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40]
2019.07.08(월)
최고의 선물, 마지막 선물
춘천행 기차에서 나들이 가는 할머니들과 마주 앉게 됐습니다. 연신 떠들며 깔깔대며...
왜 여자들은 나이가 들면 목소리가 커지는지, 목청이 보리이삭 패듯합니다. 얘기가 시들해지자 핸드폰을 열고
주고받는 폼이 손자녀 자랑입니다.
“우리 둘째야, 잘 생겼지? 한 자리할 거 같지?“
육아가 힘들다고 팔자 타령하던 할머니도 침을 바르며 자랑합니다.
할아버지 세상인들 다를 리 없지요. 핸드폰의 배경사진, 이미지 사진을 아이들로 쫙 깔은 분도 많습니다.
가까이 두고 보고 싶지만, 육아를 맡지 않는 이상 손자녀의 얼굴 보기가 녹록치 않은 세상입니다.
세상살이가 바쁘고 다들 떨어져 사니, 한 주에 한 번 만나면 거의 우상 수준이고,
한 달에 한두 번 돼도 부러움을 삽니다. 명절 같은 특별한 날에나 얼굴 보는 경우도 허다하니까요.
손자녀를 향한 조부모의 짝사랑은 이렇듯 애틋합니다.
우리 집은 3대가 함께 삽니다.
아들 딸 남매가 내게 선물한 손자녀가 다섯인데 위로는 중학교, 초등학교, 유치원, 어린이집, 16개월 유아까지
다채롭습니다. 손자녀에게서 행복감을 느끼고 교감이 오갈 때는 특히 아이를 안아줄 때입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아침에 일어나서, 등하원할 때, 외출했다가 돌아올 때도 할아버지를 부르며 뛰어오는
아이들을 꼭 안아줍니다.
처음 수동적이던 아이들이 습관이 됐습니다.
지금은 내가 안아주지만 곧 쟤들이 날 안겠구나, 내 키를 훌쩍 넘긴 중학생 큰 외손녀를 보니 그렇습니다.
흐르는 세월을 생각하면 아이를 안아줄 기회가 많지 않음을 느낍니다.
하나 둘씩 내 품을 벗어나는 위치전도가 찾아올 테니까요. 그때가 되면 아이들은 손을 벌이고, 나는 아이들에게
다가서겠지요. 할아버지 시대가 가면 그 자리는 아이들 몫이겠구나, 돌아올 삶의 궤적이 떠올려집니다.
하지만, 이래도 저래도 아이들과 갖는 시간은 행복한 일입니다. 채색만 다를 뿐 손자녀와 가슴으로 나누는
사랑이란 애틋함은 더 깊고 성숙해질 테니까...
그런데 아이들이 자랄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른 건 신비합니다.
딸이 첫 손녀를 안겨줄 때, 볼을 대면서 어디서 이런 선물이 왔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라 생각했습니다. 살면서 이렇게 가슴 뭉클한 정감을
일으킨 적은 없었으니까요.
아내로부터 두 자녀를 얻을 때도 이런 충만한 감정은 갖지 못했습니다. 아빠가 됐다는 기쁨과 가장이 됐다는
우쭐함은 있었지만.
내리사랑이라는 말도 어쩌면 늦게 철들며 생긴 보상심리 같은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네 손자녀의 성장주기를 일정 간격으로 맞으면서 그 때마다 새로운 눈뜸도 있었지요.
선물을 받을 때마다 나름 사랑이란 거름을 듬뿍듬뿍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지난 해 막내 손녀가 태어나서는 또 다른 감동을 일으켰습니다. 백일을 지나고 돌을 거치고,
기다가 일어서고, 아장아장 걸음마를 뗄 때, 주기별 성장과정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아이의 재롱을 보면서, 안아주면서, 같이 장난치다가, 그리고 볼을 비비다가 갑자기 이런 감탄사가 터져
나왔습니다. “내게 주시는 마지막 선물이구나!”하는.
‘최고의 선물’에서 ‘마지막 선물’로 바뀐 사실을 깨닫습니다. 더 이상의
선물이 없다는 걸 알게 된 거죠.
16개월짜리 막내손녀가 보여주는 귀여운 작은 동작, 어줍은 말 한마디, 떼쓰며 울거나 웃을 때
앞니 4개, 작은 얼굴에 퍼지는 미소까지 모든 게 아름답습니다.
마지막 선물이란 생각이 들 때마다 순간순간이 더 깊고 정겹습니다. 마치 어린 시절, 영화를 보면서
끝나지 않기를 바랐던 때처럼. 그 아이를 보다가 이보다 아름다운 꽃이 있을까.
애틋한 정분이 안개처럼 펴오릅니다.
“꽃도 피었다 지니 아름다운 것이지/
사시사철 피어있는 꽃이라면 누가 눈길 한 번 주겠어요/
사람도 사라지니 아름다운 게지요/
세월도 흘러가는 것이니 아쉬운 게지요/
사라지는 것들의 사랑과 사람의 사랑이/
그토록 아름답기도 하고 눈물겹기도 한 게지요 (정일근 詩에서)
한철 피었다 지는 세상에서 외롭지 않게 다섯 손자녀와 시절을 따라 아름다운 기억을 쌓는 일은 더없는
기쁨입니다. 앞으로도 10년은 더 어린 것들의 웃음소리와 재잘거림과 교감하며 지낼 수 있으니
한없는 은총입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강변역에 내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롯데마트로 향합니다.
내게 달려와 두 손을 내밀며 눈을 반짝거릴 세 손자녀, 고사리 손에 쥐어 줄 먹거리를 사기 위해서죠.
버거젤리와 마이쮸, 왓따껌... (소설가) 13.
첫댓글 이제사 맛보는중이죠
선배님들은 벌써지겠 지만요
초보 할배 역활이 만만치 않거든요
많은 지도편달 바람니다
우리세상의 할배 할매들 화이팅임니다
아름다운 글입니다. 할아버지의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지기도 하구요.ㅎ
저도 마이쮸 좋아합니다.ㅎㅎ
행복
자녀들 쑥쑥 자라는게
가장큰 행복이지요.
강변역 롯데마트
익숙한 마트라서
눈이 번뜩이네요.
손자녀가 없지만 그래서 버거젤리와 마이쮸는 모르지만 아름답고 행복한 사람의 일생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이
실감 나는 손주 바보 입니다
아무리 꽃이 예쁘다 한들
어디 인꽃 만큼 예쁠까요
할배의 마음을 이심전심 으로
느껴 봅니다
항상 손주들과의 교감으로
행복 만땅 하십시요~^^
모두에게 축복이 전염되길