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입의 말들
전도서 10:12-20
12 지혜자의 입의 말들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들은 자기를 삼키나니
13 그의 입의 말들의 시작은 우매요 그의 입의 결말들은 심히 미친 것이니라
14 우매한 자는 말을 많이 하거니와 사람은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나중에 일어날 일을 누가 그에게 알리리요
15 우매한 자들의 수고는 자신을 피곤하게 할 뿐이라 그들은 성읍에 들어갈 줄도 알지 못함이니라
16 왕은 어리고 대신들은 아침부터 잔치하는 나라여 네게 화가 있도다
17 왕은 귀족들의 아들이요 대신들은 취하지 아니하고 기력을 보하려고 정한 때에 먹는 나라여 네게 복이 있도다
18 게으른즉 서까래가 내려앉고 손을 놓은즉 집이 새느니라
19 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요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이나 돈은 범사에 이용되느니라
20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며 침실에서라도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 공중의 새가 그 소리를 전하고 날짐승이 그 일을 전파할 것임이니라
전 10:16-20 / 오, 불쌍한 나라여, 왕은 철부지 같고 관리들은 아침부터 퍼마시고 있구나! 17) 오, 행복한 나라여, 왕은 고결한 사람이요, 관리들은 열심히 일한 다음에야 비로소 먹고 마시되 앞으로 일을 더 많이 할 힘을 얻기 위해서만 마시는구나! 18) 게으르면 대들보가 썩어서 내려 앉고 손을 놀리기 싫어하면 지붕이 샌다. 19) 잔치를 벌여 인생을 즐기고 술을 마셔 기쁨을 누린다지만 돈이 있어야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 20) 혼잣말로도 왕을 저주하지 말아라. 이불속에서도 부자를 저주하지 말아라.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기 때문이다.
본문은 지혜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 그리고 여러 가지 지혜에 대해서 짧게 설명합니다
지혜자와 우매자의 입(12-15) 본 단락은 지혜자와 우매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서로 대조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현명한 사람의 말은 유익한 결과를 낳지만 어리석은 사람의 말은 자기의 신세까지 망치는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특별히 13절부터는 우매자가 어떻게 비관적인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지 이야기합니다. 우매자는 어리석은 말로 시작해서 끝내 정신까지 어리석어지며(13), 많은 말을 하면서도 앞날에 대한 지식도 없고(14), 온종일 수고하지만 자기 동네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비극을 맞이합니다(15). 이 말씀은 성도에게 자신의 말과 행동을 돌아보게 하며 지혜로운 태도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좋은 지도자(16-17) 여기서 두 종류의 왕이 비교됩니다. 어리다는 것은 어리석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어린이는 나이가 적기에 어리석은 행동을 해도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그러나 왕이 어리석다면 문제가 다릅니다. 어리석은 왕은 나라에 화를 입히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왕의 특징을 잔치에 빠져 방탕하고 술에 탐닉하는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이런 모습들은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악한 왕의 표본입니다. 반대로 좋은 왕은 취하지 않고 정해진 때에만 음식을 먹는 자제력 있는 모습을 보입니다(17). 그리고 지혜자는 그런 왕을 귀족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귀족의 아들이라는 말은 혈통보다 성숙하고 고귀한 태도를 지닌 왕을 말합니다.
여러 가지 지혜들(18-20)_지혜자는 본 단락에서 큰 연관성이 없는 몇 가지 지혜들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먼저 게으름과 태만에 빠진 사람들이 맞이하게 되는 비극에 대해서 말합니다. 게으른 사람은 개인의 삶뿐 아니라 결국 자신이 있는 공동체마저 무너뜨리게 됩니다(18). 19절에서는 잔치와 포도주보다 돈이 더 좋은 것처럼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무엇보다 돈이 더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 잔치와 포도주, 돈이 다 필요하다는 뜻입니다(19). 하지만 앞에서도 보았듯이 우리에게 기쁨과 편의를 제공하는 일에 있어서 절제와 지혜를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끝으로 말조심에 대해 당부합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라는 속담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왕과 부유한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말들 역시 쉽게 전파되기 때문입니다(20).
적용: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 지혜롭게 되기 위해 고쳐야 할 언어 습관은 무엇이 있을까요?
무슨 일에 있어서든지 시작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루를 시작하고, 한해를 시작하는 일에 신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밝은 출발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장래에 대한 꿈과 원대한 이상이 필요합니다. 꿈이 없이, 미래에 대한 확실한 비젼이 없이 아무렇게나 일을 시작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그 일을 추진함에 있어서 조그마한 어려움만 생겨도 불평하게 되고 중단하고 말 것입니다. 꿈이 없는 민족, 비젼을 상실한 인격에게는 현재도 없을 뿐만 아니라 미래도 없을 것입니다.
< 설 교 >
잘 되는 나라
전도서 10:16-20 / 염두철 목사
누구나 하는 일이 잘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원하는 대로 되지 않습니다. 잘 되서 성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안 되서 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망한 사람에게 망하게 된 이유를 물어보면 뭐라고 말을 할까요? 자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고 대부분 다른 사람을 탓하고, 제도를 탓하고, 환경을 탓하고, 세상 탓을 합니다.
탓을 할 때 도마 위에 오르게 되는 대상은 요즘 슈퍼 갑이라고 불리는 가진 자, 기득권자들입니다. 가난한 사람과 부자, 또는 기득권층과 소외계층 사이에서는 언제든지 가진 자들이 무조건 욕을 먹습니다.
권력을 가진 것과 부자가 된 것을 마치 큰 죄를 지은 것처럼 취급을 하는 것은 부당한 것입니다. 부와 권력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고, 그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서 그만큼 노력했습니다.
신명기 8장 18절을 보면 하나님이 ‘재물 얻을 능력’(신 8:18)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13장 1절을 보면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권력을 가졌다고 해서, 또는 재물이 많은 부자라고 해서 그것만으로 죄가 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그렇게 가진 권력과 재물을 가지고,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엉뚱한 짓을 하는 것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기업이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하며 삽니다. 기업이 잘되어야 만 국민이 살고 나라도 잘되는 것입니다. 서민, 노동자, 민중을 위하는 것도 좋지만 일방적으로 가진 자들에게 대한 혐오와 적대감을 가지고 투쟁하는 사람들의 사고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전도자는 잘되는 나라를 설명하기 위해서 잘되는 나라와 되지 않는 나라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어떤 나라가 되는 나라이고 어떤 나라가 되지 않는 나라일까요?
