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1
개학을 했고 다시 기차 통근이 시작되었다. 지난 월요일, 밤늦은 시간, 나는 편안한 창가 쪽 자리에 앉아 내 선생이 이번에 증보판을 내신 <성리학의 교육이론>을 읽으면서 공책에 메모를 하였다. 아무리해도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어째서 선생님이 그런 (이상한) 주장을 해야만 하는지, 그런 주장을 하면 다른 부분에서는 또 어떤 주장을 하게 되는지 등등을 생각하면서 책에 밑줄을 긋기도 하고 공책에 도식이나 표를 그려보기도 하였다. 선생님의 생각은 정말로 알기 어려웠다. 그러나 내가 알지 못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나는, 이 책에 내가 밑줄을 긋는 것은 그 때가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으며, 그 공책에 내가 글자를 적는 것은 그 때가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그런 일을 하기 시작한지 10분이나 되었을까?
“조교수! 여기 있을 줄 알았지.”
객실이 떠나갈 듯한 큰 목소리가 들렸다. 원박사였다. 원박사는, 삼례에서 30분 떨어진 익산의 원광대에서 강의를 한다. 강의하러 내려가는 길에 나를 보고자 내가 이용하는 그 차편을 예매하였던 것이다.
“하하, 여기에서 보니 반갑구만. 자리에 가 있어. 2호차라고? 수원역 지나면 빈 좌석이 많이 나거든. 내가 거기로 갈께.”
우리는 아예 까페칸으로 자리를 옮겨 캔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원박사는 ‘고래사냥’이니 ‘삼포가는 길’이니 하는 이른바 로드 무비 이야기도 꺼냈고, 홍도에 가기 위해, 밤기차를 타고 침대칸에 누워 목포까지 내려갔던 이야기도 꺼냈다. 원박사와 내가 그 여행을 했던 것은 25년 전이다. 원박사 말마따나, 맥주 한 캔을 들고 밤기차에 앉아 어두운 창밖을 내다보면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그런대로 정취 있는 일이었다. 차창에 내 얼굴이 비쳐보였다. 순간, 간밤에 꾸었던 꿈이 떠올랐다.
“원박사, 이 꿈 해몽 좀 해줘.”
한 마디로 재수 없는 꿈이었다. 내가 대머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이미 이마가 상당히 많이 넓어진 상태지만, 꿈속에서 나는 그렇게 ‘주변 머리’가 없을 뿐 아니라 ‘속알 머리’까지 없어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꿈 속에서 나는 나를 위로하였다. 이 나이에, 머리카락 좀 더 없어졌다고 해서, 무슨 큰 일이 난 것도 아닌데, 뭘 그래. 이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거울을 보니...... 그러나, 아, 큰 일이 난 것이었다. 정말로 보기 흉했다. 이것이 내가 원박사에게 털어놓은 꿈의 내용이다.
원박사는, 세상이 다 아는 대로,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상상력은 신통치 않은 모양이다.
“에, 또, 해몽을 하라는 말이지? 음. 더 늦기 전에 모발 클리닉에 가서 집중적인 관리를 받으라는 거지. 모발 전문 한의원에 가든지.”
“사람, 참, 그게 무슨 해몽이야? 하다 못 해, 뭔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릴 괘라거나, 뭐, 이렇게 나가야지. ㅋㅋㅋ”
밤기차에서는 시간이 잘 가지 않는 법이지만, 이 날은 그렇지 않았다. 기껏 캔 맥주 작은 것 두 캔씩을 비웠는데 두 시간 반이 훌쩍 지나갔고 익산역이 다가온다는 차내 방송이 나왔다. 새벽 두 시경이었다. 원박사는 내렸고 나는 내 자리가 있는 5호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2
가방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도 기억하지만, 5호차 31번 좌석이었다. 나는 기차표를 꺼내 좌석 번호를 확인하기까지 하였다. 내 옆 자리에는 사람이 없었다. 통로 건너 편 좌석에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에게 물어보기도 하였다. 물론, 주변의 좌석들도 훑어보았다. 이 때 승무원이 나타나 그 사람에게 사정을 털어놓았다.
“제 가방이 없어져서요.”
이 때쯤 되자 나는 나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를 거의 분명하게 파악하게 되었다. 나는 가방을 분실한 것이다.
“까페칸에 갔다가 두어 시간만에 돌아왔는데, 가방이 안 보이는군요.”
“고객님, 야간에는 도난 사고에 특별히 유념하셔야 합니다. 종종 일어나는 일이예요.”
아, 나는 가방을 도난당한 것이구나.
