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news.v.daum.net/v/20200718080004011
"내 다리공(다리 공개)."
그 말과 함께, 단체 채팅방에 사진 하나가 떴다. 한 여성의 다리였다. 사진은 곧 가려졌다. 그 방에 있던 36살 남성 A는 "하악"이라고 내뱉더니 "나 숨 좀 쉬게해줘"라고 호응했다. 사진을 보낸 35살 여성 B는 이에 만족한 듯했다. 또 다른 38살 남성 C는 '와, 감동이에요' 이모티콘을 날렸다. 다른 이들도 "존예(정말 예쁘다)", "맨다리가 더 예뻐", "그거 (직접) 보고 싶으면 존버하자(버티자)" 등 대화를 이어갔다. 벙참(직접 만나는 것)을 꼭 하잔 얘기까지.
결혼한 남녀들이었다. 한 사람에게 끌렸고, 사랑에 빠졌고, 평생 함께하기로 약속했단 의미다. 그런 그들이 여기서, 배우자가 아닌 이성과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황당하게도, 이곳은 누구나 맘먹으면 손쉽게 들어올 수 있었다. 그리고 철저히 나를 감출 수 있었다. 별다른 가입도, 개인 정보도 필요 없었다. 오빠, 여보 등 두 글자짜리 익명 대화명과 색깔로만 해놓은 프로필만 보였다.
기혼자들 '썸톡방(썸을 타기 위한 대화방)' 안에, 3일간 그리 머물러 있었다.
취재를 시작한 건 세 가족 아빠의 제보 때문이었다. 아내와 딸이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라 했다. 올해 초, 아내가 외도했다며 사연을 털어놓았다. 그 통로가 한 메신저 '오픈 채팅방'이라 했다. 그걸 통해 아내가 남성 여럿과 만났다고 했다. 두 달 만에 알아차렸고, 용서했지만, 상처는 채 씻기지 않았단다. 여전히 많이 힘들다고 했다.
괜스레 기사로 알리는 꼴이 될까 싶어, 오래 주저했었다. 나 또한 기혼자이기에 거부감도 컸다. 그러나 썸톡방에 들어가 체험하는 동안,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수백 번씩 했다. 그래서 내 아내가, 남편이, 이성과 이런 대화를 나누는 걸 꿈에도 모를, 배우자를 위해 펜을 잡기로 했다. 이 채팅방을 관리하는 메신저 측이, 부디 기술적으로 규제할 방안을 꼭 마련하길 바라는 맘으로.
참고로 이 체험을 시작하기 전에, 아내에게 미리 알렸다(오해하면 위험, 생명보험 가입).
썸톡방 화면들. 떳떳하면 이름, 얼굴 모두 깔 수 있지 않았을까./사진=남형도 기자 카톡
단 1분이었다. 기혼 남녀들의 '썸톡방'으로 들어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실로 놀라웠다. 국내 가입자가 4500만명, 전 국민이 사실상 다 쓰는 메신저에 이리 활짝 열려 있다는 게.
특정 키워드로 검색만 해도 엄청난 기혼 썸톡방이 쏟아졌다. 썸이 아닌 친목방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썸방'이었다. 한 채팅방 배경은 남녀가 껴안고 있는 모습이었고, 설명엔 '썸&친목', '연애', '얼공필(얼굴 공개 필수)' 등이 적혀 있었다. 또 다른 방은 '존잘, 존예들의 썸방'이란 제목으로 개설돼 있었다. 그 방 배경 사진엔 '이 밤은 지고, 난 널 책임지고' 같은 문구가 있었다. 누가 봐도 개설 목적이 뚜렷해 보였다.
그중 한 곳에 들어갔다. 그러니 대뜸 "남자야? 여자야?"하고 물었다. 남자라 답하니 "O휴(남자란 뜻)는 마감이야"라고 했다. "아, 마감이요?"라고 되묻자마자 이미 쫓겨났다.
또 다른 방에 들어갔다. 방장이 '닉변(닉네임 변경)'을 하라고 했다. 어떻게 바꾸느냐 물었더니, 본인들처럼 하라고 했다. '닉네임 두 글자, 나이, 사는 곳, 성별' 이 순서로 쓰면 됐다. 그래서 '똘이(반려견 이름), 38, 서울, 남' 이렇게 바꿨다. 그랬더니 프로필 사진을 색깔만 남기고(예컨대 빨간색, 파란색 등) 바꾸란다. 어떻게 하는지 몰라 우물쭈물하다 또 쫓겨났다.
썸톡방에 들어가자마자 받은 인사./사진=남기자가 들어간 썸톡방 화면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또 다른 썸톡방에 겨우 안착했다. 대화명을 '새끼곰'이라 했다. 얼마 전 사육장 곰들의 실태 기사를 써서였다. 그랬더니 두 글자로 바꾸라 해서, '색곰'이라 바꿨다. 이들에게 썩 잘 어울리는 대화명이라 여겼다.
다시 강조컨대, 그 썸톡방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조건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어떤 진입 장벽도 없었다. 모든 건 익명이었다. 그러니 나를 철저히 숨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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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하게 논다"며 '웨딩 사진'까지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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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간 뒤 거기 남아 대화하려니 추가 '인증'이 필요했다.
총 3단계 인증이 있다고 했다. 1단계는 '얼굴 사진'을 보내는 거였다. 예전에 칼럼에 썼던 사진 한 장을 보냈다. 그랬더니 2단계로 '웨딩 사진'을 보내달라 했다. 아내 얼굴을 가리고, 사진 한 장을 찾아서 보냈다. 그랬더니 "옆 모습이라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앞모습이 나온 것으로 다시 보냈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일까' 잠시 생각했다.
다 끝났나 싶었는데, 마지막으로 '실시간 인증'을 하란다. 앞에서 인증한 사진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하겠단 거였다. 그러니 "손가락 네 개를 펴고, 사진을 찍어서 보내달라"고 내게 말했다. 난 전화 취재를 하는 방에 들어가 백 만년 만에 셀카를 찍었다. 그걸 보냈다.
그리고 답을 기다렸다. 잠시 뒤 "합격"이라며 "반갑다"는 환영 인사가 이어졌다. 합격이란 말은 입사 이후 처음 들었다. '이걸 기뻐해야 하는 건가' 싶어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다행이긴 했다, 이제야 오가는 대화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됐으니.
전문 링크로! 기혼 오카방 실태가 구체적으로 나와있어서 다 읽어보는걸 추천
첫댓글 썸상형, 커벙, 밥벙 존나 촌스러움;;;
와....왜 저러는걸까진짜
기사 전문 보고왔는데 기자님 고생 많이했네 기사 좋다 그리고 불륜방 감성 진짜 촌스러움
고마워 정독했다 들어가서 기사 댓글도 읽어보면 생각이 많아짐 ㅜㅜ 시발
미친거아님 밥쳐먹고 할일 드럽게 없네 다 이혼해라ㅡㅡ
내 주변에도 이걸로 이혼한 사람 있음 진심 정모하고 난리도 아니더라
와 4500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