16-17 / 왕은 어리고 대신들은 아침부터 잔치하는 나라여 네게 화가 있도다 왕은 귀족들의 아들이요 대신들은 취하지 아니하고 기력을 보하려고 정한 때에 먹는 나라여 네게 복이 있도다
왕이 어려서 아직 바른 분별력이 없는 상태에 있을 경우, 바른 신하라면 그 왕을 최대한 보필해서 국사를 이끌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왕도 어린데, 신하들이 아침부터 잔치를 한다면 그 나라는 반드시 화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왕을 비롯해서 권력을 가진 자들이 아침부터 잔치한다는 것은 그만큼 썩었다는 것입니다. 왕과 신하가 나라를 돌보아야 하는 본분을 망각하고, 엉뚱한 데 마음을 두고 그릇된 행동을 하는 그런 나라는 더 이상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왕이 고귀한 품성을 지니고 있고, 신하들도 취하려고 먹는 것이 아니라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제대로 살려고 먹는다면, 그 나라가 비록 작거나 연약하다고 할지라도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잘되는 나라와 되지 않는 나라의 차이는 무엇보다도 지도자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오늘날 아시아 최고의 국가라고 할 수 있는 싱가포르는 서울시보다 좁은 땅과 복잡한 인구 구성원에 가난과 범죄와 부패의 온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리콴유 전 총리는 이러한 싱가포르를 평균 국민소득 3만 불 이상의 부유한 나라, 아시아에서 가장 깨끗하고 질서가 잘 잡힌 정보․교통의 허브 도시로 변화시켰습니다.
리콴유는 정치인의 부패를 조장하는 선거비용을 줄였고, 추상같은 감사 시스템으로 총리 최측근의 부패들로부터 꾸준히 엄벌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엄격한 기준으로 탁월한 인재들을 공직자로 뽑아서 그들이 대기업이나 다른 전문 분야의 종사자들 이상의 돈을 정당한 월급으로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적절한 대우로 정치가와 고급 공무원의 높은 정직성을 장려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우수 건축 상을 여러 번 수상한 적이 있는 유명 건축 회사의 한 관계자는, 싱가포르에서는 그냥 법대로 하면 되기 때문에 너무 편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어떤 지도자가 나라를 다스리느냐에 따라서 백성 전체가 우매함의 길로 갈 수도 있고, 지혜의 길로 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만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부모가, 또 영적으로 앞서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어떤 삶과 어떤 신앙을 갖느냐에 따라서 그 가정이 지혜의 공동체가 될 수도 있고, 우매함의 공동체도 될 수 있습니다. 일터도 마찬가지고, 어느 조직이든 모두 동일합니다.
나 한 사람의 삶의 태도가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바르게 인식해야 합니다. 자기의 위치와 본분에 맞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바라시는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자기 편함이나 자기 즐거움 때문에 우매함을 선택하지 아니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답게 살아가는 것이 지혜자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18 / 게으른즉 서까래가 내려앉고 손을 놓은즉 집이 새느니라
옛날 집은 보통 나무나 짚으로 지었기 때문에 계속 손보지 않으면 금방 퇴락했습니다. 일하기를 싫어하고 놀기를 좋아하는 게으른 백성의 집은 처음에는 여기 저기 구멍이 뚫리다가 나중에는 서까래까지 내려앉습니다.
국민들이 일하지 않고 월급만 많이 받으려 하는 나라는 잘되거나 장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살만 하면 게을러집니다. 게으름은 서서히 살림을 거덜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에 성령 충만했었어도 게으르다보면 틈이 생기고 신앙의 집이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빈틈이 없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빈틈이 생기면 마귀가 그 틈을 타고 들어와 신앙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가정이나 나라나 교회 모두 부지런히 살펴서 틈이 없어야 하고 틈이 생기면 부지런히 그 틈을 메워야 하는 것입니다.
19 / 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요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이나 돈은 범사에 이용되느니라
사람이 잘 써서 좋은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잔치와 포도주와 돈입니다. 이것들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지나치면 모두 해가 되는 것입니다.
잔치는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을 때 기쁨을 함께 나누는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너무 지나치게 잔치를 열면 재정이 바닥나고 마는 것입니다. 올림픽을 개최하고서 빚더미에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2007년 동계 올림픽 장소가 소치로 확정됐을 때 러시아는 전체 예산을 120억 달러로 예상했으나, 2014년 막상 올림픽이 열렸을 때 4배가 넘는 510억 달러를 썼습니다. 평창 동계 올림픽 예산도 애초 유치 신청 당시 8조 8000억 원으로 책정됐으나, 개최 3년을 앞둔 (2015년 2월) 현재 13조 원으로 늘어났다고 걱정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외국에서는 새 시설물을 가급적 짓지 말고 기존 시설물을 이용하자, 짓더라도 가급적 작게 짓자는 추세이지만 평창에서는 정반대로 가급적 새로 짓자, 최대한 크게 짓자고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잔치는 좋은 것이지만 지나치면 안 됩니다. 가정의 잔치도 그렇고, 나라의 잔치도 그렇습니다. 살림살이 규모에 맞게 해야 하고 분수에 지나치면 빚더미에 앉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포도주는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등 여러 모로 유익합니다. 의학의 시조 히포크라테스는 “포도주는 음료로서 가장 가치가 있고, 약으로서 가장 맛이 있으며, 음식 중에서 가장 즐겁게 해 주는 것이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포도주는 유익이 많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너무 많이 마시면 취해서 문제를 일으키고 건강에 해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돈은 범사에 이용이 되기 때문에 많으면 좋습니다. 한 때 우리나라는 돈이 없어서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를 보내기도 했고, 베트남 전쟁에 참여하기도 했고, 사막 땅 중동 건설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돈 없는 설음을 겪어 보았기 때문에 돈의 가치를 압니다. 돈이 많으면 좋습니다. 마음껏 누리며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돈만큼 위험한 것도 없습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을 보면 예수님은 재물의 위험성에 대하여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두 주인을 말씀하실 때 재물이라는 단어를 하나의 신으로 인격화시키고 영적인 속성을 부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돈을 지나치게 중요시하는 것은 다른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와 같은 것입니다(골 3:5).
돈이 있으면 범사에 유익하고 편리하지만 우리가 돈에 마음을 빼앗긴다면 그것은 단순히 돈이 아니라 우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돈을 목적으로 하는 인생이 아니라 잘 사용해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현명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0 /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며 침실에서라도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 공중의 새가 그 소리를 전하고 날짐승이 그 일을 전파할 것임이니라
나라가 잘되려면 훌륭한 임금이 나와야 하고, 훌륭한 신하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축복하는 백성들이 있어야 합니다. 잠언 11장 11절을 보면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을 인하여 무너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왕을 저주하면 안 됩니다. 또 부자를 저주하면 안 됩니다. 백성들이 왕을 저주하고 서민들이 부자들을 저주하는 나라와 사회는 절대로 잘 될 수 없습니다. 모두가 마음을 모으고 뜻을 합하여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나라의 대통령과 지도자들을 함부로 비방하고 조롱하며 국민들을 현혹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치 그것이 유행인 것처럼 따라 하고, 그런 사람들은 연예인 같은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매우 잘못된 현상입니다.
