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꽃이 피려 하네
하루에도 몇 번씩 매화나무 곁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공양하러 갈 때도 들러 보고 봄볕에 산책을 할 때도 가 본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닌 모양이다. 그 은밀한 속을 열어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에 옮겨 심은 홍매 한 그루가 이렇게 나를 애태우고 있다.
지난해의 일기를 화인해 보았더니 4월 6일의 기록은 이렇다.
청매 피다. 터질 듯 부풀어 있던 꽃망울이 드디어 터지다. 초봄부터 얼마나 초조하게 기다린 화신인가. 오늘에야 짙은 암향을 풍기기 시작한다. 어김없는 우주의 신비와 자연의 질서 앞에 겸허해진다.
지난해의 시기와 견주어 본다면 하루나 이틀을 더 기다려야 개화의 순간을 맞이할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절에 오던 해 여기저기 매화 묘목을 심었는데, 어느 새 어른 키만큼 자랐다. 그리고 그때 수령이 제법 된 청매 두 그루도 함께 가져와서 친구로 삼았다. 그 나무들이 이제는 든든히 뿌리를 내리고 자리를 잡고 있다.
한 달 전에 이웃 절 스님이 매화 그림 한 폭을 주고 간 뒤로 개화가 더욱 기다려졌다. 청향춘식, 맑은 매화 향기가 봄소식을 전한다는 뜻. 아직 춥지만 매화 피는 것을 보면 봄이 비로소 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그래서 설중매는 반갑고 귀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옛 선비 사회에서는 ‘탐매’라는 풍류가 있었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매향을 좇아 춘설 속에 피어난 매화를 찾아다니는 여행이다. 이른 봄 매화를 보기 위해 떠나는 풍경은 탐매도에 잘 나타나 있다. 나귀를 타고 털모자를 쓰고 한겨울 매화 구경을 떠난 선비, 그 뒤를 따르는 시동이 있고 주위는 온통 겨울 풍경이다.
이 그림에는 매화음에 필요한 음식과 술, 시를 짓기 위한 문방구 등을 담은 보따리가 보인다. 만개한 매화 아래에서 술 한 잔 음미하고 시를 짓는 선비의 풍류는 생각만 해도 멋지고 낭만적이다. 음주가무로 흥청망청하는 요즘의 봄나들이 풍경과는 비교가 안 된다.
이렇게 찬바람에도 매화를 찾아나서는 것은 봄을 기다리는 심정 때문이다. 그 시절의 겨울은 지금보다 훨씬 혹독하게 추웠을 것이다. 그랬으므로 길고 긴 겨울이 끝나고 어서 봄이 오길 간절하게 바랐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여기에다 선비 정신을 대표하는 꽃이라서 시인 묵객들은 그 고결한 향기를 즐겼다. 오죽했으면 매화를 ‘호문목’이라 했겠는가. 옛글을 보면 매화가 피면 어떤 선비는 그 나무 아래에 자리를 깔고 밤을 지새웠다는 기록도 있다. 이를 보면 옛 선비들의 매화 사랑은 대단했다.
예로부터 매화나무의 가치를 논하는 글 가운데
“해묵은 노목을 귀하게 여기고 어린 나무는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다.
매화나무는 성장이 느려 오래 묵은 나무일수록 그 품격이 다르다. 그러므로 유서 깊은 선비 집 마당이나 고찰의 정원을 백 년 이상 지켜온 고매는 그 격조와 가치가 단연 돋보일 수밖에 없다.
통도사의 묵은 홍매는 사찰 담장과 꽤 잘 어울린다. 몰래 내 정원에 옮겨 놓고 싶을만큼 욕심나고 탐난다. 이상하게 나이 들수록 오래된 매화나무를 보면 정신을 빼앗긴다.
율곡 선생이 심은 오죽헌의 율곡매도 유명하지만, 퇴계 선생 또한 평생 매화를 즐겼던 위인이다. 그가 세상을 하직하면서 했던 말은 “저 매화나무에 물을 주거라.”로 알려져 있다.
기다리던 저 매화나무에 꽃이 피면 자리를 펴고 다로에 물을 끓일 작정이다. 찻잔에 매화 향기 띄워 놓고 봄맞이를 즐길까 한다.
출처 ; 현진 스님 / 산 아래 작은 암자에는 작은 스님이 산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