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산길 혼자 걷다 보니
앞서 간 짐승의 발자국도 반가워
그 발자국 열심히 따라갑니다
그 발자국 받아 안으려 어젯밤
이 산 속엔 저 혼자 눈이 내리고
외롭게 걸어간 길
화선지에 핀 붓꽃만 같습니다
까닭없이 마음 울컥해
그 꽃 발자국 꺾어가고 싶습니다
짐승 발자국 몇 떨기
가슴에 품는다고 내가
사람이 아니 되겠습니까
내 갈 길 다 알고 있었다는 듯
내 갈 데까지 데려다 주고
그 발자국 흔적조차 없습니다
모든 것 주기만 하고
내 곁을 소리 없이 떠나가버린
어떤 사랑 같아
나 오늘 이 산속에 주저앉아
숲처럼 소리 죽여 울고 싶습니다
- 시집〈절정을 복사하다〉문학수첩 -
오래된 천주교 집안에서 자란 내게 절집은 낯설고도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인생의 중반기에 얻은 휴가쯤이었다고 할까, 일 년에 서너 번씩, 한 열흘 절에 머무르면서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자거나 산책을 하는 일로 빈둥빈둥 하루하루를 채웠으니 이 보다 더한 휴식의 시간은 전에도 후에도 없었다.
충청도 논산에 있는 작은 절이었는데 스님 한 분과 살림을 맡아보는 총무 보살님과 식사를 담당하는 공양주 보살 세 분이 계셨다. 템플 스테이라는 그런 제도가 없던 시대였으니 특히 신자도 아니면서 하릴없이 절에 머무르는 나라는 존재가 그들에게는 이상했을 것이고 (고시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들은 내게 신선 그 이상의 대상들이었다.
심야전기라 전기요금이 싸다는데 방은 따끈했다. 얼마나 오랜만에 뜨거운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보는지 전쟁을 끝내고 고향에 돌아온 전사처럼 마냥 평온하고 한없이 아늑했다. 절집의 한 칸 뒷방이 이렇게 위로가 될 줄이야!
밤을 새워 귓전을 때리는 처마 끝 풍경소리와 함께 나도 자주 밤을 새웠다. 책을 읽는 순간도 아까워 최고의 고밀도 적막 속에 어두커니 앉아 오랜 외출? 가출에서 돌아온 나를 만나고 있었다.
눈물이 났다. 아니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어릴 때부터 눈물이 많은 나를 보고 어머니는 눈물이 많으면 눈물 흘릴 일이 많이 생긴다고 늘 걱정하셨는데 돌아보면 마음 놓고 울 그런 여유도 내게 없었던 셈이다. 이렇게 말하면 어린 자식들 먹여 살리려고 행상이라도 한 사람 같지만 평범한 일상의 위리안치 속에서 서서히 지쳐가는 중이었다.
그런 중에도 의리 있는 시는 틈틈이 잊지 않고 문을 두드려 주었다. 절집 뒷방에 홀로 앉아 울거나 시를 쓰거나! 그림상으로만 보면 내 평생 이때가 가장 시인다웠다고 할까, 그림으로만 그렇다는 얘기다.
어쩌면 그때의 깊은 휴식으로 평생 살아갈 에너지를 다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의 큰 휴식으로 들기 전 간이역의 중간 휴식쯤 된다고 해두자. 옛날에 어떤 스님이 내 둥근 목주름을 보고 부처님 은덕을 많이 보고 살 거라고 하셨는데 부처님과는 미팅할 기회가 거의 없었으니 이 사건을 팔자에 나와 있는 부처님 찬스라고 하면 불교 쪽에서 뭐라 하시려나?