국민 행복지수를 높이려면 필히 온 국민이 깊은 연대성을 가져야 합니다. 국론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왕도 백성도, 부자도 서민들도 서로 격려하고 축복할지언정 저주하는 일이 없어야 미래가 있는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저주는 불행을 초래합니다. 이에 대해 전도자는 “공중의 새가 그 소리를 전하고 날짐승이 그 일을 전파할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정탐꾼들의 활발한 활동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당시에는 왕이나 권세자들을 위한 정탐꾼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정탐꾼으로부터 은밀한 정보를 들었을 때에 ‘어떤 작은 새가 와서 말하기를’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한 마디로 세상에는 비밀이 없다는 것입니다.
왕을 저주하며 역적을 도모하면 반드시 비밀이 새어 나가서 왕의 진노를 사게 되어 목숨까지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왕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저주를 하면 안 됩니다. 살다 보면 종종 죽도록 화가 나고 죽이도록 미운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로 인해 욕이 나오고 격한 저주의 말을 내뱉게 됩니다. 그러면 성경은 저주하는 일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을까요?
시편 109편 17-18절을 보면 “그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 아니하더니 복이 그를 멀리 떠났으며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더니 저주가 물 같이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의 뼈속으로 들어갔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저주하는 자는 그 보응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저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주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원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특히 지도자를 저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죄인들을 용서하고 축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대적하고 모욕하는 자까지도 용서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서 12장 14절에서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 박해하는 자라도 저주하지 않고 축복할 수 있는 사랑과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3장 9절에서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부름을 받은 목적은 복을 비는데 있습니다.
축복하기를 즐거워하는 삶으로 복을 거두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리하고 마치겠습니다.
오늘은 잘되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를 비교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잘되는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지도자를 잘 보필하는 신하들이 있는 나라, 국민들이 부지런한 나라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지나치지 않고 규모 있게 살림을 하는 나라, 백성들이 지도자를 저주하지 않고 격려하고 축복하는 나라입니다.
이것은 우리 가정도,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잘되는 가정, 잘되는 교회, 잘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기도하며 나 한 사람이라도 최선을 다한다는 자세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됩시다.
2가지 잘해야 할 것
전도서 10:19-20 / 이한규목사
1. 돈을 잘 쓰라
전도서 기자는 고백했다. “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요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이나 돈은 범사에 이용되느니라(19절).” 그는 잔치와 잔치에 쓰이는 포도주와 잔치를 여는데 필요한 돈을 나쁘게 묘사하지 않았다. 즉 잔치를 열고 포도주를 마시고 돈을 필요한 곳에 쓰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일도 안하고 잔치만 벌이고 포도주를 마시는 데 돈을 쓰는 것은 잘못이다.
돈은 잘 쓰면 유용한 것이 된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나누는 것도 잘 하라. 나눔이 없는 축복은 의미가 없다. 나눔은 복도 예비하지만 좋은 성품 형성에도 좋다. 자세히 보면 원망이 많은 사람들은 대개 받기를 좋아하고 감사가 많은 사람들은 대개 주기를 좋아한다. 결국 주는 삶은 감사하는 성품을 낳기에 예수님은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되다고 말씀했다.
어려운 이웃과 복음과 선교 사역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위해 쥔 손을 펴라. 그러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영혼이 되면서 마음에 평안이 넘치게 되고 또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기쁘게 들어주시고 가장 복된 위치로 올려주실 것이다. 남을 잘 도와주면 언젠가 리더와 인물이 되는 복을 얻는다.
1차 세계대전 후 승리한 연합군은 독일에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물렸다. 그러자 독일 경제는 파산했고 독일인의 분노는 커졌다. 그 분노에 편승해 히틀러가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반면에 2차 대전 후 미국은 항복한 독일과 일본의 경제부흥을 도왔다. 점령한 곳을 압제했던 독일 및 일본과 비교해서 미국은 그 그릇이 달랐다. 그런 정신이 타락해서 곧 망할 것 같은 미국을 지키는 힘이다. 주어진 힘과 돈을 잘 쓰면 자신의 인생과 행복도 지켜진다.
2. 말을 잘 하라
전도서 기자는 계속해서 말했다.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며 침실에서라도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 공중의 새가 그 소리를 전하고 날짐승이 그 일을 전파할 것임이니라(20절).” 어떻게 심중에 있는 저주와 침상에서 말한 저주가 전파되어 알려지겠는가? 결국 그 말은 그만큼 말을 조심하라는 것을 강조한 표현이다. 특별히 권위를 무시하는 교만한 말로 왕과 부자를 무조건 정죄하지 말라. 마음의 부자는 진짜 부자를 무조건 정죄하지 않는다.
어느 날 한 지하개척교회에서 재정 집사들이 말했다. “목사님이 지하에서 고생하며 사니까 사택을 마련하자!” 목사는 교회를 마련하기 전에는 주택을 마련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집사들이 집을 사서 억지로 목회자를 이사시켰다. 그 다음부터 이런 말이 돌았다. “어떻게 목사가 교회도 짓기 전에 주택부터 사느냐?” 알고 보니까 한 무임 여전도사가 뒤에서 험담하며 목회자에게 바가지를 씌운 것이었다. 그 전도사는 시험에 든 일부 교인들을 데리고 개척교회 한다고 나갔다가 결국 그들끼리 싸워서 뿔뿔이 흩어졌다.
왜 그런 일이 생기는가? 누군가 “목사가 자기만 챙긴다.”고 말하니까 돈에 상처받은 경험이 많은 현대인들이 그 말을 귀담아 들은 것이다. 그런 말을 계속 들으면 아닌 줄 알면서도 점차 그렇다고 믿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고 했다. 그런데 뱀이 “아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지고 지혜롭게 된다.”라고 하니까 뻔히 아닌 줄 알면서도 미혹된 것이다.
권위와 질서에 대한 의식이 약한 상태에서 무조건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을 정의로 오해하지 말라. 무조건 강자의 편이나 약자의 편이 되지 말고 오직 바른 자 편이 되라. 그래서 분별력이 필요하다. 마귀는 영혼을 단번에 탁 잡아채기보다는 공교한 말로 미혹해서 살살 미끄러지게 하고 마지막 고지에서는 확 미끄러뜨린다. 그러므로 입술을 잘못 놀리는 사람을 주의하고 더 나아가 자신도 입술을 주의해 사용하라.
지혜로운 자들과 어울려 교제하라
전도서 10:12~20 / 안창국 목사
지혜로운가, 어리석은가에 따라 매우 많은 것들이 달라집니다. 지혜로운 자들은 말을 해도, 때에 맞게, 상황에 알맞은 말을, 필요에 따라 말합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말을 많이 하지만, 쓸모없는 말을 많이 하고, 때로는 자기가 한 말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 트집을 잡히기도 합니다. 보통 TMT(Too much talker)나 TMI(Too much information)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불필요하게 말을 많이 하거나, 필요 이상의 정보를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표현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유용한 말을, 적당한 선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많은 말이나 정보를 주는 것은 오히려 매력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잠언 25:11에서는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말 필요한 말만 상황에 맞게 하는 것이 지혜입니다(12절~14절).
