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마르크스
1818년에 태어난 칼 마르크스는,
자기가 사는 세계에 대해 분노한
까다롭고 성마른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세계가 언젠가는
낙원에 가까워 지리라는 이론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우리가 어느정도라도
그의 분노를 이해할수 있는 것은 그의 삶이
비극적인 요소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가 사랑했던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오래산 어머니는 미워했다.
그가 사랑하는 아내는 암으로 사망했으며
그의 자녀 대부분은 어린나이에 죽었다.
그는 성인이 되어서도 오래동안
고통스러운 악성종기에 시달렸으며
가난했고 빚쟁이들에게 시달렸다.
그가 세상에 대해 분노하고 절망하고,
혁명을 생각한 것은 자기가 살고있는 환경에서
결코 자유로울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르크스는
자기의 불우한 처지 때문에
세상을 비관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 마르크스는 대단한 몽상가 이기도 했다.
마르크스는
자본가와 브루주아지를 증오했다.
그는 이들과 함께 이들이 대표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당시 전세계에 나타난 가혹한 불행과 한없는
불평등의 원인이라고 비난했으며 물질적 진보를
질병으로 봤으며 이는 마땅히 없어져야
하는것들이었다.
그는 프롤레타리아가 지배하는
새 세계를 꿈꿨다.
새로운 프롤레타리아가 마침내
다수를 이루면 더는 착취가 없을 것이다
사유재산도 사라질 것이며 이와함께
불평등도 없어질 것이다.
산업시대의 놀라운 발명품들은
모든이들이 마음껏 사용하게 됨으로서
모두가 인간으로서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전시킬 것이다.
인간은 본래적인 상태로 돌아갈 것이며
생산수단은 공유하게 될 것이다.
일단 이런일이 일어나면
더 이상은 불평등한 재산권을 강제하기위한
국가권력도 전혀 필요치 않을 것이다.
과거 전쟁의 원인이었던
국가간 경쟁도 사라질 것이고
전 세계의 평화가 가능할 것이다.
그가 꿈꾼 공산주의사회의 모습이었다.
마르크스의 정의에 따르면
잉여가치란 노동자가 생산한 상품의 가치와
그 상품이 판매되는 가격의 차이다.
경쟁자들을 앞서고 계속 따라잡으려면
수익을 내야하는 필요성 때문에
자본가들은 노동자들 에게서
잉여가치를 최대한으로 추출해야했다.
결구 자본가들이 잉여가치에 대한
노동자들의 몫을 착취함으로서
온갖 문제가 발생한다는게 그의 주장었다.
그는 자본가들의 투자에 대한
이윤을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부도덕한 문제는
계급투쟁으로 해결해야한다.
마르크스는 1848년 ‘공산당선언’에서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 라고했다.
계급투쟁은 브루주아(유산계급,가진자)와
프롤레타리아(무산계급,못가진자)의 투쟁이며
유혈혁명도 마다하지 않았다.
역사상 처음으로
유혈계급투쟁이 성공한 사례가
1917년의 레닌에 의한 볼세비키혁명이다.
그리고 1991년 74년동안의 사회주의 실험은
소련의 붕괴로 그 처참한 막을 내렸다.
마르크시즘이 가지는
치명적약점의 하나는
반인간적 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내것’ 과 ‘우리것’ 의 차이다.
자기것, 사유재산에 대한
인간의집착은 본능적인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점을 간과했다.
프롤레타리아혁명이 성공할수 없는 것은,
즉 자본주의가 그의 예언대로 소멸되지 않는 것은
바로 이 ‘사유재산’ 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집착 때문이다.
북한의 경우 같은면적에서,
집단농장과 개인의 텃밭 생산량은
기본에서 1대2 이상의 차이가 나는게
그 이유다.
‘내것’ 이 이겼고
앞으로도 이길 것이다.
그러나‘우리것’은 내것을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도 이기지 못한다.
계급투쟁에 의한 공산주의는
하나의 이념일수는 있어도
현실이 될 수 없는 취약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생산수단의 공유는 결국
가난으로 가는 지름길일 뿐이다.
가장 큰 이유는
거기에는 ‘경쟁’ 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발전은 결국 경쟁의 산물이다.
마르크스가 예측하지 못했던
또 하나의 역사적 사실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아래에서
‘노멘클라투라’ 가 나타난 점이다.
노멘클라투라는
스탈린집권후 나타난 소련의 ‘특권계급’ 이다.
체코의 부통령이었던 밀로반 질라스는
이들을 공산세계의 ‘새계급’ 이라고 했다.
의식주 생활에서 이들은
인민들과는 전혀다른 공급체계를 세워
초호화생활을 했으며 베리아의 KGB가
인민을 학대한 사례는 세기적인 것이었다.
근본에서 인간은
그 우,열 때문에 결코 평등할 수가 없다.
역사상 완전히 평등한 사회는
존재한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생산시설과 그 결과물의 공유와함께
모든 인간이 평등은 하나의 이념일뿐
현실에서는 있을수 없는 몽상일 뿐이다.
지금의 쿠바, 북한, 베네수엘라를 보라,
사회주의가 성공할수 없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의 몽상은 죽지 않는다.
▶가난이 있는곳,
▶열등감으로 그 심성이 꼬인자들이 있는곳,
▶경쟁에서 낙오한 자들이 있는곳,
▶사회에 대해 불평, 불만을 가진자들이 있는곳,
▶태생적으로 좌파성향을 가진자들이 있는곳,
▶거짓 선전,선동에 쉽게 넘어가는, 분별력이 부족한
우민들이 있는곳,
▶교육받은 엘리트들의 착각,
▶강남좌파가 있는곳.
이 모든곳에서 마르크시즘은
이들에게 행동을 가지게 하는 하나의
‘이론적근거’로서 유령처럼 살아남는다.
햇볕을 피하는,
‘음습한 그늘의세계’ 인 것이다.
아직 사회주의로 성공한나라는 없다.
앞으로도 없다
ㅡyoro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