그러나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나는, 승무원과 더불어, 6호차, 7호차까지 훑어보았으며, 4호차 출입구 쪽에서 가방을 한 개 보았다는 제보를 듣고는 4호차 출입구를 비롯하여 5, 6, 7호차의 출입구까지 샅샅이 둘러보았다. 허둥지둥 이러고 다니는 사이에 기차는 내가 내려야 하는 삼례역에 도착하였다. 나는 잠깐 망설였지만, 승무원에게 집 전화번호를 알려준 후 내렸다. 역사를 빠져나와 빈손을 흔들면서 주차장까지 걸어가면서, 나는, 그 가방이 이제 나와 완전히 무관한 것이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 길을 가방 없이 빈손으로 걸은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외출했다가 귀가하여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가방을 열어 그 속에 든 것들을 꺼내놓는 일이다. 그러나 이 날은 그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 일을 하는 대신에,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소파에 앉아, 나는 나를 떠나간 물건들을 머릿속으로 하나하나 꺼내 보았다. 가방에는 앞에서 말한 <성리학의 교육이론>이 들어있었다. 이 책 안 쪽에는 ‘조영태 교수 혜존’이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다른 책 세 권이 들어있었으며, 공책 한 권이 들어있었다. 제일 아쉬운 것은 공책이다. 이 공책은, 책등에 ‘2013, 8’이라고 쓰여 있는데, 작년 8월부터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 때부터 내가 공부한 내용은 전부 그 공책에 적혀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작은 수첩이 한 권 들어있었다. 30년이 넘게 써 온 것이다. 내가 아는 전화번호는 모두 거기에 적혀있다. 각종 ID와 비밀번호에, 가족들의 생일날과 제삿날, 심지어 할머니 산소의 표식주 번호까지, 내가 알고 있어야 할 주요 정보가 모두 거기에 적혀있다. 마지막으로 서울 지하철 노선도와 우석대 교직원증, 철도회원증이 들어있었으며 샤프펜과 샤프심한 통이 들어있었다. 물론 가방 자체도 참으로 아깝다. 가벼우면서도 질겨서, 여기저기 칠이 벗겨졌음에도 불구하고 애용해 온 것이기 때문이다.
가방과 그 안에 든 것들은, 한 마디로, 아니 두 마디로 말해서, 그 원래의 주인에게는 말할 수 없이 소중한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다시 희미하게 희망이 생겨났다. 나는 승무원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그에게 전화를 걸어 열차의 화장실을 점검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내 가방을 슬쩍한 사람은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근 후 가방 속에 든 물건들을 뒤져본다. 지갑도 없고 카드도 없으며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는 가방 주인에게 욕을 퍼붓고 — 욕을 먹을 만하지 않은가? -- 가방에 침을 뱉은 후에 그 모든 것을 그 곳에 그대로 방치한 후 바깥으로 나온다. -- 이게 내 시나리오였던 것이다. 친절한 승무원은 그렇게 해주겠다고 말하면서, 두 시간 안에 전화가 가지 않으면 찾아내지 못한 것으로 알라고 덧붙였다.
3
전화는 오지 않았고 나는 완전히 포기하고 잠을 잤다. 잠결에 전화벨이 울렸다. 아침 8시 반이었다. 나는 달려 나가 전화를 받았다. 열차 승무원이 아니라 집사람이었다. 그러나 실망할 것이 아니었다. 천안역에서 안양집으로 전화가 왔다는 것이다. 천안역 분실물 센터에서 가방을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 그 물건들과 나의 인연이 아직 다하지 않은 모양이구나.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천안역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알게 되었다. 원박사와 헤어진 후 5호차의 내 자리에서 돌아와 가방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한편으로는 가방을 되찾기를 갈망했으나, 또 한편으로는 가방을 되찾지 못해도 좋으니,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나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도대체 어떻게 되었던 것인가 하면, 내 옆 좌석의 승객이, 내가 가방을 놓아둔 채 기차에서 내린 것으로 판단하고 그 가방을 들고나가 천안역에 맡겼다는 것이다.
천안역의 분실물 담당자는 친절하게도 가방을 삼례역으로 보내주었다. 나는 분실한지 6시간 반 만에 그 물건의 소재를 알게 되었고, 분실한지 10시간 반 만에 그 물건을 다시 만질 수 있게 되었다. 한 바탕 꿈을 꾼 것이 아닌가? 그렇다 그것은 꿈과 다르지 않다. 나는 가방을 분실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지 않았는가? 나는 대머리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내가 가방을 분실한 그 기간 동안에는 — 분실했다고 생각한 그 기간 동안에는 — 가방과 가방 속에 든 것을 사용할 일이 전혀 없었다. 즉 나는 하나도 손해 본 것이 없다. 다만 상실감과 안타까움으로 마음고생을 하였을 뿐이다. 꿈 속에 대머리가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마음고생을 한 것과 마찬가지다.
내가 머리털을 잃어버린 것이 꿈이었듯이 내가 가방을 잃어버린 것도 꿈이었다.
그런 꿈이 많이 있을 것이다. 내가 분실했다거나 상실했다고 생각하면서 아쉬워하고 안타까와하는 것이 많이 있을 것이다. 실지로는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그것의 상실을 안타까와하는 것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것들이 어느 날 불현 듯 내 앞에 나타나 그 모든 상실을 몇 편의 꿈으로 만들어버릴지 모른다.