어리석은 자는 열심을 내어도 그에 상응하는 결실을 내지 못합니다(15절). 15절에 “그들은 성읍에 들어갈 줄도 알지 못함”이라고 표현한 것은 성읍으로 들어가는 길처럼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것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뭔가 잘 아는 것처럼 말도 많이 하고, 남의 일에 사사건건 참견을 하지만, 뭔가 제대로 해내는 것이 하나도 없기에 정작 열매가 없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런 자들은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오히려 잠잠하게 지혜로운 자를 잘 따르는 것이 낫습니다.
16절부터 20절까지의 말씀은 하나의 단락으로 이해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왕(지도자)는 어리고(실제 나이가 어릴 수도 있겠지만, 아직 지혜가 없이 미성숙한 태도를 가진 왕에 대한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신하들도 하루 종일 먹고 즐기면서 탐닉하는 것만 좋아한다면 그러한 나라(공동체)는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왕(지도자)은 귀족들의 아들(아마도 성숙한 성품과 태도를 갖춘 사람을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이고, 신하들도 때에 알맞게 규모 있는 태도로 살아가는 나라(공동체)는 복이 있을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게으르게 즐기기만 탐한다면 그 공동체가 무너지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18절).
20절의 말씀은 20절의 말씀만 따로 떼어 보면 이해하기가 어려운 말씀 중 하나입니다. 잔치나 포도주, 돈을 탐하고 즐기는 것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6절부터 이어지는 말씀으로 이해하면서 읽으면, 미성숙한 왕(지도자)과 신하들이 취하고 있는 태도에 대한 언급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잔치를 통해 희락을 추구하고,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으로 여기고, 또 돈이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여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18절에 나오는 게으른 자들이 갖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어리석은 왕(지도자)이나 권력자들에 대해 욕하거나 저주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20절). 아마 이 말씀은 어리석은 지도자들이나 권력자들은 자기의 잘못을 제대로 깨닫지도 못하고, 그러한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화를 당할 수 있으니 그러한 어리석은 자들에게는 비난조차 할 필요없다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참된 조언이나 충언도 그것을 들을 수 있는 지혜로운 자에게나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어리석은 자들도 있고, 지혜로운 자들도 있습니다. 어떤 자들과 어울리느냐에 따라 내 삶이 풍요롭고 복된 삶이 될 수도 있고, 피곤하기만 한 헛된 삶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따라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들과 어울려 좋은 교제를 나누며 살아가는 것도 지혜로운 삶입니다. 오늘도 지혜와 어울려 하루를 살아가는 복된 삶이 되길 기도합니다.
현실의 헛된 것을 찾는 우매자가 아닌 만물위의 생명을 얻고 누리는 지혜자가 되게 하소서
전도서 10:12-20 / 복음생명선교회
시작 기도
주님, 여러 가지 일로 분주한 연말이지만 오늘도 주의 보좌를 향해 나아갑니다.
게으른 삶에서 벗어나 주의 은혜를 사모하며 살아가는 자 되게 하옵소서.
육신은 날이 갈수록 문제가 생기고 피로감도 빠르게 회복되지 않음을 느낍니다.
그러나 육신이 연약해 질수록 온전히 변화시킬 주의 날을 향한 소망이 견고해지게 하옵소서.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오늘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오늘도 함께 해 주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누리는 자 되기를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해설
솔로몬은 지혜자의 말은 은혜롭지만 우매자의 말은 자기를 삼키는 말이라고 제시한다.
그래서 우매자의 말의 시작은 우매함이며 결말은 심히 미친 것에 불과함을 선언한다.
이는 우매자의 말이 어리석음으로 시작하여 결말에는 정신적, 윤리적으로 악한 일이 되며 다른 사람을 해롭게 만드는 것이 됨을 의미한다.
우매한 자는 말을 많이 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장래의 일을 아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람은 장래 일을 알지 못하며 그것을 알려줄 사람도 없음을 이야기한다.
결국 우매자는 그들의 수고조차 자신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에 불과하며 위기의 순간에 성읍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간단한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임은 선언한다.
이어서 솔로몬은 왕이 어리고 사리분별이 불가하고 그의 대신들은 방탕하여 아침부터 잔치하는 나라는 화가 임할 나라임을 제시한다.
반대로 왕이 귀족의 아들과 같이 정치적 배경이 든든하고 재능이 출중하며 대신들은 방탕하지 않고 절제하며 본분을 다하는 나라는 복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솔로몬은 게으른 삶의 결과는 서까래(팔레스틴에서는 집의 지붕을 의미)가 내려앉고 태만한 상태의 손으로 집을 보수하지 않은 결과로 집에 빗물이 새게 됨을 이야기한다.
이는 게으른 지도자들의 모습으로 인해 국가의 안위가 위태롭게 되고 멸망을 자초하는 일이 나타나게 됨을 경고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더 나아가 지도자들이 잔치로 쾌락을 누리고 포도주로 여흥을 즐기는 것은 낭비로 인해 패망하는 길이지만 여흥을 자제하고 돈을 절약하는 것은 많은 일에 도움을 주는 것임을 제시한다.
이는 세상의 그릇된 가치관으로 허랑방탕한 삶과 물질 만능주의의 대한 경계의 의미를 전달하고 있으며 땅의 것으로는 헛된 삶을 살게 됨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솔로몬은 속으로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고 침실에서라도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고 한다.
이는 그들을 세우신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할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본문에서는 세상의 권세자들의 힘이 강하기에 그 권세에 도전할 경우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임을 의미한다.
그래서 공중의 새가 그 말을 전하고 날짐승이 전파할 것을 제시하면서 지도자들에 대한 도전은 심중에라도 조심해야 함을 권면한다.
나의 묵상
솔로몬은 지혜자의 말은 은혜롭지만 우매자의 말은 자기를 삼키는 말이요 그 결말은 미친 것을 행하는 것임을 선언한다.
이런 솔로몬의 권면은 오늘날의 현실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수많은 매체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은 쾌락을 추구하고 자기만족을 위해 살아가도록 만들지만 그것의 결말은 진정한 만족을 주지 못하고 끊임없이 다른 것을 추구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미치게 하며 수고하게 하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이 허무함에 굴복하게 된다.
예수님의 지적처럼 사람이 우물의 물을 끊임없이 길러 먹어야 하는 것이 인생의 모습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해 아래의 인생이 아닌 해 위의 영생의 삶을 경험하는 것은 다함이 없고 온전한 만족을 누리는 것임을 가르쳐 주신다.
