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승강장은 저의 ‘작은 낙원’입니다.
무색무취의 공기처럼, 일상엔 그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공간들이 있습니다. 승강기나 아파트 계단, 지하철 역사처럼, 목적지가 될 수 없는 곳들을, 저는 매일 무심히 지나쳐가곤 했습니다.
콘크리트 바닥처럼 밋밋한 공간이 제가 할아버지를 만난 ‘특별한 장소가 된 것은 뜻밖의 일 때문이었습니다. 서울 강변역 2호선 내선 순환 승강장, 외근을 나가는 길에 생수를 사려고 매점에 들른 날이었습니다.
가판대가 있는 작은 매점이었는데, 계산하려고 보니 현금이 없었습니다. 주인 할아버지는 계좌이체를 해달라며 계좌번호를 적어둔 종이를 급히 찾으셨지만, 메모지는 보이지 않았고, 그 사이 ‘전철이 곧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습니다.
마음이 급해져 계좌번호를 불러달라고 했더니, 할아버지는 “못 외워요. 돈은 다음에 줘요”하시며 물병을 손에 쥐어주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다음에 사겠다.’는 저의 등을 세게 떠밀며 ‘목마를 텐데 어서 가져가라’고 하시는 말씀을 뿌리치지 못하고, 저는 그대로 전철에 올라타고 말았습니다.
손에 들린 생수 한 병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할아버지는 뭘 믿고 물건값을 치르지 못한 손님을 그냥 보내셨을까?’ 자신의 손익보다 ‘초면인 사람의 목마름’에 더 마음을 쓰는 선량함이, 삭막한 도심 속 오아시스처럼,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오랜 세월의 풍파에도 깎여나가지 않고 살아남은 할아버지의 인간미가 저의 버석한 마음과 목을 시원하게 적셔주었습니다. 외근을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천원을 드리자, 할아버지의 “돈 안 줘도 되는데, 고생스럽게 일부러 왔구만!”하시는 푸근한 말투에, 저는 또 한 번 행복해졌습니다.
그날 이후로, 우리 사이에는 정다운 인사들이 오가고 있습니다. ‘간밤에 잘 주무셨는지, 손님은 많았는지?’하고 여쭈면, 할아버지는 ‘밥은 먹었는지, 옷은 따뜻하게 입었는지?’하고 챙겨주십니다.
할아버지와 짧은 정담에 바쁜 일과로 어지러워진 제 마음은 평온을 되찾습니다. 삭막했던 승강장이 요즘에는 저의 작은 낙원이 되었습니다. (출처; 샘터, 이서진 / 영어교사 준비 중)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외국인들이 볼 때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점들도 있지만, 그러나 긍정적인 측면도 많지 않나 싶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따뜻한 정(情)’이 많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서 곤란한 지경에 빠져 있는 사람을 보고서도 그냥 지나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저의 외손주들도, 영국에서는 맛볼 수 없는 따뜻한 정을, 방학을 맞아 한국에 왔을 때마다 경험하고서는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부모에게 요구했답니다.
영국에서 태어나 중학생이 될 때까지 자랐으니, 어쩌면 영국이 고국이나 마찬가지인데도 말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한국인들만의 이 ‘따뜻한 정’이 사라지지 않도록, 더욱 힘쓰고 노력해야겠습니다. (물맷돌)
하나님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고, 성령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가슴속에 채워 주시는 까닭에, 우리는 이 따뜻한 사랑을 어디서나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롬 5 : 5 하, 현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