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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시적 수사 1 / 이종수 시인
“무릇 시란 뜻(意)이 주가 되나니, 뜻을 펴기가 가장 어렵고 문사(文辭)를 엮는 것은 그 다음이다. 뜻 역시 기(氣)를 주로 하나니, 기의 뛰어남과 졸렬함으로 말미암아 곧 깊음과 얕음이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기(氣)는 하늘로부터 본받은 것이라 배워 얻을 수 없다. 그런 까닭으로 기가 열등한 자는 글을 꾸밈으로서 일삼고 전혀 뜻을 앞세우지 않는다. 대체로 그 글을 공들여 꾸미고 다듬으면 그 글(句)은 진실로 아름다우나 안으로 깊이 새겨 넣은 뜻이 없다. 그런 즉 처음에는 볼만하지만 다시 씹어보기에 이르면 맛이 없어진다.”
- 이규보, <백운소설(白雲小說)> 중 ‘기론(氣論)에서
일찍이 중국의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시대는 싸움이 그칠 날이 없던 때인데 그 후로도 계속 이어진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문학예술은 새로운 면모를 보였다. 그 중에 나타난 조비(曺丕)의 『典論』은 중국문학사상 가장 오래되고 처음인 본격적인 ‘논문’으로 평가받는다. 주로 ‘기(氣)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데, 이규보의 ’기론‘에도 영향을 미쳤다. 여기서 기란 ’‘맑은 것 또는 흐린 것 등 체(體)와 구별된다’고 하였다. 타고나는 것이라서 아버지가 자식에게 나누어 줄 수도 없고 형제라서 옮길 수 없다 하였다. 천지만물의 근원인 셈이다. 기가 살고 기가 막힌다는 말을 생각해 보면 알 것이다. 한마디로 기교보다는 기가 뛰어나야만 좋은 작품을 낳는다고 했다. 기교가 화려한 시는 언뜻 보면 좋아 보이지만 진정한 뜻을 가지지 못하면 실패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기교란 모방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뜻을 일으켜 세우는 뼈대가 되어야만 진정한 아름다움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부린 듯 안 부린 듯 자연스럽게 느껴질 때에야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는 너무나 어렵다. 대부분 시를 배우는 곳에서 시를 완성하는 것도 망치는 것도 기교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죽은 비유를 가지고 시의 핵심이라 말하는 이도 많다. 직유와 은유로 대표되는 비유법을 빼면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시들이 많다. 아무리 진지한 뜻을 가졌어도 과장된 수사로 망쳐버리는 시가 많다.
대표적으로 많이 쓰이는 은유를 다른 대상을 자기화하다 보니 대상과 대상을 강제로 연결하는 무리를 낳게 되고, 그 결과 대상을 자유롭게 보지 못하게 하는 억압으로 쓰인다고 보는 이들이 늘었다. 그리하여 곧 지나친 주체와 이성 중심을 낳고 남성중심을 낳게 되었다는 결론으로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
사진기의 피사체를 끌어와서 찍듯 내가 불러주었을 때에야 잊혀지지 않는 의미가 된다는 것이 대상에 대한 또다른 억압으로 들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말을 비틀고 교묘하게 꾸민 끝에 문장과 도리가 둘로 깨어진다고 보는 허균조차 은유를 ‘문장의 재앙’으로 보았던 까닭을 새겨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좀 더 상상력을 동원해 보면 어떨까?
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
나의 문자
“응”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 있고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 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 문정희, <응>
언어 자체로 상상력이 뛰어난 은유를 만들어 버렸다.
그런 점에서 박용하 시인의 시는 섬뜩할 만큼 신선하다. 자책하듯 묻는 비유 없이 이어지는 문장들이 읽는 이로 하여금 화가 나게 하면서 반성하게 한다. 문태준의 <가재미>와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할아버지가 부려먹었다
아버지가 부려먹었다
첫째아들이 부려먹었다
둘째아들이 부려먹었다
첫째며느리가 부려먹었다
둘째며느리가 부려먹었다
첫째 손자가 부려먹었다
둘째 손녀가 불려먹었다
밥 번다는 이유로
평생 싼값에 부려먹었다
회초리같이 가느다란 사람,
암에 걸려 수술대 위에 걸려 있다
- 박용하, <어머니>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옆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 문태준, <가재미>
호박꽃 속을 한결같이 맴도는 호박벌처럼
젖을 빨다 유두를 문 채 선잠 든 아가처럼
나오지 아니하고 그 통통한 살내 속에 있고 싶은
- 문태준, <사랑>
비유해서 볼 대상이 있고 그렇지 않은 대상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정면으로 직시하지 못하고 에돌다가 정말 애를 끊고 마는 비유는 삼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사랑도 머물기보다는 떠나는 것에서도 있듯이 ‘나오지 아니하고 그 통통한 살내 속에 있고 싶은’ 자궁회귀와 같은 사랑으로 머문다면 곤란하지 않을까. 멋지게 표구하고 싶은 시로 보이다가도 돌아서면 색이 바랜 기교만 남은 듯하다.