(요 4:13-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또한 오늘날에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기에 사람들은 많은 것을 듣고 많은 것을 본다.
그러나 그 또한 사람이 지혜로운 삶이 아닌 혼란과 무지의 모습을 경험케 만든다.
작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집값의 고공행진을 바라보며 당장 집을 사지 않으면 집을 얻지못할 것처럼 방송하고 이야기했지만 현재의 현실은 집을 산 사람들의 비명으로 이어지고 있다.
솔로몬의 지적처럼 사람은 장래일을 알지 못하는데 장래의 일에 대해 예측하고 이야기함으로써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지만 그 마지막은 허무함과 무지함을 드러내는 것임을 보여준 것이다.
솔로몬은 인생의 참 지혜는 땅의 것을 누리는 것에 있지 않음을 제시한다.
땅의 것에 지혜가 있지 않기에 자연스럽게 해 아래가 아닌 해 위, 즉 만물 위의 세계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이 허락하신 복을 누림이 참 지혜임을 제시했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도 땅의 것으로 자신을 판단하지 말 것을 제시하며 모든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온전히 이루시고 심판하실 때까지 겸손히 주어진 일에 성실할 것을 제시한다.
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전 4:1~5)
세상의 지혜는 당장 눈앞에 주어지는 것으로 판단하여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을 말하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마지막 날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평가를 기대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땅에서의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고 만물 위의 상황에 영향을 받고 사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특징이 되며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는 지혜의 삶이됨을 제시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땅에서의 삶이 허무로 귀결된다고 해서 방탕한 삶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솔로몬은 우매자의 수고가 헛된 것이며 무지한 것임을 제시했지만 실제 삶에서 방탕한 삶이 아닌 성실한 삶과 절제하는 삶에 대해 강조한다.
그래서 게으른 삶을 거부하고 권위에 대한 무분별한 도전이 아닌 부지런한 삶과 신중한 삶의 태도를 견지할 것을 제시했던 것이다.(18, 20절)
바울도 성도가 죽음 이후의 부활의 삶을 소망하며 살아갈 것을 제시하면서도 땅에서 주어진 일에 성실한 태도를 가질 것과 그 수고가 헛되지 않는 것임을 선포했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15:54~58)
주의 말씀은 땅의 것에 소망을 두지 않는 것이 지혜이지만 또한 주어진 삶에서 성실함을 가지고 하나님의 때를 준비하는 것도 지혜의 모습임을 제시한다.
그래서 온전한 성취와 회복을 주시는 재림을 소망하며 현실의 삶에서 복음을 통해 생명을 누리는 것이 성도의 지혜요 지혜로운 삶의 결과임을 가르쳐 주고 계신다.
오늘도 그 지혜의 삶으로 나아가는 자 되기를 소망하며 주의 지체들도 이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말씀은 참 지혜가 땅의 것을 얻는 것에 있지 않고 하늘의 생명을 얻고 누리는 것에 있음을 가르쳐 주십니다.
온전한 성취가 있는 만물위의 보좌를 향해 날마다 나아가는 자 되게 하시고 그 안에서 누리는 생명의 은혜로 주어진 믿음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육신의 연약함은 늘 현실의 삶에서 만족을 누리려고 하는 쪽으로 나아가게 만듭니다.
그때마다 깨우치시고 일깨워 주셔서 다시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자 되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오늘도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감당하게 하시고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소망으로 풍성한 삶을 살아가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연약한 지체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어려움 가운데 있는 자들을 긍휼히 여겨 주셔서 어려움을 이기고 주의 평안을 누리게 하시며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주의 손길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한 해를 잘 마무리하게 하시고 새 해에 더욱 주와 가까워지는 삶이 되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함께 하시고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리스도인의 언어생활
전도서 10:12-20 / 김도완목사
오늘이 벌써 전도서의 마지막입니다. 물론 토요일과 주일 큐티는 개인적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내일 본문인 11장 1절이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이렇게 남을 돕는 것은 하나님이 갚아주신다는 약속을 주시고 주일 말씀인 12장 1절에서 “너는 청년의 때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라는 유명한 말씀으로 전도서가 마무리됩니다. 전도서는 헛되고 헛된 인생이다. 그러니 다 허무하다. 이런게 주제가 아니라 이 헛되고 헛된 세상이기에 참된 지혜를 소유해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익숙하기만 한 모든 삶의 방식을 다시 한번 뒤돌아 보게 합니다. 우리가 집착하는 것들에 대해 진짜 그래? 라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는 의미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자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고 어떤 우매한 사람입니까? 한 마디로 정의하긴 어려울 겁니다. 그러나 삶의 기로에서 선택할 때마다 바른 선택을 하게 되면 그 지혜로운 것들이 쌓이다 보면 나의 삶에 방향이 지혜로운 방향으로 잡히게 되는 것이고 어리석은 선택을 지속하게 되면 우매한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선택은 영원한 지혜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축복이자 의무같은 거라고 할수 있습니다. 아무리 믿지 않는 사람이 이 잠언 그리고 전도서를 읽고서 오늘 본문이 가르치는 것처럼 바른 말을 하고 절제를 하고 열정을 가진다고 해서 그가 최종적인 지혜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복은 받을 수 없을 겁니다. 그러므로 이 전도서는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지침서입니다. 마치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 라고 하는 그리스도의 인의 지침서와 같은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길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도 역시 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말에 대한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그 만큼 말은 중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의 지혜와 우매함은 반드시 그 사람의 언행을 통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 것처럼 지혜로운 사람은 그 언행을 통해 지혜가 드러나고, 우매한 사람은 그 언행을 통해 우매함이 드러납니다. 전도자는 본문에서 지혜로운 자의 언행과 우매한 자의 언행을 비교하면서, 그 결과가 얼마나 다른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12절 “지혜자의 입의 말들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들은 자기를 삼키나니” 이 말은 쉬운성경으로 풀어보면 이런 뜻이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해서 덕을 보고, 어리석은 사람은 제 입으로 한 말 때문에 망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통해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호감을 얻고 은혜로우나 격려를 통하고 북돋아 주기에 덕을 보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말 때문에 망신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때와 상황에 맞는 적절하고 유익한 말을 남기지만, 어리석은 사람의 말은 들으면 들을수록 기분이 나빠지기 때문입니다. 전도자는 계속해서 어리석은 자의 말이 가진 파괴력이 어떤 것인지를 지적하는데요. 13절입니다. “그의 입의 말들의 시작은 우매요 그의 입의 결말들은 심히 미친 것이니라” 어리석은 자의 말, 그 시작과 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말의 시작은 어리석음에 있는데, 그 끝에는 미친이라고 표현된 말은 ‘광기’라고 해석할수 있는데요. 그 말에 광기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 말은 그의 말이 점점 더 괴팍해지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매자는 그 속에 있는 어리석음을 드러내기 시작해서 점점 이치나 도덕에 맞지 않는 말을 지껄이다가 결국에는 자신을 파멸로 이끌게 되는 사악한 말들을 쏟아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또 한 가지 어리석은 자의 언어습관에서 자주 드러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말을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을 많이 하면 스스로 지혜롭게 여겨질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14절 “우매한 자는 말을 많이 하거니와 사람은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나중에 일어날 일을 누가 그에게 알리리요” 노자도덕경에 지자불언 언자부지 (知者不言 言者不知) '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저를 살펴보면 이 말은 참 정곡을 찌르는 말이 분명합니다. 진리는 아니지만 일리는 있는 말입니다. 특히 하반절의 내용을 고려하면, 어리석은 자가 말을 많이 한다는 그 내용은 ‘장래’에 대한 허황되고 과장된 이야기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과장된 말을 떠벌리기를 즐겨하는 특성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미래에 일어날 일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그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을 과장되게 떠벌리는 일이 곧 자신의 어리석음을 증명하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전도자는 그 어리석은 사람 곧 말을 많이 하고, 장래에 대한 헛된 말을 떠벌리는 그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독자들에게 고발합니다.
