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건너 당나라 등주를 공격하게 한 발해의 왕은 누구일까?
무왕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은 당나라 군대의 공격을 피하고자 가급적 당나라로부터 먼 동부만주 지역을 택해 나라를 세웠다. 당나라는 돌궐, 토번 등 여러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발해와 큰 전쟁을 할 가능성은 적어 당장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반면 당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많고 문화가 발달한 나라였다. 발해에게 당나라는 조상의 나라인 고구려를 멸망시킨 원수였지만, 당나라의 앞선 문화와 힘에 대해서는 두려움과 함께 배워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발해가 외국과의 거래를 할 때에 가장 큰 교역 상대국 역시 당나라 일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조영은 나라를 세운 이후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국교를 맺고자 했던 것이다.
당나라를 공격한 무왕
발해 2대 무왕 대무예는 발해의 건국과정을 잘 지켜본 인물로 발해를 강한 나라로 키워야겠다는 의지가 가득한 임금이었다. 발해의 시조인 대조영이 이룩한 기반 아래 그는 동부 만주지역의 여러 말갈 부족들을 제압하면서 영토를 크게 넓혀갔다. 또한 ‘인안’이란 연호를 사용하며 발해가 당나라와 대등한 또 하나의 세계의 중심국가임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자 당나라는 발해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특히 발해 북쪽에 있던 흑수말갈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당나라와 연결을 맺으려 했다. 당나라 또한 흑수말갈을 당나라가 보호해주겠다는 조치를 취하려고 했다. 흑수말갈이 당나라 편이 된다면, 발해의 입장에서 앞과 뒤로 적을 두는 셈이 되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무왕은 흑수말갈을 공격하라고 신하들에게 명령을 했다. 하지만 흑수말갈 공격으로 인해 당나라와 전쟁이 생길 것은 우려하는 자가 있었다. 무왕의 동생인 대문예는 고구려에 비해 발해의 병력이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상황에서 당나라와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자 무왕은 동생을 겁쟁이라고 비난하고 그를 흑수말갈 토벌 대장으로 임명하고 가지 않으면 처벌하겠다고 했다. 형과 갈등 끝에 대문예는 당나라로 도망을 갔다.
무왕은 당장 사신을 보내 대문예를 처벌할 것을 당에 요구했지만, 당은 이를 무시했다. 그래서 발해는 732년에 장문휴로 하여금 바다를 건너 산동반도의 등주를 공격하여 등주자사 위준을 죽이는 성과를 거두고, 요서의 마도산으로 쳐들어갔다. 발해의 침략에 놀란 당나라는 화급히 신라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신라는 군사 3만을 동원해 발해의 남쪽을 공격했으나, 폭설로 인해 실패했다. 하지만 발해 역시 당나라와 전쟁을 계속할 힘은 없어서 전쟁은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하고 끝났다.
당나라 화해를 택한 문왕
737년 무왕의 뒤를 이은 문왕은 793년까지 무려 56년 동안 발해를 안정시키고 발전시킨 임금이었다. 그는 아버지와 달리 당나라에 적극적으로 사신을 보내고 무역을 확대하는 우호정책을 택했다. 그러자 당나라도 발해를 적국이 아닌 교역대상의 나라로 받아들였다.
전쟁 보다는 서로 협력하여 발전하는 길을 택했기 때문에, 발해는 경제적 번영을 가져올 수 있었다. 무왕은 당나라에게 따끔하게 발해의 국력이 강함을 보여주었고, 문왕은 실리를 찾아 교역을 넓혔다. 발해는 이제 경제적으로 발전하는 길을 택했다.
* 지도 : 발해의 당나라 공격, 신라의 구원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