너덜너덜한 걸레
쓰레기통에 넣으려다 또 망설인다
이번에 버려야지, 이번엔 버려야지, 하다
삶고 말리기를 반복하는 사이
또 한 살을 먹은 이 물건은 1980년 생
연한 황금색과 주황빛이 만나 줄을 이루고
무늬 새기어 제법 그럴싸한 타올로 팔려온 이놈은
의정부에서 조카 둘 안아주고 닦아주며 잘 살다
인천 셋방으로 이사 온 이래
목욕한 딸아이 알몸을 뽀송뽀송 감싸주며
수천 번 젖고 다시 마르면서
서울까지 따라와 두 토막 걸레가 되었던
20년의 생애,
더럽혀진 채로는 버릴 수 없어
거덜난 생 위에 비누칠을 하고 또 삶는다
화염 속에서 어느덧 화엄에 든 물건
쓰다쓰다 놓아버릴 이 몸뚱이
- 김해자, <인연>
한낱 걸레이지만 그냥 놓아줄 수 없는 ‘인연’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시다. 거덜난 생이 화자가 살아낸 삶을 말해주는 듯하고 빨고 삶기를 되풀이하다 어느덧 ‘화엄’에 든 몸뚱이는 얼마나 각성된 말인가. 뜻이 기교를 넘어 강렬하게 버팅기고 있어 읽으면서 감동하게 되는 시라고 할 수 있다.
보지 않고는 훔칠 수 없는
시어머니 아랫도리를 닦다 눈을 돌렸다
두 번의 수술과 몇 차례 방사선으로
거웃마저 거의 사라져 숨을 곳 없는,
생산도 사랑도 멈춘 해 배설기능만 남은 은밀한
그곳이 발가벗겨 형광불빛 아래 서러웠다
열다섯에 전쟁을 만나 고아원 전전하다
식모살이 파출부 미싱질에 반찬공장까지
한평생 궂은 자리 끌고 다니던 몸뚱이
끝내 벗어나지 못한 셋방에 뉘였구나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가난한 내게
매번 치러야 할 돈뭉치인 당신은
잊을 만하면 새로운 고통 수혈해주는 당신은
통증 저장소, 모르핀과 스테로이드 대신
몽상과 침묵으로 통증을 관리하는 나는
약에 버무려진 똥 앞에서 노란 개연꽃 흐드러진
연못을 떠올리다 황금빛 연못 속으로 빠져 들어가다
아픈 媤자 앞에서 곰곰 여자를 생각하다
울음밖에는 고통 알릴 길 없는
애기똥풀로 돌아간 당신에게로 엎어지며
다시 사랑할 힘을 얻는다
아무것도 못하는 가난한 시여
시를 낳는 여자여, 어머니여
- 김해자, <詩어머니>
媤가 詩로 바뀌는 데는 화자가 시어머니의 병든 몸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본 생애와 사랑이 앞서야 한다. 그저 병이 든 시어머니의 난공불락함만을 보지 않고 시어머니의 전 생애가 태풍처럼 훑고 지나간 몸을 들여다보고 걸레와도 같은 ‘인연’에 사랑의 힘을 얻은 것이다. 간신히 추스르고 난 슬픔 위로 빛나는 사랑인 것이다.
그런 절절함과는 달리 ‘참 매가리 없는 개천’이 ‘면면히’ 자신의 전 생애를
매가리 없이 흐르는 시도 있다. 한때는 만국기가 펄럭이고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누어 공부할 만큼 북적했던 공간을 흐르고 있는 무심천에 걸맞는 말투로 무심하게 쓴 시. ‘나를 흘러 지나간 것들이’ 다시 ‘복작거리는 문방구점’과 ‘방과 후 교실’을 지나 금강으로 바다로 가는 것에는 뭔가 꿈틀거리는, ‘배처럼’ 띄어놓은 보이지 않은 수사가 숨어 있다.