15절 “우매한 자들의 수고는 자신을 피곤하게 할 뿐이라 그들은 성읍에 들어갈 줄도 알지 못함이니라” 전도자는 그 어리석음을 강조하기 위해 당시의 속담을 빗대어 말합니다. ‘그들은 성읍에 들어갈 줄도 알지 못한다’는 속담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낫 놓고 ㄱ 자도 모른다입니다. 이 속담의 의미는 가장 쉽고 누구나 알고 있는 평범한 진리도 알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우매자는 많은 말을 하면서, 마치 자신이 미래의 일들까지 알고 있는 것처럼,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떠들어 대지만, 실상 그 사람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평범한 진리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또 전도자는 어리석은 통치자의 생활패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저주받을 나라와 복된 나라가 어떻게 구별되는지를 알려줍니다. 먼저, 전도자는 부패한 지도자들과 그들 때문에 저주를 받아야 할 나라의 모습을 지적합니다. 16절 “왕은 어리고 대신들은 아침부터 잔치하는 나라여 네게 화가 있도다” 전도자는 부패한 권력자들의 모습을 고발합니다. 왕이 어리다는 표현은 나이가 어리다는 뜻이 아니라 왕이 성숙하지 못하다는 의미입니다. 때문에 대신들은 아침부터 잔치에 빠져 있는 나라는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반면 통치자의 성실함으로 인해 복 받는 나라도 있습니다. 17절 “왕은 귀족들의 아들이요 대신들은 취하지 아니하고 기력을 보하려고 정한 때에 먹는 나라여 네게 복이 있도다” 왕의 신분에 대해 말하는데요. 출신이 고귀하다는 것은 그 생각과 행동, 품성이 지혜롭고 고귀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동시에 대신들도 앞 절에 나온 ‘아침부터 잔치에 빠져있는’ 모습이 아니라 절제할 줄 아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그런 나라는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결국 전도자가 지도자에게 요구하는 덕목은 특별한 내용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서의 절제와 근면입니다. 그래서 게으른 삶의 어리석음을 교훈합니다. 18절 “게으른즉 서까래가 내려앉고 손을 놓은즉 집이 새느니라” 게으름은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파멸을 맞이할 뿐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멸망에 이르게 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절제와 근면함을 지켜나가는 그런 나라가 복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마지막 부분에서 전도자는 다시 한 번 ‘언어습관’에 대해 교훈합니다. 20절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며 침실에서라도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 공중의 새가 그 소리를 전하고 날짐승이 그 일을 전파할 것임이니라 ” 마음으로도, 잠자리에서도 말조심하라는 의미입니다. 얼마나 뜨금한지요. 올해 대선때 윤석열이 어쩌고 이재명이 어쩌고 했더니 애들도 따라하더라구요. 그래서 당장 윤석열후보 이재명후보 윤석열대통령님 이렇게 호칭을 바꿔습니다. 그랬더니 애들도 따라하더라구요. 위정자들 속타고 속상하지만 욕할게 아니라 기도해야 할 대상임을 성경을 지적합니다. 우리의 불평과 저주가 하늘을 나는 새가 그 말을 옮기고, 날짐승이 그 소리를 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 소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다. 최종심판자이신 하나님이 듣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님들 지혜자는 자신을 늘 돌아보고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내면을 잘 가꾸는 사람입니다. 동시에 지혜자는 말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입니다.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 도리어 듣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말을 통해 ‘은혜를’ 쌓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말이 허황된 자기 자랑이 아니라 이웃의 마음을 감싸주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주는 위로의 말 은혜의 말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에 많고 많은 것들 화려한 것들이 아닌 오직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만 따르고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지혜는 복을 우매는 화를 부릅니다
전도서 10:12~20 / 김종호목사
지혜자의 말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말은 자신을 망친다.
어리석은 자는 말이 많고 수고는 자신을 곤하게 할 뿐이다.
왕이 어리고 아침부터 술 타령이나 하는 나라는 망할 것이다.
사람이 게으르면 들보가 내려 앉고 손이 게으르면 지붕이 샌다.
잔치는 희락을 포도주는 기쁘게하나 돈은 범사에 응용이 된다.
생각으로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고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고 하신다.
묵상:
지혜로운 사람의 말과 어리석은 사람의 말에 대한 말씀이 있다.
일상 생활에서 하루라도 말을 안하고 살수는 없지만
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메라비언 교수님은 이미지와 자세와 용모와 복장 같은 시각이 55% 목소리나 톤, 음색 같은 청각이 38%, 말의 내용인 언어가 7%정도 대화에 영향을 미친다고 발표를 한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 성경은 말의 내용과 태도를다 포함해서 말씀하시는 것 같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자의 구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특징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으로부터 시작을 한다.
지혜자의 말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말은 자신을 망친다.(12)는 것이다.
지혜자의 말은 은혜롭고 생명을 살리고 영혼을 살리는 말이지만 어리석은 자의말은 명에와 가치를 실추시킬 뿐만이 아니라 결국은 자기 자신을 비천하게 만들고 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의 입술의 특징이 몇가지 말씀을 통해서 설명되어 있다.
1. 어리석은 자의 입술은 자기 자신을 망친다.(12)
2. 처음에는 어리석은 말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미치광이 처럼 말한다.(13)
3. 어리석은 자는 말을 많이 한다.(14)
어리석은 자의 특징들이다. 이것이 나의 특징이지 않기를 기도한다.
말이 많으면 실수가 많고 허물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잠 10:19)
어리석은 사람의 행동의 특징이 있다.
