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지금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고 이런저런 행사로 단체주문을 제법 하는 편입니다. 저희 학교가 좀 특이해서(?), 많이 할때는 1주일에 2회씩 주문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정기적이긴 하지만 단체주문을 적지않게 해봤고, 그러면서 느낀점들 몇가지 적어봅니다.
아, 제가 여기서 이야기하는 단체주문은 거의 간식입니다.
* 알바는?
보통 전화로 주문 가능 여부를 여쭤보는 경우가 많은데, 전화 받는 사람이 알바인 경우 티가 확 납니다.
"단체주문 문의 좀 드릴려고 하는데요"
"...아. 네. 몇명...?"
"300인분 생각하고 있습니다"
"......(에휴)..네.. 말씀하세요....."
처음엔 좀 당황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거죠ㅋㅋ 좋으신 사장님들이야 일당을 더 준다거나 할지 모르겠지만, 보통은 어지간한 단체주문 들어온다고 알바 인건비 더 줄거 같진 않거든요.
제일 변화가 극심한건, 프렌차이즈 패스트푸드점입니다. 보통 버거킹, 롯데리아 이런데는 아르바이트 하는 분들이 약간 목소리가 하이톤이죠. 전화해도 마찬가지로 하이텐션으로 "반갑습니다~ 버거킹 XX점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뭐 이러다가 단체 주문 이야기 하면 급 저기압으로 바뀝니다ㅋㅋ 충분히 이해해요. 저라도 그럴거 같거든요ㅋ
* 의외로..?
지극히 제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이야기입니다. 보통 단체주문이면 좋아할것 같죠? 의외로 그렇지 않습니다. 위의 알바를 제외하고 사장님 기준으로 보더라도, 제 경험상으로는 좋아하시는 분이 1/3, 특별한 반응이 없으신 분이 1/3, 아예 거절하시거나 싫어하시는 분도 1/3 입니다.
주변에 이런 얘기를 하면 되게 의외로 받아들이시는 분들이 많은데, 제 경험상은 이렇더라고요. 언듯 생각하면 장사하는 사람이 단체주문을 싫어한다고? 싶고 저도 처음에는 이해를 못했는데 주변에 자영업하는 친구들한테 물어보니 나름 이유는 있더라고요. 친구들 얘기가 기본적으로는 잘못된거라고 생각하지만, 자기 기본 장사에 지장이 간다면 경우에 따라 싫어할수도 있겠다.. 정도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예를들어서 제가 일정 이상의 양을 주문하면서 자기 장사를 접고, 우리 것만 만들어야 하는 경우, 당장 하루의 매출은 늘더라도 길게보면 나쁜 영향을 줄수가 있다는 겁니다. 가게를 하루 닫는게, 그냥 그 하루 매상이 없어지는거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손님들은 "어 오늘 영업일인데 왜 닫았지, 여긴 자기 맘대로 막 닫는가보다" 뭐 이런 인식이 쌓이면 손님이 줄어든다는거죠. 저는 자영업을 해본적이 없어서 그런 부분까지는 생각을 못했었는데,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또 나름 이유가 있다 싶더라고요.
그리고 뭐, 그냥 하던데로만 하고 싶지, 힘들게 단체주문까지 안 받고 싶은 경우도 분명히 있는거 같고요.
* 단체 주문의 요령
특별한 요령이랄껀 없는데 이 짓을 자주하다 보니 나름 노하우가 쌓이더라고요. 예를들어서 얼마전에 300인분 피자, 치킨을 주문할 일이 있었어요. 원래 간식이긴 한데, 애들이 간식 메뉴가 피자, 치킨이라는걸 알면 밥을 거의 안먹기 때문에 양은 식사에 준해서 맞췄습니다. 그래서 4인당 피자 라지 1판, 치킨 1마리, 콜라 1.25리터 하나로 주문을 했습니다. 그러면 300명 / 4 해서 치킨 75마리, 피자 75판, 콜라 75병이 필요하죠.
