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동침'이 시작됐다. 금메달을 향한 전략적 합병이다. 드림팀Ⅴ의 주포인 기아
이종범(32)과 삼성 이승엽(26)이 아시안게임 우승을 위해 경쟁 관계를 잠시 접었다.
국내프로야구에선 한게임차로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는 라이벌팀의 간판스타. 하지만 공동의
목표 앞에 한배를 탔다.
29일 선수촌에 입촌한 이종범과 이승엽은 한 아파트에 배정을 받았다. 김한수 노장진(이상
삼성), 이병규(LG), 트레이너 2명과 함께 아침, 저녁으로 얼굴을 맞부딪히는 룸메이트가
됐다. 별다른 소일거리가 없는 선수촌 아파트에서 둘은 열흘 이상 부대껴야 한다.
90년대를 양분했던 신구 스타의 만남이다. 90년 북경아시안게임때 마지막으로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던 이종범과 99년 아시아선수권대회, 2000년 시드니올림픽 대표였던
이승엽이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한팀서 뛰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종범이 93년 데뷔후
국내 무대를 휘젓다가 98년 일본 주니치로 건너간 반면, 이승엽은 95년 데뷔후 2년간
움츠렸다가 첫 MVP를 차지한 97년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중반 이종범이 국내로 복귀한 뒤부터 둘간의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올초
연봉협상과 관련해선 '이승엽과 나를 비교하지 말라'는 이종범과 '돈보다 실력으로 말하겠다'는
이승엽간에 미묘한 감정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올시즌이 시작된 뒤에는 기아를 이끄는
정신적 지주, 삼성의 간판타자로서 팀간 1위 다툼의 첨병으로 맞붙어왔다.
부산에선 잠시 휴전이다. 대신 공동의 적인 일본, 대만을 공략하기 위해 공격 최전선에서
힘을 합치게 됐다. 일본프로야구에서 풍부한 1,2군 경험을 한 이종범은 후배 이승엽을
위해 타격 조언을 하고, 이승엽은 주장으로 뽑힌 선배 이종범의 강력한 지원자가 되기로
했다.
이종범은 29일 대표팀이 처음으로 모인 자리에서 "후배들을 잘 챙겨서 금메달을 따기
위한 좋은 분위기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승엽은 "개인의 이름을 알리기 보다는 위기에
빠진 프로야구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인터뷰장에 나란히 앉은 둘의 모습에선
대표팀 타선의 시너지 효과가 벌써부터 엿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