나는 주성국민학교 주성중학교를 나왔는데 주성은 청주의 옛 이름이다 청주가 옛날에는 배처럼 생긴 성이었다 청주시내 한가운데로 무심천이 흐르는데 참 매가리 없는 개천이다 면면히 까치내로 흘러서 금강까지 간다 거기서 세상의 큰물들과 섞이고 나면
나는 충북고등학교 나왔는데 교가를 배울 때 우암산과 무심천이 나오지 않는 것이 신기하고 좋았다 ‘태백의 정기 받은 대한의 아들’ 좀 컸다고 어른스러워진 것 같았다
주성국민학교 옆에는 청주기계공고가 있었는데 태극기를 움켜잡은 손 조국근대화의 기수 마크가 교련복 왼쪽 팔에 사단마크처럼 달려 있었다 뻥이겠지만 기계공고가 석 달만 전기를 안 쓰면 충북고등학교 같은 것 하나를 지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금방 외웠다 지금도 외우고 있다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일본군가를 잊지 않으신 것처럼 몸과 마음을 바쳐 박정희 때 전두환 때가 벌써 이렇게 지났다 육영수 여사가 죽었을 때 문세광 규탄대회를 하고 추모 글짓기를 하고 그랬는데 그때 문예담당 선생님 별명이 도루무깡이었는데
무심천 가를 면면히 흐르시다 정년퇴직을 하시고 모르겠다 담임선생님도 아니었고 나는 문예부도 아니었으니까 그때 새우깡이 아직도 새우깡이니까
라시찬 주연의 전우 주제가 김희갑 황정순 주연의 팔도강산 주제가 김희갑이 부르던 타향살이 몇 해던가 영구가 땍시야 땍시야 부르던 소리가 귀에 삼삼한데 팔육 팔팔만 해도 릴레함메르만 해도
이렇게 흘러간 것들이 지금도 흘러간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에 모여서 한 번씩 열광하고 또 흘러간다 나를 흘러 지나간 것들이 이제는 주성초등학교 손바닥만한 운동장으로 학교 앞에 복작거리는 문방구점으로 독일 월드컵을 지나 방과 후 교실을 지나 금강으로 바다로
- 박순원< <무심천>
시인 특유의 수사는 그가 한때 몸담았던 고시텔에도 녹아있다. 쪽방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이 시대 루저들의 애환이라 치부하기 앞서 어두운 영화 필름처럼 이어지는 삶들이 꼬여있다. 풀다가 지쳐버린 화자가 가슴으로 기록한 다큐성 눈물이 고여 있는 듯하다. 그것이 시에 담고자 했던 매가리 없는 기교라도 되는 양 말을 놀리고 있다.
나는 체구가 작아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 방은 손바닥만한 창이 있어서 다른 방보다 비싸다 창을 열었다 닫았다 눈을 감았다 떴다 하다 보면 하루가 간다 엎드려서 고개만 들면 동네 지붕들이 내려다보인다 비가 오는 날에는 도둑고양이도 없다
끼릭끼릭 갈갈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공용 컴퓨터가 한 대 있는데 나는 지뢰찾기를 자주 했다 지금은 모니터도 나가고 마우스를 누가 가져갔다
LG 다니다 그만 둔 친구는 이혼하고 퇴직금을 녹여먹으며 뒹굴거린다 컴퓨터로 포커를 치는데 게임머니가 수백억이나 되었다 십만 원씩 받고 몇 번 팔아먹었다고 했다 세 살 난 딸아이는 형 호적에 올려놓고 당분간 라면에 밥을 말아먹으며 궁리중이다
체교과를 나온 친구는 중소기업 다니다 짤리고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몸도 좋고 예의도 바르고 시원시원하고 술도 잘 먹었는데 술을 너무 먹다가 마누라에게 소환되어 떠났다 떠나던 날 한잔 더 했다
누가 화장실에서 물을 내리면 건물 전체가 부르르 떤다 이불을 두 겹으로 감고 침대 위에서 함께 몸을 떨고 있으면 마음이 한결 누그러진다
계단 옆에 조그마한 샤시 문이 하나 있다 창고인 줄 알았는데 고개도 다리도 갸우뚱한 중늙은이가 손목에 노란 수건을 감고 런닝 팬티차림으로 벽 속으로 천천히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출렁출렁 사라졌다
우산을 잃어버렸다 일하는 이줌마가 ‘초록색 우산 개인 물건이니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세요’라고 써 붙였다 두 달째 붙어 있다 벽 속으로 들어간 사람은 이웃집 지붕을 밟고 멀리멀리 가버렸는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박순원, <용문고시텔>
이 오래된 건물은 귀신 천지다
옆방 문이 세게 닫히면
내 방문이 찰칵 열린다
지하에는 노래방 귀신이
새벽 두 시까지 쿵짝거린다
그래도 인간도 귀신도 안중에도 없는
폭주족 귀신보다는 낫다
옥상에는 고양이 귀신 옆방에는
코고는 귀신이 산다
나는 술 먹는 귀신이다 열쇠
잃어버리는 귀신이다 앞방에 이혼한
에로비디오 귀신이 유일한 술친구다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풍을 치다가
곧장 노래방 귀신이 된다
고개가 외로 꺾이고 다리도 저는 귀신은
뭐해 먹고 사는 귀신인지 모르겠다
구두도 열심히 닦고 이를 닦는 것도
몇 번 보았는데 내가 짐짓
안녕하세요 똑 떨어지는
인간의 말로 인사를 하면 흘깃
귀신의 눈길로 받아준다
제대로 된 귀신이다
이 건물은 많이 낡아서
가벼운 귀신들이 기대고 있기 좋다
- 박순원, <용문고시텔 3>
이러한 장소는 개발찬성위원회와 개발반대위원회처럼 곳곳에 공존하고 있지 않은가. 다 같은 얼굴이면서도 금방이라도 속물성 정치의식을 앞세우고 피가 터지도록 싸울 것처럼. 이건희 회장이 먹여 살려준다는데 뭘 걱정하느냐고, 삼성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전두환 때가 좋았지, 경제 하나는 살렸잖느냐고 총알택시를 모는 기사처럼 저 처절하고 비겁한 묵인을 꺼내들어 거침없이 비유하는 것이라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더 이상 죽은 비유에 기대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