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가톨릭 신학] 산들이 주님 앞에서 흘러내렸습니다(판관 5,5ㄱ)
유변학(流變學)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고체가 액체처럼 흐르거나 변하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유변학에서 사용하는 개념 중에 ‘드보라의 수’(Deborah number)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물체가 변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관찰 시간으로 나눈 값으로, 그 숫자가 1보다 많이 크면 물체가 변화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의미이고, 따라서 그 물체는 고체에 가까운 특성을 갖는다는 뜻의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물체를 한 시간 단위로 관찰했는데, 그 물체가 열 시간이 걸려 변화했다면, ‘드보라의 수’의 값은 1보다 큰 10이기 때문에 고체에 가까운 특성을 갖는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개념을 처음 제안한 마르쿠스 라이너(Markus Reiner)는 판관 드보라가 부른 노래(판관 5,5ㄱ)에서 그 영감을 얻었기 때문에 ‘드보라의 수’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우리말 성경에서 판관 5,5는 “산들이 주님 앞에서 떨었습니다, 시나이의 그분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앞에서”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판관 드보라가 가나안 임금 야빈과 싸워 이긴 후에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의 노래 중 일부입니다. 이 중에서 오늘 우리의 흥미를 끄는 부분은 5절의 앞부분입니다. “산들이 주님 앞에서 떨었습니다.” 여기에서 ‘떨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는 (nāzal)입니다. 이 동사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는데, 하나는 ‘떨다/흔들리다’(to quake)이고 다른 하나는 ‘흐르다’(to flow)입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번역도 가능합니다. “산들이 주님 앞에서 흘러내렸습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영어 성경들이 이러한 번역을 선택합니다. [예) “The mountains flowed with water at the presence of the Lord.”(NASB)] 이 두 번째 번역을 보면, 어떻게 이 구절이 유변학과 연결될 수 있는지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드보라의 수’라는 개념 안에서는, 산도 흘러내릴 수 있습니다. 관찰 시간을 아주 오랜 기간으로 늘리면, 산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관찰 시간을 변화시켜 의미를 찾는다’는 관점은 신앙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합니다. “지나고 보니 하느님의 뜻이었다.” 일상의 짧은 순간에는 하느님의 뜻을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마치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시간을 조금만 더 길게 본다면, 당시에는 우리가 느끼지 못했던 하느님의 손길을 나중에라도 느끼게 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산을 바라보고 있는 그 순간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그 거대한 산도 조금씩 계속 변화하고 있었던 것처럼, 하느님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았던 그 순간에도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계속 조금씩 조금씩 변화시켜 주고 계셨던 것이지요.
이렇게,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듯해도 언제나 함께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시는 하느님을 믿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이며 신앙이라고 하겠습니다.
[2024년 7월 7일(나해) 연중 제14주일 서울주보 5면,
박진수 사도 요한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첫댓글 "산들이 주님 앞에서 흘러 내렸다."
무언가 더 마음 깊은곳까지 쓸어내리는 듯한 아름다운 표현인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