치킨은 보통 치킨 가게에 튀김기를 4구~6구 정도 가지고 있는걸로 압니다. 많이 잡아서 6구라 치고, 한마리 튀기는데 15분 잡아도 75마리를 튀기려면 75마리 / 6구 * 15분 = 187.5분, 3시간이 걸리죠. 그럼 처음 튀긴 닭은 3시간이 넘게 방치되다가 저희한테 오니 맛이 있을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게를 3개 정도 나눠서 주문합니다. 그래야지 제일 오래된것도 1시간 정도된, 상대적으로 상태가 양호한 닭을 받을수 있죠.
피자도 마찬가지로 생각을 해야하는데, 피자는 한번에 몇판이나 구울수 있는지를 전 잘 모르고, 튀긴음식인 치킨에 비해서는 조금 방치되어도 먹을만하다고 생각했고, 사장님과 상의해보니 자기가 30판 정도는 주문 받을수 있을거 같다 라고 해서 가게를 2개로 줄였습니다.
콜라는 가게마다 다릅니다. 치킨 2마리당 1.25 하나 준다는데도 있고, 25마리 시키니깐 10개 주겠다 하는데도 있고, 피자 37판 시켰는데 5개 주겠다는데도 있고 뭐 제각각이죠. 그러면 서비스로 주는 콜라 제외하고 부족한 갯수만큼은 제가 추가 주문하면 됩니다.
카페에 음료수 몇백개를 주문하는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 합니다. 뜨거운 음료는 다 식어서 올것이고, 차가운 음료는 얼음이 다 녹을수 밖에 없겠죠. 그런데 이건 약간 꼼수(?)가 있습니다. 요즘 몇몇 프렌차이즈 까페는 아이스 음료를 알루미늄 캔에 담아주는 곳이 좀 있습니다. 캔에 넣으면 보관, 이동이 훨씬 편리해지기 때문에 그냥 1회용 컵에 담아서 주는 경우 보다는 훨씬 많은 양을 소화할수 있습니다. 제가 주문한 곳은 냉장고 용량의 한계 때문에 150개까지만 주문을 받더라고요. 그런곳 2군데만 찾으면 카페 음료수 300개도 주문이 가능해집니다.
뭐 이런식으로 나름 머리를 좀 굴려야 합니다. 글로 적으니 복잡한거 같지만, 실제로는 자주 하는 일이라서 별건 아닙니다. 다만 모르는 사람한테 맡겨놓으면 "닭집에서 75마리 주문은 못받는다는데 어떻게 하죠" 뭐 이런 얘기가 심심찮게 나오죠.
* 갑질과 장사 못함, 그 사이.
학교가 어디 가는것도 아니고 계속 이 자리에 있을꺼고. 학교 특성상 지역 민심을 무시할수도 없고. 고정적인 매출을 발생시켜주는건 아니고. 당연히 갑질을 하면 안되는 거기 때문에, 저는 좀 삼가는 편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야기를 하면, 이 정도 매출을 발생시켜주면 어느 정도의 서비스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는것도 사실입니다. 이게 참 경계가 애매하죠.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위에 적은 주문을 하는 과정에서 치킨은 3군데 분리해서 주문을 했고. 피자는 2군데 나눠서 주문을 했습니다. 치킨집 3군데 협상 완료하고, 피자집 하나 섭외 끝내고, 마지막으로 주문한 피자집이 문제였는데요. 필요한 일시랑 피자량(37판) 말씀드리고 콜라는 어떻게 나오는지 여쭤보니, 본인 가게는 서비스 콜라가 없어서 따로 주문을 해야 된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이만큼 시키는데 조금도 못주냐고 여쭤보니 힘들답니다. 뭐 그럴수 있죠. 어차피 콜라는 서비스만으로는 필요량을 다 못맞추기 때문에 부족하면 그만큼 추가 주문을 해야됩니다. 여기까지는 괜찮습니다.
근데 배달료를 요구하더라고요. 그냥 일반 배달로는 못보내고 차로 배달 가능한 업체를 불러서 보내기 때문에 배달료를 따로 주셔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한두군데 주문하는것도 아니고 치킨집 3군데, 피자집 1군데에 전화를 다 돌려서 다른 곳들은 콜라 정도 서비스로 넣어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지막으로 돌린 전화였는데 서비스는 커녕 배달료를 요구하니 좀 당황스럽더라고요. 솔직하게 말해서 전 여기서 살짝 빈정이 상했어요. 피자를 37판을 주문하는데 배달료를 달라고 한다고? 딴데는 서비스를 주겠다는데 여기는 서비스는 없고 배달료를?
