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우를 앞둔 산기슭에서
곡우를 나흘 앞둔 셋째 일요일이다. 올봄 우리 지역은 비다운 비가 오질 않아 대지가 머금은 수분은 적은 편인데도 순환하는 절기에 따라 꽃이 지고 잎이 돋음은 엄정한 자연의 이치였다. 거리엔 몸살을 앓듯 벚꽃이 진 가지마다 연초록 잎이 돋으면서 다른 가로수들도 뒤지지 않을세라 유록빛으로 물든다. 이른 아침 근교 산행을 위해 반송시장 노점에서 김밥을 마련해 길을 나섰다.
창원실내수영장 맞은편에서 북면 감계를 둘러 온천장으로 가는 17번 버스를 탔다. 천주암에서 굴현고개를 넘은 외감마을 입구에서 내렸다. 동구 밖에서 달천계곡 들머리로 향하니 시야에 들어오는 산자락은 연두색이 주를 이룬 가운데 분홍과 하얀색이 듬성듬성 섞여 파스텔 톤으로 느껴졌다. 조연이 되어준 색상은 산벚꽃이나 야생복사꽃이 아니라면 돌배나무가 피운 꽃이지 싶었다.
기다리는 비는 오지 않아도 근래 미세먼지가 없는 날의 연속이라 대기는 쾌청했다. 외감 동구에서 바라보인 천주산이 작대산으로 가는 산등선은 맑은 하늘과 경계가 뚜렷했다. 조롱산 기슭으로는 감계 신도시 아파트단지로 스카이라인이 달라질 정도였다. 시선을 동북쪽으로 돌리니 백월산을 정점으로 해서 그보다 낮은 산봉우리들이 나를 향해 겹겹이 에워싸 머리를 조아리는 듯했다.
달천계곡 들머리에서 남해고속도로 창원터널 곁의 단감농원으로 올랐다. 숲으로 들어 작년 초봄에 산행을 같이 다니는 벗과 함께 심어둔 머위를 살펴봤다. 머위를 심어둔 자리가 등산로를 벗어난 바위더미 밑이었는데 그늘이 져서인지, 땅이 메말라서인지 생육 상태가 시원찮았다. 그곳에 머위를 심어둔 사연은 벗의 텃밭이 창원축구센터 곁 시청 공한지라 언젠가는 비워주워야 해서다.
오리나무 숲에서 나와 가랑잎이 삭아 부엽토가 된 길을 걸어 양미재로 올라 너럭바위에 앉아 명상에 잠겼다. 한동안 쉬었던 자리에서 일어나 등산로를 벗어나 숲으로 들었더니 누군가 두릅 순을 따간 흔적이 보였다. 두릅 순은 내 차지가 아니라도 뒤이어 돋아나는 참취가 보여 허리를 굽혀 뜯어 모았다. 방아풀을 닮은 보드라운 오리방풀도 소복하게 자라나와 제법 뜯을 수 있었다.
이맘때 오리방풀은 참취처럼 삶아 데쳐 나물로 무치거나 부침개 재료로도 좋다. 오리방풀을 찾아 산언덕을 오르다가 산신령님이 뜻밖의 선물을 안겨주어 횡재를 했다. 산삼에 버금갈 자연산 더덕 군락지를 발견했다. 한두 포기가 아니고 여러 포기였다. 더덕이 자라는 자리가 바위틈이 아닌 배수가 잘 되는 부엽토라 캐기도 수월했다. 뇌두로 미루어보아 십여 년 생은 되어 보였다.
더덕 군락지에서 등산 스틱을 활용해 뿌리를 캐면서 몇 개는 남겨두었다. 내년에도 그 다음 해에도 넝쿨이 자라나가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어 새로 싹이 트길 바랐다. 더덕을 캔 다음 산기슭에서 참취를 더 뜯어 산마루로 오르니 깃이 까만 수탉 한 마리가 놀고 있어 의아했다. 민가로부터 상당히 떨어진 산마루인데 닭장을 탈출한 녀석이 어떻게 멀리 그곳까지 올라왔는지 궁금했다.
의문의 닭이 놀던 산마루 쉼터에서 김밥을 비우고 양미재에서 양목이고개 사이 북향 응달로 내려갔다. 건너편은 작대산으로 가는 산등선이 병풍처럼 에워쌌다. 작대산 트레킹 길에 이르기 전 다래나무 군락지에서 이맘때 돋는 새순을 따 모았다. 어느 사하촌에서나 산중 식당에 흔한 묵나물이 다래순 나물이다. 배낭을 벗어두고 다래 순 채집에 몰입해 보조가방까지 알맞게 채웠다.
등에는 배낭을 짊어지고 한 손에 보조가방을 들고 작대산 트레킹 길로 들었다. 양목이고개에서 중방마을로 내려가려다가 진로를 바꾸어 양미재로 향했다. 발아래는 칠원 산정마을이고 건너편은 천주산이 호연봉으로 가는 산줄기였다. 양미재에서 외감마을로 나가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타고 굴현고개를 넘었다. 아파트단지로 들어와 꽃대감 친구와 퇴직 선배에게 산나물을 나누었다. 22.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