어리석은 사람들의 수고는 자신을 피곤하게 할 뿐이다.(15)
일의 순서와 절차를 모르기 때문에 아무리 애를 써도 능률이 오르지도 않고 오히려 자신을 피곤하게 만들 뿐이다. 지혜가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어떤 사람의 말과 행동만 보면 그 사람이 지혜로운지 어리석은지 판단이 가능하다는 말씀이다. 말과 행동 삼가하고 조심해서 해야 한다. 아멘.
개인적인 우매함 보다 더 큰 문제는 국가적인 우매함이다.
왕이 어리고 아침부터 술 타령이나 하는 나라는 망할 것이다.(16)라고 하신다.
왕이 어리다는 말씀은 연세가 적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혜가 없다는 말씀이다.
리더십이 지혜롭지 못하면 따르는 자가 피곤하다.
대신들이 아침부터 술 타령이나 하고 취하여 있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씀이다.(16,17)
아침부터 술을 퍼 마시고 있는데 국정 운영이 제되로 될 리가 있겠는가?
국가의 흥망성쇠는 국가 지도자에게 달려 있는부분이 많다.
지도자가 지혜롭고 근면하고 성실하다면 국민는 행복할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 필요성이 이다. 아멘.
지혜로운 전도자가 몇가지 더 당부를 하신다.
사람이 게으르면 들보가 내려 앉고 손이 게으르면 지붕이 샌다.(18)
게으른 사람은 나랏님도 구제할 방법이 없다.
잔치는 희락을 포도주는 기쁘게하나 돈은 범사에 응용이 된다.(19)
돈은 범사에 응용이 된다고 말씀하신다. 돈은 중요하다.
그러나 최고로 중요하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고 하나님의 가치 기준에 따라 돈을 사용한다면
돈은 범사에 잘 응용이 되고 인생도 행복해 질 것이다.
생각으로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고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고 하신다.(20)
내 생각을 바꾸어야 할 부분이다.
농담으로 지도자에 대해서 험담하고 욕하고 깔아뭉개므로 쾌감을 느끼기도 했는데 생각으로라도 왕과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명심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다. 생각을 조심하자. 아멘.
하나님 아버지! 지혜자와 어리석은 자의 말과 행동의 특징들을 보았습니다.
주님 저는 참으로 어리석지만 성령님의 지혜로 생명을 살리고 공동체에 덕이되는 지혜로운 사람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정치지도자들의 사치와 낭비와 어리석음이 나라를 망침을 봅니다. 지도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배우게 하심을 감사하고 국가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인생되게 하옵소서. 돈은 범사에 응용이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돈 때문에 불행해 지는 삶이 아니라 돈을 통하여 주님의 영광을 드러나게 하옵소서. 나의 생각을 다스려 주셔서 지도자와 부자들에 대하여 욕하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시고 원망과 불평은 꿈 속에서라도 내려놓게 하옵소서.
거룩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지혜는 복을 우매는 화를 부른다
전도서 10:12-20 / 신요한목사
요약 : 지혜자의 말은 은혜로워도 우매자의 입술은 흘러나오는 말 때문에 망하게 된다. 우매자의 수고는 자신을 피곤하게 할 뿐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왕이 어리고 대신들이 아침부터 잔치하는 나라는 화가 있다. 하지만 백성들의 생존을 위해 수고하는 관리가 있다면 희망이 있는 나라이다. 게을러 손을 놓으면 집이 샌다. 심중에라도 왕과 부자를 저주하지 말아야 한다.
1.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우매(10:12~15)
12절 지혜로운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은혜롭지만 어리석은 사람의 입술은 그 자신을 삼키고 만다. 지혜로운 자는 말에서 지혜가 나타난다. 말에서 지혜가 뭍어 나오고 들으면 들을수록 좋다. 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제 입으로 한 말 때문에 망한다. 그가 한 말이 그를 삼켜버린다. 어리석은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처음에는 어리석은 것이더니 결국에는 사악하고 미친 소리로 끝난다(13절). 지혜와 어리석음은 말로 통해 나타나니 그 사람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보고 지혜가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말 속에 지혜와 미련함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지혜자의 입술은 은혜롭다. 그래서 생명을 살리는 힘이 있다. 그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고 살맛이 난다. 그의 말을 들으면 희망이 생기고 가능성이 보이고 자신감이 생긴다. 믿음이 생기고 열정이 생겨서 무엇인가 해 보려는 의지가 발동한다. 하지만 우매자의 입에는 명예와 가치를 실추시키는 말로 가득해 결국은 자신을 비참하게 만든다. 이 사람의 말 속에는 부정적이고 어둡고, 낙심시키는 것으로 가득하다. 핀잔과 자기 교만이 썩여있다. 자신은 아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속빈 강정이다. 알맹이 없는 말만 계속 지껄인다. 말을 많이 하는데 들을 것이 없다. 실수도 많고 허물도 많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결국 이치와 상식에 맞지 않아 물의를 일으킨다(잠 10:19).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지혜로운 체하면서 헛된 말을 많이 하고, 자신의 장래에 대해 과장되고 허황한 말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장래에 일어날 일을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어리석은 사람은 아무리 애써서 일해도 능률이 오르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피곤하게 할 뿐이다. 그에게는 지혜가 없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어리석음으로 시작해서 사악한 광기로 끝난다(13절). 어리석은 자의 말의 끝은 광기다. 분노를 내고 화를 버럭 내고서야 말을 끝낼 수 있다. 결국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으로 자신의 어리석음을 나타낸다. 어리석은 자의 결론은 분노로 나타난다. 좋게 대화를 시작했는데 성질내면서 대화가 마무리 된다. 이는 상대방의 말을 받아줄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기 말만 하고 상대방의 말은 듣지 않는다. 자기 주장만 하고 상대방의 주장은 듣지 않는다. 그래서 버럭 화를 내고 대화는 단절되고 더 이상의 일은 진척되지 않는다. 그래서 어리석다.
2. 지혜와 우매는 내면의 상태를 보여준다.
왜 시기와 다툼이 일어날까? 그것은 내면의 상태가 병이 들었기 때문이다. 약 3:14 에는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마음속에 지독한 시기심과 파당심이 있거든 헛되이 자랑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으로 자랑하는 것은 결국 자기를 망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기와 다툼은 어리석은 자의 광고판이다. “나는 어리석은 자요” 라고 광고하며 다니는 것과 같다.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다. 이것은 위에서 내려오는 지혜가 아니라, 세속적이고 육욕적이고 악마적인 것이다(약3:15). 즉, 모든 악은 시기과 다툼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시기심과 다툼의 배경에는 혼란과 온갖 더러운 행실이 있다(약5:16). 왜 분노를 자제 하지 못하는가? 왜 시기심으로 가득한가? 왜 다툼이 일어나는가? 이는 그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행실이 더럽기 때문이다. 경건하지 못하고, 숨어서 하는 행위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더럽고 추하다.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나나는 것이 시기와 질투 다툼과 분노다. 이러한 것은 성령의 은혜로만 통제가 가능하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더러운 곳에서 머무실 수 없다. 자신이 자주 화를 낸다면, 시기심으로 가득하다면 당신의 생활을 살펴보라. 분명이 어두운 구석이 있을 것이다. 그것부터 해결하면 분노도 시기심도 사라지게 된다.