근데 보통 보면 이렇게 단체주문 넣으면 배달업체를 시키는게 아니라 사장님이 들고 오십니다. 정 안되면 주변에 있는 친구나 친척이나 지인찬스를 써서라도 어떻게든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배달업체를 주는 경우는 전 본적이 없어요. 그리고 전화한 가게를 제가 알아요. 조금 나이 있으신 부부 둘이서 운영을 주로 하고, 아르바이트 인지 자녀인지는 모르겠지만 학생? 아뭏든 젊은 분이 있을때도 있고 없을때도 있고, 뭐 그렇거든요.
그래서 바쁘시겠지만 사장님이 좀 가져다 주시면 안되겠냐, 하니 바쁜 타임이라서(저녁 8시경) 가게를 못 비운다고 하시더라고요. 거기서 제가 더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아 예 알겠습니다. 저희가 배달료까지 내면서 주문하기는 좀 그렇네요. 다음에 뵙겠습니다. 하고 끊었습니다.
또 다른 예시는 프렌차이즈 디저트 까페였습니다. 조각케익 60개 정도를 주문을 미리 하고 당일날 물건 받으러 가서 결재하면서, 사장님 그래도 이만큼 시켰는데, 할인 조금 안됩니까..? 하니, 딱 잘라서 안된다 하더라고요. 그 얘길 들으니 문득 엉뚱한 상상이 들어서 웃으면서 여쭤봤습니다. "사장님, 제가 여기 이 테이블에 앉아서 케익 60조각 먹는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하다못해 음료수라도 한두잔 가져다 주시지 않을까요" 그러니깐 마지못해 "...커피 한잔 내려드릴까요?" 그러시길래 괜찮다 그러고 결재 하고 나왔습니다. 서비스를 못주신다니 문득 든 생각을 말씀드린거지, 저 한테 커피 달라는 이야긴 아니였거든요.
이 카페를 예시로 드는건, 피자 같은 건 사장님 노동이라도 들어가지, 프렌차이즈 카페의 조각케익은 주문 넣으면 완제가 내려오는거 아닌가요? 그리고 카페에도 동일한 내용인진 잘 모르겠지만, 빵집하는 친구 얘기로는 그냥 일반 빵은 별 마진이 없고 케익이 돈이 된다 하더라고요. 게다가 테이블도 차지 안하고, 픽업 직접 가서, 조각케익 60개를 팔아주는데, 이 이상 개꿀 손님이 또 있을까요. 제가 저를 이렇게 지칭하니깐 좀 이상하긴 한데, 이렇게 돈 되는 손님한테 서비스를 그렇게 밖에 못할까요?
제가 자영업을 해본적이 없어서, 제 이해가 닿지 않는 부분이 있는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저는 잘 이해가 안가요. 갑질을 하자는건 아니지만, 나라면 안그럴꺼 같은데? 혹은 장사 참 못한다, 정도의 생각이 자꾸 듭니다.
어떤 것 같습니까. 제가 그 얼마 안되는 주문 몇개 가지고 바라는게 너무 많은걸까요, 사장님들이 장사를 못하시는걸까요.
첫댓글 저역시 학교에서 단체주문을 많이 하는 입장으로 많이 공감이 갑니다 ㅎ 고생 많으셔요
구매업무 담당입니다. 같은 건지 모르겠지만 말도 없이 물건 착불로 보내면 짜증납니다.
