 참는다.
“아이고 그렇습니까. 몰라 봤습니다”
“부전옥 대감의 처남이신 줄을 알았다면 저희가 그랬을 리가 있습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두 수문군은 머리를 굽실거리며 사죄를 한다.
무송은 속으로 부전옥 대감이라니, 그럼 서문경이가 부전옥 감투를 썼단 말인가… 싶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계제가 아니다.
“오냐, 됐다. 모르고 그랬는데 어쩌겠느냐. 용서하지”
그리고 무송은 내왕이를 돌아보며, 말한다.
“자, 소륜, 어서 가자구”
“예, 대륜 스님”
내왕이는 속으로 휴우~ 안도의 숨을 내쉬며 얼른 앞장을 선다.
어둠 속으로 멀어져가는 두 승려를 멀뚱히 바라보며 횃불을 든 수문군이 중얼거린다.
“서문경이의 처남일 줄이야 누가 알았나. 나참 더러워서…”
그러자 다른 한사람도 맞장구를 치듯 투덜거린다.
“반금련이의 오래비가 중이었구먼, 중놈이 덩치는 더럽게 크네, 씨팔…”
“대륜 스님, 두 번 놀랬지 뭡니까”
“두 번 놀래다니, 왜”
“벌컥 화를 내시기 때문에 한번 놀랬고, 서문경이의 처남이고 반금련이의 오빠라는 바람에 두 번 놀랬으니까요."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구. 늘 서문경이와 반금련이에게 복수를 하고야 말겠다고 별러 왔기 때문에 그것들의 이름이 무의식중에 튀어나온 것 같애”
“잘했어요. 난 이놈들 내가 누군지 아느냐 하시기에 혹시 옛날 순포도두 무송이다 하고 밝힐까봐 조마조마 했다구요”
“너 이놈, 할 때는 곧 그런 말이 튀어나오려고 하더라구. 분통이 터져서 말이야”
“그랬으면 일이 다 틀려버렸지 뭐예요”
“맞어. 용케 잘 넘겼다구”
“서문경이를 들먹이니까 그 녀석들 대번에 그만 쑥기어 들어가더라니까요. 서문경이가 쎄기는 쎈 모양이에요”
“서문경이 그놈 부전옥이 된 모양이던데”
“맞아요. 부전옥이라고 했어요. 부전옥 대감의 처남인줄 몰랐다고…”
“그놈이 이제 감투까지 썼으니 가관이겠지”
“부전옥이면 제형소의 두 번째 우두머리잖아요. 맞죠?”
“맞다구”
“그놈이 제형소의 부전옥이라니 말이 돼요?
사람을 죽이고, 귀양을 보내고 해서 남의 여자를 가로챈 그런 악질이 죄인을 다스리는 제형소의 두 번째 우두머리라니......
그게 사실이라면 세상 다된 거죠. 안 그래요?”
“맞어, 맞다구. 살맛 안 나지”
어두운 밤거리를 무송과 내왕이는 나란히 걸으면서 주고받는다. 저만큼 앞쪽에서 행인 몇 사람이 다가오자 대화를 뚝 중단한다.
행인들이 지나가면서 힐끗힐끗 무송을 바라본다. 거인 승려이기 때문인 모양이다. 저희끼리 뭐라고 수군덕거리며 킬킬 웃기도 한다.
어둠에 묻힌 거리지만 몇해만에 살아서 돌아와 걸어보는 터이라 무송과 내왕이의 감회는 깊다.
그러면서 한편 착잡하기도 하다. 유배지에서 방면이 되어 돌아왔다면 착찹할 턱이 만무하지만, 탈출을 하여 원수를 갚으러 변장을 하고 숨어들 듯 찾아왔으니 그럴 수밖에.
한참 가다가 네거리에서 무송은 이리저리 둘러보며 머뭇거린다.
“보자, 이쪽이던가…”
“왕파네 찻집 말이죠”
“물론이지”
“아니예요. 이쪽 길이라구요”
내왕이가 앞장을 선다.
金甁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