연세가 지긋하신 총무 보살님은 궁금증이 많은 내게 좋은 글감을 구해주려고 늘 궁리 하셨는데 노루 똥을 보기 위해 겨울 산꼭대기까지 땀을 흘리며 올랐던 일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노루도 아닌 노루 똥이라니! 어쩌면 그분은 나보다 더 시인이었던 셈이다. 노루는 똥을 누고 눈에 띄지 않게 깜찍하게 숨긴다고 한다. 흙과 낙엽으로 덮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데 개의 코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잘 생기고 헌칠한 금강이(개 이름)는 단번에 노루 똥을 찾아 우리 앞에 보여 주었다. 우리가 찾는 게 노루 똥이라는 걸 어찌 알았을까 절집 밥을 오래 먹은 개는 관심법까지 겸비하고 있었던 셈이다.
내가 산책을 나서면 몇 발짝 뒤에 금강이가 따라오곤 했다. 갑자기 나타나는 산짐승에게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니 절집에서의 모든 배려는 거의 부처님 수준이었다고 할까? 내가 떠날 날이 가까워지면 스님은 홍시가 빨리 익지 않는다고 감나무에게 채근을 하시고 초봄에는 엄나무 순으로 무친 나물 맛을 보여야 한다고 보살님은 가시가 왕성한 엄나무에게 겁도 없이 순을 빨리 내놓으라고 조르곤 하셨다. 내가 며칠 더 머무를 빌미를 만들어 주시는 것이다.
절집의 겨울밤은 너무 고요해서 눈 오는 소리를 다 들을 수 있었다. 속세를 아주 떠난 사람처럼 내 겨울밤도 덩달아 고요했다. 눈 온 이튿날은 더더욱 하루 종일 인적이 없으니 언제 올라가도 산길은 늘 첫길이었다. 가끔 새 발자국도 만나고 노루 발자국도 만나는데 그 발자국을 따라가면서 이 시를 생각했다. 마음이 한없이 희어져서 내가 쓴 시 중에서 아마 가장 착한 시일 것이다. 세 번째 시집 첫 시로 실었으니 이 시에 대한 애정에는 그 절집에서의 아름다웠던 추억의 무게가 실렸으리라. 그 후 착한 시를 쓰지 못했다. 착한 사람들과 착한 산길과 착한 노루 등과 착한 금강이를 다시는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집안 사정으로 내게 그런 시간은 다시는 주어지지 않았다.
소박한 절밥을 괜히 미안해하시던 스님은 가끔 절 식구들과 나를 태우고 30분을 밤길을 달려 논산 읍내로 나가 자장면을 쏘시곤 하셨는데 그때 쓴 시를 다시 보면 문득 전생의 일인듯, 한 生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듯하다.
법문을 쏘다
이 화 은
스님과 자장면 먹으러 가네
면발처럼 어둡고 질긴 길을 구불구불 가네
중도 가끔 별식을 하고 싶다고
겉으로 그렇게 말은 하지만
한 이래 절밥에 진력 난 내 속내를
염주알처럼 꿰고 계시네
배운 대로 스님은
자장면 곱배기를 만나
자장면 곱배기를 쳐 죽이네
마주 앉은 자리가 면구하여 나는
단무지와 양파에 두 번이나 식초를 뿌리네
초를 치네
스멀스멀
이빨사이에서 시큼한 시간이 흘러내리네
보통 한 그릇을 앞에 놓고
떡을 치는 내 꼴을
몇 겁의 세월 저켠에서 건너다보시는
스님 입가에
연꽃 피네 자장면 자죽이
쓱! 크리넥스 한 장에
연꽃 지네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건강하셨던 보살님이 갑자기 심정지로 돌아가셨다 한다. 스님과 금강이의 소식은 그 후 알 길이 없다. 돌아보면 내 꿈같았던 시간들도 알 길이 없다. 법당 마당을 어슬렁거리는 내 꼴을 법당 열린 문으로 빙그레 내다보시던 친정 오라비 같던 부처님 소식도 알 길이 없다. 끝도 시작도 알 길이 없는 시가 요즘 대세라고 하는데 시는 말고, 알 길 없는 그때 그 시간 그분들이 내 아름다운 도반이라는 걸 그분들은 진정 알기나 하실까?
- 계간〈시인시대〉2021년 봄호,「그때 그 시절」이화은
The Seasons, Op. 37a: X. October - Autumn Song · Vladimir Tropp · Piotr Tchaikovs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