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찬송가 496장 (구 260장) / 사도행전 13 : 42 - 52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496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사도행전 13장 42절 – 52절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42. 그들이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43.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44.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45.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47.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49.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50.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51.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아멘!
사도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행한 설교는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회당에 모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물론 성령의 역사인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종교적인 관심이 첫째 이유입니다. 안디옥 사람들은 종교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종교에 관심이 많다는 것은 영혼 문제에 관심이 있다는 뜻입니다. 안디옥 사람들은 천국 문제에 관심이 있고, 구원 문제에 관심이 있고, 영혼이 잘 되는 일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의 심각한 문제는 도대체 영혼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점입니다. 인간이 영적 존재라는 사실을 애써 부인합니다. 오직 육체적으로 살다가 육체가 끝나면 종결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 만사가 오직 돈으로 통합니다. 돈 만 있으면 다 된다! 정치하는 사람은 오직 경제만 살면 다 된다고 외칩니다. 대학생들은 오직 돈 벌이 되는 전공에 매달립니다. 결혼하는 사람들은 돈 많은 배우자만 찾습니다. 그래서 연예인에 관심이 많고, 로또에 관심이 많습니다. 정의가 무엇인지, 착하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관심이 없습니다. 종교 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이 영적으로 사느냐 아니면 짐승처럼 육체로 사느냐의 중대한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는 인간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인간은 동물이 아닙니다. 육체적 삶이 전부가 아닙니다. 영혼이 있습니다. 영혼이 잘 돼야 만사가 잘 됩니다. 영혼이 안 되면 만사가 안 됩니다. 안디옥 사람들처럼 영혼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진실로 진실로 구원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회당에 모인 사람들의 다수는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으로서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바울과 바나바가 전한 복음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유대인들에게 듣던 내용과는 전혀 다른 말씀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도 유대인처럼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구원은 율법이 아니라 복음에 있고, 행함이 아니라 믿음에 있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이방인들은 이 복음을 듣고 크게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결과에 대해 유대인들을 매우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아가 아니라고 비난했습니다. 일부 과격한 유대인들은 바울 설교를 듣다 말고 예수가 메시아란 사실에 대해서 흥분하고 배척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람들을 동원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내쫓았습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의 배척을 받으면서 사도 바울은 중대 선언을 하게 됩니다. 46절 말씀입니다. 이 선언 속에는 중요한 두 가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첫째로, 혈통적인 아브라함 자손이 하나님 백성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사람들이 하나님 백성이란 선언입니다. 둘째로, 유대인이 복음을 거부한 결과로 이방인을 향해 복음을 전하게 된다는 선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어디 가든지 먼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거부하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유대인이 거부한 것이 오히려 이방인들에게는 축복이 되었습니다. 이런 섭리 역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복음은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최후통첩입니다. 복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구원을 받고 거부하면 그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사람은 하나님 자녀로 인정받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영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자녀에서 제외됩니다. 한 마디로 복음을 받아들이는가 여부에 따라서 영원한 운명이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우리가 할 일은 한 가지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일 뿐입니다. 그래서 인간으로 태어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속죄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지 않으면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할 것인가? 아니면 불신할 것인가? 결단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거역하는 것은 곧 하나님 자녀이기를 거부하는 것이요.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곧 하나님 자녀로 인정되는 축복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믿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성도로서 영원한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 자녀임을 확신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설교의 마지막에서 유대인들에게 자신들의 영원한 미래를 제시합니다.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47절) - 이방의 빛이 되어 땅 끝까지 구원의 복음을 전하라고 강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 자신도 이방인을 위한 사도요. 선교사임을 분명히 선언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방인으로 예수 믿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유대인이 아닙니다. 혈통적인 아브라함 자손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자녀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로 하나님 앞에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구주이신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 속에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게 하셨습니다. 천국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늘에 속한 것이나 땅에 속한 모든 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혈통적인 아브라함 자손보다 더 큰 복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49장 25절에서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축복하고 계십니다.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 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아멘! -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 은혜요.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이방인의 빛이 되어 사십시요. 저와 여러분에게 이방인이 누구입니까? 아직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아직도 예수님이 구주이신 줄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가족 중에도 아직 믿지 않는 이방인이 있습니다. 매일 어울리는 직장 사람들 대부분이 이방인입니다. 매일 사업상 만나는 사람들, 친구들, 이웃들이 다 이방인입니다. 이들에게 빛을 비추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가진 빛이 무엇입니까? 바로 복음의 빛입니다. 복음의 빛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구주라는 사실이 바로 복음의 빛입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 받고 하나님 자녀가 된다는 내용이 바로 복음입니다. 더 줄이면 예수님이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을 모신 그 자체가 바로 복음의 빛입니다.
복음은 능력이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1:16) 안디옥 교인들은 무슨 기적을 보고 모여들지 않았습니다. 단지 예수님이 구주라는 소식을 듣고 몰려 왔습니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48-49)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52절) - 안디옥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기쁨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무슨 기적을 본 게 아닙니다. 단지 말씀을 듣고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찬송했습니다. 말씀 내용에 기뻐했습니다. 복음은 그 자체로써 능력이 있습니다. 듣는 사람들을 변화시킵니다. 기쁨을 줍니다. 바로 이 복음이 우리가 가진 빛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예수 믿고 구원 받는 복음, 이 복음의 빛을 사방에 비추며, 어디서든지 예수님 믿는 것을 보여주며, 불신 영혼들을 건져내는 우리의 마지막 사명을 다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