3. 복 있는 나라와 화 있는 나라(10:16~20)
16절 왕이 어린아이며 고관들이 아침부터 잔치를 벌이는 나라여, 네게 재앙이 있을 것이다. 개인의 우매함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국가 차원의 우매함이다. 국가적인 우매함은 공무원들의 삶을 통해 나타난다. 왕은 어리석어 어린아이처럼 왕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고관들은 국가 재산을 개인의 사욕을 채우는데 사용한다. 아침부터 잔치를 하며 쾌락을 추구하고 방만하게 국정을 운영한다. 고관들의 개인적이 죄를 통제하지 못한다면 그 나라는 망조로 접어든 것이다. 복된 나라의 왕은 지혜롭고 신하들은 방탕하지 않으며 절제한다. 고결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나라가 복이 있다(17절) 고관들이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정책을 펼친다. 지도자가 백성을 염려하니 그 나라가 잘 될 수밖에 없다. 백성이 지도자를 염려하는 수준이 되면 큰일이다. 크고 작은 공동체도 마찬가지이다.
4. 위로부터 난 지혜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 3:17-18)
위로부터 난 지혜는 성결하다고 했다. 마음이 깨끗하고, 거룩하며, 은혜로 가득하다. 이러한 마음 밭에서는 성령이 춤을 춘다. 시기와 질투가 자리 잡을 공간이 없다. 그러므로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거룩을 추구하고 은혜를 갈망하고, 청결을 위해 말씀으로 날마다 마음을 청소한다면 당신은 지혜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지혜는 성결한 마음에서부터 흘러나온다. 내 마음을 은혜로 채우면 놀라운 지혜가 생긴다. 완전한 지혜를 가지고 계신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실인지 테스트 해 보라. 오늘부터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그 말씀을 따라 기도해 보라. 신기하게 전에 생각지 못했던 영적 진리가 깨달아질 것이다.
우매를 버리고 지혜자의 길에 서기 위하여[2]
전도서 10:12-20 / 朴 海 東
묵상내용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음 깊이 들려지는 주님의 음성에 기를 귀울입니다
1. 네가 하는 말에 독이 들어있지 않게 하여라[12,13]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독을 뿜는 뱀이나 전갈같은
파충류들이 뿜어내는 독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에서
마음의 독이 입을 통하여 나오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언젠가 어떤 ** 공단에 가서 상담을 하던 중
고객이나 상담자 사이에 오고가는 대화들이
모두가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 위해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것을 보면서
이런 분위기에서라면
더 이상 대화가 되지 않겠다 생각하고
그냥 나온 적이 있습니다.
"무조건 안된다는 방어적인 자세만 갖지 마시고
우선은 한 번 들어보겠다는 자세를 가져 보세요"
나는 서둘러 나오면서 이 한 마디를 남기고 나왔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자신의 의사를 충분히 전달하려면
말의 절제와 인내,
그리고 나의 말을 부드럽게해주는 주님의 은혜가
내 안에 흘러야 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하나님의 자녀이며
예수님의 제자로서 내가 말의 은혜를 잃어버렸을 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빈수례처럼 허허로워지는 것은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슬픈 감정으로 받아드려집니다
주님 !
제가 말의 은혜를 잃어버려서
내 말 속에 독이 나오지 않게 해주세요
많이 말하려 하기보다
잘 들으려고하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하시고
진심으로 상대방의 입장과 감정을 헤아려서
나의 말을 할 수 있는 말의 은혜가 있게 해주세요.
주님의 제자로써 내가 자랑의 말이나 아첨의 말
그리고 독소를 가진 말을 내뿜게 되지 않도록
내가 내 입에서 말이 나갈 때
내가 지금 지혜자의 길에 있는지 혹은
우매자의 길에 있는지를 분별하도록 하겠습니다
2. 마땅히 해야할 일을 손 놓고 놀지 말아라[16-19]
학교 다닐 때 어떤 과제가 주어졌거나
혹은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에도 왠지 모르게
손 놓고 있다가 임박해서야 부랴부랴 했었던
좋지 않은 습관이 나에게 있습니다
이런 습관은 쉬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후에 목회자가 되어서도
심지어는 일주일 내내 설교 준비할 시간이 많은데도
손 놓고 있다가 주일에 임박해서 준비하여 나갔으니
나의 설교에 무슨 은혜가 있겠으며
이런 나의 모습을
주님께서 얼마나 한심하게 보셨을찌....
지금은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그 때를 심히 부끄러워할 때가 있습니다
왕은 어리고 대신들은 아침부터 잔치하는 나라는
화가 있다고 했는데
할 일이 많은 시간으로 상징되는 아침 시간에
일 손을 놓고 잔치를 한다고 했으니
질서와 기강이 무너질때로 무너진 모습을 봅니다
이런 나라와 사람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당연히 서까래가 내려않고 집이 새는 형국에까지
이르게 될 터인데....
그러나 이것이 바로 내가 속한 이 나라와
나의 이야기가 되지 않기를 기도 드립니다
주님 !
내가 영적으로 게으르고 깨어있지 못해서
내 영혼의 정원에 잡풀들이 우거지며
내 영혼의 집에 서까래가 무너지고 비가 새어
주님이 찾아오시지 못하며
함께 거처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의 길에 서지 않게 하옵소서
묵상적용
3. 영원히 숨겨질 비밀은 없다 [20]
사람들은 남에게 알려져서는 안되는 비밀에 대해
너와 나 둘만 알고
무덤까지 가지고 가자는 말을 하는데
꽁꽁 숨겨놓은 어떤 비밀이나 말들이
마침내는 다 드러나게 되있으니 조심하라는
오늘 마지막 구절의 말씀을 마음 깊이 받아 드립니다
우리 역사에서도 보면
왕을 비방하고 모반을 꾀하는 역모들이
믿었던 사람들에 의해 고변되어
멸문지화를 당하는 일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과연 어떤 비밀이라도 공중의 새가 그 소리를 전하고
날짐승이 그 일을 전파할 수 있다는 이 말을
마음 깊이 새겨서
위험한 비밀을 가진 자로 살지 않기를 다짐합니다
주님 !
심판의 그날에는 내가 무슨 말을 하였던지
내가 한 말들에 의해 심판을 받게 되리라고 했는데
세상의 제왕들보다 높이 계신
만왕의 왕이신 주님께
내가 생각으로나
혹은 말로라도 배역하는 일이 없도록
내 마음의 생각과 입술의 언어를 지켜 주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