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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내린 비로 계곡의 너래바위를 아우르며 비단폭같은 흰 물즐기가 쉬임없이 쏟아내린다. 뽀얀 물보라가 아기 얼굴만한 갈잎에 뿌려져 오색 무지개가 아롱거린다. 비록 웅웅거리는 폭포수 소리는 아닐찌라도 이따금씩 들리는 산새소리가 어느덧 그 속에 묻혀버릴 정도로 제법 울청(鬱淸)하다. 청모시 옷고름이라도 슬몃풀어 하얗게 부서지는 구슬같은 물보라에 적셔보고 싶어지니 그 래서 옛 시인묵객들이 운류(銀流),금류(金流)라 부르며 산이름을 수락(水落)이라 붙혔나보다.
물기 먹음은 신록은 세속에 찌든 나그네의 고달픔을 아는냥 빙긋이 웃는다. 바위에 앉아 숨을 골랐다. 저아래 물소리가 가만히 앉아 있으니 점점 명명백백하게 '물소리'로 들리기 시작한다. 둥근통에 고여있는 물처럼 나의 몸을 한곳에 앉혀두고 다른 것들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 는다. 「있는 그대로가 귀하니 일부러 꾸미지 마라(無事是貴人 恒莫造作)」 임제선사의 말씀이 그 고요속에서 들린다.
물은 바위를 타고 흐르고 습기는 이끼를 키우며 나무껍질에는 개미가 먹이를 찾아 오르내 린다. 무성한 잎사귀가 햇볕을 막아주는 그늘진 곳에 노란 갓버섯이 자라고 지난해 떨어진 부엽토를 먹고 수락산의 울창한 삼림은 여름순을 밀어 올린다. 너와 나의 사랑하는 방법을 여기있는 저들은 이미 터득하고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바위와 나무가 공생하는 수락의 등성들을 차례로 밟으면서 문득 근자에 매스컴에서 회자 되고 있는「치킨게임 Chicken Game」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북핵문제에 대해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한 앞으로의 대응은 더 터프해 질것 이다"이라고 밝혔다. 이에 맞서 북한의 한 고위관리는 "그러면 6자회담은 영원히 끝났다" 고 선언하고 "결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맞불을 놓았다. 마주 달리는 기차가 마치 피하면 진다는 생각때문에 서로 끝장을 보고자 하는것과 마찬가 지로 끝까지 물고 놓지않는 '닭싸움'과 같은 어리석은 행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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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국제사회문제 뿐인가? 61년전인 1948년 7월17일 제헌헌법이 공포된 날 우리의 국회는 여야 동시농성이라는 전무 후무한 희극을 벌렸다. 서로가 쟁점법안을 날치기 하는것을 막아야 한다고 민의의 전당인 본회의장을 점거하는 폭거로 맞서고 있는 것이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서로의 멱살만을 잡고 있으니 일반인들 도 토론보다는 억지가 통하고 법적판결을 받아도 이를 승복하지 않고 벽이 문이라고 밀어 붙히는것을 능사로 안다.
치킨게임은 낸시 프라이드가 쓴 소설〔적과의 동침 Sleeping with the enemy]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중국고사에 나오는 '오월동주(吳越同舟)'와 같은 비유로 때로는 나와 생 각이나 주장이 다른사람도 함께 포용하라는 의미다. 좀 그럴듯한 표현을 빌리자면 '전략적 제휴' 인 셈인데 이는 개인과 개인의 인간관계에서도 필수적이다.
점과 점을 이어가면 선이 되고 지점과 지점을 이어가면 길이 된다. 이 길을 따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그곳에서 소식이 전해지고 생각이 합쳐지며 공동심이 잉태된다. 무엇이 나를 옥죄이고 무엇이 나로 하여금 서로의 간극을 긋게하는 미움의 씨앗 을 뿌리게 하는가.
떠남은 만남이다. 자신과 타인이 일치를 이루는 만남이다. 길따라 함께 떠난 길동무는 함께 땀흘리고 함께 음식을 나누며 물안개 낀 이른새벽 이슬젖 는 강둑길과 능선을 담도는 안개, 잠자리떼 날으는 들녁,해질녁 노을과 으스름한 눈섭달, 별빛 쏟아지는 밤하늘의 은하수를 같이 향유할수 있는 주인일 것이다. 떠남과 만남은 비움과 채워짐으로 길동무를 숙성시키고 소통과 연대의 소중을 확인시켜 줄 것이다. 치킨게임같은 허망하고 소모적인 길과, 채움으로 인한 길동무와의 소중한 향유와 의 길 ㅡ어느것이 더 소중한 가치를 갖고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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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산의 끝자락은 느릿하게 여유로웠다. 느리므로 그만큼 더 넓은 시야를 얻을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우정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마음을 쉬게하고 그리하여 잠깐이나마 골짜기를 내려오는 바람처럼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는 작은 소망 때문이였다. 산중턱에서 은은한 목탁소리가 들리고 한동안 끊겼던 물소리가 차츰더 가까워 진다. 필연 떠난곳을 다시 왔겠으나 마음은 산 모두를 안은것 처럼 풍요로웠다. 그런데도 저 한쪽켠에 찝찝하게 남아있는 이 찌꺼기들은 무엇인가.
한발을 뒤로 물리면 내가 보인다. 네가 그러하니 나 역시 그러하다는 편협에서 벗어나는 길은 먼저 나를 떠남일 것이다. 지혜로운 부인은 남편이 외출하여 돌아오면 자신의 몸을 차가운 물에 담갔다가 남편의 더 워진 몸을 맞이한다. 본인도 시원하고 정인도 시원하니 '여름날 사랑법'이다. 강 대 강으로 끊임없이 맞서는 치킨게임보다는 얼마나 정겨운 지혜인가.
도안사(道安寺) 지나는 길섶에 혜자스님의 글 몇줄이 현판에 쓰여 있었다. 「자기가 소중한 만큼 남도 소중히 여기는 삶, 이것이 무상의 진리를 실천하며 가치 있게 사는 '참삶'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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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소요거사님의 글을 읽으니 여름철 피서를 옹골차게 보낸 듯이 시원하고 옴팡지게 충만해집니다. ㅎㅎ 고맙습니다. 남은 더위도 잘 추스리시고 지금과 같은 풍류객의 여유를 마음 껏 누리시길 바랍니다.....(공짜(?)로 좋은 글을 읽으니 그 재미가 얼마나 좋은지 '좋은생각을 가진 아름다운 사람들'의 카페를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펌해 갑니다)
ㅁ케시님 무더위에 건강 하시지요? 언젠가 홈 운영자 깐돌이 친구가 캐시님 이야기를 하면서 한번 조우하자고 하던데 공교롭게도 시간이 어긋나 불발이 되었답니다. 근간 서로 사간을 마추어 상면하면서 막걸리 한잔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좃껍데기술>이란 기막힌 술을 알거든요. ㅎㅎㅎ
기대합니다. ㅎㅎ
좋은글 고맙소, 그래 요즘 너무 뜸 한것 같아 혹 술병이라도 난게 아닌가 하여 전화라도 해 볼려고 했지. 잘 거사님 지내시지 검강하게
술병은 무신....휴일마다 山山을 찾으며 道 닦는 중일세. 옛날에 수련했던 18기 내공법도 다시 수련을 시작했고...쇠줄이나 암벽을 타려고 하다보니 경신술을 다시 익혀야하겠더라구...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