저도 매달 나오는 예산으로 사무실직원 간식을 사는데.. 결제 다 해놓고 찾으러갔더니 개별봉투값달라고 한경우도 있었네요. ㅠ
자영업 1도 모르는 입장에선
단체주문하면 너무나 좋을 것 같은데 왜그러지? 하는 생각이 드네요
단체주문받는다고 그날 영업이 끝나는게 아니니까요 ㅎㅎㅎ
단체주문용 물건 만들면서 일반 판매도 같이하니까요. 아무래도 힘들죠
저도 학교에서 이런경우 많이 있는데, 다들 제 생각과는 다르더라구요. 제가 모르는 뭔가 불편함이 있는건지, 아님 그냥 사장님들의 케바케인지 잘ㅜㅜ
뭐 일이라는게 기본 역량이 있으니 본인들 역량을 넘어가는 단체주문이 마냥 좋지 않는건 이해는 갑니다. 그런데 내가 뭘 잘못했나 싶을정도로 불친절한 사장님들도 많은게 현실이죠. 그리고 오히려 단골 디스카운트되는 경우가 왕왕 있죠. 여기아니면 못 사는줄 아는건지...
전 단체 주문을 해본적이 없어서 겪어 본적은 없지만 제가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르네요. 당연히 사장 입장에서는 엄청 반길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공감가는 부분이 많아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마지막 조각케익 같은 경우는 제가 그런경우라면 아쉽죠..
저도 즐겨가던 중국집이 있는데
예전에 손님이 오셔서 요리 두개랑 짜장면 짬뽕 하나씩 주문 한적 있어요
차로 10분 거리인데 받아서 집에 와보니
짜장면에 짜장이 없더라구요.
전화해서 말씀을 드리니
‘빠지는적이 없는데 왜 그런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네요. 어쩌죠?’라고 오히려 되묻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고 물으니 답변은 ‘어떻게 하나요?’만 반복하시더라구요.
결국 ‘ 그럼 제가 다시 받으러 갈께요’ 라고 하고 가게에 갔습니다.
갔더니 콜라 두캔 하고 ‘딱’ 짜장소스 한나 싸서 주시더라구요.
제가 아까 통화하신분이랑 얘기하고 싶다고 해서 그 분이랑 얘기를 했어요.
저에게 해결책을 주셔야지 계속 어쩌죠? 라고만 하시면 어떻게 하시냐 하고 여쭈었더니 찾으러 오면 말하려고 했대요
그 답은 콜라 두캔이었구요
다시 콜라 돌려드리면서 최소한 짜장소스뿐 아니라 면도 다시 해주셔야 하는거 아니냐고 말씀드리고 나왔어요
집에 와서 불어터진 면에 짜장 부어서 먹는데 참 씁쓸했습니다
거기다가 손님들도 저 기다리느라 식은 요리 드셨고
엉망이었죠 뭐. 저는 그 다음부턴 그 집에 가질 않게 되더라구요.
운영하는 사람의 유연성이 때로는 아쉬울때가 있어요.
잘은 모르지만 마지막 조각케익 에피소드는 할인이 아니라 서비스를 요구하셨으면 드렸을수도 있을거 같습니다. 할인이나 덤은 입출내역도 달라지고 포스기에 찍기도 애매하지 않을까요? 포스기에 안남기고 재고?도 지장없는 음료서비스 같은건 괜찮을거 같습니다.
그런 생각을 안해본건 아닌데, 그런 부분은 소비자는 모르고 사장님은 아시는 내용이고, 프랜차이즈 영업점 재고관리가 얼마나 철저한진 전 잘 모르겠습니다만, 조각케익 하나 로스 잡고 59개만 결재를 받는 방법도 있을 것 같습니다. 뭐 이런저런 방법이야 사장님들이 잘 아실것이고 소비자 입장에선 내용을 다 파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건 쉽지 않은 일이죠. 그런 부분까지 생각해보면, 사장님이 어떻게든 서비스든 할인이든 뭔가 해주실 마음이 있으셨다면 내용 설명하고 다른 방법으로 유도를 하면 될것인데,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으니, 사장님이 뭘 해줄 마음이 없었다고 보는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너무 잘 읽혀서 올라올때마다 잘 보는 theo 님의 글. :) 마지막 카페 사장님은... 장사 잘 못하시는거 같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영업에 별 도움이 되지않는 그 분만의 어떤 고집이 있으신걸로 보이네요. 물론 저도 자영업자는 아니라 틀렸을 수 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