첫댓글 이세상엔 괜찮은 사람들도 제법있는 것 같으이... 헌데 혹시 가방 안에 쓸만한 것이 없었을까?... 나쁜 생각^^
조교수가 그 가방을 잃은 것은 내가 내 랩탑을 잃은 셈이네. 얼마나 당황했을까? 찾았다니 다행이네. 유럽에서 근무할때는 자주 출장을 외로운 밤기차여행으로 많이했는데.. 고독한 차장에 비추는 자신과 피식거리면서..ㅎㅎ
재미있는 실수담~체험담이구나....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지.... 90년대 초반, 한달동안 미국 여행할 때, 시애틀 호텔에서 가방을 잃어 버린 적이 있었지.... 그냥 가방이 사라진 것이니 내 잘못은 없었고, 도난당한 줄 알고는, 호텔 프론트에 항의를 하고 경찰 신고도 했었는데, 다음 행선지인 라스베가스로 출발해야 해서 가방 없이 그냥 떠난 적이 있었지... 라스베가스 도착하니, 시애틀에서 가방 찾았다고 연락이 왔었어. 방청소하는 종업원이 실수로 보스톤 가는 언론인 일행의 가방인 줄알고 보내서, 내 가방이 보스톤에 가있다는 것이라.... 결국 그 다음날 무사히 전달받았지... ㅎㅎㅎ^^
그런데 탈모 해결은 이해민 원장이 최고 아닌가? 쉽다고 하던데...
제목을 꿈이라 해 놓고 가방 다시 찾은 얘긴데..괜한 헛꿈에 속 끊이며 살지말란 얘기로 들린다..가만 보자 내가 잃어 버린 가방은 뭐였을까...이루지 못한 첫사랑??ㅋ
학준사장~ 첫사랑을 서양에서는 first crush라고 한다며? 첫 사랑엔 love라는 단어를 잘 안쓴다고 하던데, 벙어리 냉가슴 앓던 학창시절 '맨처음고백'을 혼자 매일 불러서 마음속 18번이던 시절이 나도 있었지.... 어쨋거나 오늘 조교수 글은 댓글 대박이구나...
기왕 대박치는 댓글이라면 나도 한줄 더..첫사랑에게 고백 해본 이와 못해본 이 둘중에 지금와서 누가 더 후회를 할까? 나는 못한 이가 더 후회스러울 같은데..고백 못했다고 잃은 것도 없는데 말이다 혹시 조교수가 그런 이야기 하려는 것 아니었을까? 너무 비약을 했나..ㅎ
학준 사장~ 난 집사람 만나기 전 누구한테도 제대로 사랑 고백해본 적 없지만, 이제와서 후회는 없다. 마음 속으로 누군가 좋아한 적은 여러번 있었지 ㅎㅎㅎㅎㅎ 모두 다 나의 선택이었고, 그런 성향이 쌓여서 오늘의 내 모습을 엮어 왔으니, 그저 되돌아 보면 빙그레~ " 좋은 인연이었구나...." 그런 정도의 표현을 할 수 있겠구나.......
첫 사랑? 퍼스트 크러쉬? 하하 나한테 첫 사랑은 누구였나? 나는 사랑을 몰라....ㅎㅎ
ㅋ 이 양반 많이 크러쉬됐네~~
@김학준 난 퍼스트 러브는 크러쉬가 안되고 세칸드가 크러쉬 됬는데.. ㅋㅋㅋ
난 여자에 관해 쑥맥이었지... 결혼한 뒤에도 10년이나 지나서 겨우 아내에게 사랑 고백을 했지.... 그 이후 점점 사랑이 깊어졌고....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향해 가고 있다고 느낀다네^^ 요즘 내가 깨우친 것은, 사랑은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더라.... 사랑하는 이와 사랑받는 이의 구분이 있으면 그것은 아직 불완전한 사랑이라고나 할까? 결국 대상을 찾는 사랑은 집착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같다.... 조교수님~ 안그런가?
대상이 없는 사랑.... 요즘 나도 비슷한 생각을 갖는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한두사람을 향해서, (물론 학쭈니처럼 수많은 여자들을 향한 경우도 있지만) 물불 가리지 못하고 미친듯이 사랑도 해 보았지만... 결국은 인간을 향한 처절한 사랑을 한 예수님이나 부처님이나... 테레사 수녀나, 마르틴 루터 킹목사나.. 그런 사랑을 해봐야 인간으로 살았다고 말할수 있는거 아닌가?하고..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할 때, 자기는 사랑하는 자가 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사랑받는 대상이 된다.
그런데 사랑은 그렇게 나누는 것이 아니다. 주체와 대상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차라리 사랑은 모든 나누어진 것을 합일시키는 가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무조건적 사랑에 대한 이해를 해야 한다.
관념상으로 사랑에 대해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말이 바로 무조건이다.
그 이상 어떤 것로도 표현할 수 없다.
이거 뭔얘기들을하는거여~~개꿈가지고 별얘기가 다 나오네그려~~ㅋㅋㅋ
나는 홍표 말에 전적으루 동의~~ㅋㅋ
홍표 승일이 말씀이 맞구말구... ㅎㅎㅎ 여하튼 영태교수님 글 흥행에 성공했고, 학준 기모 댓글도 보았으니 만족한다^^
다행이다. 읽으면서 조마조마했는데...꿈이 아니었으면 심기가 상해 이렇게 자세히 올려 놓을 엄두도 못내셨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